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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허구임을 밝혀드립니다.

-사용된 설정, 단체 등은 모두 허구임을 밝혀드립니다.-

크로우 박사의 저택에서 테러가 일어났는데!

까마귀가 인장을 들어보였다. 페이 올슨을 구출하는데 요긴하게 쓴 인장이었다. 경찰들이 수군거렸다. 하지만 이들은 경찰, 까마귀의 말을 듣기는 했지만 순순히 따라주지는 않았다.

그대들은 가만히 있을 것인가. 가서 백성들을 구조하고 치료해야하는 것 아닌가.

그 말이 진실인지, 정말 크로우 박사의 저택에서 불이 났는지 알아본 뒤에 파견하겠다고 말했다. 에녹이 나서야 할 차례였다. 그는 까마귀에게 양해를 구하고 조심스러운 손길로 인장을 가져갔다.

우리는 왕실의 명을 받들어 위험인물 및 위험행동을 색출하는 자입니다. 지역의 경찰들과 긴밀히 협업해야하는 상황이니, 부디 저희의 요청을 따라주십시오.

다시 한번 수군거렸다. 에녹은 페이 올슨을 손짓으로 불렀다. 페이는 완벽한 동작으로 에녹에게 그을린 유리병 파편을 건넸다. 물론 오면서 급하게 그을린 것이었다. 세 사람은 경찰들이 이 거짓 증거에 속아주기만을 간절히 바랐다. 페이가 말했다.

폭발의 현장에 있었습니다. 유리병에 든 화학물질이 폭발해 수십명이 다쳤으며, 그 중 상당수가 장례식 문객입니다.

사관학교 생도복을 입은 여자라는데에서 이질감을 느낀 그들은 증거를 대충 훑어보고 일단 현장으로 가보겠다고 했다. 까마귀가 좀 누그러진 목소리로 말했다.

감사하다. 우리는 왕성으로 가야하는데, 마차를 차출해도 되겠나.

사람들은 저 사람이 누구길래 이렇게까지 요구를 하냐는 눈빛으로 서로를 쳐다보았다. 에녹은 자신들을 상대하는 경찰의 귀에 소근거렸다.

소문은 안됩니다. 이 분은 왕세자 저하입니다.

믿기지 않는 표정. 그러나 그 표정은 황홀함에 가까웠다. 그 사람은 자신의 아랫사람에게 당장 마차를 대령할 것을 명령했다. 그리고 마차가 좁을 것이라며 까마귀에게 심심한 사과를 했다. 까마귀는 왕세자 저하로 행동하는 것이 익숙한 것 같았다. 왕세자였던 기억은 봉인되어 없을텐데도. 그들은 마차에 올랐다. 그 전에 경찰은 페이 올슨을 잡아 물었다.

뭘 물어본거야?

까마귀가 페이에게 물었다. 페이는 멍하게 벽을 긁다가 화들짝 놀랐다. 그래서 까마귀는 페이에게 뭘 물었는지 한번 더 물어보았다. 페이는 자기가 긁던 벽에 손을 대고, 그 위에 머리를 댔다.

뭔가 변하고 있어.

무슨 소리죠?

에녹이 물었다. 페이 올슨은 자기를 생각하게 놔두라는 듯이 손을 내저었지만, 그의 나불거리는 성정 상 5분도 지나지 않아 입을 열었다.

우리, 뭔가 기억이 둘로 나눠진 것 같지 않아?

그런가요?

에녹이 까마귀를 보았다. 마치 자기는 아닌 것 처럼. 까마귀는 보다 정직했다. 자신들의 진실에 대해 알게 된 것이 이상하다고. 젠심 연구소에 잠입한 것 같으면서도, 어떤 연구원이 친절히 알려준 것 같기도 하고, 아니면 계속 크로우 박사의 저택 앞에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에녹도 그랬다. 하지만 그는 아닌 척 했다.

경찰이 물어보았어. 크로우 박사의 저택이 어디있냐고.

뭐? 크로우 박사의 저택이면 그 일대에서 가장 큰 저택인데?

까마귀가 중얼거렸다. 에녹은 섣불리 말을 섞지 않으려고 조심했다. 페이 올슨은 상황을 무마하려, 크로우 저택은 암구호이며 자기가 분명 전달했다고 말했다. 위험한 도박이었지만 그들은 정당했다. 까마귀가 들고있는 인장도 참이고, 그가 왕세자 저하라는 것도 참이다. 여기서 그릇된 것은 페이 올슨과 생도복 하나 뿐이었다. 원래는 프레이야의 옷이었으니까.

