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적전대 고카이쟈

죠 깁켄 + 아임 드 파미유 (청도)

소리꾼 by 박메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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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에 관해서는, 묻지 말아 줬으면 하는데. 내 표정을 슬쩍 본 루카가 별다른 말을 하지 않고 뒤돌아섰다. 알았어. 그렇게 비싸다면야. 손을 슬슬 흔들며 주방으로 사라진 루카는 배고프다며 박사를 재촉하기 시작했다. 왼손을 들어 얼굴을 벅벅 문질렀다. 갑자기 저런 질문은 왜 하는지. 눈을 질끈 감고서는 근처 소파에 거칠게 앉았다. 여기는 고카이 갤리온, 나는 고카이쟈의 일원이고, 잔갸크로부터 벗어나 있고……. 구석에서 꾸물꾸물 올라오는 기억을 막기 위해 차근차근 현재 상황을 되새겼다. 죠. 익숙한 음성이 내게로 다가왔다. 얼굴 위로 차가운 손이 올라와 눈을 부드럽게 눌렀다. 뒤돌아보지 마. ...나는 잔갸크에 있었고, 명령에 불복종해서 수감되었었고, 시드 선배가 나를. 과거를 타고 올라온 손이 이제는 입을 막기 시작했다. 도망가, 도망가. 어이! 날카로운 목소리와 함께 누군가 내 어깨를 몇 번이고 두들겼다. 이상한 신음소리와 함께 손이 도로 과거로 들어갔다. 그제야 나는 눈을 뜨고 눈앞의 사람을 바라보았다. 마벨러스가 눈썹을 들썩이며 물었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는 거냐. 고개를 돌리니 테이블에는 이미 박사와 루카가 앉아있었다. 아무것도. 자리에서 일어나서는 마벨러스의 어깨를 두어 번 두들겼다. 자리에 앉아 별다른 말없이 닭다리를 뜯었다. 잠시 공기가 무거워졌지만 이내 해적들은 평소와 같이 각자의 밥을 먹기 시작했다. 시드 선배. 다시 그 손이 스믈스믈 올라와 귀에 대고 속삭이기 시작했다. 도망쳐, 어서.

 

-

 

“다친 곳은 없지? 혹시 잔갸크 놈들이 너에게 다른 소리는 안했고?”

“저 정말로 괜찮아요, 루카 씨.”

 

푸아졸이 잔갸크에게 넘어가지 않아서 다행이야. 다과가 든 쟁반을 가져오며 박사가 말했다. 아임이 동의하듯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 아임이 산책을 하다 푸아졸을 주웠고, 무슨 연유인지 잔갸크는 아임을 납치해 일본 돈을 요구했다는 게 아임의 설명이었다. 다친 곳은 없어보였지만 루카는 화가 가라앉지 않았는지 연신 씩씩거리며 잔갸크에 대한 욕을 늘어놓았다. 뭐, 무사하면 된 거 아냐. 쟁반 위에 있던 샌드위치를 덥석 채가며 마벨러스가 말했다. 그 말에 아임은 마벨러스 쪽으로 시선을 돌리고서는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루카가 팔짱을 끼고서는 무어라 중얼거렸지만 네비가 시끄럽게 날아드는 통에 알아듣지는 못했다.

 

“아임, 아임! 우리가 얼마나 걱정했는데!”

“걱정 끼쳐서 죄송해요, 네비.”

 

파닥거리며 날아온 네비를 품에 안으며 아임이 말했다. 그럼에도 흥분이 가라앉지 않았는지 네비가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며 말했다. 박사는 머리를 쥐어뜯으며 아임의 위치를 찾았고, 마벨러스는 사과를 무섭게 씹어 먹었다니까! 루카가 잔갸크에 대한 욕을 엄청 했어! 죠는……. 네비의 시끄러운 입을 막은 건 나의 손이었다. 옅은 한숨을 내쉬고서는 가까워진 거리에 있는 아임을 바라보았다. 네비에게서 손을 뗀 아임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나를 보며 갸웃거렸다. 시끄러워, 새! 마벨러스가 네비를 가로채서는 이리저리 흔들었다. 새가 아니라 네비라니까! 비명과 함께 네비가 버둥거렸다. 아임이 납치당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나는 어떻게 행동했더라. 네비가 있던 자리로 뻗은 손을 천천히 거두고선 계단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갔다. 처음에는 아임을 믿었었지. 칼을 잡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았지만 지구인을 상대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니까. 그렇지만 잔갸크의 소행이라는 것을 안 다음의 나는 어떤 마음가짐이었지? 왼손을 들어 마른세수를 연신했다. 나를 흘끔흘끔 쳐다보던 루카가 쟁반 위에 있는 샌드위치를 보고선 박사를 타박하기 시작했다. 박사, 야채는 넣지 말라니까! 박사가 툴툴거리는 소리가 점점 희미해졌다. 도망쳐. 최근에도 들렸던 익숙한 목소리가 다시 귓가에서 들리기 시작했다. 망루를 향해 계단을 하나 둘 발걸음을 옮겼다. 도망쳐, 죠! 이윽고 해적들의 목소리는 더 이상 들리지 않게 되었다.

