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단조의 왈츠와 블랑망제

나를 위한 장송곡을

불법가민프러세계관을먹어보세요

이프 배경 설명:

원작 전개에서 87년도를 전후한 〈가민-프러드 일대일크루시오면담사건〉(마법부에 침입한 기사단에 대해 프러드의 미온적 대응 및 봐주기식 수사가 도를 넘는 바람에, 기강 잡아야겠다고 생각한 모르가나 가민이 따로 불러서 지져요, 여기까지는 오리지널에서도 있었던 일)에서, ‘프러드의 오클루먼시가 파훼되어 에스마일 시프에 대한 내용을 마왕이 들여다보게 됨’ 분기를 택합니다.

모르가나: 이새끼이거이래서안됐군…….

불법 연성러 시점 코멘트:

처음에는 가민프러라고 생각했는데 가민프러에시인 것 같습니다. 샌드위치3인커플링…… 제가 깊게 판 모든 장르에서 사실상 메인으로 먹는 구도입니다만, 앙상블이저에게있어서진짜장르라니신기하네요…….

마음이 너무 아프고 그치만 역시 좋고 오랜만에 이런 거 하니까 되게 안락한 고통이 느껴진달까 원래 제 주종목이 멘탈학대앵스트로맨스인데 이번에 보여드릴 수 있어서 기쁩니다.

원작파 프레시 오타쿠 시점 코멘트:

블락합니다.

소재 및 열람 주의:

- 고문, 살해, 이에 관한 구체적 묘사가 본문 주요 분량을 차지합니다.

- 폭력의 수위와 더불어 감정적 부하가 큰 글이므로 열람에 주의를 요합니다.


저번에 갔던 바다가 보이는 절벽 있잖아. 히스 꽃이 피었던 절벽……. 거기서 네가 반짝이는 식탁보를 몸에 두르고 춤을 추고 있었어. 내가 리드하려고 했는데, 그건 왈츠가 아니라 내가 모르는 어떤, 너희 민족의 다른 춤이어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고 손만 잡고 있었는데, ……. 다음 동작을 모르니까, 긴장해서 식은땀이 나더라고.

런던에서 기차를 타고 두 시간 정도다. 창 밖은 교외의 숲이 주로 스쳐지나가고, 에스마일은 졸고 있다. 가끔 마을이나 도로와 길이 겹칠 때 시야가 트인다. 에스마일은 나쁜 꿈을 꾸는지 미간을 찌푸리고 웅얼거린다. 프러드는 그런 그의 옆에서 슬쩍 눈썹 사이에 두 손가락을 올려 주름을 펴 보다가, 목 근처로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다시 안으로 넘겨 준다. 우즈 강이 철길과 같은 방향으로 한동안 흐르고, 건널목 너머 숲에는 사 월 말의 잉글리시 블루벨이 피어 있지만 이 여행자들의 관심은 오직 한 줄기 햇볕에 있는 듯하다. 정오에 가까워 눈부신 황금색이 된 햇살이 구름을 뚫고 에스마일의 어깨에 내리쬔다. 프러드는 손차양을 만들어 해가 에스마일의 감은 눈 위에 들지 않도록 가려 본다.

덜컹, 덜컹. 철로를 둘러싸고 우거진 나무 사이로 햇살은 열차가 나아갈 때마다 천변만화해 두 사람의 뺨과 손등과 무릎과 머리를 무수한 광점으로 비춘다. 적당히 안정적인 각도를 찾아낸 프러드가 손그늘로 에스마일의 검은 속눈썹을 덮는다. 몸을 기울이고 한쪽 팔을 든 자세가 웃긴지 킥 하고 작은 웃음소리를 내고, 기차는 완만하게 커브를 돈다. 곧 이스트서식스 주의 주도인 루이스를 지나면 잉글랜드 해협에 접한 항구 도시, 그들이 내려야 할 곳인 이스트본에 도착한다. 해가 완전히 머리 위로 올라가 눈가를 더 찌르지 않는 각도가 되었을 때 프러드는 손을 내렸다. 꾸벅꾸벅 졸던 에스마일이 눈을 뜬다. “다 왔어요?” “거의.” 프러드가 창 밖을 내다보면서 말했다. “다음 역에서 내릴 것 같아.” “우아아아아-음.” 무언가 말하려고 했던 것 같은 에스마일이 때마침 흘러나온 하품만 요란하게 하고 입을 다물었다. 프러드는 옆에서 쿡쿡거렸다. “점심은 뭘 먹을래? 시내에서 뭔가 먹고 움직이면 될 것 같아.” “하지만,” 에스마일이 다시 하품했다. “프러드가 출발할 때 샌드위치를 먹여서 아직 배고프지 않은데요. 먹은 다음에는 기차를 타기만 했고.” “작은 샌드위치였잖아.” “작고 아주 알찬 샌드위치였죠.” “흠.” 프러드는 고민하는 눈치였다. “하지만 시내에서 이동하면 식당이 더 없을 것 같아서 말이야.” “아하.” 에스마일이 납득했다. 하긴 일이 있어서 나온 건데 번듯한 길거리만 걸어다니지도 않을 것이다—있지도 않은 할 일을 핑계로 교외 산책이나 시키려고 데려나온 프러드의 속셈과 무관하게, 기사단 임무에 익숙한 에스마일로서는 할 법한 추측이었다—. “그럼 가볍게만 먹거나, 아침에 그랬던 것처럼 들고 다닐 수 있는 끼닛거리를 사는 건요? 혹시 먹을 시간도 없을 만큼 급박한 오후가 될 예정이라면 유감이지만요.” “오, 그렇진 않아.” 프러드가 변명했다. “그럼 아침이 감자튀김 샌드위치였으니까, 점심은 좀 다른 게 들어간 거면 좋겠다…….”

