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일타브게일] 타브의 종족이 바뀌는 글
개연성? 내가 보고 싶어하는 것이 개연성.
※ 개인적인 해석이 담긴 설정이 있는 타브와 타브의 이름(라파엘)이 등장합니다.
※ 가내타브 설정
※ 본문 내의 '그'는 성별지칭 명사가 아닙니다.
※ 선동과 날조 및 캐붕 주의
※ 퇴고 안 함 주의
마법이란 무엇일까? 라파엘에게 마법은 섬세한 손길로 위브를 어루만지고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로 주문을 읊으면 근사한 결과가 나오는 말 그대로 '마법'이었다. 멀리서 번개로 적을 지져버린다거나 때로는 높은 곳에서 떨어져도 다치지 않게 감싸주기도 하는 편리한 도구, 그 이상 이하도 아니었다. 페이룬 아니, 토릴 행성에 존재하는 마법의 종류가 얼마나 다양한지 순진한 라파엘은 전혀 모르고 있었다. 직접 경험해보기 전까지 말이다.
여느 날과 크게 다를 것 없는 하루였다. 발더스 게이트에 도착하기 위해 부지런히 걸었고 어쩌다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파티의 리더인 라파엘과 대화하던 이름 모를 위저드는 라파엘의 언행에 기분이 상했는지 크게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오늘도 조용히 지나가긴 글렀군. 누군가의 말을 끝으로 그들은 전투에 들어갔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전투는 그렇게 힘들지 않았다. 상대는 위저드와 그를 따르는 소서러 두어명이었다. 두 붉은 바바리안을 앞세운 일행은 마법사들을 때려눕히는 데 큰 어려움을 겪지 않았다. 그저 마법사들에게 가까이 다가가서 몇 번 두들겨 팼더니 그대로 바닥에 대자로 뻗어버리는 모습이 안쓰럽기까지 했다. 이 모습을 본 게일은 어쩐지 남의 일이 아닌 것 같아 식은땀을 조금 흘렸다나. 뭐 그런 아주 웃지 못할 작은 헤프닝으로 지나갈 일이었다.
분명히 그랬었다. 비살상으로 때려눕혀 완전히 기절한 줄 알았던 위저드가 정신을 차렸고, 그 위저드가 일행의 맨 뒤에 있는 게일을 향해 주문을 읊조리기 전까지는. 위저드의 존재를 뒤늦게 알아차린 게일이 뒤를 돌아보았을 땐 이미 주문이 완성이 되어있었다. 찰나의 순간이 영원처럼 천천히 흘러가기 시작했다. 마법사의 손을 떠나 저를 향해 날아오는 악의가 담긴 위브 줄기와 그 줄기가 떠나자, 제 할 일은 끝났다는 듯 쓰러지는 마법사. 주문을 차단하는 주문을 미처 읊지도 못하고 멍청하게 그 주문을 보고 있노라면 익숙한 붉은 빛이 게일의 시야에 들어왔다.
"라파-"
"병사, 안 돼!"
카를라크의 고함과 함께 무언가가 터지는 소리가 들렸다. 마법이 적중한 탓에 그들의 주변엔 자욱한 연기가 깔렸고 라파엘의 기침 소리가 들려왔다. 게일은 어지러운 머리를 세차게 흔들며 상황을 정리했다. 바닥에 쓰러진 위저드가 읊은 주문이 뭐지? 연기 너머 라파엘의 소리나 움직임이 느껴지니 크게 다치진 않은 모양이었다. 게일은 걱정을 한가득 안고 손을 움직여 연기를 걷어내기 시작했다.
"라파엘, 괜찮아? 다친 곳은 없어?"
"응. 괜찮아. 콜록콜록."
영원히 걷히지 않을 것만 같았던 연기가 조금씩 옅어지자, 낯선 인영이 시야에 잡혔다. 라파엘보다 조금 더 작고 드래곤본의 형태가 아닌...
"...라파엘?"
"아, 다행이다. 게일은 안 다친 거 같네."
"...라파엘 맞지?"
"응? 당연하지. 그게 무슨 바보 같은 질문이야?"
게일의 앞에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고 있는 인간이 서 있었다.
게일은 머리에 혹을 세 개쯤 달고 기절한 위저드를 깨워 주문과 해제 방법을 캐물었으나 유의미한 답이 돌아오지 않았다. 그저 자신을 모욕한 일행을 골탕 먹이고 싶었을 뿐이라고 했던가. 어디 한 번 불안감에 몸을 비틀며- 위저드의 뒷말은 카를라크의 손날치기로 인해 끊어졌다. 위저드들이란! 게일은 카를라크의 말을 못 들은 척했다.
