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만의 애정

2차(남의 자컾)

by 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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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와 늑대의 시간, 트와일라잇, 황혼.

이 시간을 사람들은 다양하게 정의하기를 좋아한다. 낮과 밤이 이지러이 섞이는 시간, 밝은 것과 어두운 것, 빛과 어둠, 찬란과 나락, 진실과 거짓. 여러가지 배반적인 것들이 혼돈 속에 숨어 자신을 감추고 제가 아닌 것이라 속삭이는 시간. 예로부터 이 시간은 마법이 깃들어 있다고도 한다. 무엇도 진실되지 않은 시간이기에, 어떤 거짓도 완전히 드러날 수 없는 시간이라. 엉망으로 섞였기에 되려 날것으로 사실을 증명할 수 있는 시간인 것이다. 참으로 기이하다.

그러니 우리 사이를 정의하기에 가장 적합한 시간이 있다면 바로 그것일 것이다, 라고 코르소 몬페라토는 생각했다. 항상 낮보다는 밤에 움직이는 것을 선호했던 (아무래도 그의 성정과 그의 위치를 생각하면 당연한 일이다) 것과 달리, 겉으로 드러나는 것도 심상을 반영하듯 정갈하고 곧은 상태로 차려입은 평소가 아닌 드잡이질이라도 당한것 마냥 헤집어진 상태로, 목에는 인간이 아닌 소유권이 주장될 개가 착용할 법한 목줄이 걸려있는 상태로, 변화를 확인 가능한 것은 온전히 창살 너머의 황혼 빛 뿐인 채로 싸움의 여파를 홀로 만끽하고 있었다.

코르소는 자연스러운 수순으로, 제 연인. 이제는 연인이라고 칭해도 될지 모르는, 첫 인상은 자신과 그닥 다르지 않았던 미친놈을 떠올렸다. 마지막으로 의식이 있기까지, 그들이 이야기를 나눌 때까지만 해도 퍽 그의 연인은 잔잔한 상태로 있던 것 같았다. 그 점이 제법 마음에 들어 평상시에도 심청의 그러한 면모는 나쁘지 않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 그가 태도를 달리한 것은, 그래. 코르소가 이별을 입에 담았을 때. 소름끼치도록 평정에 가깝게 떨어지고 제가 미처 파악하지 못했던 광기가 눈 안에 넘실거리는 것을 확인할 수 있을 정도로 기묘하게 변한 것이다.

그 뒤로 기억나는 것은 하려고 해도 욱신거리는 머리가 자기방어 기제라도 되는 것 마냥 자신을 드러내서 그다지 없다. 드문드문 떠오르는 것으로는 이 집 안에 들락날락 거린 것도 그다지 많지도 않을텐데, 어디서 그런 흉악한 것들을 잔뜩 준비하고 저를 가두어 둘 물건들을 칭칭 두른 것인지에 대한 의문과, 으레 이런 상황에 드러날 법한 여러 다채로운 감정은 일절 드러나지 않은 표정과, 마지막으로 꺼져가는 의식 사이로 나긋하게 들려오던 그의 다정의 편린이다.

이 쯤되니 코르소의 뇌리에는 의문도 지독하게 안을 찌를 뿐이다. 그래, 알고 있다. 정상적인 연인 사이에서는 이렇게 말하는 제 쪽이 개새끼라는 말을 들을 법 하다지. 자신이 그간 겪지 않아도 세간의 치정은 가십거리로 소모되기에 마련이다. 하지만 시간과, 기타 합당한 것들을 더듬어 올라가보자면 그들의 사이는 그다지 평범하지는 않지 않던가. 애초에 시작부터 비즈니스로 만났고, 그들은 평범한 민간인은 아니었으며, 굳이 둘 사이의 감정이라 부를 법한 것에 첫 번째로 오는 것을 짚어보자면 편의와 욕구 정도 아닌가. 이 사이에 대해 남에게 평가를 받을 만한 것도 아니었다. 그리고 코르소는 심청에게 제 면모를 그다지 숨기지도 않았다고 생각한다. 그들이 함께한 시간은 그정도로 깊으면서 얄팍했다.

굳이 거슬리는 것을 꼽자면 눈, 그의 눈, 심청의 눈 만이 이 정상성을 벗어난 관계에서도 더욱 기묘한 느낌을 주었을 뿐이다. 아무것도 말하지 않고, 아무것도 바라지 않으면서 저를 보는 눈에는 항상 가장 깊은 곳을 파헤쳐 씹어 삼킬 것 같은 무언가가 있었다. 제 딴에는 제법 숨기려고 하는 것 같았다만, 먼저 자신에게 이 관계를 제안하던 그 때, 그 때가 아직까지도 강렬하게 박제될 만큼 선명한 무언가가, 자신은 발 끝 한번 담구지 못한 영역의 것이 심청의 시선에는 언제나 담겨있었다.

그래, 지금 이 꼬락서니가 되어 거동할 수 없는 자신을 바라보는 저 시선의 안에, 가장 처음의 것과 같은 농도로 담겨있는 감정이.

“안녕하세요, 코르소?”

얼굴을 마주하자 산뜻하게 연 말에는 우습게도 애정이 담겨 있다. 언제나와 같다. 이 미친 상황에는 그다지 어울리지 않게, 퍽 보기 좋은 얼굴로. 그러자 답지 않게 울분이 치밀었다. 지금 이 상태로 저런 말이 우선 나오는 것이 옳나? 어이가 없어 헛웃음이 튀어나오려는 것을 삼키고 상황을 따지려 들기 위해 차게 가라앉은 낯으로 말을 걸었다.