무언가 수정 되고 있는 것 같아. 고무로 삭삭 지워서 연필로 그 위에 덧씌우는 것 말이야.

소설같은 이야기.

에녹이 말을 막으려고 했지만 까마귀는 그를 저지했다.

“복제” 라서 어떤 통찰을 가지고 있을 지 누가 아나?

그래! 그 망할 “복제”와 “원본”!

페이 올슨이 갑자기 팔을 퍼덕였고 에녹은 그것 때문에 구석으로 밀려 머리를 부딛혔다. 불쾌하게 인상을 찌푸렸다. 까마귀가 페이를 잘 갈무리해서 한쪽 구석에 처박아놓자, 에녹은 다시 당당히 앉을 수 있었다.

그래서……. 네 이론이 뭐지?

까마귀는 묻고 싶은 것을 물었다.

왜 타겟이 하필 “원본”이지? 넌 알고 있나?

그야 그 사람들을 죽여야 해류가 돌기 때문이지.

그럼 이 세상에 “복제” 들만 남으면 어떻게 되는걸까?

그걸 막으려고 우리가 왕성으로 가고 있는 거겠지?

이 이야기가 끝나더라도 우리는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것 아닐까?

에녹은 질린다는 듯이 손을 내저었다. 까마귀가 반박하려고 했지만 마차는 왕성에 도달해버렸고, 그들은 마차에서 내려야했다. 대화가 아주 오래 없었다. 여왕의 알현실까지 닿는 동안 사람을 한 명도 만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왕실에서도 고용인을 사용하는데 심지어 그들조차도 만날 수 없었다. 마땅히 마주쳐야하는 인물들은 모두 여왕의 알현실에 있었다.

뭐 때문에……?

에녹이 중얼거렸다. 심한 충격을 받은 까마귀를 뒤로하고 에녹과 페이는 한 발, 한 발 앞으로 갔다. 모두 시체였다. 모두 눈을 뜨고 있는 시체였다. 그 당연한 사실을 보고하자 까마귀는 주먹을 꽉 말아쥐고 성큼성큼 알현실 뒤편에 숨겨진 문을 열었다. 에녹과 페이는 서로 눈길을 주고받고 까마귀를 따라갔다. 피투성이 알현실을 지나, 피투성이 복도를 지나, 으리으리한 방에 닿았다. 크로우 박사 저택의 천박함과는 달랐다. 그건 고결했고, 아름다웠다. 하지만 그 곳을 자세히 볼 수는 없었다.

어마마마!

까마귀가 갈라진 목소리로 울어댔다.

어마마마, 말씀을 해 보시죠!

그 곳은 여왕의 처소였다. 까마귀는 엄마를 잃어버린 아이처럼 방 안을 미친듯이 헤멨다. 그리고, 까마귀는 정말 엄마를 잃어버린 아이였다.

저희는 다 알고 왔습니다, 어마마마……. 어머니!

빈 방에서 어머니라는 외침은 울리지 않았다. 푹신한 재질의 카펫이 그 소리를 모두 먹어버렸다. 까마귀는 벨벳으로 등받이를 감싼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리고 웃었다. 그것도 아주 크게. 그의 광기와 좌절에 눌려 에녹은 행동을 취하지 못했다. 까마귀를 신기하게 구경할 수 밖에 없었다.

그 분은 없다. 어딜 가신 거지?

까마귀가 웃음을 그치고 중얼거렸다. 페이 올슨이 빽빽거렸다.

어딜 가긴 어딜 가?

왕실의 인장이 박힌 화려한 공책이었다. 기이하게 생긴 좌물쇠가 달려있었지만, 페이 올슨은 어떻게 한건지 그걸 분해했고, 망가진 좌물쇠는 삐걱거리며 열렸다.

기억 나, 이 공책.

페이가 중얼거렸다.

어디서 본건지는 모르겠지만.

그게 지금 뭐가 중요하냐는 듯 어깨를 으쓱했다. 페이는 그걸 모두가 볼 수 있게 펼쳐놓고 어딘가로 팔랑거리며 넘겼다.

여왕과 왕세자가 왜 육신을 만드는 프로젝트를 했다고 생각해?

복제를 만들어서 옮겨타면, 원본은 죽여도 상관없잖아? 그런 식으로 세상의 멸망을 늦추는……?

