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산귀환이 귀멸의 칼날만큼 글로벌한 IP로 성장할 수 있을까?

한국 웹툰 콘텐츠 산업에 대하여


<화산귀환>이 귀멸의 칼날만큼 글로벌한 IP로 성장할 수 있을까요?
아니라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지인의 지인으로부터 들어온 질문에 대한 답변입니다. 현재 웹툰 업계에 몸담고 있는 사람으로서 제 생각을 정리했습니다. 작품 자체의 서사 비교보단 한-일 콘텐츠 산업과 유통에 대한 의견이 주입니다.

현재로서는 힘들다. 그러나 가능성은 있다.

사실 저는 이 논의가 각각의 작품의 승부가 아닌 한 단위 위에서 벌어지는 콘텐츠 간의 시장싸움이라고 생각합니다. 즉, 웹툰 대 재패니메이션의 싸움입니다.

귀멸의 칼날은 매력적인 작품입니다. 하지만 그 이전에 사람들에게 인기가 있는 이유의 상당 부분은 그것이 재패니메이션, ‘아니메’였기 때문입니다. 아니메라는 것은 이미 글로벌합니다. 왜냐면 70, 80년대 일본에서부터 차근차근 쌓아 올린 하나의 브랜드이기 때문입니다. 건담, 세일러문, 원피스, 나루토 등등 이미 유명하고 글로벌한, 모든 사람이 알고, 많은 사람이 즐기는 아니메는 이미 상당한 세월을 통해서 문화 향유층과 소비될 수 있는 루트를 이미 구비하고 있습니다.

귀멸의 칼날은 그런 아니메라는 브랜드의 신제품입니다. 사람들은 그런 아니메 브랜드의 신제품에 관심을 가진 것이지, 독자적으로 귀멸의 칼날이 아주 작품으로서 뛰어나서 관심을 가진 것이 아닙니다. 그런 의미에서 귀멸의 칼날은 선배들- 특히 소년 점프로 대표되는 기존 재패니메이션에 빚을 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https://youtu.be/t0d7_6WCls8?si=kCabxJhKRCbGIAoW

(귀멸의 칼날 pv)

<귀멸의 칼날>의 세계관과 키 비주얼이 다분히 일본적인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사람들이 일본 애니메이션, 특히 소년점프 출신 만화에 기대하는 특정 분위기와 흐름이 있고, 귀멸의 칼날은 그 기대와 굉장히 일치한다.

귀멸의 칼날을 소비하는 외국인 UX 페르소나의 저니맵을 만들어 보겠습니다.

미국인 A씨는 흔히 말하는 ‘양덕’입니다. 자주 가는 커뮤니티 사이트에서 귀멸의 칼날에 대해 떠드는 사람들을 발견합니다.

유튜브에서 액션 장면이 담긴 귀멸의 칼날 애니메이션 클립 gif 또한 봅니다. 유명 가수 Lisa가 부른 주제가 또한 유튜브의 알고리즘을 통해 흘러옵니다.

흥미가 생긴 A씨는 넷플릭스를 통해서 귀멸의 칼날을 시청합니다.

시청 후 트위터에 감상을 남깁니다. 추천 타임라인에 보이는 팬아트도 알티합니다.

아마존으로 만화책 또한 구입합니다. 겸사겸사 귀여운 네즈코의 굿즈도 구매합니다.

그렇다면 A씨가 귀멸의 칼날을 소비하는 저니맵이 가능하기 위해서 필요한 요소들이 보입니다.

  1. 지속적으로 신작 아니메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얘기하는 사람들 커뮤니티가 필요

  2. 단편적으로 짧은 순간 소비되어 흥미를 끌 수 있는 후크가 필요. Gif, 음악 등.

  3. 합법적으로 구매하여 편리하고 간단하게(중요) 소비할 수 있는 접근성 좋은 플랫폼이 필요.

  4. 특정 작품의 코어 팬층이 필요. sns에서 소통하고 팬아트를 그리거나 굿즈를 구매한다.

  5. 하나의 작품에 빠졌을 때 그다음으로 소비할 수 있는 다른 형태의 미디어믹스가 필요 (만화책↔ 애니메이션 ↔ 게임)

  6. 굿즈가 유통되는 시장 라인이 필요.

