닭피
트친 자캐
탕! 커다란 칼이 도마를 내려치자 닭 목이 깔금하게 떨어졌다. 닭은 퍼드득 움직였지만 기절시킨 뒤였기에 큰 움직임은 없었다. 주인장은 석연찮게 입맛을 다시고 대충 설명했다.
이래서 닭을 먼저 기절시킨거야. 얘들도 아프면 발광……. 아니, 엄청 움직이니까. 너도 그렇지?
응!
파이퍼가 닭 목이 어디로 떨어졌는지 눈알을 굴려 찾았다. 불안해진 닭 집 주인은 파이퍼에게 움직이지 말라고 다시 한번 경고를 했다. 이로써 세 번째 경고였다. 주인은 닭 피를 빼고, 털을 뽑기 위해 커다란 솥으로 갔다. 파이퍼는 주인을 따라가려고 곰질거리다가 네 번째 경고를 들었다. 파이퍼는 가만히 앉아 주인장의 등을 보았다. 고원 휴런 종족인 남자의 등은 넓어도 너무 넓었기 때문에 파이퍼는 닭 털 뽑는 것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 주인은 털을 다 뽑고 내장을 바르는 것을 보여주었다. 몸을 애매하게 틀어 파이퍼가 다 보지 못하게 했다.
하지만.
파이퍼가 칭얼거렸지만 주인장은 들은 척도 안 했다. 단지 먹을 수 있는 알집을 들어 이건 먹는 내장이라고 알려줬을 뿐이다. 아직 덜 끝난 것 같은데, 남은 건 뒷정리라고 주인장은 손을 휘둘러 파이퍼를 쫓아냈다. 조심한다고 조심했지만 닭 피가 파이퍼의 얼굴에 붉은 점처럼 남았다.
재밌었어?
에단은 밖에 서있었다. 그는 파이퍼의 얼굴에 튄 핏물을 소매로 조심스럽게 닦아주었다.
응, 에디! 진짜 재미있었어. 나, 어른이 된 것 같아!
파이퍼의 말에 에단은 삐뚜름하게 웃었다. 그리고 아프지 않게 파이퍼에게 꿀밤을 먹였다. 넌 아직 어린 아이란다, 나의 달콤한 파이……. 에단의 말에 파이퍼는 함박웃음을 지으며 기뻐했다. 닭 요리를 사서 가게에서 점점 멀어지는 부녀의 모습을 보며 주인은 손을 닦았다. 찝찝하게 둘을 보았지만, 손 끝에 두둑한 대금이 걸리자 행복한 미소가 입에 걸렸다. 그는 이제 찝찝함과 거리가 멀어졌다. 그는 소리를 지르며 손님들을 불러모았다.
오세요, 오세요! 주문하면 바로 도축해드립니다!
사람들은 힐끗거리며 가게 메뉴를 둘러보았다. 몇 명은 닭을 사 갈 것이고, 그 중 두어명은 닭을 여러 마리 사 갈 것이었다. 그러나 그들이 낸 돈보다 에단이 낸 구경값이 더 많았다.
에단은 파이퍼에게 “구경” 을 시키면서 가게를 나오는 길에 닭 요리를 하나 샀다. 닭을 훈제해서 보관용으로 만든 것이었다. 그래서 상당히 짰다. 두 사람은 빵과 함께 고기를 먹었다. 에단은 파이퍼가 원하는 것은 다 해주려고 했다. 왜냐면 파이퍼에겐 에단, 자신 뿐이니까……. 그러나 오늘 일은 올바른 선택이었는지 생각했다. 에단이 조용하니 파이퍼도 덩달아 조용했다. 이로써 파이퍼는 어른, 여자라는 것에 한 발 다가간 것이 아닐까? 인정하기 싫지만, 에단은 그 부분에서 항상 실패하기만 했다. 여자……. 아내였던 것에서 더 나아가면, 자신을 내놓은 자식 취급하던 어머니까지. 숨을 한번 크게 들이쉬고 에단은 고개를 흔들었다. 그런 것은 생각하는 게 아니었다. 갑자기 몸을 흔드는 에단을 보고 파이퍼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먹던 입을 멈췄다. 파이퍼는 아이다. 아이에게는 여자와 남자가 없다. 에단은 부드럽고 따스하게 미소지었다. 파이퍼는 안심했다. 입 안에 먹던 것이 있는 걸 까먹고, 헤헤 크게 웃어보였다.