까마귀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페이 올슨이 페이지 넘기는 것을 멈췄다. 그 곳에는 무언가를 설명하는 그림이 그려져있었다. “우주” 라고 써있는 두 개의 동그라미와, 동그라미에 각각 들어가있는 “몸”, 그리고 한쪽 몸에서 다른 쪽 몸으로 그어진 “화살표”. 에녹이 읽었다.

우리의 세계는 죽어가는 세계이다. 남의 손에 의해서. 우리는 그래, “소설” 속 에 사는 이들이다. “원본”은 소설의 주연이나 마찬가지다. “원본”은 수많은 복제품을 만들어 그 안에 들어갈 수 있다. 우리는 “육신” 을 만들어 상위 우주로 보내고, 그 곳에서……. 삶을……. 이어갈 것이다……. 소설이 아닌, 삶을.

까마귀와 에녹은 침묵했다. 여왕은 없다. 영원히 없다. 까마귀가 일어서 공책을 던졌다. 페이 올슨 쪽으로. 정말 페이를 맞추려고 했을까? 그건 모르는 일이다.

나도 원본이다!

페이는 즉각 허리춤에서 작은 권총을 꺼냈다. 경찰들이 쓰는 것이었다. 언제 그걸 훔쳐놓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저 녀석이라면 가능하다, 아마 가능할 것이다.

연구 총책임자가 가버렸네? 우리는 좀 더 평안하게 살아야겠어. 원본이 죽으면 “사건” 이 되니까, “소설” 이 사건을 무마하려고 좀 더 길어진다……. 그 원리로 프레이야를 죽였구나?

페이 올슨은 공이를 당겼다. 그게 아주 천천히 보였다. 이것도 자신의 능력인지 아니면 위급한 상황에서 몸이 반응하는건지 잘 모르겠다. 에녹은 더 이상 생각하지 않았다. 한쪽 팔로는 권총을 든 페이의 팔을 쳤고, 다른 손으로는……. 왜인지 자신의 허리춤에 있는 리볼버를 꺼내 가능한 많이 쏘았다. 왼손으로 방아쇠를 당겨서 그 거리에서도 빗나간 것이 보였지만, 대부분은 페이를 맞췄다. 페이 올슨은 쓰러졌고, 잠시 꿈틀거리고는, 그게 끝이었다.

왜 이런 캐릭터를 만든거지?

에녹이 중얼거렸다.

그냥 복제일 뿐인데, 왜 이렇게 비중이 높은 등장인물이 나왔냐고.

두 사람은 조금 더 페이의 시체를 쳐다보았다. 에녹이 애써 눈을 돌리자, 까마귀는 이미 자신을 쳐다보고 있었다.

왜죠?

에녹이 물었다.

그러는, 너는 왜?

까마귀는 천천히 발걸음을 올렸다. 여왕은 없다. 영원히.

그러므로 나는 이제 왕이다, 에녹.

당신에게 충성서약을 지금 이 자리에서 바치란 말입니까?

아니. 나를 배신해다오.

까마귀가 페이 올슨의 권총을 들어 에녹에게 건넸다. 에녹은 입술을 깨물었다.

나는 원본 중 하나……. 나를 죽이면 이 세상을 조금이나마 연장시킬 수 있을거야. 어마마마께서 어디로 사라졌는지 쫓아가라. 그 곳에 우리들이 있는 소설이 있겠지. 그걸 덮이지 않도록 해줘.

바깥이 소란스러웠다. 여러개의 구둣발이 복도에 침입했다. 도우려는 사람은 아닐 것이었다.

내 몫의 “육신” 이 있습니까?

원본이라면 다들 자신의 “육신” 이 어딨는지 아는 법이다, 에녹.

에녹은 망설임 없이 방아쇠를 당겼다. 요란한 총소리가 났다. 경찰들이 문을 열고 들이닥쳤다.

저 자다! 저 사람이 반역모의를 일으켰어!

그가 속였던 경찰들이었다. 에녹은 그들 중 몇 명을 총으로 쐈다. 죽은 이들 중에서 원본이 있기를 바라며. 그래, 에녹은 이미 알고있었다. 그의 “육신” 이 어디있는지. 눈을 감는다. 의식이 필요할까? 아니, 그런건 필요하지 않는다. 그저, 할 일은,

그가 눈을 뜨자, 그는 “에녹” 이 되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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