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멸] 하지 못한 말

Dream by 임핑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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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악간의 무한열차 및 결말스포....? 대놓고는 아니고 뉘앙스로 쓰긴 썼읍니다,,,

그리고 막 설레는 느낌의 드림은 아님니다,,,

새드주의새드주의

채 하지 못한 말들은 어디로 가는 걸까.

아침 일찍 눈을 떴다.

몇 년이 지나도, 이 날은 항상 그렇다. 

몸이 무겁지도, 늦잠을 자는 일도 없다.

그저 마치 그래야 하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눈이 떠지곤 한다.

부엌에 들어가 가벼운 먹거리를 만들고 , 이제는 입지 않는 대원복을 몸에 걸쳤다.

그냥 그러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집에서 나와 시내를 지나며 국화도 한 다발 샀다.

문득 가게 안쪽에 붉은 꽃잎이 보여 시선이 간다.

“....저건 무슨 꽃이에요?”

“아, 백일홍이에요. 드릴까요?”

“....네, 저것도 주세요.”

붉은 꽃잎에 이끌려 무슨 꽃인지도 모르고 백일홍을 산 것도, 그냥 그러고 싶은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얀 꽃잎과 붉은 꽃잎의 꽃다발을 품에 안고, 나는 거리를 걸었다.

아마 사범님이라면 이상하다는 듯 웃으시다가도

“음. 여주답구나.” 하며 머리를 쓰다듬어주실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니 입가에 얕게 웃음이 번진다.

시내를 벗어나 외곽을 걷기를 몇 분, 푸르른 숲이 나타났다.

숲은 고요했다.

간간이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와 바람에 나무가 흔들리는 소리만이 들린다.

...귀살대원들의 묘비.

셀 수 없이 많은 묘비가 세워져있다.

우부야시키 가에서 주기적으로 관리해주는 사람들이 있기에, 그 상태는 꽤나 깔끔한 편이었다.

함께 귀살대에 입대하고, 함께 훈련하고, 함께 싸웠던 익숙한 이름들을 하나하나 읽으며 천천히 걷는다.

간혹 마음 속으로 말을 걸기도 한다.

잘 지냈어? 거긴 어때? 하고.

아무도 대답해주지는 않지만.

“...............”

한참을 지나, 나는 어느 묘비 앞에서 걸음을 멈춘다.

렌고쿠 쿄쥬로.

나는 그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챙겨온 먹거리들을 꺼내고, 국화꽃을 묘비 위에 살포시 내려놓았다.

잠시 눈을 감고 예를 갖춘 후, 역시 마음속으로 말을 걸어본다.

사범님, 여주예요.

잘 지내셨나요?

저는 잘 지내고 있습니다.

싸움이 끝나고 몇 년이 흘렀어요.

이제는 완전히 귀살대의 존재가 사라졌어요.

기억하는 이도, 많이는 없습니다.

아마 다들 잊어가고 있는 거겠죠.

묘비도 주기적으로 관리되고 있지만, 싸움이 끝나고부터 지금까지, 찾아오는 사람은 점점 줄어서... 이제는 사람을 마주칠 일도 잘 없습니다.

아. 몇 년간 검을 잡지 않으니 움직임이 둔해지는 것 같아요.

어제는 간만에 검을 잡아봤는데 실력이 예전같지 않더라구요.

사범님이 계셨으면 “연습은 꾸준히 하도록.” 하고 조금은 엄한 목소리로 혼을 내셨을텐데.

아니, 지금에 와서는 연습을 그만해도 된다고 해주셨을까요?

사실은 잘 모르겠어요.

사범님은 이러셨지, 그러니까 이렇게 말씀하시겠지, 생각해도 지금은 정말 그러실까, 하는 생각도 들어요.

아무래도 시간이 많이 흘렀으니까요.

아. 센쥬로는 정말 많이 자랐습니다.

요전에 봤을 때는 키가 저와 비슷해졌어요.

차기 가주가 되기 위해 공부도 꾸준히 하고 있더군요.

오히려 제가 센쥬로에게 배울 점이 많은 거 있죠?

