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쉰

해방

처음에 그는, 족쇄가 사라진 일에 대해 이렇게 생각했다

교단 관계자 한 무리가 숲을 빠져나가던 밤, 오쉰은 손에 견과 한 움큼을 쥐고 있었다. 연차로 따지자면 그의 까마득한 선임 되는 자가 여상한 인사와 함께 그를 지나치며 건네준 것이었다. 오쉰은 냉큼 받아먹기에도 단호한 칼날처럼 거절하기에도 애매한 그 호의를 어쩔 줄 몰라 가슴에 품은 채 잠을 청했다.

꿈 없는 밤이 지나고 아침이 밝았다. 그는 여전히 가난했다. 아주 하찮은 친절로도 풍족해질 수 있는 것이 삶이라는데 오쉰은 무엇이든 그 자신에게 베풀어진 것은 좀처럼 소화시킬 줄을 몰랐다. 삼키지 못한 것들이 고스란히 빚으로 남은 탓에 앞으로 한 발짝 내딛을 때마다 땅이 움푹 파였다. 온통 늪지였다. 눅눅하지 않은 땅이 없었다.

난 빈털터리입니다. 그러지 말고 내버려 두십시오. 오쉰은 필요 없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매몰찬 사람이 아니라. 어떤 사람들은 그 역시 개의치 않았다. 그러니 떠나면서도 혀 대신 씹을 요깃거리를 건네주었을 것이다. 할 말이 떠오르지 않아 망설이는 동안 족쇄를 찬 감시자는 그조차 이해한다는 듯 담담한 얼굴로 걸어갔다.

안개 낀 숲은 이른 오전부터 수선스러웠다. 십 년 간 절그럭대며 숲을 누비던 작은 소란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탓이었다. 오쉰은 개암 한 알을 입에 넣고 세게 깨물었다. 까득, 까득, 까드득. 그는 마지막 목격자였다. 그러나 그 누구에게도 쓸모는 없었다. 그는 사라진 족쇄가 어디로 갔는지, 기실 그 족쇄가 어디서 뻗어나온 것인지조차 몰랐다. 애당초 궁금해하지 않았다.

내가 원하는 건, 우리가 서로를 그저 내버려 두는 겁니다.

어떤 마법사 앞에서 앵무새처럼 되뇌곤 했던 말이다. 결국 그가 바라는 대로 되었다. 적어도 오쉰 자신은 사라진 감시자를 찾아 숲을 헤매지 않을 거라 확신할 수 있었다. 그는 평상시와 다름없이 맡은 바 임무를 수행했다.

그 날 오쉰은 다른 대원들이 혼란에 빠져 있거나 분노를 표하거나 걱정스러워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아무도 그에게 영문을 묻지 않았다. 드물게도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그는 무딘 날이었다. 무엇을 자르거나 어딘가에 박혀 버리거나 어떤 것을 무참히 찢거나 가르거나 베어낼 수 없는, 단지 밋밋하고 혼탁한 강철 덩어리였다. 레녹스, 그게 내가 바라는 겁니다. 무딘 날이 되는 거요. 그들은 무딘 금속처럼 매끈하게 숲을, 서로를 떠나갔다. 당신도 내심 이런 것을 바랐을까? 그러면 돌아오지 않을 수도 있겠군. 아니, 돌아오지 않는다고 봐야겠지.

오쉰은 묵묵히 초소를 지켰다. 땅거미가 내려앉고 달빛과 짐승 우짖는 소리 만연한 시각이 될 때까지 홀로 우두커니 앉아 있었다. 이따금 마른 열매를 깨물어 먹으며 허기를 달랬다. 지나치게 요란스러운 소리를 내지 않도록, 또 너무 성급하게 먹어치워 빈 천 주머니만 달랑 남지 않도록 조심하며 아껴 먹었다.

며칠 동안 그는 숲에서 거의 유일하게 평정을 지킨 대원이었다. 베테랑 대원 한 명이 느닷없이 사라진 일로 모두가 조금씩은 동요한 가운데 오쉰만이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말뿐 아니라 별다른 생각조차 없는 것처럼 보였다.

고생이 많습니다. 오쉰은 결국 그 작별 인사를 해석하지 못했다. 입 한 번 벙긋하지 못하고 멀어지는 뒷모습을 노려보았을 따름이다. 어쩌면 그러지 말았어야 했을지도 모른다. 왜. 느닷없는 작별에 훼방을 놓아야 했을지도 모른다. 그러지 않은 탓에 다른 대원들이 동요하고 있었다. 그래서.

오쉰은 레녹스를 내버려 두었다. 그가 그러지 않았다고 한들 숲을 떠나는 여정에 조금의 걸림돌이라도 될 수 있었을는지, 그건 알 수 없는 일이지만 여하간에 그 날 밤 벌어진 일은 그게 다였다. 그는 레녹스를 내버려 두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레녹스가 사라졌다.

그러고 보니 레녹스. 당신이 원하는 게 무엇인지 물어본 적이 없었다. 오쉰은 아주 뒤늦게 깨달았다. 무딘 날이 되고 싶다 말한 것은 오쉰이었고 당신은 그 말에서 무언가, 아마도 동질감과 비슷한 모양을 하고 있을 어떤 감정을 느꼈을 뿐이다.

그래서 오쉰은 당신이 돌아올 것인지 아닌지 가늠할 수가 없었다.

그는 돌아온 레녹스가 “오쉰 대원. 잘 지냈습니까? 여기 받아요. 오는 길에 배급 식량이 조금 남았습니다.” 하고 말하는 것을 상상해 보았다. 생각 속에서 그는 손바닥을 활짝 펼치고 그 위에 올려진 캐슈넛 한 알을 멀거니 내려다 보고 있었다. 씹어먹을 때 오독오독 소리가 나는, 적당히 무르면서 단단한 열매. 입 안에 고소하고 약간 기름진 향이 감돌았다. 잘 지냈습니다. 고맙습니다. 잘 지냈습니까? 그런, 여상한 안부 인사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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