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육체와 영혼을 저울에 올리고
'부정 탔어.'
비너스는 치마 밑단이 바닥에 끌리지 않게 들어올리는 척 드레스 자락을 탈탈 흔들었다. 연분홍색 오간자에 얇은 천으로 지은 겹꽃 장식을 꿰매 붙인 드레스, 객관적으로 보아도 고운 옷이었으나 비너스의 마음은 가라앉아 있었다. 관극할 때 갖춰 입으려 막 결정한 의상이었다. 방에 들이닥친 인리언에게 둘러댄 설명은 물론 거짓말이었고. 하지만 다음 날은 고사하고, 앞으로도 다시 지금 입은 드레스에 손이 갈 것 같지 않았다. 상류사회에서 같은 옷을 두 번 입는 걸 대단한 놀림거리로 삼는 건 사실이지만 그것만이 이유는 아니었다. 인리언은 숨을 쉴 때마다 두꺼비의 독 같은 주향을 뿜어냈다. 비너스는 콧잔등을 찡그리지 않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 했다. 아무리 좋은 술을 입에 넣어도 주정뱅이가 내는 악취는 똑같이 지독한 모양이었다.
캥 인리언은 사람을 재촉한 것 치고는 세상의 모든 분주함이 남의 일인 양 한가로웠다. 로비에서 기다리겠다며 휙 떠난 게 무색하게, 인리언은 엘리베이터 근처에서 바람을 쐬다 발견되었다. 캥은 느릿느릿 움직이며 묻지 않은 이야기를 떠들어댔다. 중요한 말을 하는 것처럼 무게를 잡으며 입을 열었지만, 겉만 정세와 세계, 인간에 대한 연설이었을 뿐. 상당수가 혼잣말이라고 부르기에도 민망한 쭉정이였다.
"엘리아나와의 일은 잘했어."
그러다가 이야기가 비너스에 대한 주제로 넘어왔을 때, 비너스는 관성적으로 고개를 끄덕이다 당황했다.
"네?"
"곧 인리언 가문의 사람이 될 텐데, 그 정도는 해야지. 기어오르려 드는 것들을 용인해서는 안되지. 그럼."
흡족한 어투로 중얼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엘리아나와 싸우며 향수병을 부순 일을 언급하는 것이었다. 사실, 캥 인리언을 마주하는 게 껄끄러웠던 건 그 소동 때문이기도 했다. 그러나 기다렸던 것보다도 긍정적인 반응. 비너스가 무슨 대답을 해야 할지 혼란스러워하는 동안, 두 사람은 크루즈 중앙의 로비에 다다랐다.
캥은 크루즈 내부 공간에 존재하는 모든 이들을 하나씩 훑고 가려는 것처럼 보였다. 인리언이 누구에게 접근하고 누구를 무시할지 결정하는 동안, 비너스는 적당히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대화에 참여하는 시늉을 했다. 창문은 하나도 빠짐없이 꽉 잠겨 있었고, 실내는 훈훈히 데워지다 못해 후끈했다. 비너스는 레이스 숄을 두른 것을 후회했다. 난방과 승객들의 숨 탓에 공기가 답답했다. 하지만 비너스는 불편을 티 낼 만큼 어리숙한 연기자가 아니었다. 인리언과 그의 약혼자를 주의 깊게 관찰하는 이들은 많았다.
곧 인리언이 말한 모임으로 보이는 무리가 시야에 들어왔다. 익숙한 얼굴들이었다. 배우자와 함께 승선한다던 유명 인사 중 몇 쌍이 참석한 것 같았다.
"아, 인리언 씨!"
재킷에 화려한 부토니에를 장식한 남성이 다가와 악수했다. 엘리아나의 연인이었다. 그 뒤에는 엘리아나가 두 주먹을 꾹 쥐고 서 있었다. 비너스가 의례적으로 싱긋 웃어 보이자, 엘리아나는 건성으로 고갯짓하고는 물을 마시려는 척 돌아섰다. 탈색된 백금발 사이로 얼핏 드러난 목이 불그스레했다. 반성하고 있을 리는 없고, 성질을 억누르고 있는 걸까. 담담하게 짐작하며 모여 있는 다른 이들에게도 맑은 미소로 인사를 건넸다.
몇몇 눈빛에 호기심이 서렸다. 사교 모임에 자주 얼굴을 보이는 인리언과는 달리, 비너스는 비슷한 자리에서 쉽사리 볼 수 없는 인물이었다. 비너스는 청소년기의 대부분을 첼의 저택에서만 보내 왔다. 배우를 지망하게 된 후에는 견식을 쌓으라는 목적으로 여행을 할 권한이 주어졌으나, 다윗 첼, 비너스의 아버지는 사회에 딸을 내보이지 않았다. 그러니 비너스는 파파라치 샷이나 기사 몇 줄 속에서 등장했을 뿐이지 실제로 마주칠 기회는 드물었던 것이다. 인리언과 약혼 축하 명목으로 온 크루즈 여행은 비너스의 첫 대외적 외출이었다.