이스트본 시내에 내린 그들은 점심을 살 만한 가게를 찾아서 한동안 걷는다. 치즈 두 종류와 햄을 사고, “잠깐만.” 에스마일에게 바구니를 맡긴 프러드가 어느 가게에 들어가 한동안 나오지 않는다. 볼일이 있겠거니 생각한 에스마일이 흥얼거리면서 파란 하늘을 쳐다보고 있다. 곧 관광객용 택시가 도착한다.

비치 헤드는 단단한 흰 크림을 칼로 잘라낸 듯 깎아지른 석회 절벽 위에 시나몬 쿠키 크럼블을 뿌린 것처럼 흙이 얇게 덮여 있고, 그 위로 융단같이 부드러운 잔디가 자란다. 산책로를 걸어 올라가는 에스마일에게로 해풍이 분다. 그물 무늬 쿠피예가 머리 뒤에서 묶여 하느작거린다. 프러드는 몇 발 뒤에서 따라가다가 달음질쳐 에스마일의 옆에 붙는다. 새파란 대서양이 그들의 오른쪽에 있다.

기억 속 에스마일의 모습에서, 절벽 위 산책은 몇 번이고 변주된다. 융단처럼 매끄러운 잔디, 분홍색 히스 꽃이 무릎을 간질이는 푸르빌, 구름에서 바다로 장엄하게 내리쬐는 햇볕. 에스마일은 웃다가, 해풍에 머릿수건 자락을 날리다가, 식탁보를 허리에 두르고 춤을 춘다. 그들이 그런 여행을 다닌 시기는 스무 살부터 스물 하나의, 인생에서도 얼마 되지 않는 짧은 때다. 프러드는 아브릴에 관한 일이라며, 또 손님 의뢰 때문에 외출을 해야 한다며 구실을 붙여 에스마일에게 동행해 달라고 말한다. 점심거리가 든 바구니를 든 채 둘은 풀밭을 쳐다본다. 고민하던 에스마일이 머리로 손을 가져간다. 프러드가 고개를 젓는다. “그거 다시 머리에 쓸 거잖아.” 그들은 그냥 아무것도 깔지 않은 바닥에 주저앉는다. 다행히 날씨는 좋고 풀은 잘 말라 있었다. “그런데 여기는 어디에요?” 에스마일이 크랜베리 주스를 뜯으면서 물었다.

도버 해협만큼은 아니지만 영국과 프랑스가 상당히 근접하는, 뉴헤이븐에서 디에프로의 정규 항로가 있는 곳. 거기서도 다시 이스트본에서 비치 헤드까지의 거리 정도를 가면 나오는 하얀 절벽과 자갈 해안, 간단히 말하자면 이스트본에서 대륙 쪽을 바라보면 수평선 너머에 있을 반대쪽 절벽이다. 70마일이 조금 넘는, 마법사들의 통상 순간이동 거리로 무단 국외 피크닉을 성사시킨 프러드가 뻔뻔스레 대꾸했다. “글쎄. 자세히는 잘 모르겠는걸.”

거기서 네가 반짝이는 식탁보를 몸에 두르고 춤을 추고 있었어…….

많은 때에 에스마일은 졸고 있었다. 정신적 가수면 상태에 가깝다. 그들이 여행을 다니곤 했던 시기는 또한 에스마일 시프가 여덞 달 사이에 살인을 아홉 건 저질렀던 시기이기도 하다. 누르 시프의 죽음에 얽힌 보복 살해들이 전부 성공적이었던 것과 별개로 에스마일은 사람을 하나 죽일 때마다 몸에서 힘이 다 빠질 때까지 울었다. 선명한 고통도 기억에서 사라지지만, 이 시기의 일상 또한 그래서 에스마일 시프의 머릿속에서는 기억나지 않는 꿈처럼 흐릿하다. 그 사이에 기억나지 않는 좋은 꿈을 주고자 한다.

폭력과 죽음, 피와 눈물이 과잉한 세계에서 만들어낸 작은 틈새. 사랑하는 에스마일은 그보다 키가 큰 것도 같았지만 작은 소녀인 것 같기도 했다. 바닷바람이 부는 연안을 걷던 때에 에스마일에게는 변신 능력이 없었지만 기억 속 에스마일의 얼굴은 분명히 스물 일곱 정도의 여성으로 보이기도 했다.

그래서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고 손만 잡고 있었는데,

그것은 그의 마음 속에 있는 에스마일이다.

……하하.

바닷바람이 부는 연안을 걷던 때부터 지금까지의 에스마일로 말하자면 변신 능력이 없고 종전 후에는 혀가 잘렸고, “에스마일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글쎄, 프러드.”

