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alendula

Aug 15th 2018, Sloane square, London

보관소 by 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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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calendula

Aug 15th 2018, Sloane square, London

그 날을 고른 것은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었다. 잠깐이라도 가족이 모두 모이는 날이었을 뿐. 딱히 의미를 두지 않았다. 저녁 여섯 시가 되자 할아버지와 함께 파울러씨가 상 차리는 것을 도운 후 현관 쪽을 바라보았다. 곧 로빈 형이 올 시간이었다.

예상대로 현관 쪽에서 밝은 목소리가 들린다. 주인을 반기는 강아지처럼 달려가니 그가 널따란 품으로 팔을 벌린다. 활짝 웃으며 끌어안으니 웃음소리가 터져 나온다.

“놀랐어, 못 본 사이에 진짜 많이 컸구나. 잘 지냈어, 토미?"

"그럼, 잘 지냈지. 생각보다 비행기가 일찍 도착했네. 얼굴이 엄청나게 탔잖아? 

일 년 만에 마주한 동생이 자랑스럽다는 듯 그가 머리를 헝클린다. 얼굴 가득 반가움이 번진 것을 보고 죄책감이 밀려왔지만, 현재에 집중한다. 조금이라도 불안감을 들켜서 실패하고 싶지 않았으니까. 로빈 형이 온 지 잠시 후, 시간에 맞춰 가족들이 한 명씩 모였다. 큰 형의 내외와 조카, 저녁 식사 후에는 다시 사무실로 가봐야 한다는 어머니. 집에 돌아왔다기보다는 약속 때문에 모인 풍경이었다. 뒤늦게 아버지께 전화가 왔다. 늘 그랬듯 회의가 늦어져 집에 늦게 도착한다는 내용이었다.

누구는 시간이 넘쳐나서 미리 와서 기다리고 있는 줄 아나 보지? 랩탑으로 판례를 정리하고 있던 어머니가 짜증을 내자 로빈 형이 일어났다. 나도 일어나자 큰 형이 시선을 흘린다. '쓸데없이 기웃거리지 마.' 그가 입모양으로 중얼거리자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큰 형은 퉁명스럽지만, 정확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그의 말을 들어서 손해일 것은 없었다. 나는 그녀에게 차 한잔을 건네곤 재빨리 방으로 사라졌다.

결국 생일파티는 아버지가 돌아올 때까지 미뤄졌다. 30분 뒤. 교통 체증 때문에 더 늦을 것 같다는 전화가 왔을 때쯤 1층에서 다시 어머니의 짜증 섞인 목소리가 들렸다. 그를 신호로 초조함이 더한다.

우선 늘여놓은 물건들을 다시 한 번 살펴보았다. 변신술 교과서와 빗자루, 그리고 손에 든 지팡이. 마법사임을 보여주기에는 단출한 구성이었지만 여차하면 바로 도망가야 하기 때문에 이 정도도 충분히 짐이었다.

심호흡을 한 뒤, 지팡이를 휘둘렀다. 기본적인 마법은 실패할 자신이 없었지만……. 받아들이는 사람의 마음마저 확신할 수 없었기 때문에 마음이 무거워진다. 손바닥으로 볼을 두들기자 문이 열렸다. 지금까지 루프에서는 로빈 형이 먼저 방안에 들어온 적은 없었는데. 당황하던 사이 그가 멋쩍게 웃었다.

"미안, 노크라도 할 걸 그랬니? 한참 방에서 틀어박혀 있길래 걱정돼서 들어왔어. ......그 지팡이는 뭐니? 또 새로운 히어로 컬렉션이야?

동생의 취미 생활을 방해한 것이 미안한지, 그가 눈썹을 늘어트리고 바라본다. 그 시선을 잠잠히 바라보다 나는 지팡이를 들었다.

"Orchideous." 

주문을 외우자 반대편 손바닥 위에 노란 꽃송이들이 떨어진다. 민들레처럼 둥글지만, 그보다는 조금 더 주홍빛의 꽃들이 손바닥에 닿았다가 이내 미끄러진다. 방울방울 떨어지는 꽃송이들을 붙잡지 못하고 조용히 그를 바라본다. 열어놓은 창문에서 저녁 바람이 불자 등 뒤로 커튼이 넘실거린다. 그다음으로 부드럽게 날리는 그의 머리카락.

단순한 마술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건지 마주하고 있는 이의 푸른 눈동자에는 그늘이 없다. 적어도 아직까진.

