켈라니 콴

점멸

깜빡, 잠이 죽는다 죽음이 웃는다

이 모든 일에 대해 생각해 봐 켈라니.

언제부터 잘못되기 시작했는지 알겠어?

생각해 보란 말이야.

어디서부터 틀린 것 같아?

내가 널 대신해서 바로잡아 줄까?

싱에게, 그 남자한테 널 죽이지 말아달라고 얘기해 줄까?

그게 네가 바라는 거야? 그거면 돼? 그러면 우리를 떠나지 않을 거야?

아 그래. 켈라니 콴은 입꼬리를 말아 자그마한 미소를 만들었다. 네 말이 맞아. 난 잃을 게 별로 없는 사람이거든. 빌어먹을 대마 농장에 처음 들어갔을 때랑 조금도 다르지 않지. 그래 내가 소중히 여기는 건 다른 누구도 아닌 내 목숨 뿐이야. (십 년 전에는 하나뿐이었지만 이젠 아니다.)

네 말이 맞아. 가서 그렇게 말해. 날 죽이지 말라고 해. 이제 너희 둘에게 양보할 목숨이 단 하나도 남지 않았다고. 주사위 놀이하듯 나를 죽였다가 살리는 짓거리도 이제는 끝이라고. 그렇게 말해. 그리고 씨발 내 인생에서 꺼지라고도 해. 너희 둘 다 말야.

좋아 켈라니. 지금 이 말 꽤 통쾌한걸. 이제 말하기만 해. 입 밖으로 낸 다음 저 새낄 비웃고 시끄럽게 웃어. 너흴 떠나지 않을 거냐고? 씨발 천만에! 난 이미 죽은 사람이야. 켈라니 콴은 죽어서 너흴 떠난 지 오래야! 멍청하긴, 기르카. 네가 한 짓이야. 너랑 네 친구가 같이 한 짓이잖아!

이렇게 말하면 되겠네. 해, 켈라니. 저질러 버려. 말이라도 되는 대로 지껄여. 잘하는 거잖아. 쟤도 대답을 기다리는 중이야. 떠나지 말아달라고 부탁하러 왔잖아!

그거면 돼? 그거면 되냐고?

그거면 되냐고! 그걸로 만족하겠냐고!

아, 불쌍해라! 십 년을 뒹굴어 놓고도 아직 날 몰라!

만족해? 내가? 켈라니 콴이?

콴은 생각했다.

켈라니……. 너도 좋았잖아. 솔직해져. 처음으로 자살했을 때 짜릿했잖아. 살아 있는 건 존나 기분 째지는 일이라고 생각했잖아. 다시 살아날 수만 있으면 몇 번이고 죽어도 괜찮을 것 같았잖아……. 딱 하룻밤만 죽어 있을 수 있다면. 단 하루라도 좋으니 너를 포함한 그 누구도 알 수 없고 기억할 수 없고 말할 수 없고 생각할 수 없는 곳으로 갈 수 있다면. 그 새카맣고 달콤한 잠이