“나는 이제 너를 무슨 낯으로 보고 살아가야 하지?”

“거짓말이라도 했어야지.”

그리고 거머리나 미꾸라지처럼 혐의를 빠져나가며 불사조 기사단을 다시 조직해 나간다.

“그럴듯하게 들리는 말이 많잖니. 직장을 소개받았다, 그 머글 여동생 때문이다, 마법 세계로 다시 데려오려니 복잡한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기만과 협잡은 언제나 네 장기였을 텐데.”

다음 동작을 모르니까 긴장해서 식은땀이 나더라고.

“거짓말을 했어야지, 프러드.”

모르가나 가민은 발끝으로 프러드 허니컷의 턱을 들어올린다. 눈물과 땀에 젖은 옅은 색 눈동자는 아직 모든 것이 꿈 속의 일인지 기억의 회상인지, 자신이 문득 이 일들을 떠올린 것인지 아니면 고문에 흐려진 정신이 나긋한 유도신문을 따라 펼쳐 놓은 환상 속에 있는 것인지 분간하지 못한 채 이쪽을 응시하고 있다.

왜 레질리먼시를 사용하는가? 진실을 알아내기 편리하다는 이유도 있고 탐색당할 수 있다는 공포심으로 지배하려는 의도도 있지만 무엇보다 개인이 타인에게 허락하는 진실의 층위가 그 관계의 깊이와 신뢰성을 보증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를테면,

“나에게 그랬던 것처럼 너는 그에게도 거짓말을 했어야 했다.”

모르가나는 우울한 눈으로 자신에게 충성을 맹세한 부하의 얼굴을 들여다본다. 반복한 고문으로 부서진 정신을 강제로 깨워 탐색한 눈이, 부족한 이지로 꿈 속을 헤맨다.

“층위를 나눠서 다한 충성치고는 훌륭했다. 그런 식으로 나를 따르는 이들도 많지. 아니, 사실은 누구나 그런 식으로 나를 따른다. 바라는 게 없으면, 나에게 충성해서 얻고 싶은 게 없으면 왜 그런 일을 하겠어. 나는 지배받고 싶은 이들에게는 지배받는 감각을, 남을 지배하고 싶어하는 이들에게는 그런 기분을 준다. 악하고 싶은 이들에게 악을 주고, 사랑받고 싶어하는 이에게는 그럴 수 있다는 환상을 주지. 누군가 나를 아무리 진심으로 경애한다 해도 그 경애는 그가 진짜 원하는 것 하나를 넘어설 수 없다. 그 원하는 것이 경애할 만한 독재자의 존재 자체이든, 그런 충성을 바치는 자기 자신이든 간에.”

그러니까 네 죄는 특별히 없다고 할 수 있다. 모든 죽음을 먹는 자들이 그렇게 하는 것처럼 너 또한 단계별로 나눈 충성을 충실히 수행했을 뿐이다. 가장 밑바닥에 에스마일 시프. 그 다음에 모르가나 가민이 있다. 그리고 야망과, 좋아하는 주변 사람들과, 무난하게 살아갈 만한 일상과, ……. 모르가나의 입꼬리가 비틀린다. 고작 그런 것들 때문에 진심으로 충성을 다하고 있다니 우스운 일이다.

고작 그런 것들 때문에.

“전략이 부족했군, 프러드. 욕망을 보여주지 않는 이들을 나는 결코 믿지 않아.”

턱을 쥐어잡는다. 손끝에 피가 몰려, 이대로 쥐어 으스러뜨리고 싶은지 지팡이를 휘둘러 또 한 번의 고문을 가하고 싶은지 알 수 없다. 제정신이 돌아오려는지 눈이 미약하게 일렁이는 듯 보인다. 그러면 조금 만족스러워지고, 모르가나는 껴안듯 깊이 파고든 정신 속에서 속삭인다.

“당분간 잊고 있는 게 좋겠지. 오블리비아테.


♪Theme: 나를 위해 장송곡을

“표면에 집착하는 건 어리석은 자들이 하는 짓이다. 보여주는 대로 믿으라고 말하는 건, 기만을 종용하는 일이다. 너도 그걸 모르지 않으면서 내게 권하는 이유가 뭐지?”

“제발, 주인님. 차라리 저를 고문하십시오.”

“대답해라, 프러드.”

“제발, …….”

“프러드 허니컷.”

붉은 눈동자가 그를 향한다. 에스마일 시프가 맞은편에 구겨진 천 조각처럼 쓰러져 있다. 모르가나 가민이 그를 본다. 저주가 멈춘 찰나간이다. 대답해야 한다. 지금 기회를 놓치면 또 한동안 지켜보는 수밖에 없다. 그러니까 말해야 한다. 지금 할 수 있는 어떤 말로든, 빌어야…….

“내가 너에게 요구한 것이 무엇이지?”

“대답을, …….”

그러나 눈물이 먼저 흘러나온다. 표면이나 관계에서 겉으로 보이는 것 같은 주제에 집중하기에 정신은 난자당한 것이나 다름없어 합리를 구가하지 못한다. 프러드는 흐느낀다. 언제나 이 하나를 지키기 위해 합리를 고수해 왔으므로, 그 하나가 타인의 손아귀에 들어갔을 때 이성은 기능할 근거를 잃어버린다. 프러드가 모르가나의 옷자락을 쥐고 매달린다.