가끔 센쥬로를 보고 있으면 사범님 생각이 납니다. 불타는 듯한 머리카락이나, 진한 눈썹, 높은 콧날 같은 것이 사범님을 생각나게 해요.

그래서 좋은 것 같아요.

사범님을 잊지 않을 수 있으니까요.

“..............”

잠시 하늘을 향해 고개를 들었다.

얼굴에 내리쬐는 햇빛이 따듯하다.

나는 고개를 내려 마음속으로 다시 사범님께 말을 걸었다.

...사범님은 말그대로 태양같은 사람이었습니다.

강하면서도 약자를 배려할 줄 알고, 귀살대 후배대원들을 제 동생처럼 아껴주셨죠.

츠구코였던 저에게도 가르침을 아끼지 않으셨고요.

사범님께는 지금도 항상 감사하고 있습니다.

사범님같은 분에게서 배울 수 있었던 것을, 엄청난 행운으로 생각하고 있어요.

감사합니다.

그리고 사실은, 감사하다는 말 뿐만이 아니라....

좋아한다는 말을 하고싶었어요.

다른 사람에게 다정한 면, 약자를 배려할 줄 아는 면, 어려운 일에 절대 좌절하지 않는 면, 그리고 제 이름을 불러주시던 사범님의 목소리, 눈빛, 말투 하나하나까지. 다 정말 좋아했습니다.

아니, 좋아해요. 지금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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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을 뜨니, 닫힌 문 밖에서 풀벌레들이 찌르르 우는 소리가 들려온다.

아마 깜빡 잠들었던 모양이다.

나는 멍하니 어두운 방 안에서 천장을 바라보며, 느리게 눈을 깜빡였다.

해가 진 걸 보니 밤인가? 

분간이 잘 가지 않는다.

그때, 마당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

도둑인가?

이 시간에 인기척이라니.

나는 조용히 몸을 일으켜, 방 안 한구석에 세워진 목도를 손에 감았다.

역시 몇 년 전처럼 자연스럽게 손에 감기지는 않는다.

그리고 발소리를 죽여 문 근처로 다가가....

불시에 문을 확 열었다.

순간 눈 앞에 보인 인영에, 망설임없이 목도를 휘둘렀다.

이 시간에 남의 집 마당을 어슬렁 거리다니, 일단 수상한 사람임이 분명하다.

죽지는 않을 것이다.

어쨌든 목도고, 검을 제대로 잡지 않은지 한참이니.

그런데........

“..............!”

눈 앞의 사람은 가볍게 내 공격을 피해 몸을 비틀었다. 그리고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내 손에서 목도를 쳐낸다.

나는 멍하니 바닥에 떨어진 목도를 쳐다보다가....눈 앞의 사람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그 손끝부터, 팔, 어깨, 그리고 얼굴. 그에게서 흐르는 향기.

그 모두가 내가 그리워하던 사람이었다.

“...........사범님.”

“환영인사가 격렬하구나. 

음, 건강하단 뜻이지.”

“.................”

나는 멍하니 사범님을 올려다보았다.

사범님은 왜 그러냐는 듯 웃으며 날 쳐다보셨다.

곧 눈물이 왈칵 솟아오르는 느낌과 함께, 나는 사범님의 넓은 가슴팍에 안겨들어 얼굴을 묻었다.

“..........여주?”

“...............”

갑자기 안겨드는 나에게 약간 당황하신 듯 어리둥절한 목소리로 물어오는 사범님,

그러나 사범님은 곧 그 단단한 손으로 내 어깨를 부드럽게 토닥여주었다.

“악몽이라도 꿨나? 그게 아니면 어디가 아픈 것인가?”

“......어디에, 어디에 갔다 이제 오셨어요....”

나도 모르게 묻는 목소리에 떨림이 묻어났다. 사범님은 고개를 갸우뚱 하시더니

“음? 임무에서 돌아오는 길이다만...오늘은 어쩐지 좀 이상하구나.”

하시고는, 열이 있는 건가, 하며 내 이마에 크고 단단한 손을 얹으셨다.

따듯한 손길에 그제야 실감이 났다.