“지금 그런 말이 잘도 튀어나오나 보군, 무슨 일이지? 개인적이라면 제대로 소명하고, 조직에 관한 거라면 각오하는 게 좋을-”

하지만 억누른 것도, 드러난 것도 온전히 나오지 않았다. 코르소가 분노에 가까운 것을 찬찬히 쌓아올리려던 사이, 생글생글 웃고 있던 심청은 급하게 그에게 다가와 그의 뺨을 잡고 고개를 숙여 입을 겹쳤다. 차마 당황하지도 못한 사이 벌려진 입 사이로는 꽃 향이 번지고 단 맛이 풍기는 품질 좋은 와인이 넘겨져 쏟아졌다. 대처하지 못해 그 것은 온전히 코르소의 안으로 쏟아졌고, 입 안에 잔존한 것이 없는 상태에도 심청은 입을 떼어내지 않고 잔향이 가득 담긴 혀로 그의 입 안을 잔뜩 농탕질 하였다. 숨을 뱉어 덮여진 탓에 숨이 혼미해져 저도 모르게 그의 팔을 붙잡고 어울리지도 않는 신음성이 잇새로 흘러나왔으나, 그 소리를 듣고는 더 기분이 좋아진 것인지, 울리는 것으로 웃음을 짐작할 수 있게 더 깊이 혀를 밀어넣고는 숨이 턱 막힐 정도로 코르소를 몰아가는 것이다.

이러다가 정말로 정신이 끊어질 것 같아 붙잡은 팔을 간신히 떼어내고는, 힘들게 힘을 주어 심청의 명치를 강하게 후려쳤다. 생명체라면 당연히 위협당하면 아슬해지는 급소를 후렸으니 심청이 입을 떼어 격하게 헛구역질을 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몇 번이고, 숨을 통해 삶을 가다듬고 있는 심청에게 헐떡이는 상태로 코르소는 으르렁 거리며 입을 열었다.

“이게 뭐하는 일인지 네 입으로 하나하나 말해주면 고맙겠어.”

더 이상 협상의 여지는 없이 단호한 투로 말하자 숨을 가다듬던 심청은 그의 말을 전부 귀에 담고는 미친듯이 웃음을 터트렸다. 코르소가 아무말을 하지 않고 그를 가만히 응시하여도, 아무런 것이 없어도 과할정도로 웃어보이던 심청을 눈을 휘며 웃고는 코르소를 바라보며 말했다.

“왜요? 좋아하시잖습니까. 질 좋은 와인. 그래서 먹여드린건데…마음에 안 드십니까? 제 선물.”

확실히 그가 입에 달고 다닐 정도로 ‘최상급의’ 와인이었다. 지극히 불쾌한 경험에도 입에 남은 잔향은 무심코 그 향을 쫓을 정도로 강렬했으니. 입을 다물고 잔존된 향을 느끼던 코르소를 보던 심청은, 여전하게 웃는 낯으로 멀어진 거리를 단숨에 좁혀 코르소의 턱을 잡아 입을 열어 에덴의 원죄가 새겨진 것을 엄지로 꾸욱 눌렀다. 그리고는 그 모습을, 여러가지 것으로, 자신에 의해 흐트러진 모습에 희열이나 느끼는 것인지 찬찬히 눈에 담고는 눈 안 깊숙히 일렁이는 것을 드러내어 찬찬히 입을 연다.

“압니다, 코르소…당신은, 효율적인 걸 좋아하신다는 걸 말입니다.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도 그랬으니까. 그래서 이해했습니다. 저를 대하는 것도, 저를 보는 것도, 저와 있는 것도…그런데-”

누르던 것에 힘을 더 가한다. 그러자 욕지거리가 토해질 것 같았다. 허나 제 손이 어떻게 더러워지든, 코르소의 것이면 전부 기껍다는 듯 이미 타액으로 범벅된 것으로 더욱 무리가 갈 정도로 누르며 낮게 속살거렸다.

“제가 다른 건 다 견딜 수 있어도…저에게서 코르소를 박탈시키는 건 절대 용서할 수 없었답니다. 그게 설령…당신이라도 말입니다. 코르소가 저한테 부여한게 허울 뿐인 관계더라도, 그 허울이라도 족했답니다. 그런데, 준 걸 빼앗아버리는 건 더는 용납할 수 없었습니다…”

“…”

“그러니까, 요약하자면…이제는 저한테서 못 벗어난다는 뜻이랍니다…코르소.”

마치 무언가의 선언처럼 길게 떨어진 말에는 이제야 일부 파악할 수 있는 무언가가 이름을 가지고 고개를 들었다.

광기

집착

온갖 더럽고, 추잡하고, 일렁이는, 복잡하게 섞인 감정의 총합.

그것이 코르소의 목을 조르고, 심청의 심장에 있었다.

언뜻 서글픔과 고통과 희열과…사랑을 흉내내는 그 감정에 묶인 코르소는 심청이 더는 가리지 않고 전부 자신을 향해 그 전부를 드러낸 지금에서야 비로소 알게 되었다.

그는 결코 자신을 놓아줄 생각이 없으며

저는 평생 종속된 이로서 그의 곁에 있어야 할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명백히 애정 따위는 남아있지 않은 일종의 폐허 위에서 코르소는 숨을 토하듯이 웃었다.

지독히 이어질 암흑의 서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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