우리 달콤한 푸딩은 누구 꺼?
에단이 물었다. 파이퍼가 좋아하는 질문이었다.
에디 꺼!
파이퍼는 쾌활하게 답했다. 입 안에 씹던 닭이 있다는 것을 기억해낸 것은 그 다음이었다. 파이퍼는 요란한 소리를 내며 음식을 꿀떡 넘겼고 다시 크게 웃어보였다. 파이퍼는 부산하게 가슴살을 찢어 먹다가, 또 다리를 들어 한 입 베어물고, 또 닭 목에 있는 껍질을 뜯어 질겅거리며 먹었다. 그러나 그런 것에 비해서 파이퍼가 먹은 양은 극히 적었다. 파이퍼는 닭을 부산하게 쑤셨을 뿐이다. 에단도 그렇게 많이 먹는 편도 아니라, 아무렇게나 부스러진 닭을 어떻게 처리해야할지 잠시 고민했다. 어차피 돈은 넘치게 많았다. 어머니가 보인 마지막 호의였다. 에단은 자신과 파이퍼가 먹던 것이란 흔적을 지우려 뼈에서 닭 살을 발라내 거지들에게 적선하였다.
우리 좋은 일 한거?
파이퍼가 소근거렸다.
응. 그렇지.
음식 다 안 먹어도, 괜찮은거야?
내가 언제 음식 남기지 말라고 한 적 있던?
하지만 에디, 식당에 가면 어른은 음식을 남기지 않는다고 애들을 혼내잖아?
에단은 눈살을 찌푸렸다. 그리고 파이퍼를 안고 빠른 걸음으로 야영지에 갔다. 파이퍼는 자신이 잘못한 것이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망할 새끼, 당장 우리 가게에서 꺼지지 못 해?
라노시아 부근에서였다. 에단은 또 닭 가게를 찾았다. 씨암탉을 팔 뿐만이 아니라, 도축해서 손질한 닭도 팔았다. 에단은 닭 요리를 먹고 싶었다. 파이퍼도 그랬다. 정확히는, 파이퍼는 닭 목을 치는 걸 보고 싶어했다. 에단은 저번에도 됐으니 이번도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파이퍼가 닭을 도축하는 과정을 보고 싶다고 얘기하며, 원한다면 사례를 해드리겠다고도 했다.
좋은 것만 보고 자라야 할 애한테 뭘 보여주고 싶다고? 노란 셔츠한테 신고하기 전에 나가!
하지만,
사례? 그 망할 푼돈에 내 존엄성과 이 아이의 웃음을 뺏고 싶지 않아.
루가딘 여자는 씩씩거리다가 도축장으로 들어가 핏물이 그득하게 들은 양동이를 들고 왔다.
이 핏물을 끼얹어버릴-
에디, 봐!
파이퍼가 소리쳤다.
암탉이 알을 낳고 있어.
진짜였다. 풀어놓고 키우는 닭이 아니라, 루가딘 여자가 잡으려고 들고 있는 암탉이었다. 그 암탉은 날개가 묶인 채 꼭꼭거리며 알을 낳고 있었다. 주인의 얼굴이 잔뜩 우그러졌다. 에단은 진짜 핏물을 뿌리겠다 싶어서 파이퍼를 들고 도망갔다.
왜 그래, 에디…….
에단은 오래 뛰진 못했다. 그래도 주인에게서 멀어질 정도는 뛸 수 있었다.
우리가 뭘 잘못한걸까?
에단은 분명 돈을 준다고 했다. 그게 도축장 주인의 자존심을 건드린 것이었을까?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나도 잘 모르겠다.
하지만 에디, 모르는 건 무서운 것이라고 했잖아. 무서워? 내가 지켜줘야 할 정도로?
에단은 고개를 저었다.
