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Cs

Then I’ll fuck’em all

Kasey In-Yeol Na


1

뉴욕의 거리는 3년 전이나 지금이나 그다지 변한 게 없었다. 물론 구석구석 뜯어보면 다른 것도 있겠지만. 애초에 인열이 그런 디테일을 뜯어보지 않는 성정이라 더욱 그렇기도 했다. 그가 한국에서보다 더 오랜 시간을 보낸 이 도시. 그가 ‘9 Lines’라는 이름으로 음악을 만들었던 도시. 이 바쁘고 찬란한 - 한 노래의 가사를 빌려오자면 - 꿈이 이뤄지는 콘크리트 정글은 언제나 여전했다. 인열이 퀸즈의 거리를 걸으며 생각한 내용 또한 그랬다. 아. 한국 가고싶다. 심지어 열 몇시간 뒤면 인천으로 향하는 비행기에 오를 텐데도.

전날의 공연은 성공적이었다. 인종차별적인 말을 하며 야유하는 몇몇 백인 또라이 새끼들이 있긴 했어도. 그가 뉴욕에서 보낸 도합 18년에 가까운 시간은 그런 것에 무뎌지게 해 주었다. 인열은 동요하는 대신 그 레이시스트를 향해 마이크를 들지 않은 왼 손으로 가운데 손가락을 치켜 올렸다. 

네가 고려해야할 게 하나 있어, 내 피부색을 논하기 전에 

누가 쟤한테 거울 좀 주겠어? 그가 확실히 알 수 있게 쓰디쓴 진실을

그는 이미 졌어. 그의 깃발처럼 하얀 얼굴을 봐, 

곧 붉게 얼룩질거야 그의 피로.

왜냐면 난 너희가 생각한 것처럼 야만적이거든

아마 네 개를 잡아먹을지도 몰라 이 클럽에서

9 Lines의 도발적인 프리스타일에 사람들은 열광했다. 모욕적인 말을 뱉던 이의 얼굴은 가사대로 붉어졌고, 그는 더 이상 목소리를 내지 못했다. 클럽 안은 그 상황을 장작으로 더욱 불탔고, 인열은 원래 예정되어있던 곡 대신 더 공격적인 곡을 공연했다. 예상치 못한 선곡은 관중을 더 열광하게 만든다. 자주 공연하지 않는 곡일수록 더 그랬다.

사실 다른 아티스트들과 합동 공연을 하면 이런 일은 생각보다 빈번하게 있는 편이었다. 씬은 누구에게든 관대한 곳이 못 되었고, 특히나 곱상하게 생긴 아시안 래퍼에게는 더욱 각박했다. 그에게 얼마나 많은 래퍼 친구들이 있든, 그의 음반이 얼마나 팔렸든 하는 것과는 상관없이. 

그러니까, 인열은 씩 웃으며 마이크를 고쳐쥐었다. 어차피 누가 뭐라고 하든 공연이 성공적이었는지 아닌지는 티켓이 몇 장 팔렸는지, 통장에 0이 몇 개 찍히는지 따위로 결정되는 거야. 헤이터들의 이러쿵 저러쿵, 난 그딴 건 신경 안 써.

2

2017년에 미국으로 유학 - 그는 애초에 어린 시절을 뉴욕에서 보냈기에, 유학이라기보다 고향에 돌아온 것처럼 느끼긴 했다 - 와서 냈던 여러 믹스테잎들과, 군대에 다녀와서 냈던 정규 《9 Lines in Navy》. 졸업을 앞두고 냈던 《Na in 10》. 디스코그래피가 그만큼 쌓여 가고, 이름값이 높아져도 사람들은 어차피 음악보다 그의 성분을 먼저 떠올린다. 일종의 본능처럼. 한쪽에서는 그저 아시안이고, 또 다른 쪽에서는 그저 검은 머리 외국인. 정말 우습게도, 그는 심지어 검은 머리도 아니고 굳이 따지자면 갈색 머리였음에도. 인열은 군대를 다녀오면 조금 달라질거라고 생각했으나, 지금에 와서 생각하면 그 모든 것들이 우스웠다. 어차피 그런 것에 관심을 갖는 이들은 드물었으므로.

그게 가장 피부로 와 닿은 건 군대에서 만난 수원과 한국에서 싱글을 냈을 때였다. 나인라인 아시아계인 건 알았는데 한국인이었음? 갑자기 아이돌이랑 사랑노래 ㄷㄷ해. ㄹㅇ 찐 ‘검머외’ 아님? 사랑노래로 돈빨아가려고 한국 왔나 봄. 그런 식으로 인열은 순식간에 괘씸한 검머외가 되었다.

심지어는 이름도 처음 듣는 한 래퍼가 ‘본토에선 힙합, 여기선 아이돌 끼고 기집애들 주머니 터는 미필 9 Lines’ 따위의 가사로 그를 디스하기도 했다. 솔직히 말하면 그는 대응할 가치조차도 느끼지 못했다. 어차피 진심으로 디스한다기보다는 그의 노래를 더 ‘팔기’ 위해서 이슈몰이용으로 한 줄 끼워넣은 가사 정도로 생각되었기에. 그러거나 말거나, 그의 노이즈 마케팅은 꽤 성공적이었는지, 커뮤니티에선 한동안 ‘미필 9 Lines’가 일종의 조롱 밈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그래봤자, 그 불길도 금방 잦아들었다.

