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명전대 고버스터즈

크리스마스 카드

우사미 요코 + 이와사키 류지 (청황)

소리꾼 by 박메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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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글은 특명전대 고버스터즈 본 편의 13년 전 어느 사건 후의 시점을 다루고 있습니다. 개인에 따라서는 스토리에 관한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칙칙하고 우울했던 분위기가 조금이나마 밝게 바뀐 건 그래, 아마도 크리스마스가 다가오고 있다는 신호였다. 거리에서 울려 퍼지는 캐롤 소리는 기관 내에서도 똑같이 울려 퍼졌고, 커다란 트리를 창고에서 꺼내 텅 빈 메카 보관소에 세웠다. 크리스마스 트리 앞에 서 있으면 도쿄 시내에 있는 커다란 광장에 와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기관 사람들은 크리스마스를 3일 앞두고선 모든 작업을 중지하고, 크리스마스 트리를 꾸미며 축제 분위기를 내는데 집중했다. 나도 학교를 다녀오면 일손이 필요한 곳에 가서 그들을 도왔다. 트리에 걸릴 장식물들을 만들고, 크리스마스 케이크에 들어갈 과일을 씻고, 쿠로키 사령관을 도와 연극에 쓰일 의상들도 디자인 하였다. 물론 내가 디자인한 의상은 너무 무난하다며 기각 당했지만. 하여튼, 크리스마스를 준비하면서 얼굴에 미소가 있는 사람은 몇 되질 않았다. 웃다가도 지나가는 나를 보면 웃는 걸 중지하고 슬픈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크리스마스는 누군가에게 악몽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이토록 분위기를 내는 데 열중하는 건, 바로 어린 요코 때문이었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면 다가올수록 처지는 분위기에 요코가 쿠로키 사령관께 “나도,엄마 보고 싶어요!”라고 말하며 울음을 터트렸기 때문이다. 쿠로키 사령관은 그 즉시 긴급 대책 회의를 열어 요코의 울음을 멈출 방법에 대해 논하기 시작했다. 결론은 ‘행복한 크리스마스를 선물하여, 요코가 앞으로도 크리스마스를 잘 지낼 수 있게 만들자!’, 간단하면서도 어려운 결론이었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우울한 분위기 속에서도 요코 단 하나를 위해 웃으면서 크리스마스가 오기를 기다리는 것이었다. 요코는 이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크리스마스 트리를 보며 즐거워했고, 케이크와 음식들을 조금씩 맛보고 다녔으며, 다 만들어진 소품들을 망가뜨리고선 꺄르륵- 웃기도 했다.

 

 그런 요코를 보고선 대부분의 사람들은 진심으로 즐거워했다. 그 사건 이후로 잘 웃지를 않았던 요코가 환히 웃다니. 나도 마찬가지로, 쿠로키 사령관의 목에 매달려 이곳저곳 돌아다니는 요코를 보면 마음이 놓였다. 하지만 모두가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는 건 아니었다. 요코를 볼 때마다 눈물을 훔치거나 슬픈 표정을 짓는 사람들이 더러 있었다. 마치 나를 쳐다보듯 아니, 그것보다 더 심한 반응이었다. 요코가 그런 사람들의 표정을 보지 못하게 하려고 필사적으로 방어했다. 요코 한 명만이라도 즐거운 크리스마스를 맞이해야만 한다. 나는 즐겁지 않아도 괜찮았다. 그걸로 괜찮다고 생각했다.

