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리] 오메가 버스 AU
8월, 여름의 기색이 완연한 날씨에도 집 안은 겨울 향으로 가득 차 있었다. 리는 들고 온 책가방을 제 방에 툭 던져두고 재빨리 욕실로 들어가 문을 꼭 닫았다. 집을 가득 채운 제 알파의 페로몬이 심장을 묵직하게 누른다. 뿌리쳐야한다는 것을 아는 한편 몸 안에 들어 온 페로몬을 갈망하는 것은 오메가로서의 본능이리라. 리는 바닥에 주저앉아 옷에 밴 시클라멘의 향을 폐 깊은 곳으로 빨아들였다. 속이 조금 울렁거리는 것 같다.
서 리. 18세. 아직 서류상으로 성인 인증 받지 못한 나이였지만, 양가의 허가 아래 리는 제 알파인 여한과 동거생활 중이었다.
동거할 집으로 떠날 때, 혹시 모르니 꼭 끼고 다니라며 가족들에게서 건네받은 각인방지 목걸이를 리는 어색하게 웃으며 제 목에 걸었었다. 그 이후 가족들의 감시 아닌 감시에 어딜 봐도 액세서리가 아닌 까만 초커형 각인방지 목걸이는 리의 목 끝에 자리를 잡게 되었다. 리는 못내 그것이 늘 거슬려서 여한과 제 주기 외에는 집에서만이라도 목걸이를 풀고 다녔다.
욕실에 주저앉아 있기를 한참, 다리에 힘이 들어가자 바로 일어서서 각인방지 목걸이를 풀어냈다. 턱-.하고 걸렸던 답답함이 조금은 가시는 것 같았다. 그리고 드러난 목에 아무자국조차 없는 것이 아쉬워 목덜미를 몇 번이나 쓸었다. 가족들의 걱정은 알지만, 사실 리는 별 신경을 쓰지 않았다. 애초에 관계에서 재거나 계산하는 것이 적성에 맞지도 않았다. 어디 그게 생각대로 되던가. 형들은 하면 된다고 하지만 리는 그게 안 됐다. 비단 사람과의 관계뿐만 아니라 모든 것에 재거나 계산하는 것에 거부감부터 들었다. 그런 리에게 각인방지 목걸이는 방해물이면 방해물이었지, 도움을 주는 물품은 아니었다. 그냥 콱 물리면 좋겠건만, 그 시기를 언제로 잡아야하는지 몰라서 그저 한숨만 내쉬었다.
그러니까, 모든 재거나 따지거나 계산하는 것은 정말인지 적성에 맞지 않았다.
틈새로 비집고 들어오는 향에 숨을 참고 다시 목걸이를 걸었다. 옆 부분의 쇠가 차갑다. 페로몬이 목걸이를 하지 않았을 때만큼 위협적이지는 않았다. 벌써부터 몰려오는 피곤함에 옷을 벗고 물 온도를 맞췄다. 다음 히트사이클을 노려야할까. 복잡한 생각에 눈이 감긴다. 따뜻한 물에 생각이 같이 흘러나가듯 노곤해지자 리는 생각을 그만두기로 했다.
물에 젖은 목걸이는 적당히 건조대에 던져두고 가운을 걸쳤다. 속옷이든 옷이든 금방 젖어 거추장스럽거나 금세 찜찜할 것이 뻔해 고려대상에 두지도 않았다. 타월처럼 되어 있는 가운은 의외로 보온성이 뛰어났다. 그러니까, 덥다는 얘기였다. 리는 발걸음을 빨리했다. 다가갈수록 진해지는 페로몬에 다리가 계속 풀리려고 했지만 대강 다잡고 걸었다. 그래도 평소보다 느리고 숨이 차서 고개를 뒤로 젖혔다가 다시 내렸다. 그렇지, 페로몬에 온도가 있는 것도 아닌데 위아래 나눠질 일은 없겠지. 알면서도 아쉬운 결과에 제 몸에 코를 박았다. 달달한 과일 향과 꽃 향이 물씬 났다. 꽃도 과일 꽃이라 흡사 과수원에 온 것 같은 느낌에 아까보다 몸 상태는 괜찮아졌지만 기분이 미묘해졌다. 리는 여기저기 맞이하듯 올라오는 제 페로몬 냄새를 맡다가 문 안쪽에서 들리는 신음에 문고리를 다 잡았다. 항상 거슬렸는데 목이 이상하게 허전하다. 이 상태를 보면 한은, 화낼까? 아니면 기꺼워할까. 뭐, 화내면 히트사이클 때를 노리면 되는 일이리라. 대책 없지만 여러모로 한계였다. 물려도 안 물린 척 목걸이를 걸고 다니면 어떻게든 되겠지.