“용서해 주십시오.”

올바른 대답이 아니다. 요구한 것과도 다르고 실천할 노력도 보이지 않으니 떼를 쓰는 아이나 다름없다. 그러나 ‘제발’ 외에 말할 수 없는 이유가 있다. 해야 할 일을 알아도 한 발도 나아가지 못하고, 주저앉아 소원에 모든 것을 맡기고 마는 이유가 있다. 어떤 고통 앞에서 인간은 완벽하게 무력해진다. 그는 그런 것을 겪어 본 적이 없었다. “부탁드립니다…….” 프러드는 울면서 애걸한다. 지금까지 마왕을 대하면서 한 번도 보인 적 없던 모습이다.

모르가나는 낯설고 오래된 종복의 모습을 본다. 만족스러운 동시에 혐오스러웠다. 비웃고 싶은 동시에 분노로 손이 꿈틀거렸다. 이런 것을 숨기고 있었으면서, 충성을 다한다고……. “잘도 말해 왔구나.” 누구에게도 들리지 않을 만큼 작게 모르가나가 속삭였다.

그러나 그 충성은 진짜이기도 했다. 그가 마지막까지 감추고 있던 ‘에스마일 시프’를 겹겹의 오클루먼시 사이로 달래고 끌어내 찾아내던 때, 그 위의 정신들을 열어 살펴보았기에 알 수 있었다. 맨 밑바닥에 토대가 되는 어떤 진심이 있건 나뉜 층위들에서 그가 다하는 마음에도 거짓은 없다. 프러드 허니컷은 모르가나 가민에게 충성하고 있었다. 일면 경애하고 있었다. 선명할 정도로 단순했고, 거기에는 이해타산이나 권모술수가 부재했다. 다만 철저한 층위에 따라 이것과 저것 사이에서 골라야 한다면 무엇을 골라야 할지가 정해져 있을 뿐이었다. 비정하고 담담하고 따뜻한 세계였다. 거기에서 제법 높은 순위에 있다는 점에 기뻐해야 하는가? 세상의 지배자로 군림하면서 실상 그 정도의 애정을 받기란 쉽지 않은 일이므로? 입끝이 비틀린다. 아니. 모르가나는 고개를 젓는다. 조소가 깔끔하게 맥락을 삭제한다. 제법 쉬워 보였던 모양이지.

진실을 조각내어 숨기고, 매끄러운 표면을 가장하고, 머리를 숙여 로브에 입맞추고, 때로는 진심을 추궁하면 정말 억울한 기색을 보이기까지 하는 그 모든 일이, 쉽지 않았다면 어떻게 할 수 있었겠는가? 진정 나를 두려워한다면 어떻게 감히 그럴 수 있었겠는가?

“크루시오.”

분노가 잔혹하게 희생양을 향한다. 머리부터 몸의 살점을 낱낱이 뜯어 고문하고 싶다는 악의가 거의 눈에 보일 정도로 저주에 실린다. 에스마일의 몸이 한순간 튀겨지듯 허공에 펄쩍 날았다 떨어진다. 프러드가 비명을 지르며 곁으로 달려갔다가 피거품을 물고 경련하는 몸을 어떻게 할 수도 없이 허우적거린다. 표면의 세상이라니 그 얼마나 우스운 말인가? 이렇듯 한 꺼풀만 벗겨내면 가장은 부서지고, 추하게 몸부림치는 인간만이 남을진대.

“제발, 주인님. 제가 하겠습니다. 제게 무엇을 요구하셔도 좋습니다. 그러니 제발.”

모르가나는 웃음을 터뜨린다. “프러드, 내 말을 하나도 듣지 않았잖니.” “그건, …….” 본인이 고문당한 것처럼 멍한 눈이 더듬거린다.

“나는 네가 더 강해져야 한다고 말했다.”

모르가나가 지팡이를 들어올린다. 저주가 멎는 동시에 에스마일의 몸이 허공으로 떠오른다. 힘점이 아무렇게나 설정되어 에스마일은 인간보다는 그와 비슷한 크기의 사물처럼 보인다. 종아리쯤이 축인지 거꾸로 매달린 천이 흔들린다.

“이런 나약한 것들을 네 세계에서 치워 버려야 한다고 가르쳤는데, 충분치 않았던 모양이지.”

치워야 할 쓰레기를 다루듯, 그 방향을 보지도 않고 모르가나가 손가락을 까딱해 몸을 바닥에 내동댕이친다. “주인님.” 통각이 곧장 자신에게 찾아온 것처럼, 당장 달려가 끌어안지 못해 몸이 움찔거리는 채, 덜덜 떠는 목소리가 애원한다. “잘못했습니다.” 모르가나는 무감한 눈으로 한 번 더 들어올린다. 길고 검은 머리카락이 바닥으로 늘어진다. 가느다란 신음과 웅얼거리는 목 울림이 고통을 호소한다. “이런 것 따위에 상처입지 말라는 이야기를,” 쾅. 비명이었는지 충돌음이었는지 구분되지 않는다. “주인님, 저를 벌해 주십시오…….” “했는데도 듣지 않는구나.” 목소리보다는 바닥을 긁는 소리가 난다. 갈비뼈가 부러지거나 폐에 충격이 있었는지 에스마일은 소리 없이 버르적거린다. 모르가나는 다시 지팡이를, “주인님.” 프러드가 기어가 모르가나의 무릎 위에 몸을 걸친다. “제가 무엇을 하면 되겠습니까? …….” 절박한 눈이 답을 구하면 그제서야 마왕의 낯에 미소가 돌아온다. “없앨 수 있어야겠지.” 에스마일은 다시 벽으로 날아가 처박힌다.

