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마시카
눈 오는 림사로민사
에마넬랭과 시카르드가 사귀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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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박사박, 조금 건들거리는 듯한 발걸음이 갑판위에 흔적을 남긴다.
단죄당의 시카르드는 눈을 제법 좋아한다. 사실은 눈이 내리면 치우는 것 마저도 좋아해 높은 위치임에도 간혹 내리는 눈을 직접 쓸어내고는 했다. 요새는 바빠 부하들을 시키고 있었지만 시간이 나면 꼭 제 발로 눈을 밟으러 나왔다.
"시카르드, 뭐해? 춥지도 않냐? 어우, 림사 로민사는 눈 안 올 줄 알았는데."
눈을 구경하는 사이 뒤에서 다소 경박한 목소리가 들렸다. 포르탕 가의 막내아들, 이슈가르드의 난봉꾼. 여러 이름으로 불리는 그였지만 지금은 시카르드의 연인 에마넬랭 드 포르탕이었다. 불만 가득한 표정으로 담요를 들고 있는 것으로 보아 방에서 일부러 챙겨왔겠지. 다정하기 짝이 없는 녀석. 시카르드는 발개진 귀끝을 문지르며 답했다.
"추울게 뭐가 있냐? 눈도 얼마 안내리는구만. 너야말로 안춥냐. 왜 그렇게 얇게 입고 나와?"
괜히 퉁명스레 타박한 그는 남자에게 다가가 담요를 뺏듯이 펼쳐 어깨에 둘러주었다. 저보다 반뼘 정도 큰 사내였지만 시카르드의 눈에는 어쩐지 여려보이는 것이다. 그러고보면 알라미고에서 처음 만나 갈레말드에 갔을 때도 눈이 펑펑 내렸더랬다. 그때 보였던 창백한 뺨과 푸른 두 눈이 아름다워서...
"아니, 네가 더 추워보인다니까? 똑같은 옷이 대체 몇 벌인거야? 가슴팍은 훤히 드러내고. 그러다 감기 걸리면 어쩌려고 그러냐?"
"...안 걸리거든. 너보다 튼튼하니까 쓸데없는 걱정말지?"
"안 걸리긴. 전에도 걸려서 엄청 고생했으면서. 해적은 감기 안걸리냐? 어이가 없네, 정말."
그리 말하고는 제게 둘러진 담요를 기어코 벗어 시카르드에게 둘러준다. 정말, 자상한 남자였다. 이슈가르드에서는 안좋은 소문에 파묻히다시피 한 에마넬랭이었지만 소문은 소문이다.
시카르드는 그런 가십거리에 심력을 소모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뭐든 눈으로 보고 직접 겪는게 최고지. 그리하여 결국은 제가 쟁취해내지 않았던가? 아름답고 깊은 바다를.
그는 살면서 가지고 싶은 것을 놓쳐본 적이 없었다. 그런 심성이니 해적이 된 것이겠지. 아름답고 좋은 것은 제 손에 넣어야만 하는 탓에 아득바득 이 자리까지 올라왔고, 제 바다를 손에 넣은 것이다. 욕심이 끝이 없어 위험할 때도 있었지만, 끝이 좋으면 좋은거지. 물론 아직 끝나려면 멀었고.
의미없는 상념을 이어가던 중 시선이 내려갔다. 뺨과 마찬가지로 조금 창백하고 마른, 그러나 기사 특유의 굳은 살이 배긴 손이 눈에 들어온다. 시카르드는 충동적으로 그 손을 끌어 잡았다. 하얀 손은 공기가 차서 그런지 서늘했으나, 춥지 않다던 말처럼 해적의 손은 따뜻했다.
"진짜 안 춥나보네. 손 따뜻하다. 열이 많은건가?"
"원래 열이 많아. 넌 왜 이렇게 차갑냐? 연약한 귀족나리 감기 걸리기 전에 들어가지. 눈은 방에서도 볼 수 있으니까."
"난 원래 이 체온이거든? 그래도 들어가자. 코코아 준비해놨어."
뾰족해지는 눈초리와 말투를 흘린 채 코코아를 준비해놨다는 말만 담고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에마넬랭의 손을 잡아 이끌었다. 늘 그랬다. 험악한 얼굴로 단 것을 좋아하는 저를 위해서 디저트를 직접 준비하는 탓에, 에마넬랭에게서는 곧잘 단내가 났다. 달고 부드러운 향이 유약하고 발랄한 기사와 잘 어울린다고 생각하며 싸락눈이 내리는 하늘을 올려다봤다.
곧 이슈가르드로 떠나게된다. 그렇게 되면 눈을 더 자주 보겠지. 시카르드는 눈을 제법 좋아한다. 어쩌면 앞으로는 더 좋아질 것이다. 옆에서 함께 볼 사람이 있으니까.
두 명이 방안으로 들어가면, 수면에 눈송이가 닿아 녹아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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