사범님이 돌아오셨다.

다정함이 묻어나는 행동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새어나온다.

나는 고개를 들어, 사범님께 웃어보이며 말했다.

“잘 돌아오셨어요.”

그리고 저녁이 되었다.

사범님과 저녁을 먹으며, 사범님이 없었던 며칠 간의 얘기를 나눴다.

사범님은 임무에서 만난 후배 대원들 얘기를 해주었고, 츠구코로 삼고 싶은 대원도 있었다는 말을 해서 나는 “저로는 부족하세요.....?”하며 사범님께 눈을 흘기기도 했다.

오후.

나른한 햇빛을 쬐며 마루에 앉아 문가에 매달린 풍경소리를 들었다.

평화로운 시간이었다.

어딘가 악몽을 꿨던 것도 같은데, 기억이 나진 않는다.

그냥 항상 이대로만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때 머리 위로 서서히 그늘이 졌다.

“.................”

의아함에 고개를 드니, 사범님께서 웃으며 날 내려다보고 계셨다.

다정한 눈동자와 눈이 마주치고, 사범님께서는 

대련연습을 하지 않겠나, 하고 물으신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목도를 잡았다.

어쩐지 평소보다 손에 잘 감기는 느낌이다.

그러나 여전히 사범님은 오늘도 강했고, 나는 몇 번의 맞물림 끝에 검을 놓치고 말았다.

얼른 검을 주우러 가는 등 뒤로, 

“음. 여주도 많이 성장했구나.” 하는 목소리가 들린다.

목소리엔 다정한 웃음이 묻어난다.

“................”

나는 검을 주우려다 말고 뒤를 돌았다.

사범님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으니,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좋아한다고, 지금 말할까.

무심코 손에 땀이 흐르고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나는 용기를 모두 끌어모아 입을 열었다.

“사범님, 사실은......”

사범님은 얼굴에 물음표를 띄운 채 말해봐라, 하고 웃으시는 채다.

그런데.....

“..............”

정작 내 입술이 떨어지지를 않았다.

마음속에서는 좋아해요. 라고 말하고 있는데, 입이 차마 움직이지 않는다.

너무 긴장한 걸까.

나는 결국 입만 달싹이다 한숨을 쉬었다.

“아니에요, 계속 지도 부탁드립니다.”

어차피 말할 기회는 얼마든지 있을 것이다.

정오 즈음.

센쥬로가 찾아와 다함께 점심을 먹었다.

둘러앉은 식탁에는 웃음소리가 가득했다.

가끔 이렇게 셋이 만나기도 하는데, 어쩐지 오늘은 이 시간이 더욱 좋아서, 짧게만 느껴졌다.

오전

사범님의 업무 일지를 정리하고 있는데, 사범님이 얇은 문 밖에서 말을 거셨다.

여주, 산책을 가지 않겠나.

“.........산책이요?”

잠깐의 시간 후 오늘은 날씨가 좋구나. 하는 목소리가 들린다.

나는 약간 의아해 하면서도, 서류를 책상에 가지런히 정리해두고 몸을 일으켰다.

문을 열고 신을 신는 내 앞으로, 단단한 손이 내밀어져 왔다.

“..............”

나는 .....? 싶은 마음에 고개를 들어 사범님을 쳐다봤다.

그러자 사범님은 어서 잡으라는 듯, 웃으며 손을 펴 보인다.

“....감사합니다.”

어쩐지 부끄럽고도 기쁜 마음에, 사범님의 손을 겹쳐 잡았다.

아, 정말 오늘은 날씨가 좋네요,

그렇지?

하는 얘기도 나누고, 길가에 강아지나 고양이가 지나가면 실없이 안녕? 하고 말을 걸기도 했다.

또 예쁜 꽃이 보이면 발걸음을 멈춰서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사범님은 이게 무슨 꽃인지 아세요? 하고 묻는다.

사범님은 음, 모른다! 하고 당당하게도 말씀해오셔서, 나는 무심코 푸흡. 하고 웃음이 나왔다.

그런데 웃다가도 문득 눈이 마주치고....

“그래도, 예쁘구나.” 

