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탑겔탑] 이 파티 재미없지? 나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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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내타브와 게일이 엔딩 후 롤란의 초대를 받아 연회에 참석합니다.

※ 가내타브의 이름(라파엘)과 간단한 설정이 나옵니다. 

※ 캐붕 주의

※ 선동과 날조 주의

※ 퇴고 안 함

※ 의식의 흐름이 강합니다


게일은 단순히 인맥을 넓히기 위해 먹고 마시며 노는 연회를 즐기는 타입이 아니었다. 여태까지 자신이 연구하고 공부하며 갈고 닦은 학문을 발표하는 자리라면 모를까, 자신의 뒷배를 만들기 위해 안달 난 사람들이 뭉친 이런 작위적인 모임은 딱 질색이었다. 내향적인 위저드는 웃는 낯으로 사람 좋은 척 살갑게 구는 연기를 하는 사람들 틈에 섞이고 싶지 않았다. 어떻게 해서든 위대한 업적을 이룬 자와 연을 맺어 부스러기라도 주워 먹으려는 그 마음가짐을 도저히 좋게 볼 수가 없었다. 게일은 속이 훤히 보이는 이 부자연스러운 친목을 외면하고 싶었다. 값비싼 와인이나 진수성찬보다 제 방의 흔들의자와 새로 구한 책들이 매우 절실했다. 듣기 좋은 소리를 내며 타들어 가는 나무 장작과 푹신한 쿠션, 제 무릎을 차지한 타라의 부드러운 깃털. 그리고 단단한 품을 가진 그의 반려까지. 그걸 두고 여기서 내가 지금 뭘 하는 건지.

그럼에도 게일이 억지로 이 파티장에 발을 붙이고 있는 건 그의 배우자 덕(어쩌면 탓일지도)이었다. 그는 제 맘을 아는 건지 모르는 건지 제 맞은 편에 앉아 반짝거리는 눈으로 음식을 입에 넣으며 연신 감탄을 터트렸다. 누가 보면 굶기는 줄 알겠어, 응? 게일은 피식 웃으며 식사에 푹 빠진 레드 드래곤본을 바라보았다. 맛있는 음식이 나오면 접시에 들어갈 것처럼 굴던 바바리안이 애써서 허리를 세우고 엉성하게 칼질을 하며 격식을 차리는 모습과 그런데도 무의식적으로 튀어나오는 평소의 버릇(손으로 음식을 집는다던가)을 지켜보는 재미가 있었다. 뒤늦게 음식을 내려놓고 포크로 쿡 찍는 모습이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본인이 듣는다면 콩깍지라고 부끄러워 했겠지만 게일은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너는 네 생각보다 사랑스러운 사람이야."

"...내가 여기에 오자고 해서 복수하는 거야? 안 그래도 정장 입어서 어색해 죽겠는데 여기서 더 부끄러움 타라고?"

"하하, 그럴 리가."

"그런데 왜 뜬금없는 타이밍에 갑자기 그런 말을 해?"

불만에 가득 차 입이 이만큼 나온(원래도 나와있었지만) 라파엘은 투덜거리며 포크를 접시 위에 올려놓았다. 라파엘은 반려의 애정이 듬뿍 담긴 말을 좋아함과 동시에 부끄러워했다. 물론 연인의 달콤한 말이 싫은 건 아니었다. 사랑을 속삭이는 게일의 목소리만큼 더 좋은 건 없다고 생각했고 먼저 이쪽에서 칭찬해달라고 달라붙는 일도 종종 있었으니 오히려 즐기는 쪽이었다. 그러나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뜬금없(다고 생각되)는 타이밍에 듣는 건 도통 익숙해지지 않았다. 게일은 부끄러워하는 자신의 반응을 즐기는 게 틀림 없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더 붉어진 비늘을 가리는 자신을 보며 저렇게 활짝 웃지 않을 테니까. 라파엘은 입을 죽 내밀며 게일을 바라보았고 게일은 눈웃음을 지으며 '무슨 일이야?' 하며 마주 바라보았다. 한참을 신경전을 벌이던 두 사람은 결국 동시에 웃음을 터트리며 상황을 종료했다.

