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민] 만우절 장난에서.
만우절 장난이 걷잡을 수 없이 커져버린 준민
공백포함 12,169자 입니다.
-준모민규
사투리 잘 모릅니다. 가볍게 썼기에 가볍게 즐겨주세요!
4월 1일. 그날이 어떤 날이냐 묻는다면, 장난을 빙자해 속마음을 살짝 내뱉어볼 구실이 생기는 날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실 널 좋아했어, 나랑 사귀자!"라는 웃기지도 않는 말을 던지고는 "만우절 장난인데ㅋㅋ" 하며 속으로는 눈물을 삼키는 추잡한 행위가 난무하는 날이기도 하다. 그런데, 그런 추잡한 행동을 내가 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
만우절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고백 장난을 해본다지만, 나는 한 번도 그런 행동을 해본 적이 없었다. 만우절을 빌미로 짝사랑하던 상대에게 고백했다가 차이는 건 주변에서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만우절이 이래서 좋지 않나? 아닌 척 고백해볼 수 있잖아. 야, 너도 고백할 거믄 만우절에 해라. 이 형님의 인생 조언이다, 민규야. 잘 새겨들어라~"
쪼오오옥——
허공을 바라보며 준모가 사준 초코우유를 빨았다. 전혀 관심 없는 이야기였지만, 적당히 그래 그래, 하고 받아주었다. 속으로는 쪽팔림에 울고 있을 터였다. 세상에 여자는 많다느니, 어차피 별로 안 좋아했었다느니, 여러 자기합리화를 늘어놓더니 금세 자존감이 하늘을 치솟기 시작했다.
“아, 야. 그래 넌 좋아하는 애 없냐?”
“없다.”
“야, 그러지 말고. 관심 가는 애도 없나?”
대답을 미루기 위해 빨대를 물고 쭉 빨아올렸지만, 입으로 들어오는 건 초코맛 나는 공기뿐이었다. 우유 방울이 빨대에 걸려 허공에 울리는 빈 소리만 반복해서 들려오자, 우유곽을 구겨접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민규 니 어디가냐? 야, 야! 니 있지? 있어서 글지?”
"아 있네—!" 멀어지는 성민의 목소리를 뒤로하고, 공원 쓰레기통에 우유곽을 던지듯 버렸다. 하소연을 듣고 있는것도 거지까지였다. 낭비한 시간만큼 나머지는 전부 게임에 써버리겠다고 각오까지 했다. 집으로 가는 동안 빈입으로 돌아가기는 싫어서, 공원 옆 편의점에 들러 방금 마신 것과 같은 초코우유를 하나 더 사고 나서야 집으로 출발했다.
***
아으. 방문 근처에 대충 책가방을 던져두고 침대 위로 몸을 내던졌다. 조금 오래되어서인지 스프링이 삐걱거리는 소리가 거슬렸지만, 아늑함을 느끼기에는 충분했다. 화이트데이나 발렌타인데이도 이렇게 사랑 이야기가 자주 들리지는 않았건만, 이상하게 내 주변에서는 만우절만큼 사랑이 절절한 날이 없었다. 생각을 따라 몸을 돌려 천장을 바라봤다. 멍하니 눈의 초점을 전등에 맞추고, 주변 친구들의 만우절 사랑 이야기를 떠올렸다. 머릿속에 빈자리가 느껴졌다. 박준모, 나는 4월 1일에는 학교 밖에서 단 한 번도 준모를 만난 적이 없었다.
걔는 만우절에 내게 고백이나 장난 이야기를 한 적이 없었다. 지금까지 사귀어 온 그 누구보다 오래 만났지만, 그 녀석만큼은 그런 이야기를 한 기억이 없었던 것이다. 왜지? 생각해보니 오늘도 같이 하교하자는 말에, 오늘은 좀 바쁘다며 집에 먼저 가라고 했던 까닭에 성민과 함께 집으로 가게 된 것이었다. 준모는 만우절에 좋아하는 아이에게 고백을 했을까? 다른 사람들처럼 자기 마음을 거짓말이라는 방패 뒤에 숨기고 전했을까?
어느새 내 관심사는 준모가 좋아했을 아이들로 향해 있었다. 게임을 하겠다던 다짐은 까맣게 잊어버렸다. 침대 아래로 손을 뻗어 바닥에 놓여 있던 초코우유를 빨았지만, 집에 오는 길에 이미 다 마신 지 오래였다. 입이 허전했다.
[마. 준모야]
휴대폰을 들어 메시지를 남겼다. 확인할까? 바쁘다 했는데. 괜히 저녁 늦게 답이 오면 어쩌나 했지만, 걱정과는 다르게 금방 휴대폰이 울렸다.
[ㅇ?]
[내 할 말이 있는데.]
[뭔데?]
[나 사실 니 좋아한다.]
해버렸다…. 전송 버튼에서 손을 떼자마자 극심한 후회가 몰려왔다. 아아아아아아악——! 입 밖으로 내지 못한 외침이 가슴속에서 빙글빙글 메아리쳤다. 이 메시지라는건 왜 삭제 기능이 없을까? 지금 당장이라도 글을 삭제하고, 이야기를 돌려버리고 싶은 마음이 가득했다. 누가 내 얼굴을 봤다면, 분명히 새빨갛다고 말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했다.
‘우웅— 우웅—’
메시지가 왔다. 도저히 휴대폰을 열어 내용을 확인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이게 다 김성민 그 녀석 때문이라... 하루 종일 그 이야기만 듣다 보니 내가 미쳐버리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아무래도 남자끼리다. 다른 여자에게 고백하고서 만우절 장난이었다며 돌리는 것과는 결이 다르다. 내가 굳이 말하지 않더라도, 장난이었다는 건 알아챘을 게 분명했다.
생각을 고쳐먹고, 침대 한 구석에 내팽개쳤던 휴대폰을 집어들었다. 괜찮다. 10년의 함께한 세월이 그리 가볍진 않을 것이다.
[그러냐ㅋㅋㅋ]
[나도 니 좋아하는데 그럼 사귀는 거다?ㅋㅋㅋㅋ]
준모의 문자 내용을 보자, 그동안의 걱정이 씻은 듯 사라졌다. 오히려 머리가 차갑게 식어 텅 빈 느낌마저 들 정도였다.
저 메시지 뒤를 보라. 끝마다 붙은 ‘ㅋㅋㅋ‘은 이미 내가 보낸 메시지가 만우절 거짓말이라는 걸 알고 있음을 의미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귀자는 말까지 덧붙인 건 나랑 한 번 해보자는 도전장이었다.
[아 진짜가? 다행이네.]
그렇다면 잇는다. 이 장난을 이어간다. 내가 만우절 거짓말이었다고 말하면 분명 자신도 만우절 거짓말이었다며, 그걸 믿은 거냐며 놀릴 게 뻔했다. 이건 서로가 하는 말이 거짓말임을 알고 있기에 가능한 승부였다.
그래, 어디까지 가나 보자. 마지막까지 속일 수 있는 사람이 누군지. 지금부터 암묵적인 승부가 시작됐다.
해피 4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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