사범님은 그렇게 말씀하셨다.

꽃이 아닌 나를 보며.

“..............”

나는 급격히 당황해 얼굴이 달아올랐다.

왜 그걸 절 바라보며 말씀하세요......?

확 달아오르는 얼굴에 시선을 피했다가, 땅바닥도 바라봤다가.....

내 손을 감추듯 꼭 쥐고 있는 사범님의 큰 손도 바라본다.

마주잡은 손에서는 따듯한 온기가 전해져 온다.

“..............”

말하자.

지금 말하는 거다.

좋아한다고.

“저, 사범님.....”

우물쭈물 고개를 드는 내게, 사범님은 말없이 웃으며 고개를 갸우뚱 기울이신다.

“................”

그런데, 또다.

또 입이 떨어지지를 않는다.

좋아한단 말이 대체 뭐라고, 이다지도 말하기 어려운 걸까.

결국 말을 꺼내지 못하고 작게 한숨을 내쉬는 내게, 사범님은 

역시 오늘은 어쩐지 이상하구나. 하며 머리를 쓰다듬어 주셨다.

나는

네,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말하며 실없이 웃었다.

이른 새벽.

마당에서 느껴지는 인기척에 가만히 눈을 떴다.

“..............”

그리고 그게 익숙한 이의 기척이라는 것을 느끼고는, 당황해 문을 벌컥 연다.

“사, 사범님.......!”

“..........여주?”

왜 그러냐는 듯, 의아한 표정을 띄운 채 날 바라보시는 사범님.

사범님은 대원복과 하오리를 말끔히 갖춰입은 채였고,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곧

...바람이 차다, 여주. 

하며 다가와 내 옷매무새를 다듬어 주셨다.

“................”

나는 마루 위에서 다정한 사범님의 손길을 바라보다가.....

“어디, 어디 가세요......?” 하고 묻는다.

목소리에는 나도 모르게 떨림이 가득하다.

사범님은 내 옷매무새를 고쳐주고는 고개를 들어 나와 시선을 맞춘다.

“당연히 임무에 나가는 길이지.”

“..............”

그렇구나.

임무.......

멍하니 사범님의 목소리를 듣고 있으니, 사범님께서는 걱정스럽다는 듯

“무슨 일이 있는 건가?” 하며 내 손을 잡아오신다.

왜 이렇게, 사범님이 어딘가에 가는 게 불안한지 모르겠다.

주로서 임무를 받아 따로 파견되는 것이 일상다반사인데.

“....아니에요, 잘 다녀오세요.”

나는 애써 고개를 들어 웃으며 사범님을 배웅했다.

사범님은 그래, 하고 눈을 가늘게 좁히며 웃으셨다.

그리고 사범님이 천천히 마당에서, 골목으로 사라지는 동안,

걷는 사범님을 멍하니 바라보는 동안.

나는 문득 깨달았다.

“...............”

아.

오늘은 어쩐지 검이 손에 잘 감기던 것.

여기 있을 리 없는 사범님이 계신 것.

좋아한다고 말하고 싶은데 절대로 말할 수 없는 것.

그리고...밤부터 새벽까지 거꾸로 흐르던 시간.

...이건 꿈이었구나.

“...............”

툭 떨어진 고개에서 눈물이 떨어져 마루바닥을 적신다.

그래, 나는 꿈을 꾸고 있는 거다.

그리고 그렇게 울기도 잠시.....하지 못한 말을 전할 기회같은 건, 앞으로 다시는 없을 거라는 사실이 뇌리를 스쳤다.

문득 나는 주먹을 꾹 쥐고 신도 신지 않은 채 맨발로 뛰쳐나갔다.

마당을 지나, 돌길을 밟고, 골목길에 들어섰다.

발바닥에 생기는 상처에 의한 감각이 생생하다.

분명 꿈일텐데.

헉헉대며 골목길에 들어서 “사범님.......!!!” 하고 외치자, 저 멀리서 사범님이 발걸음을 멈추신다.

“.................”

가만히, 몸을 돌려 이쪽을 바라보신다.

숨을 고르며 생각했다.

