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명전대 고버스터즈

내가 주인공이었다면 좋았을 텐데

우사미 요코

소리꾼 by 박메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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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멀리서 노란빛의 사람이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우리에게로 한 발자국씩, 천천히 다가왔다. 그는 너덜너덜해진 왼손으로 엄지를 치켜세웠다. 이윽고 억지스러운 웃음을 지으며 한마디를 내 뱉었다. “임무 완료.” 폭발음과 함께 그의 뒤로 RH-03의 형체가 무너지기 시작했다. 뭐가 임무 완료란 말인가. 바로 옆에서 파란 제복의 사람이 소리를 지르며 뛰쳐나갔다. 나는 굳어있던 두 다리에 힘을 주고서는, 프로그램이 버티지 못해 앞으로 구를 때 까지 달렸다. 그의 옆으로 가 성하지 않은 몸을 부둥켜안았다. RH-03의 잔해가 주변으로 쏟아지기 시작했다. 좌석 부가 떨어지자, 그의 옆으로 원래의 형상을 알아볼 수 없는 인공지능 하나가 힘겹게 굴러 나왔다. 토끼 형상의 인공지능을 한참 동안 바라보던 그는, 굉음이 들리자마자 나를 힘껏 밀쳤다. 그 다음 순간 RH-03의 프로펠러가 앞으로 기울더니 그의 머리 위로 무너졌다. 마지막으로 본 노란 사람의 모습은 공포에 가득 찬 표정이었고, 내게 작게 속삭이고 있었다. “미안해.” 붉은 섬광이 도로를 적셔나갔다.

 

 사건의 발단은 이러했다. 요코와 히로무는 에네트론 유출이 감지된 지구 주위를 걷고 있었다. 엔터가 소멸한 지금, 남은 버그러스의 잔재들이 메사이어의 부활을 목표로 움직이고 있었기에 아직도 특명부는 유지되고 있었다. 히로무가 요코에게 당 섭취는 미리 해야 임무에 지장이 가지 않는다는, 귀 따가운 잔소리들을 늘어놓고 있었다. 요코가 인상을 찌푸리고서는 투덜거렸다. 나도 이제 성인이라고, 아이가 아니야! 그 말에 히로무가 차가워진 눈빛으로 뭐라 말하려는 순간 총알이 둘 사이를 향해 날아왔다. 두 사람은 서로 반대편으로 뛰어 들고선 이치간 버스터를 꺼내들었다. 몇 번의 총격전이 오가고서야 메타로이드가 모습을 드러냈다. 히로무와 요코는 파워드 커스텀을 몸에 두르고서는 괴상한 형체의 메타로이드와 전투를 벌이기 시작했다. 류지에게 지원 요청을 바라는 무전을 쳐봤지만, 감감 무소식이었다. 요코가 짜증을 내며 메타로이드의 위로 뛰어오른 그 때였다. 히로무가 메타로이드의 양 팔에서 뿜어져 나온 가시를 맞고 쓰러진 걸 요코가 두 눈으로 본 건. 당황한 요코의 이치간 버스터가 엉뚱한 곳을 맞췄고, 정신을 차리고 보니 눈 앞에는 사악한 미소를 짓는 메타로이드가 가시를 조준하고 있었다. 좋은 악몽 꾸세요.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우사다의 외침에 긴 잠에서 깨어나 보니 해가 뒤쪽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요코! 닉이 부산스럽게 움직이며 이것저것 물어봤다. 무슨 악몽이었나, 가시에 찔린 곳은 괜찮은가, 메타로이드가 무슨 해를 입히지 않았는가. 하지만 요코는 긴 시간동안 꾸었던 악몽이 하나도 생각나질 않았다. 고개를 도리질하며 천천히 일어났다. 저 멀리 류지와 제이가 요코를 향해 뛰어오고 있었다. 아, 뒤늦게 온 두 사람이 메타로이드를 처치했어. 닉과 우사다가 번갈아 요코에게 말했다. 그러고 보니 먼저 쓰러졌던 사람이 보이지 않아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닉이 어어, 하는 짧은 말을 내뱉음과 동시에 요코의 등이 강하게 떠밀렸다. 숨이 턱 막히는 충격이 온 힘을 다해 때린 것만 같았다. 히로무였다.


 “메타로이드 하나도 제대로 못 처리했어?”

 “히로무, 몸은 괜찮아?”

 “너는 나 없이 아무것도 못하는 거냐.”

