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략결혼..
청명이설
남편(부) : 청명
아내(처) : 유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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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출인
청명
서른이면, 이제 곧 좋은 소식 있으려나?
이제 삼십인데 나도 결혼해야지. 너는 뭐 없어?
남자친구도 없는 것 같은데. 소개팅 안 받을래?
서른이라는 나이는 유이설의 인생에서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나이였다. 그저 살아가다보니 서른의 나이에 봉착했을 뿐인데. 이십 대 때와 그다지 다르지 않은 삶이었다. 꼭두새벽부터 일어나 회사에 출근할 준비를 하고, 퇴근 후 적막 속에서 저녁을 먹고 자고 일어나 다시 출근. 서른이 되고 나서는 야근이 늘어나 저녁을 먹는 시간이 조금 늦춰졌을 뿐이었다. 결혼적령기니 뭐니. 유이설은 제 인생 계획에 결혼이라는 두 글자를 끼워넣어 본 적 따위 없었다. 그렇기에 유이설은 서른이 되자 호들갑을 떠는 주변 사람들이 이해되지 않았다.
그런데 고민 정도는 조금 해볼걸 그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안녕하세요, 청명이라고 합니다.”
인생 계획에 결혼이라는 사안을 끼워 넣는 것을.
***
조용한 레스토랑 안. 깔끔한 정장을 차려입고 차분하게 앉아있는 한 남성이 보인다. 차분하게 가라앉아있는 생머리는 단정한 분위기를 내보냈다. 유이설은 작게 한숨을 내쉬고 남성의 앞자리에 앉았다.
“유이설?”
“네.”
청명. 나이는 스물 아홉. 직업은 C로펌의 변호사. …그리고 A기업 막내아들.
유이설. 나이는 서른. 직업은 D기업 법무팀 소속. 그리고 D기업 수양딸.
“자세한 사항은 이미 들었을 거라 생각되는데. 그쵸?”
정략결혼. 살면서 처음 보는 사람과 하는 결혼이었다. 기업 간의 이익추구에 따른 지극히 사무적인 계약. 청명과 유이설의 결혼은 일종의 거래였다. 저의 결혼 소식을 알려오는 백천과 윤종의 참담한 얼굴이 떠올랐다.
‘미안하다. 이설아. 마음같아서는 내가 하고 싶은데,’
‘그럼 형님이 하시죠.’
‘……그래도 그렇게 질 나쁜 애는 아니니 걱정은 말거라.’
‘형님이 하시는 것도 저는 찬성입니다. 제가 밀어드릴게요.’
‘네 결혼 상대야.’
무시하지 마시고요. 진지하게 생각해보십시오, 형님. 어 싫어. 유이설은 백천이 내민 패드를 받아 들었다. 이름과 직업, 심지어는 출신 초등학교까지 적혀 있는 문서를 꼼꼼하게 읽어내려갔다. 특이한 것 없는 그냥 말 그대로의 프로필이었다. 유이설은 문서 위쪽에 첨부된 사진을 바라봤다. 긴 머리를 단정하게 묶어 내린 모습이 어딘가 익숙하다.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막연하게 들었다. 그리고 두 사람은 본인에게 해가 갈만한 일을 들이밀 사람들이 아니었다. 비록 피가 섞이지는 않았지만 끈끈한 신뢰관계로 구축되어 있어 웬만한 피붙이들 보다 더 좋은 유대관계를 맺고 있다고 자신할 수 있었다. 두 사람 전부 유이설이 하기 싫다는 말을 하면 바로 결혼을 물려줄 것이다. 유이설은 백천과 윤종을 믿었다. 할게요, 결혼.
청명의 얼굴 위로 백천과 윤종의 얼굴이 차례대로 지나갔다가, 이내 다시 청명의 얼굴로 돌아왔다. 짧은 회상 탓에 생긴 적막을 가르고 유이설이 답했다.
“…아, 네.”
