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적전대 고카이쟈

생각

아임 드 파미유

소리꾼 by 박메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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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따금 저는, 포근한 잠자리에 누워 누군가를 생각하곤 합니다. 예컨대 지난주 안드로메다 은하 변방의 한 행성에서 만난 파미유 별의 사람들 같이 말입니다. 생명체가 살지 않는다고 판단한 저희는 잠시 쉬기 위해 얼어붙은 호수 위에서 놀기 시작했습니다. 그 때, 이 행성에서 은둔하며 지내고 있던 파미유 별의 사람들이 저를 부르며 뛰어왔지요. 많은 사람들이 저의 이름을 외치며 손이라도 잡아보려 했습니다. 그 사람들의 몰골은 굉장히... 눈 뜨고 보기 힘들 정도였습니다. 해적이 된 이후로도 남부럽지 않게 살았던 제가 부끄러워 졌습니다. 여기 이 사람들은 옷도 제대로 입지도 못하고 몸도 성하지 않은데, 저는 무엇을 하고 있었던 걸까요? 가이 씨와 루카 씨가 사람들을 저에게서 멀리 떨어트려 놓기 시작했습니다. 공주님, 저희를 어서 구해주세요! 아임 공주님! 저와 멀어지기 시작한 사람들은 울부짖기 시작했습니다. 박사님이 가까이 다가오며 저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그 순간 뒤통수에서 뻐근한 느낌이 들더니 앞이 흐릿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죠 씨가 놀란 표정으로 얼음 위를 달려와 저를 부축합니다. 마벨러스 씨는 뒤쪽에 있는 누군가를 향해 화를 내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화난 동료 분들의 목소리 사이로 작고 여린 아이의 떨리는 음성이 들려옵니다.


왜 공주님만 탈출했나요?






 생각에서 깨어나 눈을 떴습니다. 연분홍빛 실크 커튼 사이로 빛이 들어옵니다. 아침, 새로운 날의 아침이 밝았습니다. 부스스한 머리를 만지면서 일어나 문고리를 확인해봅니다. 처음 악몽을 꿨을 적에는 아침에 일어나보니 소파 위에 누워있어, 이제는 문을 잠가 놓고 자는 습관이 생겼습니다. 아마 몽유병이 제게는 있나봅니다. 창문을 열어 환기를 시키고선 몸을 씻습니다. 물이 따뜻한 걸 보니 박사님께서 먼저 일어나 계신 모양입니다. 머리를 말리며 오늘 입을 옷을 고르기 시작합니다. 하얀색 원피스에 아이보리색 가디건을 걸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작은 프릴 리본으로 머리를 묶습니다. 좋아요. 거울 앞에 서서 스스로에게 다짐을 합니다. 전 지금 좋아요, 즐거워요, 행복해요. 입가에 웃음을 만들어봅니다. 이건 좀 별론가? 여러 종류의 미소를 짓다 이내, 박사님이 부엌으로 들어가시는 소리에 잠가진 방문을 열고선 서둘러 계단을 타고 올라갑니다.


 아, 항상 이런 저런 생각을 한 날에는 특별한 일이 벌어지는 것 같습니다. 오늘 아침에도 특별한 일이 일어났으니까요. 위로 올라가니 박사님과 가이 씨께서 아침을 준비하고 계셨습니다. 같이 도우려 앞치마를 입고 있었는데 박사님께서 티 세트를 들고 와선 탁자 위에 놓으셨습니다. 그리고선 저의 앞치마를 도로 회수하시더니, 팔을 붙잡고선 의자에 앉히셨습니다. 눈을 크게 뜨고서는 박사님을 올려다보았습니다. 아임은 오늘 쉬어. 이젠 가이도 있으니까. 하지만, 하고 자리에서 다시 일어나려는 저를, 박사님은 다시 앉히며 웃어주셨습니다. 오늘만 쉬라는 말이야. 팔짱을 끼고서는 저를 내려다보시는 시선에 그만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어쩐지 모르게 박사님이 피곤해 보였지만, 유쾌한 발걸음으로 다시 주방에 들어가십니다. 찻잔에 담겨진 따뜻한 홍차가 눈앞에서 요동칩니다. 이런 느낌은 무엇일까요? 참 기묘하지 않나요?


 생각해보면 요 며칠 동안 특별한 일이 많이 일어난 것 같습니다. 어제는 죠 씨께서 맛 좋은 장미향 케이크를 만들어 주셨습니다. 분홍색 장미 옆에 하얀 시럽으로 아임, 이라고 제 이름이 써져 있었습니다. 오늘이 무슨 날이냐고 묻는 저에게 헛기침을 하며 고개를 황급히 돌리셨죠. 그저께는 루카 씨께서 저를 부르시더니, 루카 씨가 아끼는 보석함을 꺼내 오셨습니다. 그리고선 저와 여러 장신구들을 이리저리 대보시더니 작은 루비가 박혀있는 사과모양 머리핀을 주셨습니다. 루카 씨에게도 오늘이 무슨 날인지 물었지만 루카 씨는 ‘내 기분이 좋아서 그래.’라고 말씀 해 주셨지요. 3일 전에는 가이 씨가 지구에서 유명한 책을 빌려 주셨습니다. 예전부터 읽고 싶었던 책 이었는데, 더 이상 구할 수 없다는 이야기를 듣고 실망하고 있었던 찰나라 더욱 고마웠습니다. 하지만 가이 씨도 제 물음에는 얼버무리며 화제를 다른 곳으로 돌렸지요. 참 알 수 없는 일입니다.