 

 내가 너 없이는 아무것도 못한다고? 얼굴을 한껏 일그러트리고선 내뱉어진 말을 도로 주워 담았다. 닉이 뒤늦게 히로무의 입을 막았다. 평소와 같이 알 수 없는 표정으로 자신을 내려다보는 히로무의 얼굴을 더 이상 볼 수가 없어 뒤로 돌았다. 언론에서도 버그러스를 처치할 수 있었던 이유는 레드 버스터의 공이 가장 크다며, 나불거리는 걸 들은 적이 있었다. 어딜 가던지 레드 버스터에 대한 칭찬은 자자했다. 옐로 버스터와 블루 버스터는 옆에서 그를 훌륭하게 서포트 해 주었다, 그래, 언론에 실린 자신에 대한 평가는 ‘훌륭한 서포터’였다. 그런 생각들을 읽을 때마다 왜 자신은 주인공이 될 수 없었는지 고민했다. 또 언젠가는, 히로무가 아니라면 이 때까지의 임무를 모두 해낼 수 없었을 거라는 SNS의 반응도 보았었다. 같이 보던 류지는 이런 글에 일일이 신경 쓰지 말자며 어깨를 토닥였었다. 사람들이 뭐라고 말하던, 중요한 건 우리 셋의 생각이야. 휴대폰을 자신의 손에서 가져가 SNS 어플을 삭제해 버리는 류지의 표정은 묵묵했다.

 

 그런데 뭐야. 너의 생각도 그들과 마찬가지 인거지? 셋이 함께 팀이라는 말도 다 거짓이었어. 맞아, 너는 약속도 어기는 사람이었지. 두고 봐. 너 없이도 나 혼자서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겠어. 나도 주인공이 될 거야. 히로무 없이도 임무를 완수 해 내겠어.

 모핀 브레이스에서 미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전방 100m 앞 지구에 메가조드 출현! 그리고 그 순간, 우사미 요코는 재빠르게 달려가 대기하고 있던 RH-03에 먼저 탑승했다. 히로무와 류지가 뭐라고 외치며 달려왔지만 거대한 바람을 일으키며 비행체는 대기를 가로질렀다. 평소의 우사미 요코라면 하지 않았을 일, 혼자서 메가조드를 상대하는 일.

 

 좀처럼 떠지지 않는 눈꺼풀을 있는 힘껏 밀어냈다. 속눈썹이 파르르 떨려왔다. 시야에 들어온 건 울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류지는 양 팔에 깁스를 하고 있었고, 히로무는 멀쩡해 보였으나 후들대는 다리로 병원 벽에 위태롭게 서 있었다. 아, 갈라지는 목소리가 누군가의 훌쩍거리는 소리를 잠재웠다. 류지가 울음을 터뜨리며 천천히 다가와서는 침대 맡에 이르러선 무너져버렸다. 걱정했잖아, 요코. 이주일 째 일어나지 않아서, 네가, 네가 정말 영영 이 곳으로 돌아오지 못하는 줄 알고. 오른팔을 살짝 들어 자신의 침대 위로 올렸다. 목소리가 잘 들리지 않았다. 머릿속에서 자꾸만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는 류지 대신 히로무가 싸늘한 목소리로 현재까지의 상황을 말해주었다. 기체가 머리 위로 쏟아지려는 순간, 히로무가 빠르게 자신에게 다가와 감싸 주었다고. 기적적으로 류지가 도착해서는 파워드 커스텀을 장착하고선 기체를 떠받혀, 지금 살 수 있었다는 말이었다. 다만 특명부로의 복귀는 불가하고, 모든 직책을 박탈당한다는 가혹한 현실도 있다며 쏘아붙였다.


 우사다는? 버디의 이름에 류지가 윗입술을 깨물며 고개를 들었다. 자신의 옆을 흘끔 보는 시선을 읽고서는 손을 뻗었다. 묵직하고 차가운 금속의 촉감 대신 오돌토돌한 무언가가 느껴졌다. 우사다가 무언가를 떨어트렸는지 바닥과 쇳덩이가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돌렸는데, 그 곳에는 우사다가 없었다. 다만 우사다의 몸 안에 있어야 할 메인보드가 바닥에서 흔들리고 있었다. 우사다는, RH-03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신음이 섞인 목소리로 류지가 흐느꼈다. 아냐, 이건 악몽이야. 맞아. 메타로이드가 악몽이라고 했어! 고개를 저으며 현실을 부정하던 나는 있는 힘껏 외쳤다. 터벅거리며 거친 발걸음 소리가 들리더니 침대가 크게 흔들렸다. 왼쪽 팔에 달려있던 용도를 알 수 없는 장비가 떼어져서는 경보음을 울리기 시작했다. 넌 언제까지 현실을 부정 할 참이야! 그 경솔한 판단 때문에 고리사키도, 닉도! 팔을 쓸 수 없는 류지가 온 몸으로 히로무를 저지했다. 분노에 가득 찬 히로무의 목소리가 고막을 연신 두들겼다. 머리가 점점 더 아파왔다. 이게 악몽이 아니라고?

 

 그럼 차라리 그냥 죽었으면 좋았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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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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