 

 스스로 생각했던 믿음이 깨진 건 바로 어제, 우연히 진 씨의 방을 지나쳤을 때였다. 문에는 잠금장치가 있었지만 쿠로키 사령관이 지난번에 스치듯 말한 걸 기억하고 있었기에, 망설임 없이 문을 열었다. 잠금장치는 가짜였기 때문에 스르륵-하고 문이 열렸다. 방 안은 매우 어두웠다. 스위치를 찾으려 벽면을 더듬다가 무언가를 떨어트렸다. 어디선가 지켜보고 있을 진 씨에게 사과를 하며 왼손에 잡힌 스위치를 눌렀다. 순간 눈이 너무 부셔, 잠시 눈을 감았다가 천천히 떴다. 먼저 눈에 들어온 건 벽면에 걸린 여러 종류의 과학 포스터들이었다. 시선을 옮기자 먼지가 가득 뒤덮인 책상이 눈에 들어왔고, 다음으로는 내가 떨어트린 물건이 눈에 들어왔다. 크리스마스 전날, 자신이 주었던 입체 카드였다. 학교에서 부모님을 제외하고 주고 싶은 사람에게 만드는 게 과제여서 진 씨에게 줄 카드를 만들었었다.

 

 그걸 본 순간 눈물이 왈칵 쏟아졌고 어린아이처럼 엉엉 울어버렸다. 나는 아직 어렸고, 어른처럼 행동하기 위해서 노력을 했을 뿐이었다. 연구소에 있던 사람들이 너무 보고 싶었다. 놀러오면 반갑게 맞아주던 히로무의 부모님도, 요코와 놀아주면 고맙다며 웃어주시던 요코의 부모님도, 무엇보다도 자신에게 많은 걸 가르쳐 준 진 씨가 보고 싶었다. 눈물에 젖어 카드에 사인펜으로 쓴 글씨가 번져갔다. 눈물을 닦아 내고서는 정신을 차리려는 그 때, 요코의 목소리가 바로 옆에서 들려왔다.

 

 “울어, 류 씨?”

 

 조그마한 두 손으로 스케치북을 들고 서 있는 요코의 모습을 보자, 화들짝 놀란 나는 양 손으로 얼굴을 가려버렸다. 고개를 좌우로 저으면서 코를 훌쩍거리자 요코가 더 가까이 다가왔다. 고개를 왼쪽으로 기울이면서 상태를 확인 하려는 듯 빤히 바라봤다. 안 울어, 요코. 손을 치우고선 빨개진 눈으로 눈웃음을 지어 보였다. 요코는 그걸 또 믿는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서는 스케치북을 나에게 내밀었다. 이게 뭐야? 파란색과 노란색, 빨간색과 초록색 등 여러 색으로 뒤덮인 추상화를 보고선 당혹스러웠다. 어떻게든 작품을 이해해려고 노력했지만, 나에게는 역부족이었다.

 

 “이건 류 씨, 이건 요코, 이건 히로무. 크리스마스 트리 밑에 서 있어! 뒤에는 여기 사람들이 우리를 축하해주고 있어.”

 

 요코도 자기 나름대로 크리스마스 카드를 만든 것 같았다. 최선을 다해 그렸는지 요코의 양 손과 볼에는 크레파스가 묻어 있었다. 이거 류 씨에게 주는 선물이야. 헤헤- 웃으며 손을 꼼지락거렸다. 그 모습을 보니 다시 한 번 더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이유는 잘 모르겠다. 요코가 대견해서 일수도 있고, 행복해하는 요코가 너무 귀여워서 울었을 수도 있다. 그 순간 요코에게서 느낀 감정이 너무 복잡했기 때문에 뭐라고 설명할 수가 없었다. 갑자기 우는 나의 모습에 요코는 크게 눈을 뜨고선 작은 두 손으로 눈물을 닦아 주었다.

 

 “요코, 나 너무 행복해서 우는 거야. 잘 그렸어. 고마워.”

 

 요코는 행복해서 운다는 개념을 잘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그 개념에 대해 설명하고자 입을 열었다 이내 다시 닫았다. 지금 요코에게 중요한 건 개념을 이해하는 일이 아니었다. 노란 스웨터를 입은 요코를 팔 벌려 힘껏 안아주고선, 등을 토닥여주었다. 이제야 내가 행복하다는 걸 실감한 요코가 양 팔을 내 목에 둘렀다. 정말 행복해, 류 씨? 웃음기 섞인 목소리로 내게 질문하고서는 손에 묻은 크레파스를 내 등에 닦기 시작했다. 응. 정말로 행복해, 요코. 이 그림은 내가 꼭 평생 간직할게. 그리고 등에 닦지 마! 키득키득 웃으며 요코의 뺨을 쓰다듬어주었다. 얼룩 닦는 걸 들킨 게 부끄러운지 시선을 피하며 나를 따라 웃었다.

