어릴적엔 영화 주인공이라도 되고 싶었지

그게 니모라도 말이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야.

반 세기 전 어느 저명한 영화제, 할리우드 프라임 시즌의 서막을 알렸던 어느 영화 감독은 이렇게 말했다.

영화가 처망하지 않도록 첫 시퀀스를 잘 쓰는 방법

오프닝 씬은 효율적으로 쓰라.
반전이 있도록 서술하라.
너무 많은 것을 담으려 노력하지는 말아라.

그러나 동시에 흥미진진하게 전개하라!

그럼 지금 내 상황은 효용적인 시퀀스인 건지 아닌 건지. 느와르 영화라면 틀자마자 수면시간 진입, 멜로 앞에선 기절, 공포영화라면 학을 떼는 picky eaters 부장 출신 니네집강아지 군은 허름한 내부를 둘러보았다. 눈깔 한 쪽 떼고 봐도 여긴 지난 주에 본 ‘스크림 산장의 13가지 비밀’에 나오던 그 방이다. 주인공 둘이 주제 파악 못하고 그짓을 하려다 연쇄 살인기계에게 갈려 나가던…… 아니라고 부정하고 싶어도. 하나, 협탁 위 콘돔과 개 머리띠 check. 둘, 맹하게 침대 위에 앉은 차장(닉네임:모르는개밥줌) check. 셋, 어쩐지 계속 스산하게 들려오는 화이트 노이즈 check…….

그러니까, 난 어쩌면 믿기 힘들었던 것 같아……
어느날부터인가 친구와 함께 *영화 주인공으로 발탁되어 꿈에서 플레이 체험을 하게 되었단 사실을.

방 밖에서 전기톱이 우매한 커플들을 썰어대는 소리가 끊임없이 들려왔다. 아마 쟤는 이 산장 안의 모든 놈들을 썰고 나서도 방 앞에서 대기할 것이다. 우리 둘이 우정을 저버리고 흘레붙어 내일부터 남이 되기 전까지는…… 이 구역 두말 않는 편식쟁이인 그가 봐도 이 상황은 자명했다. 이 타이틀 시퀀스는 망했다. 감독이 어떤 새끼인지는 몰라도…….

그 오리무중 예술충 감독 새끼가 그랬거든,

니네집강아지 엄마!!!!!!!! 보고싶어!!!!!!!

첫 쇼트는 대사로 시작하지 말 것.


Scene in the box .

명해고등학교와 Picky eaters

① 인천광역시 연수구 송도과학로 — 에 위치한 사립 고등학교. 분류는 일반.

국제학교 설립이 무산된 부지를 날름 강탈해 세워진 사립 고등학교. 인천시 무상교육 도입 후에도 교육선도학교라는 위명 아래 고가의 학비를 걷는 양아치 재단이 세운 교육시설이다. #고교학점제 #AI에듀케이션 #고교디지털화 등 쓰잘데없고 있어 보이기만 한 제도란 제도는 다 들여 ‘최신’ 교육을 하고 있다고 생색내고 싶어한다. 주변 인식은 집에 돈 좀 있는 깡통들이 가는 학교, 지능 수위가 양철로봇의 그것과 다름 없어 자식들을 국제고에 보내지 못한 상위 부모들이 차선으로 택하는 학교, 정도.

이런 부모들에게서 걷은 학비로 장학금 제도를 정비한 덕에 송도 내 입결 1위, 서울권 대학 합격자 배출 1위의 자리를 놓치지 않고 있으니 아이러니하기 그지없다. 깡통들은 졸업 직후 유학길에 오르고, 집도 돈도 절도 없는 도로시들은 국내 상위권 대학에 진입하니 꽤 행복한 결말 같기도…….