“네 마음의 나약함을 네 손으로 죽여 없애라.”

말만으로 눈동자가 깨질 듯 흔들린다. 길을 잃은 호소가 고개를 젓는다. “안 됩니다, 주인님. 하지만 그 외에는 정말로 무엇이든, …….” 시시하다. 모르가나는 문득 지루함마저 느끼면서 프러드를 내려다본다. 여하간 같은 소리를 반복하는 건 영 취향에 맞지가 않았다.

“못 하겠으면 내가 도와주지.”

그리고 처음으로 다시 돌아간다. 고문 저주가 쏘아진다. 영혼을 찢는 비명이 들려와 눈 귀와 심장을 동시에 헤집어 놓는다. 조금이라도. 식은땀이 흐르는 손으로 프러드가 모르가나의 옷자락을 쥔다. 선명한 메시지다. 그가 에스마일을 직접 죽여서 끝내지 않는 한 고문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내가 너를 알게 된 이상 조금이라도.

자비를 구걸하면 비명이 더 높아진다. 길을 제시해 주었는데 왜 가지 않는가. 모르가나는 무료하게, 그리고 의문에 가까운 눈빛을 하고 있다. 에스마일 쪽으로 지팡이를 겨누고 있지만 마왕의 시선은 그에게 고정되어 있다. 다른 것에 주의가 할당되지 않는다. 여기서는 오직 비명이, 쇳소리에 가까운 비명과 숨 넘어가는 딸꾹질과 구토에 가까운 위액이 역류하는 소리가 들린다. 여기서 언어는 오직 두 사람 사이에만 있다. 에스마일은 혀가 잘리고 깃펜을 빼앗긴 채 고통에 몸부림친다. 말할 수 있는 수단이 존재하지 않으며 그래서 그것은 약한 것, 난자당해도 항변할 수 없는 것, 본보기로 치워지게 될 것이 된다. 그것은 지금 사람으로서 존재하지 않는다.

너에게 평화를 줄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그 때 다가가지 않았다면 이런 결과가 되지는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당신은 언제나 제가 사는 이유였는데, 사는 이유 같은 것을 줄 수 없더라도 신변을 보전하는 것은, 사람은 그렇게 해서만은 살 수 없지만, 그 또한 어떻게 어리석은 선택이라 할 수 있을까. 세상의 위에서 조금 일찍 퇴장하는 것을 저는 오래 두려워하며 동시에 바라 왔습니다. 그는 이제 에스마일을 안다. 에스마일은, ……. 프러드는 모르가나에게서 고개를 돌려 바닥에서 꿈틀거리는 에스마일을 본다. 살려줘. 살려줘. 살려주세요, ……. 들은 적 없는 목소리가 들린다. 제가 바보같았어요, 잘못했어요. 오래 산 편이라고 농담해서 그런가요? 올 게 왔다고 웃었던 건 사실 무서워서 그랬던 거예요, 아픈 게 무서워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무서워서, 내가 뭘 털어놓게 될지 몰라서 무서워서, ……. 그러니까 구해 주세요. 아파요. 이런 거 그만하고 싶어요. 프러드, 제발―

“하겠습니다.”

비명이 그친다. 오직 그 한 마디로.

주위가 고요해지는 동시에 온 몸의 피도 빠져나가는 기분이다. 썰물처럼 휘청인다. 프러드는 자신이 무슨 말을 뱉었는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지팡이를 쥐고 있다. 이 한 마디만이 멈출 수 있었다. 다른 어떤 말도 소용없었다. 이것뿐이었다. 프러드는 일어난다. 살인과 폭력이 넘쳐나는 세계에서 기억나지 않는 좋은 꿈을 주고 싶었다. 당신의 작은 빛이 되고 싶었다. 그런데 시간이 많이 허락되지 않는다. 에스마일의 손이 움찔거리며 카페트를 긁는다.

고통이 가득한 세계에서 한 조각 작은 평화를 주고 싶었다. 유년과 젊은 시절을 지나 그런 바람도 실현하기 어려워진 때부터는 단 한 가지 어리석은 일에 매진하고 싶었다. 나는, 할 수 있는 한 힘을 다해 당신을 죽음으로부터 지키고 싶었다.

프러드는 지팡이를 들어올린다. 변명이나 사과나 작별 인사를 하고 싶은데 그럴 시간이 없다. 바로 그런 마음을 죽이라고 마왕은 명령한 것이다. 에스마일의 손은 아직도 떨리고 있다. 저주의 여파에 의한 경련 발작이다.