이 일련의 행동을 ‘화산귀환’으로 왜 대체할 수 없는지가 보입니다. 물자를 전달해야 하는데 도로가 잘 뚫려있지 않은 꼴입니다. 아래에 설명합니다.

1. 지속적으로 신작 아니메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얘기하는 사람들 커뮤니티가 필요

‘한국 웹툰’ 자체는 최근에야 등장한 브랜드입니다. 전 세계적으로 일단 알고 있는 사람들의 수가 적습니다. 한국 웹툰 신작에 관심을 가지거나, 나는 한국 웹툰을 좋아한다고 정체화하는 외국인들은 재패니메이션을 덕질하는 양덕보다 훨씬 적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선적으로, 사람들이 ‘화산귀환’ 에 대해 처음으로 접하는 루트 자체가 적습니다. 즉 초반 노출도가 높지 않습니다.

2. 단편적으로 짧은 순간 소비되어 흥미를 끌 수 있는 후크가 필요 (Gif 등)

https://youtu.be/ZGFpCFUlFho

(화산귀환 pv)

현재 화산귀환이 가지고 있는 명확한 한계 중 하나입니다. ‘애니메이션이 아니다.’ 혹은… 아직 없다… 일까요?

인간은 본능적으로 활자보다 이미지, 이미지보다 움직이는 이미지에 시선이 갑니다. 이 경향은 2010년대 이후로 굉장히 명확해지고 있고, 보다 어린 나이의 신세대는 확연하게 영상과 이미지를 선호합니다. 또한 유튜브와 틱톡, 트위터 등 sns를 기반으로 30초 내외의 짧은 영상을 소비하는 것이 요즘 미디어 소비의 주요 방법으로 떠올랐습니다. 이미 현재 미디어 생산자들은 노래와 춤, 애니메이션을 만들 때 틱톡에 공유하거나 따라 하는 챌린지를 찍을 수 있도록 의식한 하이라이트 부분을 넣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당연히 웹툰은 정적인 이미지로서의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화산귀환의 잘 만든 만화 컷 1개와, 짧은 귀멸의 칼날 애니메이션 gif 5초. 후자가 훨씬 더 전달하는 정보량이 많고 후크로서 잘 기능합니다. 물론 귀멸의 칼날은 원작이 흑백 만화책이지만, 해외 소비자의 관심도는 애니메이션이 만들어지고 난 후 폭발적으로 늘어났을 것입니다.

최근 만들어진 화산귀환 애니메이션 pv. 사람들의 관심을 끌 수 있는 후크의 역할을 합니다. 스토리가 있는 1화 단편이 아닌 음악에 맞춰 전반적인 세계관과 인물을 보여주도록 만들어졌습니다. 이 pv를 통해 소비자를 웹툰으로 유입시키기 위해서입니다.

3. 합법적으로 구매하여 편리하고 간단하게(중요) 소비할 수 있는 접근성 좋은 플랫폼이 필요

마이너 장르의 오타쿠라면 아실겁니다. 한 번쯤 한국에서 ott에서 서비스하지 않는 일본이나 중국 미디어를 합법적으로 결제해서 보기 위해서는 굉장히 복잡한 절차와 노력이 필요합니다. 언어의 장벽, 회원가입, 비자카드나 페이팔, 외국 전화번호, vpn 등… 외국 작품을 덕질하기란 정말 정말 어려운 일이며 노력을 뛰어넘는 애정이 없으면 안 되는 일입니다. 그런 마이너 외국 장르의 한국 오타쿠들은 한명이라도 더 같덕질 동지를 늘리기 위해 <oo장르 시청하는 법> <oo덕질 가이드> 등의 포스팅을 하곤 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심도 깊게 빠진 사람이 아닌, 그저 단순한 흥미를 가진 사람에게 소비 플랫폼 장벽은 크게 작용합니다. 굉장히 사소한 단계라도 불편하다면 소비자들의 마음은 돌아서고, 나 이거 안 봐, 다른 재미있는 게 많은데 뭣 하러? 라고 생각합니다.

굳이 불편함을 감수하고 한국 웹툰을 봐야할 메리트가 없는 것이겠죠. 아마 어딘가에서 화산귀환 캡쳐를 보거나 이야기하는 것을 들은 외국인이라도, 관심이 생겼어도, ‘따로 네이버웹툰 영어 사이트에 접속해야 한다’ ‘따로 네이버웹툰 영어앱을 깔아야한다’ 라는 장벽만으로도 마음은 멀어집니다. 즉 모든 소비자는 내가 결제한 넷플릭스에 알아서 내가 원하는 게 뜨길 바라는 겁니다…….

