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nfido

1부 외전(3)

솔라와 피데이스

황홀한 빛을 마주한 그 날부터 목표가 생겼다. 나에게 그 빛을 보여준 사람의 옆에 선다. 될 수 있을지 없을지 걱정한 적은 없었다. 무조건 되어야 했고, 되게 하리라고 다짐했으니까. 게다가 아무에게도 말한 적은 없지만, 그날 이후로 나에게 새로운 힘이 생긴 것 같았다. 아직 어떤 형태인지도, 어떤 속성인지도 모르는 힘이라 이것이 신성력이 아닐까 하는 막연한 추측만 하고 있었다.

미루던 공부도 시작했다. 글을 배우고 보호소에 있는 책이란 책은 전부 읽었고 특히 성서와 역사서는 외우다시피 했다. 글을 가르쳐주던 사제는, 내 변화에 놀라워하며 여러 책을 가져다주었고 ‘너 정도면 신학자에 자원해도 괜찮겠다’라고 칭찬했다. 나의 목표는 기사라고 말하고 싶어 입이 근질거렸지만, 꾹 참았다. 그가 제공한 책들은 하나같이 유용한 내용이었으니 굳이 그런 이야기를 해서 그를 실망하게 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책 중에 신성력 다루는 방법을 담은 책은 없었다. 역사서 귀퉁이에 성인들이 신성력을 어떻게 사용했는지 정리되어 있을 뿐이었다. 제대로 된 훈련은 기사단에 입단하거나 귀족들이 다니는 학교에 입학해서나 받을 수 있을 테지만, 지금의 내 상태로 기사단에 입단 신청을 넣는 건 무모하고 무의미한 일일 것이다.

하는 수 없이 보호소 소장에게 전투 교본을 사달라고 신청했고 그는 ‘드디어 공부에 흥미를 붙였구나.’라며 흔쾌히 요청을 수리했다. 혼자 책을 보면서 기본적인 체력훈련과 검술을 익혔지만 제대로 된 자세인지 검증해 줄 사람이 없었기에 그냥 매일매일 훈련을 반복했다.

간혹 지나가던 아이들이 조롱 또는 뒷담을 하고 가긴 했지만 그런 도움도 안 되는 이야기에 귀 기울일 시간은 없었다. 그렇게 며칠간 혼자 훈련했더니 누군가 말을 걸어왔다. 북부 기사단에서 주기적으로 보호소에 봉사활동을 하러 오는 이였다. 달마다 보호소 담당이 바뀌는 터라 이름은 모르지만, 얼굴은 알고 있었다.

“안녕 솔라. 듣자 하니 며칠째 혼자 훈련하고 있다며?”

어떻게 안 건지 물어볼 필요는 없었다. 그의 옷자락 뒤에서 경외심 가득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아이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고 그는 나에게 훈련의 목적을 물었다.

“저는 기사가 되고 싶습니다.”

망설임 없이 대답하자 그는 잠깐 놀란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다가 ‘가능할지도 몰라.’라고 중얼거렸다.

“좋아, 네 의지만 충분하다면, 뭐 그런 것 같긴 하지만, 내가 널 도와줄게. 금년 오순절 이후엔 뭔가 달라질 수도 있으니까.”

이 사람도 그가 집행자가 되었다는 걸 알고 있구나. 그렇게 밝은 빛이 퍼졌는데 모르기는 어려울 테다. 하지만 그때 마을로 내려가 있던 보호소 아이는 그걸 알 턱이 없어야 한다.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오순절은 매년 있는 행사였는 걸요.”

“아차 미안, 비밀이야. 못들은 걸로 해주라.”

능청스레 웃던 그는 제 뒤에 있던 아이들을 나에게 들이밀었다. 이제야 알았는데 그들의 장갑 낀 손엔 적당한 검이 하나씩 들려있었다.

“이 애들도 너랑 비슷한 생각이 있다고 해서 데려왔어. 같이 해도 괜찮지?”

딱히 거절할 이유는 없었다. 잘하면 이들도 나와 같은 목표로 나아가는 동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시간이 흘러 오순절까지 2주 정도 남았을 즘 기사는 나를 따로 불렀다.

“솔라, 올해 오순절엔 특별한 행사가 있을 거야. 보호소 아이 중 몇 명을 데려갈 수 있다고 하셔서 네게 동행을 제안하려고 해.”

올 게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남부까지 가는 것도 귀찮고, 이미 그분이 집행자인 것도 알고 있으니 단지 그것을 대중들에게 공표할 뿐인 행사엔 가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이 사람은 왜 자꾸 나를 신경 쓰는지 궁금했다.

“저는…, 굳이 갈 필요가 없을 것 같습니다. 어떤 행사인지 알 것 같거든요.”

“아냐 이번엔 정말 특별한….”

“시도폰 님께서 집행자로 임명받으시는 자리지요?”

새파랗게 질린 그가 내 어깨를 붙잡았다.

“네가 그걸 어떻게 알았지? 누가 네게 그런 걸 말해준 거야?”

아파하며 올려다보자 바로 손을 풀긴 했지만, 그는 내 앞에 버티고 서서 대답을 요구했다.

“그분이 신께 선택받는 그 장면을 직접 목격했습니다. 그런데도 마을에 전혀 소문이 나질 않길래 교회에서 바로 알리지 않는 이유가 있으리라 생각해서…, 계속 침묵을 지키고 있었지요.”

“…허, 기대한 것보다 머리가 잘 돌아가는구나. 그럼 이 행사에 참여해야 네 목표에 좀 더 쉽게 다가갈 수 있으리란 것도 충분히 추론할 수 있겠지? 오순절 행사엔 북부 기사단 대부분이 참석한다. 그들에게 미리 좋은 인상을 남겨두는 게 좋아.”

아까까지 당황했던 얼굴은 연기였는지 그는 이제 뱀처럼 미소짓고 있었다. 순진하고 열정적인 사람이라 생각했는데 저 말을 듣고 보니 사람이 다르게 보였다.

“이전부터 궁금했는데 왜 저를 도와주겠다고 하신 겁니까? 봉사활동에 흥미를 느껴서-라는 빤한 대답을 들으려고 한 질문이 아닌 건 아시겠죠.”

“처음엔 딱히 의도 같은 거 없었어. 정말 봉사활동이 목적이었다고. 그런데 너처럼 뛰어난 인재들이 출신 때문에 빛을 못 보고, 나중엔 보호소를 떠나 속세에서 살아갈 거라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어. 네가 기사단에 들어온다면 더 자세한 이야기를 할 수 있겠지만…, 지금의 교회에는 혁신이 필요해서 말이지.”

여전히 의심스러운 눈으로 그를 바라보자 그는 어깨를 으쓱였다.

“그나저나 네게 신성력이 있다는 걸 내가 알아버렸는데, 그게 위험하다는 생각은 못 하는 걸까? 이대로 상부에 보고하면 기사가 아니라 치료 사제로 입단하게 될 텐데.”

치사하게 협박까지 덧붙인 그는 딱 거기까지만 말할 수 있는 사람처럼 입을 닫아버렸다. 결국, 남부 오순절 행사에 동행하겠다고 대답했고 같이 훈련하던 아이들은 잘 됐다며 남부에서 무엇을 하고 놀고 싶은지 잔뜩 떠들어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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