게일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라파엘의 곁에 서서 그의 입꼬리 끝에 입술을 꾹 눌렀다 떼어냈다. 꾸물꾸물 올라가는 입꼬리를 모르는 척하며 그의 뺨을 천천히, 금방이라도 부서질 것 같은 조각상을 다루듯 부드럽게 어루만졌다. 손바닥을 타고 느껴지는 반려의 조용한 웃음소리와 자주 볼 수 없는 저를 올려다보는 시선까지. 이 곳이 연회장이 아니었다면 당장이라도 입을 길게 맞췄을 것이다. 게일은 다시 한번 이 연회장을 떠나고픈 충동을 느꼈다. 아직 늦지 않았다. 여길 빠져나가서, 아니 이 건물에서 인적이 드문 곳을 찾아서 둘만의 시간을 갖는다면-.

"엣헴. 내가 방해해서 굉장히 면목이 없는데 말이야."

갑작스레 들려온 빈정대는 목소리에 깜짝 놀라 돌아보면 못마땅한 표정의 롤란이 서 있었다. 방해꾼의 등장에 라파엘이 반가움을 감추지 못하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마탑주가 된 걸 축하한다는 말과 함께 이런 파티에 초대해줘서 고맙다느니, 음식이 진짜 말도 안 되게 맛있다느니 신나서 떠드는 라파엘과는 다르게 게일은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불만을 토로하기 위해 게일이 무어라 말을 하기 전에 롤란이 재빠르게 선수를 채갔다.

"아, 게일. 네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아는데 조금만 시간을 내줘. 논의하고 싶은 게 있어서 그래."

"급한 건인가?"

"기왕 여기서 만난 김에 빨리 해치우자는 거지."

롤란은 허락을 구하듯 라파엘과 게일의 얼굴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하나가 오케이 해주면 다른 한 명도 자연스레 허락할 테니 참으로 영악한 방법이 아닐 수가 없었다. 라파엘은 게일의 어깨를 가볍게 두들겨주고는 자기는 괜찮으니 다녀오라는 듯 고개를 끄덕거렸다. 저에게 가지 말라고 붙잡았다면 못내 아쉬운 척이라도 하며 다음에 보자고 롤란에게 말했을 텐데. 게일은 여러 의미의 곤란함을 담은 소리를 길게 내며 고민하는 시늉을 했다. 조금 더 같이 있고 싶었는데. 저렇게 말하면 어쩔 수 없겠지. 눈썹 끝을 아래로 내린 게일은 라파엘의 손을 꼭 쥐었다.

"혼자서 괜찮겠어?"

"당연하지. 오래 안 걸릴 거라면서? 여기서 밥 먹고 있을 테니까 천천히 볼일 보고 와."

"라파엘..."

"저기, 며칠도 아니고 몇 시간도 아니고 그냥 몇 분만 걸릴 일이거든? 누가 보면 아홉 지옥에 끌고 가는 줄 알겠어."

롤란의 불만 가득한 목소리에 결국 게일은 잡고 있던 라파엘의 손을 놓았다. 라파엘은 미련이 뚝뚝 떨어지는 연인에게 잘 다녀와! 하며 작게 손을 흔들었다. 평소라면 머리 위로 크게 손을 흔들었을 텐데 격식을 차린 자리라고 저렇게 구는 건가. 웃음이 터져 나오려는 걸 억지로 참고 있으려니 옆에 있는 마탑주의 시선이 따갑게 느껴졌다. 게일은 애써 입꼬리를 누르며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시치미를 뚝 뗐다.

"아무 말도 하지 마. 안 듣고 싶군."

"...내가 도움을 요청하는 위치가 아니었으면 그 요구는 무시했을 거야."

"그것참 다행이군."



이야기는 생각보다 길어져 두 위저드는 꽤 오랜 시간 동안 의견을 나누었다. 문제에 대한 명쾌한 결론이 나지는 않았지만 무의미한 대화는 아니었으므로 게일과 롤란은 만족스러워했다. 일정을 확인하고 약속을 잡아 본격적으로 논의를 한다면 롤란이 오랫동안 골머리를 앓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롤란은 대화를 나누며 적어 내린 글씨가 빼곡한 종이를 다시 한번 훑어보더니 잘 접어 안주머니에 밀어 넣었다.

"좋아. 역시 너를 억지로 빌린 보람이 있다니까."

"나중에 이 빚은 꼭 갚아줄 테니까 각오해."

"하! 이거 무서워서 또 부를 수나 있나."