처음 호그와트 관계자가 와서 준 편지를 받아들이지 않았다면, 미래는 조금 달랐을까? 낮마다 거리를 돌아다니며 생각한다. 방학과제에 머리를 맞댄 학생들, 공원에서 비둘기에게 모이를 주는 노숙자, 농구 코트에 삼삼오오 모여 있는 무리, 호기심에 발을 디뎌 본 다트펍의 자욱한 담배 연기, 누군가 건넨 에일의 쌉싸름함, 목에 넘기자 훅 취기가 올라오던 위스키, 과녁 중앙을 맞추자 환호하는 군중들, 사람이 북적이는 곳에서 나올 때의 허전함, 빌딩 광고에 걸려있는 뉴 히어로 무비.

취한 여름은 혼란스럽다. 홀로 떠돌기엔 런던은 너무 넓었으며 무료했다. 걸으면 걸을수록 제가 얼마나 '보통 사람들'과 동떨어진 사회에 사는 것인지, 피부에 와 닿는 서늘함을 느끼며 다시 집으로 발걸음을 향한다. 부모님은 집에 돌아오지 않으셨거나 제가 방에서 자는 줄 알 테지. 2층은 거의 올라오지 않으시니까. 

눈을 감아 보지만, 더는 케임브리지 교외에서 듣던 풀벌레 소리도, 풀향기가 나는 바람도 느껴지지 않는다. 

"컬렉션이 아니야. 단순한 마술도 아니고."

머글본. 잡종. 순수함을 어지럽히는 것. 온갖 욕설들이 적혀있는 노트, 갈기갈기 찢어진 편지, 사라진 퀴디치용 장갑, 복도를 걸을 때 들리던 모욕, 제 머리채를 붙잡고 눈앞에 구더기를 들이미는 것까지. 마법사도 비 마법사의 경계에 얹혀진 자신이 호그와트를 다니던 이유는 무엇이었까? 왜 내가 당신들에게 거짓말을 하면서까지 기차에 올랐지? 정말 이것이 옳은 길이었을까?

스스로 묻던 끝에 천천히 눈을 뜨고 '당신'을 바라본다. 역시 답은 하나밖에 정해있지 않았다.

"가까스로 찾아낸 거야, 로빈. 그러니까 부디 용서해줘." 

마지막까지 자신은 응석꾸러기일 수밖에 없었다. 먼저 당신들에게 거짓말을 한 것은 자신인데, 그럼에도 이해받고 싶었다. 버려지는 것도 떠나는 것도 싫어 아등바등 거짓말을 해왔다. 매주 보내는 편지에는 친구들과 축구를 하거나 조금은 사고를 치는, 당신들이 바라는 평범한 삶을 써내러 가면서.

   그런 한편, 친구에게 부탁하며 부엉이장에 갈 때마다 나는 또 욕심을 품었다. 만약, 당신들이 언젠가 나를 이해해준다면? 마법사인 자신을 알아준다면 얼마나 기쁠까. 그렇다면 제가 하늘에서 제비보다 날쌔다는 것을, 빗자루를 타고 보는 하늘은 더더욱 푸르다는 것을, 그리핀도르 기숙사의 안락함과 미로처럼 복잡한 학교와 수많은 모험 이야기로 밤을 새울 수 있을 텐데.

사랑받을 리 없었다. 배신자는 라이트만에 필요하지 않으니까. 미래, 혹은 과거에 들었던 아버지의 엄포가 떠오른다. 돌아서는 당신을 잡으려고 뻗은 손이 균형을 잃는 미래가 점점 더 선명해져 눈을 꾹 감는다. 계단에서 두 사람이 굴러떨어진다. 정신을 차려 보면 군데군데 찢어진 상처와 멍의 아릿함이 몸에 퍼진다. 그리고 시선을 돌리면……. 이미 가까워진 결말을 예감하듯 입꼬리가 멋대로 비틀린다. 아마 이것이 당신과의 마지막이 될지도 몰랐기에 적어도 거짓은 고하고 싶지 않았다. 여러 번의 예행연습을 걸쳐 준비해뒀던 대사 대신 진심을 토해낸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꼭, 돌아올 게. 그러니까……. 지금은 나를 이해해주지 않아도 괜찮아. 일이 해결되면 몇 번이고 얼굴을 비칠 테니까. 알잖아, 나 엄청나게 끈질긴 거. 옛날에, 그래, 어머니 생신 때 꼭 제일 먼저 생일 축하 인사를 건네주겠다고 새벽까지 뜬눈으로 기다린적도 있었잖아."

점점 흔들리는 당신의 눈빛에 침음을 삼킨다. 닿을 수 없는 희망이라도 바라는 것이 허락된다면 부디.

다짐하듯 삼키고 당신에게 육 년 전 오늘, 자신의 생일을 맞아 가족들이 모인 자리에, 들뜬 표정으로 입학 편지를 보여주던 때부터 이야기를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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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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