청명은 테이블 위에 놓여있던 서류봉투를 열어 종이 한 장을 꺼냈다. 혼인신고서,라고 적힌 종이에는 이미 모든 것이 전부 작성되어 있어 서명만 하면 되는 상태였다. 가방에서 펜을 꺼내 서류에 서명을 하려던 찰나, 눈앞에 있던 종이가 스르륵 움직였다.
“그… 본인 의사가 들어간 건 맞죠? 앞으로 평생 같이 살아야되는데.”
“네.”
알고 있다는 듯 고개를 두어번 끄덕이자 청명은 가져갔던 종이를 다시 앞으로 내밀었다. 신중한 얼굴로 공간에 맞춰 서명을 하는 유이설을 청명은 가만 바라봤다. 달라진 게 없네. 아닌가? 눈매가 조금, 더 순해진 것 같기도 하고… 유이설을 훑는 청명의 눈이 집요하다.
“여기.”
“아.”
날카롭게 빛나던 눈매가 풀어진다. 역시 어디서 본 것 같아.
“아, 네. 이건 내가 조만간 제출할게요. 신분증이랑 도장은 나중에 받도록 하고… 밥,”
“본 적. 있죠?”
“네?”
어디서 마주친 적 있지 않나 싶어서. 청명의 심장이 쿵쿵 뛰었다. 아직은 안돼요. 소소의 목소리가 환청처럼 들려온다. 근데 그러면 나중은 언제 오는데? 이번에도 모든 게 끝나고 나서? 청명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근데 알려줄 수는 없고. 이쪽도 사정이라는 게 있어서.”
여기 주문할게요. 아, 그리고 반말 해도 돼요. 저도 그쪽이 더 편한데. 말 놔도 되려나? 청명이 중얼거리듯 말했다. 유이설은 마지막 말에 미간을 찌푸리며 고개를 저었다.
“내가 나이 더 많아.”
“안돼요?”
“안 돼.”
“고작 한 살 차이 가지고.”
그래도 안 돼. 단호하게 일갈하는 유이설의 모습에 청명은 결국 꼬리를 내렸다. 근데 청명. 이 결혼, 왜 해? 순식간에 말을 놓은 유이설이 물었다. A에는 D가 도움이 안 될텐데. 유이설은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해가 가지 않았다. 이 거래로 인해 이득은 보는 기업은 D기업 뿐이었다. A기업에서는 오히려 마이너스인 거래였다. 거기다 회사의 경영에는 딱히 생각이 없어 일찌감치 손을 놓고 변호사로 진로를 잡은 사람에게는 더욱 더. 위화감이 커진다.
“그걸 안 물어보고 온 거야?”
“말.”
“요?”
또 얼굴을 찡그리며 끄덕인다. 누가 그래? 우리가 손해라고. 손해라고까지는 안했는데. 어쨌든. 청명은 한쪽 입꼬리를 슬 올렸다. 별 건 아니고, 우리 형이 경영권을 가져야되는데 그걸 방해하는 사람들이 좀 많아서. 그 사람들 밀어내려면 도움이 좀 필요해서. 현재 청명의 회사는 주도권 싸움이 한창이었다. 지금은 돌아가신 회장의 동생이 그 주도권을 잡기 위해 안달이었다. 물론 청명의 형은 그깟 경영권 따위 뺏기지 않을 테지만, 청명은 경영권 싸움을 하고 있다는 그 상황 자체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감히 누구한테 덤비는지. 마음 같아서는 다 때려 잡아서 감빵에 처넣어버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예전에는 감옥이고 뭐고 그냥 일단 반 죽여 놓았을텐데. 나도 너무 물러졌다. 청명은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눈 앞의 음식을 떠먹었다.
“그걸, 결혼으로 해결?”
”어.”
가장 쉽고 빠르면서 간단한 방법이거든. 이 결혼을 하면서 우리 쪽에 도움이 아아주 많이 되었다고. 요. 겸사겸사 얼굴도 좀 보고 그러는 거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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