오수원일반인여친 @o_s_w_g__f

    뭔소리임? 수원이랑 나인라인이랑 해군 선후임임. 둘다 해군만기전역인데? 좀 알아보고 가사쓰지 개쪽팔리겠다ㅋㅋㅋ

└ 루카야사랑해 @lucaoever

    @o_s_w_g__f 엥? ㄹㅇ? 

└ 오수원일반인여친 @o_s_w_g__f

    @lucaoever 저번에 버블로 누가 물어봤는지 수원이가 알려줌ㅋㅋㅋ 같은부대고 둘다 랩해서 친해졌다고ㅋㅋㅋ 나인라인은 처음에  우리애 몰랐대ㅋㅋ 근데 우리애가 먼저 알아봤다고 함 ㅋㅋ 

└ 루카야사랑해 @lucaoever

    @o_s_w_g__f ??? 찾아봤는데 근데 둘이 군대있을땐 나인라인 앨범나오기도 전인데?

└ 오수원일반인여친 @o_s_w_g__f

    @lucaoever 그래? 근데 수원이가 그랬는데? (캡처) (캡처)

└ 나인라인 한국인이면 한국말좀해 @Korplz9Lines

    @o_s_w_g__f @lucaoever 말 되긴 하는데 사실이면 오수원 외힙도 개많이듣나봄? 나인열 17년에 뉴욕에서 믹테내고 공연했어서 알사람들은 알았음ㅋㅋㅋ 영상도 찾아보면 나옴ㅋㅋ

└ 루카야사랑해 @lucaoever

    @o_s_w_g__f @Korplz9Lines 헐진짜요? 감사합니다><;;; 몰랐어요! 근데 닉네임이 왜그러세요ㅋㅋㅋㅋㅋ 개터짐ㅋㅋㅋ 별개로 수원이 진짜 노래 개많이듣긴해요 ㅋㅋㅋ 이건 마이티영피셜! 자기보다 많이듣는거같다고했음! 좀 되긴 했지만 0&1 나왔을때ㅋㅋ 

└ 나인라인 한국인이면 한국말좀해 @Korplz9Lines

    @o_s_w_g__f @lucaoever ㅋㅋㅋ 아ㅋㅋ구라인 뉴요커라고 인스타도ㅋㅋ 한국있는거 다아는데ㅋㅋ 영어로만 해서요;; 암튼 ㄳ 이새끼 ㄹㅇ 이런얘기 1도 안해서 저는 최애가 해군 만기전역이란 사실을 ㅅㅂ 님들 통해서 알게됨ㅋㅋ 근데 있죠 님네오빠한테 나인열이랑 콜라보 하지말라고 좀 해주시술?

└ 오수원일반인여친 @o_s_w_g__f

    @lucaoever @Korplz9Lines ? 무슨뜻이시죠 그거? 콜라보한거 아니꼽단건가요?

└ 나인라인 한국인이면 한국말좀해 @Korplz9Lines

    @o_s_w_g__f @lucaoever 아 ㅈㅅㅈㅅ 설명이 부족했네여ㅋㅋㅋ 내 최애 나름 잘생겼다고 생각했는데 오수원 옆에서니까 상대적오징어돼서 좀 박탈감느껴서 ㅋㅋㅋㅋㅋㅋㅋ 그래서 그랬음 ㅋㅋㅋ

└ 오수원일반인여친 @o_s_w_g__f

    @lucaoever @Korplz9Lines 아뭐야ㅋㅋㅋ 오해할뻔ㅋㅋㅋ 죄송해요 저희가 저번에도 다른멤버 콜라보땜에 머리채좀 잡혔어서 ㅠㅠ 아니 근데 왜요ㅠㅠ 나인라인님도 잘생기셨어요 진짜로!

└ 나인라인 한국인이면 한국말좀해 @Korplz9Lines

    @o_s_w_g__f @lucaoever 빈말ㄴㄴㅋㅋㅋㅋㅋ 저희도 눈 있음 ㅋㅋㅋㅋㅋ 

하지만 팬들이 인터넷에서 이러쿵 저러쿵 하는 말을 믿지 않는 사람도 여전히 많았다. 그러나 그런 말이 쏙 들어간건, 수원의 회사에서 기사를 낸 다음이었다. 곧, 인열이 직접 말을 얹을 필요도 없이 ‘미필 나인라인’ 밈은 ‘군필 나인라인’ 밈이 되었다. 이후 그를 물어뜯던 사람들은 조용해졌고, 문제의 디스가사도 그 래퍼의 흑역사 쯤으로 치부되며 이슈에서 멀어졌다. 그러니까, 인열은 그 때에도 생각했다. 헤이터들의 이러쿵 저러쿵, 난 그딴 건 신경 안 써.그래서 그가 신경쓴 건 다만 무대였고, 라이브였다. 