롤란은 '겁나니까 빨리 네 애인한테나 돌아가'하며 게일을 거의 쫓아내듯 내보냈다. 이럴 거면 나중에 부르던지. 게일은 헛웃음을 지으며 롤란을 한 번, 그리고 자신의 연인이 있을 곳을 한 번 번갈아보았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지? 어림잡아 30분은 넘었을 텐데 혼자 심심하지는 않았을까. 라파엘은 호기심이 많으니까 이 마탑을 구경하느라 정신이 없을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아직도 밥을 먹고 있을까? 게일은 머릿속으로 라파엘의 모습을 그려내며 조용히 미소 지었다. 한시도 눈을 뗄 수가 없는 바바리안이자 사랑스러운 제 연인이 무얼 하고 있을지. 저를 발견하고 환하게 웃으며 반갑게 맞이하는 그의 모습을 머릿속으로 그렸다. 게일은 라파엘의 손을 잡고 남은 손으로는 그의 콧등을 부드럽게 쓸어주리라 마음 먹었다. 그리고 함께 이 연회장을 빠져나가 안락한 집으로 돌아가리라. 여기까지 생각이 닿자 게일의 발걸음이 점점 더 빨라졌다.

라파엘은 키가 컸다. 게일 역시 키가 작은 편은 아니었다. 오히려 큰 편에 속했는데도 라파엘의 곁에 서면 한참이나 작은 사람이 될 만큼 큰 키를 가지고 있었다. 심지어 레드 드래곤본의 비늘은 또 얼마나 눈에 띄는지. 아무리 멀리 서 있고 사람이 많아도 라파엘은 한 눈에 찾아낼 수 있었다. 그게 게일이 원하는 상황이든, 원하지 않는 상황이든 말이다.

게일은 저 멀리 서 있는 자신의 연인과 낯선 사람이 함께 서 있는 모습을 발견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연인의 모습을 먼저 발견했고 그 앞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는 누군가를 뒤늦게 발견했다. 이름 모를 불청객이 라파엘에게 무어라 말을 걸면 라파엘이 불청객에게 무어라 대답한다. 그러면 불청객의 얼굴이 환해지며 웃음을 터트리곤 라파엘의 어깨에 슬그머니 손을 올리는 게 아니겠는가. 라파엘은 크게 불쾌해하지 않고-오히려 눈치를 채지 못한 것처럼 보였다-계속해서 이야기를 이어갔다. 게일의 한쪽 눈썹은 위로, 반대쪽 눈썹은 아래로 내려갔다.

'저 사람 지금 뭐 하는 거지?'

낯선 이의 존재와 행동이 위저드의 눈에 거슬렸다. 세상에 게일 데카리오스, 지금 질투하는 건가?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저 상대에게? 그저 단순히 친목을 다지는 행동일 수도 있지 않나? 언짢은 마음을 다잡으려 위저드는 스스로 끊임없이 질문을 던졌다. 만약 라파엘의 오랜 지인이라면? 하지만 그가 직접 말해주지 않았는가. 발더스 게이트와 워터 딥에는 라파엘의 오랜 지인이 없었다. 그렇다면 라파엘이 발더스 게이트를 구한 영웅이기 때문에 팬심으로 다가간 거라면? 하지만 팬심이라기엔 불청객의 제스쳐는 노골적이었다. 아마 라파엘이 아니었다면 자신을 유혹하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챘겠지. 라파엘이 둔한 게 이렇게 다행이라고 느낀 적이 있을까!

여기까지 생각한 게일은 자문자답을 그만두기로 했다. 혼자 머릿속으로 온갖 상황을 그리며 불안함을 느끼는 것보다 직접 부딪히는 게 더 좋은 방법임을 게일은 알고 있었다. 무턱대고 전진부터 하던 저 바바리안에게 아무래도 옮은 모양이었다. 게일은 피식 웃음을 흘리며 옷매무새를 다듬었다. 이제 저 거절을 못하는 바바리안을 구해줄 백마 탄 왕자의 차례다.

"라파엘. 나 왔어."

"게일! 끝났구나."

일부러 인기척을 크게 내며 게일은 두 사람에게 다가갔다. 어깨를 쭉 펴고 허리를 곧게 세우며 우아하게 걸음을 옮긴 게일은 자연스럽게 라파엘의 곁에 멈추어 섰다. 아, 내 사랑스러운 연인아. 게일은 눈가를 접어 웃으며 라파엘의 손에 끼워진 그들의 결혼반지에 입을 맞추었다. 부드럽게 입을 맞추는 소리와 함께 눈앞의 불청객이 당황하는 모습이 보여 게일은 소리죽여 웃음을 흘렸다. 하하. 저 당황하는 얼굴을 좀 보라지! 유치하고 못된 짓을 했지만 오늘만큼은 부디 눈을 감아주길. 정작 고해성사를 받아야 하는 그의 신은 옆에서 마냥 부끄러워 하느라 바쁜 모양이었지만 말이다.