우리 귀여운 사과파이, 네가 몰라도 된다는 뜻이었어.
그렇구나!
파이퍼는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그 정도로 해두자. 파이퍼는 아직 어린 아이니까.
내장은 다 뺐는데, 털만 뽑으면 된다고 해서 늙은 수탉 한 마리를 사왔다. 늙고 수탉이면 살이 질기고 맛없지만 국물요리에는 쓸만 하다. 대가리가 그대로 붙어있기에 뭐라고 했더니, 숨통은 제대로 끊어놨다고 주장했다. 야영지에 돌아오니 파이퍼는 나뭇가지로 닭 목 치는 놀이를 하고 있었다.
오늘은 닭고기 스튜를 끓일거란다.
에단은 자연스럽게 파이퍼에게 닭을 맡겼다. 파이퍼는 커다란 닭을 보고 기뻐했다.
닭을 손질해주면 나머지는 내가 알아서 할게.
에단의 말을 다 듣지도 않고 파이퍼는 얼른 물을 삶아달라며 에단을 졸랐다. 뜨거운 물이 준비되자, 파이퍼는 조심조심 닭을 데치려 물에 집어넣었다. 그게 다행이었다. 내장도 다 빠지고, 목도 졸라서 죽였다는 늙은 수탉이 푸드덕거렸다. 조심조심 집어넣은 덕에 화상을 입진 않았다. 그러나 파이퍼는 뒤로 자빠져 모래바닥에 손을 잔뜩 긁히고 말았다.
괜찮아, 푸딩?
에단은 놀라서 일어섰다. 아직 퍼드득 거리는 수탉이 에단과 파이퍼 사이에 떨어져있어서 에단은 어쩌지 못하고 발을 동동 굴렀다.
응!
파이퍼는 에단의 걱정과 달리 씩씩하게 일어섰다. 그리고 자신의 계략을 설명했다. 목이 붙어있어서 그런 것일테니, 목을 마저 치자고. 에단은 저 것이 사후경직인 것을 몰랐기 때문에 파이퍼의 말이 그럴듯하게 들렸다. 에단은 파이퍼에게 단검을 줬다. 잘 손질되지 않은 단검은 딱딱한 목뼈를 한번에 치지 못했다. 파이퍼는 수탉의 목을 잘근잘근 눌렀고, 목뼈가 으스러질 때 즈음에야 목을 잘라낼 수 있었다. 파이퍼가 목 잘린 수탉을 들고 일어섰을 때, 에단이 사람을 시켜 예쁘게 빨아놓은 바지는 닭털과 피로 엉망이었다. 황급히 털은 떼어주었다지만, 피는 어쩔 수 없었다. 에단이 새 옷으로 갈아입으라고 하기도 전에 파이퍼는 자신의 임무를 완수하러 끓인 물에 갔다. 끓인 물도 그 소동에 식어 미지근해졌지만 에단은 도저히 물을 다시 끓여줄 수 없었다. 그렇게 뽑히다 만 털이 덕지덕지 붙어있는 살덩어리는 스튜에 국물용으로 들어갔다. 피비린내, 내장 군내, 지방, 그리고 털까지 들어간 스튜는 더럽게 맛이 없었다.
파이퍼.
에단이 파이퍼를 “파이퍼” 라고 부르는 것은 얼마 없었다. 파이퍼는 자신이 도와서 완성한 맛없는 음식을 깨작이다 놀라 에단을 보았다. 파이퍼의 두려움에 반짝이는 두 눈동자를 에단은 말 없이 보았다.
나중에 너도 피가 날거야, 그러니까……. 그런거야.
에디……. 혹시 내가 잘못했어?
아니야, 아니란다, 우리 귀엽고 달콤하고 향긋한 푸딩! 그냥 그렇다는거야.
에단은 파이퍼에게 생리와 그 다음에 올 모든 것들을 설명할 수 없었다. 그는 입으로 파이퍼를 위한 재미있는 농담을 던지면서, 죽은 닭의 살점을 질겅질겅 씹었다. 이 씹어먹는 행위를 당췌 이해하지 못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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