시간이 없다. 아무것도 주어지지 않는다. 무언가 말하고 싶지만, 입술은 예행 연습을 하듯 소리 없이 달싹인다. 쓰러진 몸을 겨냥하는 지팡이 끝은 미세하게 떨리지만 거두어지지 않는다. 이 순간 프러드 허니컷의 세상은 극도로 축소되어 하나의 선에 수렴한다. 지팡이 끝의 살의와 저 심장을 잇는, 죽음으로 향하는 간명한 선. 그 선을 긋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입술이 열린다.

회광반조처럼 에스마일은 눈을 뜬다. 어디가 어떻게 잘못되었는지도 알 수 없는 시야는 세상을 얼룩진 반점 정도로밖에 비추지 않지만 그 순간 그는 선명한 상을 보았다. 모르가나 가민의 곁에 선 프러드가 자신에게 지팡이를 겨누고 있다. 지팡이 끝이 떨리는 것도, 그것을 쥔 손이 떨리는 것도, 그의 표정도, 보이지 않는 목소리조차도, 모든 것이 선명히 보인다. 느린 찰나, 에스마일은 구겨져 있던 두 손을 끌어당겨 가슴 위에 교차해 얹는다. 사랑해요. 시간이 조금 더 있다면, 다음 순간 손가락은 맞은편을 가리킬 것이다. 당신을, 사랑해요. 그 손가락은, 그러니까…….

프러드의 지팡이와 같은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

모르가나 가민은 프러드 허니컷을 노려보고 있고, 그 사이에는 뿌연 유리 조각의 잔해와 박살난 전등의 나무 프레임이 뒹군다. 그러니까, …… 완전히 같은 방향은 아니었군? 요란한 기침 소리와 함께 쿨럭거리는 웃음이 흘러나왔다. 오, 맙소사. 프러드. 에스마일이 킬킬거리기 시작하자 시선이 이 쪽으로 모인다. 특별 손님한테 발언권을 너무 늦게 주시는 거 아닌가요? 솔직히 이 상황에서 제가 빠지면 아무것도 안 됐을 텐데. 넝마에 가까운 몸 속에서 머리가 핑핑 돌아가기 시작한다. 제정신을 유지하기 위한 화법에 가까운 농담은 한 번 시작하자 멈출 줄을 모른다. 솔직히 살 것 같지는 않다. 긍정적으로 생각해도 유언을 할 수 있는 시간을 얻었을 뿐이다. 하지만 방금까지는 그것도 없었으니까 행운이긴 하죠. 프러드, 당신이 마지막 순간에 용기를 내서 벌어 준 시간이니까 제가 진짜 고맙게 아껴 쓸게요. 근데,

“이럴 거였으면 한 십 오 분만 빨리 해 주시지…….” 저 되게 아팠거든요?

쏟아지는 말을 다 전할 힘은 없었다. 손가락 몇 개가 말을 듣지 않고 동작이 몹시 작은 수어가 중얼거렸다. 프러드는 대답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착잡한 표정으로 에스마일을 보다가 한참만에 입을 연다. 에스마일의 손동작만큼이나 작은 목소리였다.

“……미안해.”

“당신이 미안할 것까지는…… 음, 아니다. 미안하다고 해 주는 것도 좋은 것 같아요. 저는 대체로 그런 말을 좀 못 듣고 살았거든요. 특히 이 세상의 어떤 사람들한테 받아야 될 사과가 좀 있는데, 당신이 대표해서 말해 주시는 거라면 기꺼이……. 그런데 지금 누가 좀 화가 난 것 같아요. 모-르-가-나-씨라고, …….”

마왕의 이름에는 징크스가 걸려 있어 허락받지 않은 자가 존칭 없이 언급할 경우 다소 문제가 좀 생긴다. 하지만 BSL은 해당이 없는 모양이었다. 동작도 작고 속도도 느리지만 에스마일은 보란 듯이 또박또박 수어 알파벳으로 말하는 중이었고, 프러드는 에스마일의 손가락 중 최소 세 개가 부러진 것 같다고 추측했다.

“프러드.” 모르가나 가민의 목소리가 차갑게 가라앉아 있다. 그 어느 때보다 바로 지금 무모함이 솟는다. 일순 자신에게 없다고 생각한 자질이 몸을 채우는 것을 느끼며 프러드는 마왕의 앞에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인다. “나의 주인이시여,”

“제 삶을 걸고 간청드립니다. 그를 살려 주십시오. 죽었다고 생각하고 살아가겠습니다. 제 삶에서 그의 기억과 존재를 완전히 지우셔도 좋습니다. 저는 평생 그와 무관하게, 평생 당신만의 종복으로 살아갈 테니, 지금 이 자리에서만이라도 살려 주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그렇지 않으면’은 이 관계에서 금지어다. 마왕이 요구하는 복종은 대가를 가정해서는 안 된다. 팔에 죽음을 먹는 자의 낙인을 찍은 이상, 조건에 따라 충성하고 아니고 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다. 따라서 프러드 허니컷도 이 말을 입에 담아 본 적이 없었다. 조건을 설정하는 일은 관계의 권력을 쥔 쪽에서 하는 일이며, 일종의 협박이다.

