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색思索이라는 것도 해? 네가?

1005. X. XX.

백업용 by 오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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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질 쓰는 건 항상 서툴렀지. 사실 생각해보면 나는 단지 편지뿐만이 아니라, 그냥 사람 간의 대화 자체가 조금 서툴렀던 건지도 몰라.

 

무엇 때문에 이런 생각을 하게 됐더라. 시간이 갈수록 머리가 점점 굳는 것 같으니까, 빨리 생각해내야 할 텐데.

 

아, 맞아. 오해 때문이었지. 내가 하고 싶은 말이 그거였어. 그냥 대화도 서툰데, 어떻게 오해를 풀고 화해를 하냐는 이야기. 물이 든 유리컵에 빨대를 넣으면 휘어진 것처럼 보이잖아. 사람의 마음도 비슷하지. 대체 어느 방향으로 푹푹 찔러야 닿고 싶은 곳에 닿을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니까. 결국은 받아주는 이의 문제이니까, 이건. 아무리 전한다고 해도, 그 쪽에서 받아들여주지 않는다면 어떻게 할 도리가 없단 말이지.

 

솔직함은 미덕이라고 하던가. 딱히 그런 것도 아니더라고. 난 정말로 잘 먹고, 잘 살고, 가끔… 재미있는 걸 하고, 그냥 그렇게만 살 수 있으면 어떻게 되든 좋다고 생각하거든. 그도 그럴게, 난 높은 자리가 싫으니까. 상상만 해도 머리가 아프잖아. 그런 거 하려면 머리가 좋아야 하는 거 아니야?

 

아픈 걸 좋아하는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어, 그치. 다들 딱히 다른 걸 할 수 없으니 참고 버티는 거고. 난 뭐든 성실하게 하는 게 적성에 안 맞거든. 그래서 어젯밤에 기숙사를 나선거야. 별 이유 아니었는데, 뭐였더라. 주말인데 과제하기가 싫어서 나왔을 수도 있고, 아님… 그냥 기분이 좋아서.

 

그래, 맞아. 기분이 좋았지, 오랜만에 아카데미 밖으로 나온 거였거든. 눈치 보기가 껄끄러워 아카데미에만 처박혀있던 것도 꽤 됐었어. ……아니라면 말고. 입학은 아버지의 뜻이었지만, 하여튼 간에 지금은 내가 아카데미생이라는 사실이 참 다행이야. 이곳마저 없었으면 정말이지, 내가 남의 목을 긋거나 내 목을 매거나, 둘 중 하나였을 테니까.

 

밤산책은 좋아. 밤공기를 폐 가득히 담으면 몸 안에서 외부의 공기가 돌아다니는 게 느껴지는 것 같은 착각이 들거든. 돈을 내면서까지 신경을 둔하게 해주는 것들을 사는 사람들이 이해가 안 가. 이건 공짜로도 신경을 날카롭게 해주는데. 그치만 이젠 이것 역시 줄여야할지도 모르겠어. 그도 그럴게, 그 누가 목숨을 걸면서까지 밤산책을 하고 싶어하겠어? 그러는 인간이야말로 위험한 사람이지…….

 

외박이 문제였을지도 몰라. 아니면 시간대나. 혹은 그냥 내가 운이 없었을 수도 있고……. 아님, 내가 그냥 성이 클라이스트라는 게 문제일 수도 있지……. 속편한 소리나 해볼까. 사람에게 오해없이 진심을 전하는 건 참 어려운 일이야.

 

뭐야, 그 얘기 벌써 했었다고? 진짜로? 어쩐지…… 이제 슬슬 한계인 것 같더라. 이거 보여? 시야가 빨개졌어. 원래 저 도로가 저렇게 굽었던 것 같지도 않은데. 안되겠다, 어지러우니까, 눈만 조금 감고 있을게. 감았다가 뜨면, 아카데미 안이겠지. 

 

저기요, 정신이 들어요? 누베스 아카데미 학생입니까?

뭐야, 저거 혹시 피야?

아무나 정찰대 좀 불러주세요! 저기 사람이 쓰러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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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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