문고리가 시원하게 내려가서 문이 열렸다. 밀도 높은 시클라멘과 우드, 머스크- 겨울 향이 몸에 파고들었다.
“하니야.”
침대 위 이불 덩어리가 작게 앓는 소리를 낸다. 리는 다시금 “하니야.” 하고 이불 덩어리를 향해 목소리를 냈다. 페로몬에 잠식되어 가는 목소리는 점점 흐트러졌다. 그렇게 세 번쯤 더 부르고, 다섯 발자국을 더 가서야 앓는 소리는 답을 냈다.
“-리?”
놀라움, 당황함, 반가움 그 외 기타 등등..... 끙. 하고 크게 앓는 소리와 함께 이불이 들어 올려 진다. 차분하게 내려져 있던 금발이 얼굴 군데군데 땀에 붙었다. 눈이 흐리게 풀리며 가득 찬 페로몬 속에서 다른 형질의 페로몬 향을 향해 자동적으로 시선이 돌아갔다. 여한은 물에 젖어 조금 더 꼬불거리는 분홍머리에 한숨과 함께 얼굴을 쓸었다. 단 향이 무척이나 자극적이다.
흔히 말하길, 오메가의 발정기인 ‘히트사이클’은 순수한 본능으로만 이뤄진 걸로 보인다면, 알파의 ‘러트사이클’은 본능 속에 조금의 이성은 남아있게 보인다고 한다. 보이기는 그렇게 보인다는 것이다.
여한의 모습도 그랬다. 겉으로는 그냥 크게 앓고 일어난 모습이었다. 리는 조심스레 땀에 눌러 붙은 머리카락을 손가락으로 쓸어 정리해주었다. 짙은 겨울향이 독하게 성감대를 자극한다. 그대로 입을 맞추고 침대 위에서 한참을 구르고 싶은 걸 겨우 다잡은 리는 쓰러지듯 침대 위로 올라가 여한의 품에 안겼다. 바디워시 향과 각 종 과일은 단 향과 겨울의 향이 한 곳에서 뒤 섞인다.
“해도 돼?”
물음을 내 뱉으면서도 서로의 입술이 스친다.
“응.”
허락과 함께 그대로 잡아먹듯 입술이 다른 입술 안으로 들어갔다가 나오며 하얀 가운이 침대 옆으로 펄럭이다가 추락을 한다. 침대가 몇 번 출렁거리다가 이불이 두 사람의 움직임에 흘러 내린다.
“추워?”
여한의 물음에 페로몬에 잠식 된 눈으로 여한의 입술에 제 입술을 가볍게 붙이며 타액을 나누곤 장난치듯 웃는다.
“조금?”
그니까, 하니도 얼른 벗자. 여유를 가장한 조급함에 웃음소리가 끓다가 사라진다. 땀에 젖은 몸과 물이 덜 마른 몸이 끼워 맞춰지듯 밀착한다. 여한이 매끈한 리의 목덜미를 손가락으로 연신 쓸며 물었다.
“나, 물면 어쩌지?”
리는 그에 대수롭지 않게 웃으며 답했다.
“내가 물리는 거지, 뭐.”
달라지는 건 없었다. 그냥 커플링처럼, 또는 다른 커플 장신구처럼 제가 그의 오메가고 그가 제 알파라는 사실만 남들이 알게 될 뿐. 리는 오히려 그동안 밀렸던 숙제를 끝낼 수 있어서 기쁠 지경이었다.
“하니야,”
그의 애칭을 그의 페로몬을 머금으며 부르곤 눈을 가늘게 접어 웃었다.
“예쁘게 남겨 줘.”
손가락이 목덜미 한 가운데에 딱 멈춘다. 여한은 그제야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그에 답했다.
“여부가 있겠어.”
리는 내일 일어날 수 있으면, 건조대에 걸려 있을 목걸이부터 버리자고 다섯 번째 자국을 남기고 있는 제 알파의 등을 쓸며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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