비로소 나를 살아 있게 하니까,

그러니까 괜찮아 아니 사실은 더 원해

나를 죽여 죽여서 나를 살려 줘 나를 살린 다음에는 도로 죽여 줘 그리고 나서는 내 시체를 밟고 웃어 줘 내가 살아날 때까지 거기서 날 비웃어 그리고 내가 살아나면 그때 나를 반겨 줘 그런 다음에 다시 나를 지워 버려 내가 살아날 때까지 나를 새카맣게 잊어 버려 씨발 아니야 아니야 아니야 아니야 아니야 아니야 아니야 아니야 자기야 틀렸어 자기야아아아아아아아…… 기르카 내 자기 전부 잘못됐어 더 원하지 않아 괜찮지 않아 죽음은 달콤한 잠이 아니야 너희들은 나를 심심풀이로 죽였어 계속 죽였어 나를 없애버린 다음 기뻐했어 그게 날 위한 일이라고 생각했어! 그치만 한 번 죽은 나는 다시 돌아오지 않아 너희가 보고 있는 건 내 시신이야 죽어서 썩어버린 켈라니 콴이야 너흴 결코 떠나지 않을 나야 만족하니? 그거면 돼? 너희가 날 망쳤어 이제 내가 뭘 바라는지 모르겠어 나는 살고 싶었는데 죽기보다 살고 싶었을 뿐인데 그래서 머리에 총 맞고 살아났을 때 그 기분이 너무 신기해서 그래서 한 번만 더 해 보면, 아니 한 번 더, 그렇게 한 번 더…… 다시 한 번 더 또 다시 한 번 다시 다시 다시 다시 다시! 이젠 뭐가 삶이고 뭐가 죽음인지 모르겠어 내가 마지막으로 살아 있었던 게 언제야?

죽어서도 살아 있는 것 같아 살아서도 죽어 있는 것 같아 내가 지금 살아 있는 거야?너지금 내말을 듣고있는거니? 내가너한테말하고있긴한거야?지금이생각은대체뭐야?난누구랑이야기하고있는거야?여긴어디야?널보고있는건누구야?네가보고있는나는누구야?왜나는아무런말도할수가없는거야?씨 발도대체여긴어디야내말을누가듣고있긴한거야기르카내말이들려 응 내 말이 들리냐구?

말이

들리니

대답해 봐

들리냐고 묻잖아……

“기르카.“

켈라니는 품 속에 꽁꽁 숨겨 두었던 22구경 권총을 꺼냈다. 그건 이따금 켈라니 콴의 목숨을 앗아갔다가 또 가끔은 켈라니 콴의 목숨을 지켜주는, 작고 아담하고 조용한 무기였는데 이제는 켈라니 콴에게 남은 목숨이 없었다. 지킬 것도 내어줄 것도 없었다. 이걸론 아무것도 못 해. 그래서 켈라니는 바닥에 권총을 던졌다.

“안 갈게. “

“안 그럴게…….“

“그러면 살려 줄래?"

“응?“

“그러면 안 죽일 거야?”

그러면 내가 살아 있다고 말해 줄래?

그리고 세르게이 기르카 앞에서 켈라니 콴은 서서히 죽어 갔다.

콴은 화 내는 법을 잊고 말하는 법을 잊고 눈 깜빡이는 법을 잊고 숨 쉬는 법도 잊고 마침내 서 있는 법도 잊었다. 두 다리를 뻗고 누우니까 정말로 죽어가는 것 같았다. 콴은 바닥에 머리를 처박은 채 껄떡껄떡 숨을 쉬었다. 감지 못해 빠듯해진 눈알에서 눈물이 주륵주륵 흘렀다. 도살장에 갇힌 짐승처럼 마침내 차례를 맞이한 가축처럼 켈라니는 바닥에 누워 눈을 부릅뜬 채 서서히 죽음을 느꼈다. 콴은 엉엉 울다가 미친 사람처럼 웃었다가 바닥에 머리를 쿵쿵 박았다가 기르카를 불렀다가 내던진 권총을 주우려 팔을 휘적였다가 다시 포기하고 엉엉 울었다. 그리고 죽어갔다. 살려 달라고 빌었다. 그러다 숨 쉬는 걸 까먹어서 꺽꺽댔고 또 그러다가 기쁨에 겨워 웃었다. 이거 끝내주네.

마침표. 줄 바꾸고 칸을 띄울 것. 머리 두 개. 그리고 큰따옴표. 그 전에 굵은 글씨로 적어. 켈라니 콴. 콜론. 큰따옴표. 오른쪽으로 벌어진 아가리. 글자를 휘감을 것. 괄호. 말해. 켈라니 콴이. 웃음기 어린 얼굴로. 기쁜 목소리로. 빌어먹을 소프라노처럼.

응? 기르카.

이제 네가 끝내 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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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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