 

 열린 문 사이로 히로무가 우리의 이름을 부르는 게 들려왔다. 덩달아 쿠로키 사령관의 화난 목소리, “요코! 어디 있니!”, 놀란 눈으로 요코를 바라보자 멋쩍은 듯 웃는 얼굴이 한 눈에 들어왔다. 종이가 너무 작아서 바닥에다가 그림을 이어서 그렸어. 비밀을 말해주듯 속삭이더니 가까워지는 발소리에 놀라 내 품 안으로 숨었다. 요코와 함께 진 씨의 방 문 앞으로 가 복도를 살폈다. 바로 오른쪽 코너에서 히로무가 우리를 바라보고 서 있었다. 팔짱을 끼고서는 둘이서 무엇을 하고 있냐는 듯, 무뚝뚝하게 바라보는 표정으로. 그 뒤로 쿠로키 사령관이 씩씩거리면서 나타났다. 사령관이 입을 열기 전에, 요코는 나의 손가락을 붙잡고 종종 걸음으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류 씨. 도망치자! 그렇게 말하는 요코는 이 상황을 즐기는 듯, 입가에 함박웃음이 걸려 있었다. 손에 쥐어진 스케치북에 그려진 그림이 펄럭이기 시작했다.

 

 요코의 발걸음에 맞추어 복도를 뛰는 동안 나는 생각했다. 우리 모두는 행복한 사람들이다. 크리스마스에는 누구보다도 행복할 자격이 있는 사람들이다. 그렇게 되뇌니 어쩐지 모르게 다시 눈물이 차올랐다. 이젠 자신도 의미를 모르겠는 눈물을 훔치고서는 복도 천장을 보았다. 작은 아이에게 몸을 맡기고서는, 눈을 천천히 감았다.

 

-

 

 눈을 천천히 떴다. 갑자기 들어온 밝은 빛에 실눈을 뜨고서는 앞을 바라봤다. 특명부 제복을 갖춰 입은 요코가 8절지를 들고 서 있었다. 이게 무엇이냐는 듯, 눈을 휘둥그레 뜨고서는 요코를 빤히 바라봤다. 나를 보지 말고 8절지를 보라며 요코가 종이를 팔락거렸다. 하얀 종이 위에는 커다란 크리스마스 트리 밑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특명부 사람들이 그려져 있었다. 색연필로 정성스럽게 그렸지만 색칠이 깔끔하지 않았고, 무엇보다도 전혀 사람들과 닮지 않게 그려 놓았다. 요코는 그림 실력이 변하지 않네, 웃으면서 말하자 요코가 입을 삐죽 내밀고선 바라보았다. 자신이 이 그림을 얼마나 열심히 그렸는지 열변을 토하다, 돌연 웃으면서 나에게 물어보았다.

 

 “류 씨, 지금은 행복해?”

 

 글쎄. 애매한 대답을 내 놓은 나에게 다가와 어깨를 툭 쳤다. 그게 뭐야. 조금 실망한 표정을 짓는 요코를 보며 눈웃음을 지었다. 장난이야. 웃음기 가득한 목소리로 말하며 일어나 요코의 어깨를 토닥여줬다. 특명부실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위해 붙여놓은 여러 가지 모양의 리스들이 눈에 들어왔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 많이 흘렀나보네. 옅은 미소를 지으며 지난 나날들을 회상해 봤다. 답을 찾았다는 듯, 요코를 내려다보며 확신에 찬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나는 계속 행복했어, 요코.”


특촬 크리스마스 합작에 제출했던 글입니다.

히온 마감과 겹쳤지만 평소 생각하고 있었던 소재이기에 즐겁고 빠르게 쓴 글입니다.

합작 주소는 https://sugar131013.wixsite.com/merry-happy2018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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