"미안합니다. 제가 갑자기 끼어들었네요."

"괜찮습니다. 제가 먼저 말 상대를 부탁했거든요. 재미있는 분이시네요."

"별로 재미있는 이야기도 많이 안 했는데... 과찬, 입니다. 네에."

라파엘이 어색한 경어로 인사를 건네자 경직되었던 불청객의 얼굴에 미소가 피어올랐다. 눈치가 없는 건지 그냥 얼굴에 철판을 깔기로 한 건지. 게일은 자신의 표정이 볼품없이 구겨지지 않도록 애써야 했다. 적당히 맞장구를 치고 자리를 떠야겠다는 생각을 할 때 즈음, 라파엘이 무언가 생각났다는 듯 운을 띄웠다. 게일과 불청객은 동시에 라파엘을 바라보았고 라파엘은 항상 짓는 그 바보 같은 웃음을 지으며 게일과 눈을 마주했다.

"소개가 조금 늦었네요. 여기는 제 남편인 게일 데카리오스에요. 엄청 유능한 대마법사죠."

라파엘은 게일의 허리에 팔을 두르고 자신의 쪽으로 살짝 끌어당겼다. 그리고는 게일의 뺨에 입을 맞추며 웃는 게 아닌가! 아마 미스트라가 카서스의 오브를 거두어가지 않았다면 쓸데없이 반짝거리며 '나 지금 흥분했어!'하고 광고를 했을 게 뻔했다. 아아, 미스트라시여...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게일이 미스트라에게 감사의 말을 전하는 동안 방해꾼은 눈에 띄게 굳은 얼굴이 되어버려선 갑자기 급한 일이 생겼다나 뭐라나. 이야기를 나눠서 즐거웠다는 말을 하고 빠른 발걸음으로 두 데카리오스의 앞에서 사라져버렸다.

방해꾼이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지자 라파엘이 안도의 한숨을 폭 내쉬었다. 제 품 안에 갇혀 얼굴에 빨갛게 익은 연인에게 라파엘은 미안한 듯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려대었다. 

"게일, 미안해. 대충 둘러대고 보내려고 했는데 저 사람이 너무 끈질기게 말을 걸어서..."

"...오, 오! 아니야, 아니야. 라파엘. 네가 사과할 일이 아니야. ...유치하게 군 건 내 쪽인 걸."

뒤늦게 정신을 게일은 손을 뻗어 습관처럼 라파엘의 콧등을 쓸어내려 주었다. 게일의 손이 움직이면 라파엘의 꼬리 역시 좌우로 바쁘게 살랑거렸다. 라파엘은 게일이 자신의 콧등을 쓰다듬는 걸 유난히 좋아했고 게일은 라파엘의 좋아하는 반응을 유난히 좋아했다. 아마 이 곳이 연회장의 한 가운데가 아니었다면 두 사람은 아마 십 분이고 한 시간이고 계속해서 서로를 쓰다듬으며 시간을 낭비했을게 분명했다. 지나가는 사람들의 웅성거림에 부끄러워진 라파엘이 게일의 이름을 부르며 그의 손을 부드럽게 잡아 멈춰 세웠다. 우리의 부끄럼쟁이가 다시 나타나셨군. 게일은 입꼬리를 당겨 웃었다.

"이제 슬슬 이 파티도 재미없는 거 같은데..."

"나도 그렇게 생각해, 게일. 내 생각보다 파티라는 거 별로다."

"롤란이 들으면 섭섭해할 텐데?"

"나중에 사과하러 오면 이해해줄 거야."

"그렇다면 지금 필요한 대사 한 마디가 있지."

"좋아. ...우리 여기서 나갈까?"

라파엘과 게일은 크게 웃음을 터트리곤 서로의 손을 꼭 맞잡은 채로 연회장에서 모습을 감추었다.



예전에 리론님이 대신 풀어주셨던

>게일에게만 먼저 허리를 숙여서 눈높이를 맞춰주는 가내타브<

를 쓰고 싶었는데 그거 빼고 다 썼네요........... 원래 글이란 그런거죠......... (눈물을 흘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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