"첼 양, 첼 양! 이쪽으로 와서 이야기를 들려줘요."
풍만한 체형의 노부인이 자신의 옆자리를 톡톡 두드렸다. 비너스는 치맛자락을 갈무리하고 살포시 앉았다. 상대에게서는 진한 분 향기가 났다.
"이런, 그 자그마하던 아가씨가 이렇게 컸네. 반가워요, 아주 반갑답니다. 나는 다윗 첼 씨의 오랜 친구예요. 나를 기억하려나?"
"그럼요, 가넌 부인. 아버지께서 부인 칭찬을 많이 하셨어요."
"어머나!"
거짓말이었다. 경제면에서 얼굴을 본 게 떠올랐을 뿐이었다. 비너스는 아버지와 담소를 나눌 만큼 친근한 사이가 아니었다. 어릴 적의 기억에도 가넌은 없었고. 비너스의 아버지는 저택에서 파티를 열더라도 비너스에게는 과제를 주어 방에서 나오지 않도록 했다. 말실수를 하거나 기름진 음식을 먹는 등 실수를 저지를 거라는 게 이유였다. 그러니 가넌 부인과 어릴 적의 비너스가 마주쳤을 리가 없다. 가넌 역시 연예 분야 기사 따위에서 얼굴을 익히고 이렇게 말을 거는 것일 터였다.
"기뻐요, 아주 기쁘군요. 연애는 어때요? 이제 첼 양이라고 부를 날도 길지 않네요. 호호!"
"워낙에 자상한 이라 매일이 설레어요. 함께하는 나날이 즐겁답니다."
외운 표현을 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 읊었다. 기웃거리던 엘리아나가 이죽이며 입을 열었다.
"정말요~? 약혼자 분이랑 사이가 참 좋으신가 봐요? 부러워라. 하긴~ 거리가 멀어도 마음은 함께라고 하잖아요, 천생연분은."
인리언이 남의 방을 드나드는 것을 은근하게 언급하며 속을 긁는 것이었다. 교태 섞인 목소리에 노골적인 적의가 서려 있었다.
"감사해요. 그이는 앞으로 큰일을 해낼 운명이니, 옆에서 섬세하게 보필하는 게 저의 일이죠. 앞으로 그이는 발 바삐 다니며 중책을 수행하겠지만,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어도 서로의 마음은 이어져 있을 거라 믿는답니다."
겸손하고 침착한 대사가 노부인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 것 같았다. 가넌은 가슴에 손을 얹고 감흥이 인 눈빛으로 비너스를 바라보다가, 엘리아나에게는 곱지 않은 시선을 던졌다. 비너스는 굳어 있는 엘리아나를 똑바로 응시했다.
"엘리아나 양도 꼭 그렇게 될 거예요."
"그, 그게 무슨 말이에요?"
"고운 사랑을 하실 거란 뜻이죠. 어울리는 한 쌍이시잖아요. 누가 봐도."
그럴 가능성은 희박했다. 엘리아나가 비너스에게 싸움을 걸었던 건 애초 본인과 남자친구의 관계에서 불만이 쌓인 결과였으니까. 가넌 부인이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엘리아나 주위의 몇몇이 은근하게 술렁였다.
엘리아나는 주위의 소음에서 자신을 향한 조롱을 느끼고 인상을 구겼다. 또 한 번 화를 낼 자신은 없었던 걸까. 엘리아나는 손거울을 찾는 척 파우치를 뒤적이다 파우더룸 쪽으로 도망쳤다. 아무도 뒤따르지 않았다.
비너스가 고개를 돌렸다. 엘리아나의 약혼자와 인리언이 보고 있었다. 캥 인리언은 상황을 관조하다 긍정적인 끝맺음을 확인하곤 다시 관심을 끊었다. 엘리아나의 약혼자는 캥을 의식하듯 어색하게 쭈뼛거리다가, 시선이 마주치자 비너스에게 은밀히 미소를 지어 보였다. 왜 저래. 한편 가넌은 비너스의 경멸을 알아챌 새 없이 수다를 떨었다.
"아주, 아주 인상 깊었답니다. 품격 있는 첼 집안의 여식다워요. 첼 가문을 물려받는 이들은 모두 이름 높은 판사가 되었지요. 다윗 첼 씨도 그랬고. 아버지의 지조 있는 성향을 꼭 닮았군요..."