“저도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간절한 눈이 올려다본다. 청유형을 택한 올곧은 협박이. 죽이실 겁니까? 그렇게 묻고 있다. 모르가나는 지팡이를 든다. 그 순간 에스마일은 직감한다. 그래요, 그렇게 되겠죠. 안녕, 프러드. 유언은 아까 했는데. 생각한 것보다 시간이 남았어요. 제가 생각한 것보다도 오래 살아서 시간이 남나 봐요. 어, 남는 시간에 할 말을 생각해 온 건 없는데. 괜히 시간이 너무 많이 남으면 그냥 울게 될 것 같아서 너무 많이 남아도 좀 그런데 말이에요.

그래도 이렇게 죽는다고 하면 생각했던 것 중에서는 제일 괜찮은 편이에요. 눈먼 주문에 맞는 게 아니라 정말로 저를 겨냥하는 저주에 살해당하고 있고, 다른 사람으로 오인받아서 죽는 것도 아니고요. 제일 마음에 드는 점은 제가 다른 누군가가 아니라 에스마일 시프이기 때문에 죽는다는 거예요. 이 부분이 진짜로 될 줄 몰랐던 거라서요.

당신이 말한 대로 되었어도 그렇게 좋지만은 않을 수도 있어요. 제가 지금 죽지 않는다고 해서 앞으로도 영영 안 그럴 거라는 보장도 없고, 만약에 진짜 그런 거래라고 한다면 그건 그것대로 정신이 못 버틸 것 같고요. 거기다 그 세계에는 당신도 없을 텐데.

그렇다고 지금 죽는 게 좋다는 뜻도 아니에요. 프러드, 전 겁쟁이라고요. 언제나, 언제나……. 죽거나 다치거나 아픈 일을 당하는 게 무섭지 않은 적이 없었어요. 두려움보다 열망이 조금 더 컸을 뿐이에요. 또, 제가 다치는 것보다는 당신들이 다치고 아픈 게 좀 더 무서웠을 뿐이고……. 그래서 일어나고 말하고 떠들고 싸우고 침범하지 않고는 살 수 없었을 뿐이에요. 살아가지 않고 살아갈 수 없었을 뿐입니다. 저는 당연히 죽고 싶지 않은데

“아바다 케다브라.”

생명이 아무렇지 않게 꺼진다. 초록 불빛이 번쩍 날아, 이미 쓰러져 있는 몸으로, 심장에 스며들듯 사라졌을 뿐이다. 그뿐이었는데, 에스마일. 입술이 달싹인다. “에스마일.” 무릎으로 기어 다가간다. “에스마일?” 굉장히, 중요한 것이 방금 이 세상에서 사라졌다는 감각이, “에스마일…….” 손이 머리카락을 넘긴다. 몸 전체로 느껴지는 죽음의 감각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사랑하는 사람의 숨이 거두어졌다는 감각은 무엇으로 감각되는 것일까? 몸으로? 가슴으로? 영혼으로?

“에스마일.” 상실이나 슬픔은 2차 인지다. 눈물도 아픔도 죽음의 처음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말할 수 있는 모든 것은 죽음이 아니다. “에스마일…….” 프러드가 중얼거린다. 손으로 몸을 안고 머리카락을 넘기고, 조금 전까지도 흐를 수 있었던 눈물의 자국과 내던져지면서 생겨난 상처들과 핏자국을 매만진다. 닫힌 눈꺼풀을 보고, 손끝에 흉터가 만져지고, 아무것도 다르지 않은데 오직 생명만이 없다면. 여기서 만이 없다니. 그럴 수가 있는 것인가?

그건 너무 이상한 것 같다. 프러드는 생각한다. 그러니까 지금 여기에 에스마일만 없다니 그건 너무 이상한 것 같았다. 눈물이 뚝뚝 떨어진다. 눈물은 에스마일의 눈썹뼈를 더듬는 그의 손 위에, 바로 한 마디 아래 감긴 짙고 검은 속눈썹에, 마르고 튀어나온 광대뼈의 굴곡에, 입술 너머 인중에, 흉터 있는 목에 떨어진다. 육체가 죽는 감각을 손끝으로 느껴도 되는 것인가? 심박이 없는 목에서 온기가 천천히 빠져나간다고 촉각이 말했다. 그것은 시간이나 물이나 붙잡을 수 없는 금모래 가루처럼, 숨을 거둔 에스마일의 머리를 안은 그의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고 있었다.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몸으로 느낄 수 있는 것일까? 그 일이 그의 몸 전체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심장이 멎을 것 같은데,

어째서 살아 있는 것일까.

오직 그것만이 의문이다.

“프러드.”

그는 대답하지 않는다. 살아 있는 것이 의문일 정도로 울었다. 모르가나 가민이 다가와 그의 머리에 손을 얹는다.

“죽을 테냐?”

빈 눈동자가 바라본다.

“죽음이란 참 좋은 거야.” 붉은 눈이 마주한다. “네가 분노하지 않는 영혼이라는 것을 안다. 예전부터 너는 그런 성격이었지. 나를 공격해서 그 애가 살아난다면 너는 당장이라도 그렇게 하겠지만, 죽음은 어떤 마법으로도 되돌릴 수 없으니 너는 무모한 시도를 하지 않는다. 안 그러니?”

“……저는, …….”

말라붙은 목소리가 스스로도 낯설 만큼 버석거렸다.