 긴 비명소리가 들리면 가장 먼저 문을 박차고 달려오는 사람은 긴 머리의 파란 사람, 죠였다. 밤 귀가 밝은 그는 복도 끝 방에서 흐느끼는 소리에 일어나 비명소리가 들릴 때에는 이미 복도에 발을 들인 후였다. 아이보리 색으로 페인트 칠 되어있는 방의 문을 두드렸다. 흐느낌 소리가 새어나와 복도를 적셔나가기 시작했다. 바로 옆방의 문이 열리더니 걱정스러운 표정의 노란 사람, 루카가 나와 방 문고리를 잡고 흔들기 시작했다. 문은 열리지 않았다. 오늘도 또. 루카의 바로 옆방에서 눈을 비비며 녹색의 사람, 박사가 고개를 내밀었다. 또 악몽을 꾸는구나. 말을 이으며 하품을 하였다. 계단을 타고 급하게 은색의 사람, 가이가 내려왔다. 어쩌죠? 울상이 된 얼굴로 발을 구르며 문 앞을 서성거렸다. 다시 높은 비명이 여러 번 들렸다. 죠가 황급히 문을 두들기기 시작했다. 아임! 일어나! 루카도 가세하여 소리치기 시작했다. 그만 둬. 가장 끝 방에 있던 붉은 사람, 마벨러스가 두 사람에게 말했다. 그렇지만 벌써 5일째야. 아임 몸이 남아날 것 같아? 루카가 화가 단단히 난 듯 두 주먹을 불끈 쥐고선 내뱉었다. 그럼 안 그래도 마음 복잡한 애한테 짐이라도 더 지어주랴? 빈정거리는 말투에 입술을 깨물더니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는 루카를 보며 박사가 한숨을 내쉬었다. 나는 오늘 잘게. 어제 밤을 샜더니. 박사 역시 문을 닫고 들어갔다. 너도 올라가봐. 마벨러스의 말에 가이가 머뭇거리더니, 흐느끼는 아임의 방문을 몇 번 쓸고선 계단을 올라가기 시작했다. 죠가 고개를 끄덕이고선 복도를 천천히 걸어가기 시작했다. 마벨러스만이 아이보리색의 방문 앞에 남아, 아임의 흐느낌을 듣기 시작 하였다.


 처음에는 그저 일시적인 현상이라고 생각했다. 악몽을 꾸지 않는 사람은 단 한명도 없었으니까. 그러나 아임은 날이 가면 갈수록 악몽을 꾸는 횟수가 잦아졌고, 급기야 목을 쥐어짜며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기까지 했다. 아임의 심각성을 안 해적들은 악몽을 꿀 때면 소파로 아임을 데려와 밤새 같이 있어주었다. 그러나 아임은 그 뒤로 방문을 잠가 놓고선 잠이 들었고, 해적들은 방문 너머로 들려오는 고통의 소리에 몸을 비틀며 아침이 오기만을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약속이라도 한 듯 언제부턴가 한 사람씩 아임의 방문 앞에서 밤을 지새우기 시작했고, 그 날은 그 사람이 아임을 기분 좋게 만들기 위해 노력을 했다. 그렇게 아임의 증세는 좋아지는 듯하였다. 그 행성에서 사람들을 만나지만 않았으면. 죄송합니다, 먼저 가서, 제가. 흐느끼는 목소리가 방문을 긁어댔다. 그런 죄책감 따위는 가지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하고 싶었다. 그러나 자신 때문에 모든 사람들이 걱정하고 밤을 지새운 다는 사실을 아임이 알게 된다면. 그건 그에게 더욱 큰 부담이 될 것이었다.


 마른 얼굴을 세수했다. 아마 다들 방에 들어가서도 쉽사리 잠들지 못하겠지. 아임의 흐느낌이 조금씩 작아지자 눈을 뜨고선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가장 크고 좋은 이 방은 아임만을 위한 공간이었다. 해적들은 모두 아임을 극진하게 아꼈다. 내일은 아임 방에 달 새로운 물건을 모두 같이 만들어 볼까. 생각을 깨트리듯 다시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바로 옆방에서 루카가 벽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박사는 잠자리를 뒤척거렸으며, 죠는 운동을 하는 듯 숨소리가 규칙적으로 들렸다. 위층 나무판자 바닥이 삐꺽거린다. 순간 머릿속으로 여러 가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지금은 잡생각 하지 않고, 내일 아임을 위해 무엇을 하면 좋을지 생각하기로 하였다. 같이 쇼핑을 나가거나, 아님 하다못해 아침 인사를 먼저 건네주거나, 아니면……. 다시 쉰 목소리로 아임이 짧은 비명을 질렀다. 마벨러스는 방문에 기대어 왕좌의 무거움을, 책임감의 무거움을 같이 지기 위해 노력하기 시작했다.




 아임은 항상 벗어날 수 없는 생각에 사로잡혀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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