저건 내 기억의 조각일까, 아니면 사범님의 망령일까, 그것도 아니면 내가 만들어낸 망상일까.

사실, 그 중 어떤 것이라도 상관없다.

그저 사범님이기만 하다면.

“사범님, 좋아해요.”

“.................”

드디어 입이 떨어졌다.

꿈인 것을 눈치챘기 때문일까.

마음껏 떨어지는 입에 나는 사범님을 너무 좋아한다고, 전부터 말하고 싶었다고, 두서도 없이 말을 내뱉었다.

눈물이 볼을 타고 뚝뚝 흘러 길바닥에 떨어졌다.

나는 계속해서 좋아해요, 사범님. 하고 외치다가, 결국 길바닥에 힘없이 주저앉았다.

“..............”

셀 수 없이 좋아한다고 말하고, 울고 있는 내게, 사범님은 어떤 표정을 하고 있었을까.

알 수 없었다.

어쩐지 해가 떠오르는 쪽을 등지고 있어, 사범님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

문득 단단한 두 손에, 얼굴이 잡혀 들어올려지고...

부드러운 것이 입술에 닿았다.

깜짝 놀라 눈을 깜빡이는 동안, 뜨거운 것이 입술을 가볍게 물었다 떨어진다.

눈 앞에서 태양같은 머리칼이 흩날렸다.

“.................”

멍하니 눈 앞의 사범님을 올려다보는 나에게, 사범님은

나도 좋아한다. 여주. 하고는 웃으셨다.

아아. 내가 좋아하는, 태양같이 따듯한 웃음이다.

놀라 멈췄던 눈물이 다시 쏟아지고, 나는 일어나 사범님의 품에 안겼다.

단단한 두 손이 내 허리를 꼭 끌어안는다.

.

.

.

.

.

.

.

.

.

.

.

“.................”

퍼뜩 눈을 뜨니, 맑은 하늘과 푸르른 숲이 눈에 들어왔다.

채 돌아오지 않은 감각에 느리게 눈을 깜빡인다.

주위를 둘러보니, 귀살대원들의 묘비가 줄지어 늘어져 있다.

나, 묘비 옆에서 잠든 건가.

대단한데......?

나는 몸을 기대고 있었던 큰 나무에서 몸을 일으켰다.

얼마나 잠들었던 걸까.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좋은 꿈이었던 것 같다.

...아닌가, 나쁜 꿈이었던가?

눈을 뜨자마자 꿈속의 기억은 모두 사라져서, 나는 대체 내가 무슨 꿈을 꿨는지 전혀 기억하지 못했다 .

음식은 썩으면 안되니 다시 챙겨들고, 국화꽃만을 묘비 위에 둔 채 나는 일어섰다.

여전히 고요한 숲 속을 혼자서 걷는다.

발 밑에서 자잘한 풀이 밟혀 바스락 소리를 낸다.

“...............”

문득 손에 잡힌 붉은 꽃잎의 꽃다발을 내려다본다.

꽃다발을 손에 잡고 하늘을 향해 들어 살펴보기도 한다.

...채 하지못한 말들은 어디로 가는 걸까.

나는 가만히 생각하다가, 하늘을 향해 들었던 꽃을 내렸다. 하늘은 여전히 맑은 채다.

가만히 뒤를 돌았다.

“....사범님, 좋아해요.”

“...좋아해요.”

전해지기엔 한참 늦은 말을 꺼내 본다.

고요한 숲 한 가운데에 내 목소리만이 작게 울린다.

돌아선 묘비들은 고요하기만 했다.

당연한 거지만.

 ....역시 전해질 리 없나.

나는 아직 찌뿌둥한 몸에 기지개를 쭉 폈다.

오늘은 날씨가 좋았다.

렌고쿠의 묘비 위에는 국화꽃과 함께 백일홍이 올려져 있었다.

...사범님께는, 역시 붉은 꽃이 더 잘 어울리는 것 같아요.

여주는 그렇게 말하며 작게 웃었고,

돌아가는 여주의 등 뒤로 꽃잎이 마치 춤을 추듯 흩날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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