비너스가 상냥한 미소를 띠었다. 조금도 나답지 않은 말을 하고 칭찬을 받는구나. 아니, 칭송받는 것은 내가 아닌 아버지인가. 비너스는 인리언이 대화하는 방향에서 자신의 이름이 언급되는 걸 들었다. 어떤 이야기일까? '나'에 대한 말은 하나도 없겠지. 어떠한 비판과 공격도 없겠다는 것만이 분명했다. 캥 인리언은 힘이 있는 사람이고, 나는 그의 약혼자고. 혼자 있는 날 두곤 모두가 수런대지만 울타리 속에서는 육신이 편안했다. 치열하지 않아도 되는 공간. 배우가 되겠단 꿈을 깜빡 잊어도, 아버지와 인리언을 미워하지 않아도, 그렇게 스스로를 일정 부분 내려놓아도, 따뜻하고 풍요로울 나의 시간. 크루즈 '시 앤 더 월드'는 여전히 금빛 조명을 번쩍이며 바다를 갈랐다. 손에 닿고 눈에 띄는 모든 것이 값나갔다. 이런 삶을 갈망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알았다.
비너스는 신체가 의식과 맞물리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았다. 단 하나의 세포도 의지대로 움직일 수 없을 듯한 감각.
"그보다, 저기. 비너스 님? 오늘 드레스가 정말 예쁘세요."
엘리아나의 곁에 있던 젊은 여자가 살갑게 말을 걸어왔다. 미리 맞춘 듯 옆에서 다른 이가 과스레 손뼉을 짝 쳤다.
"맞아요! 꽃의 요정처럼. 너무 아름다우세요, 비너스 님."
속이 좋지 않았다. 멀미일지도 몰랐다. 그런 것 같았다. 조타륜이 잘못 돌아가서. 항로를 엇나가서. 직원이 환기를 제때 시키지 않아서.
"꼭 화원에서 막 꺾은 꽃 같아요."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
심야. 로비를 밝히던 불도 하나씩 소등되었고, 모임은 다음을 기약했다. 인리언과 두세 명은 못다한 이야기를 마저 한다며 야간에 운영하는 선내 카지노로 이동했다. 남은 이들은 객실로 돌아갔다. 가넌 노부인은 비너스와 마찬가지로 1층의 VIP 룸에 머물렀다. 두 사람은 함께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다.
"고마워요, 비너스 양. 조만간 다시 만날 수 있다면 기쁘겠군요."
"감사해요, 가넌 부인. 저 역시 그래요. 좋은 밤 되세요."
가넌이 볼 인사를 남기고 객실로 들어갔다. 복도가 비었다. 비너스는 방으로 돌아가는 대신 통로 벽에 등을 기대고 섰다. 말소리 없이 적막한 공간이 마음에 들었다. 눈을 감으면 죽은 듯 깊은 고요가 있었다. 고단했다. 그러나 매트리스에 몸을 던진대도 정신은 첨예하게 깨어 있을 예감이었다. 홀로 불면하며 밤을 지새워야 한다면 위치는 객실이 아니기를 바랐다. 비너스는 카드키를 꺼내는 대신 발걸음을 돌렸다. 계단은 이용하는 사람이 없었다.
어떤 생각을 정리하는 지도 모르는 채로 기계적인 움직임을 반복했다. 비너스는 얼결에 크루즈의 최상부에 도착했다.
"저, 손님. 죄송하지만 야외 파티룸은 이미 문을 닫아서... 규정 상 출입이 불가능하십니다."
적갈색 조끼 유니폼을 입은 직원이 쩔쩔매며 비너스를 막아섰다. 일이 익숙하지 않은 신입 같았다. '규정'이라는 말에 강세를 두는 것을 보아 마찰을 빚고 싶지 않은 모양이었다. 비너스도 마찬가지였지만, 돌아갈 마음이 들지 않아 재차 사정하기로 마음먹었다.
"잠깐이면 안 될까요? 부탁이에요."
"하지만..."
"로망이거든요. 밤 바다 구경이요."
"고, 곤란합니다."
"오늘 한 번만요. 네?"
비너스가 속눈썹이 촘촘한 금안을 깜빡였다. 직원은 몇 초 간 입술을 다물지 못했다. 비너스가 다시 설득을 시작하려던 참에 직원이 주먹으로 입가를 훔쳤다.
"...그, 정말 잠깐만입니다. 길게는 안 됩니다."
"감사합니다. 오래 안 걸릴 거예요."
문지방에 발이 걸리지 않도록 드레스를 살짝 들추었다. 시린 공기가 난방된 실내에 익숙해졌던 체온을 앗아갔다. 몸에 걸친 레이스 숄이 턱없이 얇게 느껴졌다. 비단 장갑을 낀 손으로 식은 팔을 매만졌다. 하지만 나왔던 곳으로 돌아가지는 않았다.
'저쪽은 선장실인가.'