 

무서웠다. 내 곁의 누군가가 사라지는 모습을 다시는 보고 싶지 않았는데, 그 모습을 다시 보게 될까봐 두려웠다. 그리고 이윽고 그 공포심은 분노로 변해갔다. 잔갸크를 보았을 때 주체할 수 없이 화가 끓어올랐다. 겨우 고민을 상대하는 데에도 많은 에너지를 쏟아 부을 정도로. 시드 선배를 구하지 못한 과거의 나에게 화가 났고, 아임을 혼자 보낸 현재의 내 자신에게도 똑같은 일이 있어도 무력하게 지켜만 볼 미래의 나에게도 화가 났었다. 답지 않게 칼을 쓰지 않고 고민에게 맞은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또 다시 그런 일이 일어나면, 그 때는 어떻게 할 거야? 차갑게 식은 손이 귀에 대고 속삭였다. 시끄러워. 눈을 감고서는 중얼거렸다. 여기는 고카이 갤리온, 나는 고카이쟈의 일원이고, 잔갸크로부터 벗어나 있고... 손이 비웃음을 흘리며 입을 열려는 순간 누군가 내 손가락 하나를 잡아당겼다.

 

“저기.”

 

눈을 떠보니 아임이 검지를 살며시 잡고서는 바라보고 있었다. 옷을 잡아당겼는데 반응하지 않으셔서……. 손가락을 잡은 것에 대해 해명하듯 말을 덧붙였다. 아. 몸을 돌려 아임과 마주보았다. 손가락에서 손을 뗀 아임이 옆으로 천천히 다가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머리띠를 하지 않아 긴 머리가 이리저리 바람에 흩날렸다. 머리띠, 바지 주머니를 뒤적여 끊어진 머리띠를 아임에게 건넸다. 아임이 손에 든 물건을 보더니 방긋 웃으며 자신의 손 위로 가져갔다. 감사합니다. 자주 하고 다녔으니 애착이 있는 물품 중 하나였겠니. 짐작하고 가져오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머리띠를 만지작거리던 아임이 천천히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보았다.

 

“오늘 실례를 끼쳐서 죄송했습니다.”

“별로. 잔갸크 자식들이 나섰는데 무슨 수가 있었겠어.”

 

한쪽 입을 살짝 비틀며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러나 아임은 따라 웃지 않고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오늘, 죠 씨가……. 잠시 말하기를 망설이다 머리띠를 만지작거리며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화가 난 것처럼 보여서요. 올라갔던 입꼬리가 딱딱하게 굳어졌다. 아임에게도 보일 정도로 감정을 비추었던가. 화나지 않았다 부정하기에는 아임의 말이 너무 확신에 가득 차 있어 고개를 돌려 하늘을 바라보았다. 신경 쓰지 마. 이렇게 말하면 아임은 어떤 질문을 했든 고개를 숙이고서는 입을 다물었다. 오늘도 역시나 같은 반응을 하는 듯 말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후, 이제는 더 이상 나오지도 않는 입김을 불어댔다. 그 순간 손이, 따뜻한 아임의 손이 내 옷자락을 꾹 쥐어 잡았다.

 

“저는 지금 여기에 있어요, 죠 씨. 그러니까 더 이상.”

 

조곤조곤 말을 하다 말고 이내 입을 다물었다. 고개를 돌려 아임을 바라보았다. 이 뒤의 말을 다듬는 건지 우물거리며 옷자락을 쥔 손의 힘을 천천히 풀고 있었다. 마벨러스가 동료들에게 나의 과거를 말했다고 했었지, 아마. 아임은 그 이야기를 듣고 내가 느꼈을 감정에 대해 짐작한 것 같았다. 이런 면에서 눈앞에 이 사람은 특별했다. 누구보다 타인에게 애정을 많이 쏟고, 자신보다 더욱 타인을 아끼는 사람. 내 시선을 느꼈는지 고개를 들고서는 눈을 여러 번 깜빡였다. 그 분노가 누구를 향했든 더 이상 화내지 마세요. 옷자락을 다시 손에 고쳐 쥐며 말했다. 지난번에도 이랬었지. 혼자가 아니라고 말해 주었던 것도 그였다. 누군가가 고통 받는 모습을 가만히 보지 못하는 착한 사람이었다. 살아있는 생명은 그의 자애 속에서 살아갔다. 나는 아임의 말에 대답하는 대신, 손을 뻗어 옷자락을 쥐고 있는 아임의 손가락을 하나 조심스럽게 잡았다. 아임이 옷자락을 놓고서는 그런 내 손을 마주 잡았다.

 

“...동료니까요.”

“그래, 동료니까.”

 

엉성하게 그러쥐어 불편할 법 한데도 아임은 아무 소리도 하지 않았다. 어느새 차가운 손은 사라지고 없었다. 들리던 환청은 사라지고 활기찬 도시의 소리가 대신 채워졌다. 고개를 살짝 돌려 도시를 내려다보았다. 붙잡힌 손을 내려다보며 아임이 중얼거렸다. 무어라했는지 듣지 못해 되물었지만, 아임은 그저 빙그레 웃으며 한 발자국 앞으로 다가와 섰다. 곁눈질로 살짝 바라보니 매서운 바람에도 내색하지 않고 도시를 구경하고 있었다. 아임이라서 더 그랬던 걸지도. 나의 중얼거림에 아임이 고개를 들어 바라보았다. 무슨 말인지 듣지 못했다는 듯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다급하게 시선을 다시 하늘로 돌리고서는 목을 가다듬었다. 이 별은 여전히 시끄럽네. 아임이 작게 웃으며 말했다. 아무것도 바뀐 게 없으니까요. 서로의 손에서부터 따스한 열기가 피어오르는 것 같았다. 그래. 나는 지금 고카이쟈이고, 여기는 지구별이며, 내 옆에는 아임이 서 있고, 따스한 손이. 그래, 살아있는 따스한 손이 나를 꼭 쥐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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