카를라크의 말보다 더 신경 쓰이는 건 라파엘의 상태였다. 다행스럽게도 크게 다치거나 정신을 잃지는 않았다. 단지 그의 모습이 드래곤본이 아닌 인간이었을 뿐이다. 2m가 넘던 커다란 덩치는 줄어들어 게일보다 조금 작아졌고 붉은 비늘 대신 살구색 피부가 단단한 근육을 덮고 있었다. 붉은 머리카락이 그의 가슴께까지 내려온 모습이 눈에 띄었다. 바뀌지 않은 것이라곤 얼굴 여기저기에 자리 잡고 있던 피어싱과 색이 다른 금색 눈뿐이었다.
"형상 변환 마법인가? 그런 것치곤 주문 해제가 안 되는데."
"주문을 조금 꼬아놓은 거 같아. 조금 복잡하긴 해도 해제하지 못할 정도까진 아니야."
물론 시간만 있다면 말이지. 야영지로 돌아온 섀도하트와 게일은 라파엘을 가운데에 두고 주문 해제 방법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보통 이런 주문은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레 효력이 다해 사라지기 마련이다. 그러나 위저드는 자신의 연인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칠까, 저러다 영영 원래의 모습을 찾지 못하면 어떡하지. 어떤 모습이어도 그를 사랑하겠지만. 생각이 많아질수록 게일의 미간이 점점 더 좁아지고 있었다. 비록 추락하긴 했어도 한때 대마법사라 불리던 게일이었다. 고작 이런 주문조차 파악하지 못한다면 자신의 명성에 금이 가지 않겠는가. 혹시나 덧붙이지만 연인에 대한 걱정이 훨씬 더 컸다. 99% 정도. 아니, 99.5% 정도.
게일이 여러 걱정을 하는 도중에도 라파엘은 자기 모습을 살펴보느라 정신이 없었다. 모닥불 앞에 앉아 아스타리온의 거울을 빌려 자기 모습을 이리저리 비춰보며 관찰했다. 비늘이 사라진 살갗은 너무나도 연약했고 부드러웠다. 게일과 손을 잡았을 때는 이런 느낌이 아니었는데. 제 얼굴을 잡아 쭉 늘여보기도 하고 제 팔을 콕콕 찔러보기도 했다. 와, 신기해! 말랑말랑해! 바바리안은 연인의 속이 타들어 가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철없는 소리나 해댔다.
"라파엘한테 가봐, 게일. 저러다간 자기 몸도 열어보게 생겼어."
섀도하트는 게일의 어깨를 두어 번 두들기며 라파엘을 턱짓으로 가리켰다. 게일은 섀도하트의 말을 전면으로 부정하고 싶었지만, 쉽사리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완전히 신난 연인이 무슨 사고를 칠지 자기 머리로는 예상도 가지 않았기에 게일은 섀도하트에게 감사의 인사를 건넬 수밖에 없었다. 그저 그 녀석을 잘 지켜보라는 말을 하는 섀도하트를 뒤로 한 게일은 라파엘의 곁에 앉아 부드러운 목소리로 그를 불렀다.
"내가 네 좋은 시간을 방해하고 있는 건 아니겠지?"
"내 시간은 네 것이야. 알잖아?"
어디선가 들어본 말을 되돌려주며 저를 바라보며 히, 웃는 얼굴이 낯설고도 익숙했다. 라파엘은 드래곤본의 모습을 하고 있을 때도 표정이 얼굴에 드러나는 타입이었다. 다른 드래곤본에 비해서도 그랬고, 인간과 비교-비교가 될 수 있다면-해서도 그랬다. 드래곤본이 표정을 이렇게 읽기 쉬운 종족이었나? 게일은 워터딥에서 마주쳤던 드래곤본들을 떠올렸다. 개인의 차이는 확실히 존재했다. 감정을 숨기는 행위에 능숙한 직업이나 위치에 있는 드래곤본의 표정은 읽기 어려웠고 그렇지 않은 드래곤본의 표정은 어렵지 않았다. 종족의 특징이라기보단 성격의 차이였다.
라파엘은 자신의 감정을 숨기는 행위에 익숙하지 않았다. 게일의 앞에서는 더욱. 드래곤본이 이렇게 바보처럼 웃을 수 있는지 몰랐다는 누군가의 평을 받을 정도였다. 그의 척추를 따라 뻗어있었던 꼬리는 주인의 표정보다도 더 솔직했다. 그의 곁에 게일이 있다면 스크래치의 꼬리보다 더 빠르게 흔들렸으니 동료들 사이에 '라파엘의 꼬리 근처에는 다가가지 말라'는 말이 돌 정도였다. 비록 지금은 꼬리가 없지만. 게일은 부드럽게 웃으며 라파엘의 살굿빛 뺨을 쓰다듬었다.