송도 센트럴파크, 트리플 스트리트, 연안을 낀 땡땡이 특화 고등학교. 고교 학점제 도입과 더불어 이와 같은 현상은 꽤나 심화됐다. 전원 기숙사제를 표방하고 있으나 학생 인권에 대해 매스컴이 앵알댄 이후부터 그 누구도 일과 시간에 학교 밖으로 나서는 것을 제재하지 않는다. 학생들이 주로 행하는 일탈이라고 해봤자 쇼핑, 조깅, 자전거 타고 부두 라이딩 등으로 건전한 편이니까…….

② 영화편식동아리 Picky eaters

입부 조건

ⓐ 자신만의 영화 취향이 확고하게 있을 것
ⓑ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상한 영화 시청에 거부감이 없을 것

음지 동아리이므로 입부 과정 또한 기묘하다.
‘투데이타임’ 앱의 학교 전용 익명 게시판에 가끔 이와 같은 글이 업로드되었다가 빛삭되는 경우를 봤을 것이다.

익명
09/25 22 : 04

주기적으로 영화 같이 보고 토하실 분

해당 링크에 접속하게 되면, 호스트에게서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받을 수 있다.

인생 제일 좆같은 영화와 좋같은 영화는?

참고로 나는 4교시 추리영역과 콘스탄틴을 골랐다. 여기까지 정독하였다면 접수 계정 바이오에 해당 질문에 대한 답을 기재하여주세요.

만일 부장이나 차장의 맘에 드는 대답을 한다면 다음과 같은 답이 되돌아온다.

구 도서관 1층 영상실 A

이쯤이면 눈치 챘겠지만, 저게 픽키 이터스의 동아리방이다. 해당 건물은 설립 초기 빛이 닿으면 변색되고, 습하면 삭는 책의 특성을 모르는 멍청한 건축가에 의해 임시로 지어졌다가 반 년도 안 되어 버려진 비운의 장소. 공실로 건물을 놀릴 수 없던 학교가 학생들에게 공부방으로 전면 개방하고는 있으나 오후 9시만 되면 이상한 흐느낌이 들리고, 벽에 걸린 안데르센 초상화가 노려보고, 불이 갑자기 꺼지고, 의지와 상관 없이 길을 잃게 된다는 괴담 탓에 실질적으로 출입하는 인원은 그딴 소문엔 까딱 않는 이상한 새끼들인 우리밖엔 없다. 사실 개중의 절반은 우리가 만들어 낸 것 같지만.

하는 일이라고는 딱히 없다. 규칙은 다음과 같다.

단톡방 내 본명 언급 금지 꼭 닉네임으로 부를 것

매주 금요일 밤 8시 영상실 B에서 영화 시청 모임
영화 모임 개최 시 부장과 차장을 꼭 끼울 것
연애하다 파탄날 시 중앙 홀에서 파이트 클럽 진행 후 패배자 탈퇴 조치
붙어먹다 발각될 시 우리집미친개와 맞짱 진행
뭐 먹고 좀 치우고 가라

모르는개밥줌 근데 요즘 나만 이상한 꿈 꾸냐?

[전체 발신]

니들도 이제 알겠지만 우리는 명해고등학교 음지의 영화편식동아리 ― Picky eaters에 소속되어있는 동아리원입니다.

한달 전 쯤 동아리 책장 사이에 처박혀 있던 기기괴괴 영화 remix USB를 발견해 다 함께 본 이후로 꿈 속에서 친구와 이상한 영화들의 주인공이 되어 씬을 완성해야 하는 기괴한 현상을 겪게 되었죠. 그 덕에 가내, 아니다. 동내, 우정 파괴 주먹다짐 고정충 타파 등의 문제를 겪게 되었으나 중간고사라는 인생 빅 이벤트가 있었기에 이 현상을 씨발 해결해 볼 의지를 갖지 못했어요? 절대 부장과 차장이 문제를 유기한 게 아닙니다.

ㅇㅏ무튼 각설ㅎㅏ고 ,

황금 연휴를 맞아 다같이 이 문제를 해결해보려고함 알겠음? 집에 가는 새끼들은 배신자로 간주함 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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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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