“죽여 주십시오.”

마왕은 움직이지 않는다. “당신께도 폐가 될 겁니다. 미치지 않고 살아갈 자신이 없습니다.”

절망을 응시하면, 절망은 거기서 숨을 쉬고 있다. 당신을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더 사랑하는 것이 있기 때문에, ……. 모르가나는 프러드의 어깨를 움켜쥔다. 힘을 주어 위로 집어올리면 그의 무릎은 여전히 주인의 말을 듣는다. 프러드는 일어서서, 강제로 이끌어낸 자의로 둘은 마주본다. 눈을 마주하여, 최면을 걸듯 가민은 단언한다.

“아니, 프러드.”

녹색 눈이 루비가 변성하듯 붉은 눈으로 바뀌어, 자신의 영혼을 악의로 조각내고, 벌써 그 중 절반에 가까운 조각이 사라졌다. 검은 머리카락이 백발로 바래고, 알고 있던 얼굴의 많은 부분이 변해 사라졌고, 자신만만한 어둠의 마법 방어술 교수는 간 데 없다. 과거는 모두 과거에 묻혔다. 아투르 아스테르는 두 번째 호크룩스가 만들어지기도 전에 죽었다.

“공허는 이겨낼 수 있다.”

그는 전쟁에서 승리했고 마법부 총리로 취임했다. 반대하는 이들을 그렇게나 많이 죽였다. 그의 추종자들이 마법 세계를 장악해, 그의 사상과 야망을 위해 말하고 움직인다. 강해진다는 것은 그런 것이다. 어둠 속에서 빛의 도움을 받지 않고서도 스스로 번쩍이는 것이다. 영혼의 조각을 잃어 자신을 잃었다고 해도 세계를 가지면 자신을 잃은 것이 아닌 것이다. 업적이 그를 증거할 것이고 사소한 것은 아무것도 문제되지 않게 되리라. 마음을 잃는 것은 그러므로 반길 만한 부작용이었다.

눈이 마주친다.

어떤 압력이 있어도 석영이 다이아몬드가 될 수는 없다. 하지만 겉으로 비슷하게 보일 수는 있다. 기전을 이해한다. 붉은 눈이 번득인다. 모르가나. 저는 이게 광기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이 미치는 이유를 또한 저는 알고 있습니다. 공감은 2차 인지일 것이다. 그러나 더 사랑하는 것이 있었을 뿐 당신을 사랑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그러니…….

“무릎을 꿇어라.”

그는 말을 듣는다.

“망토에 키스해라.”

눈이 마주친다. 지금 이 순간에도. 프러드 허니컷의 입이 열린다. “손을, …….”

불온한 눈이 마주본다. 로즈쿼츠인지 다이아몬드인지 맞대어 긁어 보기 전까지 모른다면 평생 긁히지 않으면 될 일이다. 타고난 경도를 수정하려는 움직임이 눈동자 안에서 일어나고 있다.

“주시면 안 됩니까?”

모르가나는 그를 바라본다. 나를 사랑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더 사랑하는 것이 있었을 따름이나, 그 토대를 죽여 없앤 것이다. 모르가나는 지팡이를 쥐지 않은 손을 내민다. 지금껏 수 번이고 반복되었던 요구가 마지막으로 떨어진다.

“배신하지 마라.”

손이 다가온다. 이번에야말로 진정 그의 주인이다. 프러드는 눈물로 엉망이 된 얼굴을 손가락 앞에 가져가 모르가나의 검지와 중지, 약지에 동시에 입맞춘다. 젖어 있던 뺨의 물기로 손등이 물든다. 프러드가 속삭인다. 제 영혼을 걸고 맹세합니다. 그리고 입술이 조금 더 아래로 쓸듯이 내려간다. 입술은 살짝 벌어지고, 눈을 감은 짐승이 손가락들을 문다. 지긋이, 조금은 통증이 있고 자국이 남을 정도로, 이를 세워 문다. 그대로 눈이 뜨여 흔들림 없이 올려다본다. 모르가나가 손을 더 밀어넣어 그의 혀를 누른다.

“프러드.”

흔들림 없이 말을 듣는다. 공허는 이겨낼 수 있고 죽음은 과거가 될 것이다. 그는 무엇이든 삼킬 수 있고 우리가 똑같이 영혼의 반절을 잃었다면 사소한 것은 무엇도 문제되지 않게 하리라. 당신이 바다가 되겠다면 나는 구름조차 없는 하늘이 되겠다.

“울지 마라.”

어디로도 흐르지 않고 언제라도 마르지 않으리. 나는 언제라도 같았다. 한 사람의 눈물을 달래기 위해 삶을 쓸 수 있다면 기꺼이 그렇게 하겠다. 존재하지 않고 아무것도 아니게 되는 것이 그 방법이라면 그렇게 해서 언제나 곁에 있겠다. 눈이 웃는다. 입끝이 기쁨으로 물든다. 웅얼거리는 대답이 흘러나온다.

“예.”

나는 당신의 불멸이 되어 영원히 부서지지 않으리.

♪Theme: 당신을 가만히 안으면

ps.

♩Furud Honeycutt

♩Esmail Seif

카테고리
#오리지널

댓글 0



추천 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