불법 사이트의 소비 중 많은 원인도 편의성에서 기여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4. 코어팬층의 필요

동인문화, 2차창작이라고 부르는 재창작을 일삼는 사람들과 그를 소비하며 덕질하는 사람들을 뜻합니다. 이쪽에 관해 말하기 시작하면 정말로 너무 길어져서 간단하게 줄이겠습니다. 즉 글로벌하게 유명한 그림쟁이 ‘존잘’은 귀멸의 칼날의 팬아트를 그릴지언정 화산귀환의 팬아트를 그리지 않고 있습니다. 사실 화산귀환의 경우 2차창작 층이 큰 편이긴하나 위에서 말한 한계로 인해 거의 대부분이 한국인입니다.

5. 하나의 작품에 빠졌을 때 그다음으로 소비할 수 있는 다른 형태의 미디어믹스가 필요 (만화책↔ 애니메이션 ↔ 게임)

화산귀환의 웹툰을 재밌게 읽은 사람이 할 수 있는 일… 원작 웹소설 읽기. 그리고 없습니다. 미디어믹스의 다양화는 우리나라에서 아직 다소 약한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더군다나 미디어믹스화는 스피드 있게 나오는 것이 중요한데,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뒤늦게 나오고 있습니다.

전독시는 이미 완결났는데 영화화가 최근에서야 발표되고, 특별히 소식이 자주 들리지도 않고 있네요. 이 틈새를 타서 소비자는 다른 작품으로 빠지게 됩니다…. 참고로 이 틈새에 팬층을 이탈하지 않도록 잡아주는 역할이 4번의 코어팬, 존잘, 동인문화입니다.

6. 굿즈가 유통되는 시장 라인이 필요.

3번과 동일합니다. 5번과도 연관될 수 있습니다. 심지어 화산귀환 웹툰을 읽고, 웹소를 읽은 우리나라 독자들도 굿즈를 안 삽니다. 아마 평범한 독자들은… 웹툰의 굿즈는 어디 가서 사면 되는지, 애초에 있기는 하는지 모를 것입니다. 애초에 사는 문화 자체도 잘 정착이 안 되어 있죠.

하지만 재패니메이션은 굿즈를 사고 심지어 과시하는 문화가 프로덕션의 재정적 뒷받침이 되며, 굉장한 수익을 주고 있습니다. 일본 현지의 오프라인 애니메이션 굿즈 샵은 크고 거대하며, 굉장히 잘 보이게 진열되어 있습니다. 코어팬이 아닌, 길을 가던 일반인들도 오가며 보거나 한 번쯤 구경하며 ‘저것이 요즘 유행하는 만화구나’ 라는 인식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일본 백화점이나 거리 곳곳에 간단하게 싼 가격으로 구매할 수 있는 가챠 캡슐 토이를 팔고 있는 것도 굿즈에 대한 진입 장벽을 낮추기 위해서입니다.

이런 굿즈에 대한 노출도가 계속해서 소비자를 유도합니다. 해외에서도 굿즈를 구매할 수 있도록 편리하게 인터넷 사이트 가입이나 결제 시스템을 만들어 놓은 점, 배송을 잘해주는 점이 재패니메이션의 강점입니다.

결론

위와 같은 이유로 저는 현재로서는, 화산귀환이 귀멸의 칼날만큼 글로벌한 IP로 성장하기 힘들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마치 재패니메이션이 40년간 브랜드를 만든 것처럼, 한국도 한국웹툰이라는 브랜드를 계속해서 발전시킨다면 글로벌한 IP를 얼마든지 만들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미 K-POP은 실제로 글로벌한 브랜드가 되었으니까요. 케이팝으로 제가 말한 1~6번을 따져보신다면, 케이팝 역시 재패니메이션만큼 소비를 위한 통로가 잘 마련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작품 각각의 서사나 매력에 대한 비교보다는 다소 사업적인 부분의 답변이 되었네요. 서사가 아무리 뛰어나도 유통이 잘되지 않으면 글로벌할 수 없다고 생각한지라, 제일 크게 걸림돌이 된다고 생각하는 지점을 적어보았습니다. 흥미로운 답변이 되었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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