너른 갑판 위로 불툭 솟아 있는 시설물을 등지고 걸었다. 목적하는 곳은 없었다. 진주 핀으로 고정한 머리가 바람에 계속해서 흐트러졌다. 시 앤 더 월드처럼 거대한 배에 머무르다 보면 현재 있는 곳이 호텔인지 혹은 물길 위인지 분간이 안 될 때가 있다. 불어오는 바람이 파도 소리를 동반해, 새삼 발 디딘 곳 아래가 해저임을 상기했다.
밤 바다를 구경하는 로망 같은 건 없었다. 억지로 고개를 돌리진 않겠지만, 구태여 밤잠을 희생할 만큼 좋아하는 건 아닌 정도. 바다가 아닌 어디에서라도 오늘의 밤잠은 별달리 귀할 것이 없겠단 생각만이 외출을 한 이유였다. 그렇기에 비너스는 난간 너머로 몸을 기울이거나 파도를 만져 보겠다고 손을 뻗는, 말하자면, 직원이 목격한다면 비명을 지를 만한 행동은 하지 않았다.
애초에 그럴 여력도 없었지만. 선체가 높아 해수면이 아득히 멀었다. 아무리 몸을 깊이 숙여 보았자 건물 옥상에서 사람들을 구경하는 것과 다를 바 없는 거리감일 터였다. 숨을 폐에 가득 채웠다. 추위에 마비되었던 후각이 기온에 적응한 듯, 짭짜름한 향이 느껴졌다. 엉킨 속은 풀리지 않았다. 막막히 서서 난간 너머를 보았다.
밤하늘이 새카만 물결과 경계선 없이 섞여 있었다. 별은 보이지 않았다. 육지의 방향에선 도시의 야경이 가물가물 빛을 뿜는 중이었다. 비너스는 눈 닿지 않는 곳에 있을 너머의 무언가를 상상했다. 첼 가의 저택, 인리언의 저택... 반들거리는 화강암 기둥과 둥글고 반듯하게 다듬은 관목. 지문 없이 관리되는 트로피 장식대와 지명이 긴 곳에서 난 오래 묵은 와인. 지루한 스토리였다.
회상을 더 먼 곳으로 돌리면 눈 앞에는 붉은 조명이 켜진 무대가 있다. 관객도 배우도 없이 적막한 공간. 무엇을 채우고 비워도 좋을 넓고 넓은 곳. 옆에 앉았던 학생도, 노래하던 아스라이도, 떠는 손에 쥐고 있던 오페라 글래스도 환상 속에서는 필요하지 않았다. 비너스는 입술을 열었다. 오랫동안 기억 속에 빛나던 문장이 목소리를 타고 흘렀다.
"들판에서 난 풀반지 한 쌍만으로 우리는 행복했죠. 나무 아래에 누워 사랑을 말하면, 태양도 바람도 우릴 축복했고... 흰 구름 떠다닐 땐 우릴 향해 아버지가 미소 지을 것을 믿었어요. 그가 눈물로 얼어붙은 내 마음을 녹였기에, 그리움도 더는 날 괴롭히지 못했죠.
아, 죄스러운 시간! 다디단 위로에 속아 혈향을 놓쳤고, 미소에 매료돼 시야가 흐렸죠. 아버지, 당신을 죽인 자에게 마음을 내어 준 무지했던 딸을 용서하시길! 여기 그의 육신을 지상에서 태우니, 그가 천국의 문간을 탐내거든 유황불에 그를 떨구시고...
저기 밖에서 달려오는 이들이 있어요. 창칼 소리가 납니다. 나의 아버지를 죽인 그가 죄인이듯, 연인의 피를 손에 묻힌 저도 그와 같으니... 가족도 사랑도 저버린 어리석은 여식은 잊고 영원히 안식하시길. 안녕, 안녕히. 이제는 더 이상 싸울 힘이 없어요."
끝맺음. 대사의 마지막 줄을 전부 읊고 나면 다시 주인공에서 원래의 자신으로 돌아왔다. 탈력감이 전신을 지배했다. 팔이 시렸다. 그러나 훈풍 속 편안하던 실내에서 승객들과 대화를 할 때보다, 지금이 더...
"저기, 고객님?"
계단께에서 직원이 불안한 눈으로 비너스를 불렀다.
"네, 갈게요."
발걸음을 서두르면서도, 얼굴은 이전보다 편안하다. 아스라이의 모습을 떠올린다. 과거의 자신에게 강렬한 꿈을 심은 주인공, 배우, 별빛이었던 아스라이를.
'살아 있는 것 같아.'
내일의 공연이 기다려졌다.
***
어지러운 자색 불꽃, 재가 되어 바스러지는 숲, 지독한 열기. 페도라 아래로는 드러나는 형체가 없다. 흰 장갑을 뻗으면, 이계의 꽃향기가 속을 뒤틀고.
"루모흐."
배 위의 누군가는 나쁜 꿈 속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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