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rst sight
one fine day
First sight
one fine day
잔을 든 흰 손이 흔들거릴 때마다 위스키에 물결이 인다. 그 모습이 허전한 이유는 무엇일까. 열기에 눅눅해진 머리로 잠시 고민을 하다, 탄성을 뱉는다. 할 수 있다면 얼음도 가져올 걸. 얼음이 있다면 가는 손가락 사이로 느릿하게 빙글 도는 얼음도 볼 수 있었을 테고, 투명한 것들끼리 부딪혀 내는 맑은 소리도 들을 수 있었을 텐데. 아쉬운 마음에 유리잔을 손가락으로 쓰담다 입을 열었다
"아직 얼마 마시지도 않았는데 벌써 취한 거 아니야? 너 지금 평소보다 묘하게 기분 좋아져 보이는 건 알아?"
꼭 수업시간에 첫사랑 얘기해달라고 교수님께 조르는 애 같아라고 덧붙인다. 긴 팔다리로 휘적휘적 몸을 가누는 모습이 우습다. 동시에 네 뺨 위로 발그레 퍼진 홍조를 보니 절로 미소가 지어지는 것을 어찌할 수 없었다. 뺨에서 부터 퍼지는 열기가 몸 전체를 녹이는 것 같다. 넥타이를 조금 느슨하게 매자 겨우 숨통이 트인다. 그러다 시선을 던져 너를 본다. 어느 해 들판에서 본 꽃 무더기처럼 탐스럽게 구불거리는 머리카락. 사이의 벽안과 마주치자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곱게 눈을 접어온다.
그런 너를 보고 마주 웃은 후 고개를 정면으로 한다. 약기운에 정신이 몽롱하다. 아직 한 잔도 마시지 않았는데 붕 뜨는 것처럼 몸이 나른하다. 느릿하게 눈꺼풀을 닫자 그 날이 떠오른다. 입학식의 연회홀, 이름을 순서대로 호명하는 교수와 의자 위에 앉는 아이들. 일찌감치 그리핀도르에 배정 받아 누가 저와 같은 기숙사를 쓸지 기대하던 중 연회장 가운데서 그 아이를 발견했다.
"......있어."
첫눈에 반한 적. 일부러 속삭이듯이 말하곤 네게 시선을 돌린다. 떠올리면 햇살처럼 감기는 추억이었다. 나른하게 잠겨오는 향수에 눈을 살며시 감고 이야기를 잇는다.
"입학식 때부터 쭉 눈에 들어왔던 아이였는데 좀처럼 가까이 마주할 기회가 없던 아이었지. 쭉 말을 걸 기회를 노렸는데 말이야, 잠깐 눈을 떼면 어디론가 사라져 있더라고. 그림자를 쫓아 가도 온데간데 없이 사라져있고, 혹시 내가 유령을 보고 있는 건 아닐까 싶었지. 마주칠 수 없는 그 아이를 찾는 것은 곧 잊혀졌어. 너도 느꼈겠지만, 우리 첫 학기 때 워낙 정신이 없었잖아? 마법의 '마'자도 모르겠고, 새로 보는 물건, 언어, 처음 배우는 규칙 모든 게 낯설었지. 다른 애들에 비하면 한참 모자란데 그대로 뒤쳐지고 싶진 않으니까 나름대로 적응하겠다고 정말 고군분투할정도로.
잠깐 말이 새었네. 여튼, 그러다가 다시 우연히 마주치게 된 거야, 그 아이를. 어디에서 만났다고 생각해?"
잠시 네게 물어보곤 대답을 기다린다. 과연 맞출 수 있을까? 이유 모를 기대감에 은은히 미소 짓다가 네 답을 듣고 뺨을 붉히며 대답한다.
"정답은 숲 속이야. 혼자 있길래 뭐하냐고 물었는데 내가 찾던 그 아이인 거 있지? 걔랑 눈이 마주치는 순간 심장이 멎는 것 같았다니까? 옆에서 보았을 때보다, 뒤에서 보았을 때 보다. ...그 아이가 나를 바라보던 그 눈이 정말 아름다웠거든. 가슴이 쿵쾅거리고 귓가에서 방망이질을 하는 것에 어찌할 줄 몰라서 몇 초간 서있기만 했을 정도로."
그 때를 떠올리니 피어오르는 설렘에 자연스레 미소를 지었다. 결과가 어떻게 되었든 그 날은 제 아름다운 추억 중 하나이기 때문에 애틋하기 보다는 행복감에 표정이 물든다.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 어찌할 수 없어서 손만 꼼지락 거렸다. 쉽게 진정되지 않는 이유가 과연 첫눈에 반하던 순간을 떠올려서 일까? 아니면?
눈을 떠 다시 네 눈을 마주한다. 잠깐 눈을 감았다 뜬 사이에도, 구불거리는 머리카락도, 아침 하늘처럼 푸른 눈도 여전하다. 유하게 늘어진 눈매를 시선으로 그리다 이야기를 마무리한다. 너는 첫눈에 반한다는 말은 믿지 않는다고 했지만, 자신에겐 떠오르기만 해도 다시 사랑에 빠질 것 같은 순간이었기에, 그것만은 이해해주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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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äumerei
Donne-moi un baiser, pas de l'amour
The calendula
Aug 15th 2018, Sloane square, Lond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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