"네가 무슨 종족이었어도 사랑했을 거라고 언제나 생각했지만... 이렇게 보니까 정말 사랑스럽네."
"우, 우와... 갑자기 그런 말을 하면 반칙이라니까."
"하하. 이젠 얼굴이 붉어지는 모습도 잘 보이네?"
게일이 라파엘의 코끝을 가볍게 건드리며 웃음을 쏟아내었다. 발갛게 얼굴이 익은 라파엘이 제 코를 감싸쥐며 '그러니까 반칙이래도.'하는 말을 중얼거렸다.
"그, 그건 그렇고. 원래대로 돌아갈 수는 있겠지?"
"곁에 있는 사람이 천재 위저드임을 잊은 건 아니겠지? 내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원래대로 돌려놓을 거야. 오래 걸리지도 않을 거야. 한여름 밤의 꿈처럼 지나갈 테니 걱정은 잠시 내려놓아도 좋아."
"걱정 안 해. 게일이 해결해 줄 거라고 믿고 있으니까. 그리고 원래대로 돌아가지 않아도 원망도 안 할거고. 오히려 괜찮지 않을까? '같은' 종족이 된 거잖아. 공통점이 더 생겼다고?"
"널 원래대로 돌려놓지 못하면 내 능력이 거기까지라는 소리가 되는데?"
"앗?!"
농담 섞인 짓궂은 답에 색이 다른 두 눈이 갈 곳을 잃어 이리저리 흔들리며 저를 올려다보는 라파엘의 얼굴이 새삼스럽게 앳되어 보였다. 덩치가 작아져서 그런 건가? 언제나 올려다보는 쪽은 게일이었으나 이번만큼은 달랐다. 게일이 마음먹고 두 팔을 크게 벌려 그의 연인을 끌어안으면 품 안에 가둘 수 있을 만큼 작아져 있었다. 아마 아직 나이가 어려 성장이 완전히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겠지. 그렇다면 드래곤본으로 돌아간 이후에도 시간이 지나면 더 커질 수 있을까? 이런 상황에서도 고개를 내미는 탐구심에 게일은 헛웃음이 나왔다. 게일의 웃음이 의문스러운 듯 라파엘의 고개가 슬쩍 기울어지면 게일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연인의 손을 꼭 잡아주었다. 아, 손도 작아졌군. 게일이 슬며시 웃으며 말하자 라파엘의 귀 끝이 조금 붉어졌다.
"원래대로 돌아갈 수 있을 거야."
"그렇겠지. 게일이 곁에 있으니까."
"하하."
나지막한 웃음소리를 뱉은 게일은 라파엘의 손끝에 입을 맞추었다. 언제나 삐져나왔던 커다란 붉은 손이 아닌, 제 손에 쏙 들어오는 작은 살굿빛 손. 이런 모습도 나쁘지 않군. 자신에게 저주를 걸듯 주문을 던진 위저드는 불안에 떨며 두려워하라 했지만 안타깝게도 그의 계략은 완전히 실패로 돌아간 듯했다. 오히려 두 사람의 사이를 돈독하게 만들어줬으니, 감사의 인사를 전해야할까.
"아까 나 혼자 걸어봤는데 꼬리가 없어서 그런가, 균형 잡는 게 어렵더라고."
"흐음. 그래? 혼자 걸으면 위험하겠는걸. 넘어질 수도 있겠고."
"그래서 날 부축해 줄 위저드가 있었으면 좋겠는데..."
라파엘은 괜히 말끝을 늘리며 게일을 바라보았다. 게일과 라파엘의 시선이 마주치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 이마를 맞대었다. 큭큭. 괜히 새어 나오는 웃음을 부러 막지 않은 라파엘은 이마를 떼어내고 게일의 품에 푹 파고들어 안겼다. 게일은 라파엘의 부탁 아닌 부탁에 대답하는 대신 그의 입술에 제 입술을 누르기로 했다. 쪽. 드래곤본의 입술이 아닌 인간의 입술은 서로 깔끔하게 맞물리면 라파엘의 표정이 눈에 띄게 밝아졌다. 아, 이게 좋은 거구나. 게일은 몇 번 더 라파엘의 입술에 입을 맞추었다.
"...내 생각에 마법은 조금 더 나중에 풀어도 괜찮을 거 같아."
"너무 속이 보이는 거 아닌가, 바바리안?"
"싫어?"
"아니, 좋아."
어떻게 마무리하지.
마법은 며칠 뒤에 자연스럽게 풀렸다네요. 아쉬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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