인열은 회상했다. 뉴욕에서의 공연들과는 달리, 한국에서 아이돌 오수원과 함께 하는 공연도 나름대로 재미있었다고. 평소에 하던 곡과는 완전히 다른 색깔의 ‘Fish’라는 곡은 제목 그대로 어장관리에 관한 곡이었는데. 사실 안 하던 스타일인 싱잉랩 그 자체가 재미있기도 했다. 또 다른 재미있던 점은 말로만 듣던 ‘아이돌 대포’를 무대 위에서 실제로 보게 되었던 것. 그리고 재미있던 거 말고 정말이지 웃겼던 건, 웃자고 쓴 가사가 밈화가 되었을 때긴 했지만.

네 매력으로 나를 치고간 뒤에 
나의 ex들이 나를 부르던 말이 또 네 입에서 나와
이 Accident는 그냥 ‘대물’로 친대 
아마 난 그냥 Fish 네 어장이 너무 좁아서 숨 쉬기 힘들어도
널 보면 웃음이 나와, 너의 독주에 단단히 취해서
I’m feeling like… feeling like a… feeling like a Fish

그러니까, 사람들의 어떤 ‘감수성’을 자극한 부분은 바로 그거였다. ‘대물’ 펀치라인. 사실 굳이 곡 반응을 찾아보는 편은 아니었지만, 인열이 그걸 알게 된 건 웃긴 게 있다 싶으면 죄다 단톡방으로 퍼다 나르는 고등학교 동창들 덕분이었다. 커뮤니티를 달군 ‘대물’드립을 그들이 그냥 넘어갈 리가 없었다. 한 놈이 인터넷 커뮤니티 링크를 단톡방에 보내며 낄낄거리기 시작했다. 톡방은 곧 감탄사에 가까운 비속어들로 점철되었다. 그들이 대물 쇼앤프룹 같은 말 따위를 하기에 인열은 올라온 링크를 확인했는데, 그 글들은 그야말로 골 때리는 내용이었다.

제목 : 그러니까 ‘군필’ 나인라인 형은 ㄷㄷ

어장당하는 찌질한 상황을 가사로 쓰면서도
은근슬쩍 본인 ‘사이즈’ 어필하시는거임?
ㅅㅂ 개지렸다

댓글

└ 난 직접 보기 전까진 안믿음 ㅋㅋㅋ 형 한번만요ㅋㅋ 
└└ ㅁㅊㅅㄲ인가; 

└ 근데 클거같긴 함ㅋㅋㅋ

제목 : 나인라인 사이즈 논란 종결.avi

ㅅㅂ 트위터에서 기집애들이 나인라인 수납실패라길래 염탐해봤는데 ㅅㅂ
(동영상)
ㄷㄷ… ‘대물’ ‘Show and Prove’ 하심

댓글

└ ??? : 이 Accident는 그냥 ‘대물’로 친대 

└ ㄷㄷ 비거댄엠아씨;;;

└ 개설렘 형 한번만요 ㄷㄷ
└└ 이새끼는 ㄹㅇ 나인라인 글마다 출몰하네 ㅁㅊㅅㄲ;;;

씨발. 인열은 단톡방에 욕을 뱉었다. 친구놈들은 역시 ‘아메리칸’ 따위의 말을 하며 낄낄거렸다. 한 놈은 정규 앨범 타이틀을 들먹이기도 했다. ‘Na in 10 거꾸로하면 10 in Na 인데 이거 10 인치 나인열 줄인거 아님?’ 그는 한 손으로 뒷목을 잡으며 한숨을 내쉬고는 답장했다. 

미친새끼; 이거 성희롱임;

또라이: 허위사실에 의한거임 사실적시에 의한거임?

최멍청: 그건 명예훼손이고 ㅄ아

배신자: ㅋㅋ명예훼손도 맞긴할듯

ㅅㅂ 그게 중요하냐고 지금

배신자: 내 일이 아니라서 그런지 걍 웃김ㅋㅋ ㅅㅂ 
앞으론 수납 좀 잘 하고 다녀ㅋㅋ

안그래도 잘하고있음 개새끼들아ㅋㅋ

최멍청: (사진)
대물나인열로 저장함 ㅋㅋ 

또라이: 난 비거댄엠아씨 ㅋㅋ ㅆㅂ ㅈㄴ 스껄~ㅋ
(사진)

이런 우스운 일들. 그리고 또 우습지도 않은 일들. 4년 전 첫 정규를 내고 난 뒤엔 “근데 나인라인즈 진짜 케이팝 아이돌같이 생겼어. 게이같단 뜻임.” 따위의 트윗들을 마주하기도 했었고. 어떤 서부 래퍼 하나는 ‘아시안 게이 나인라인즈같이’ 따위의 가사를 쓰기도 했다. 물론, 인열도 한때는 그 이미지를 탈피하려고 얼굴을 가리거나 인상을 쓰고 다녀본 적도 있었다. 하지만 편견이란 애초에 그런 방식으로 지워지는 얼룩이 아니었다. 결국 닳고 닳은 지금의 스물 여섯 ‘케이시 인열 나’는 그냥 이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꿈이 이뤄지는 콘크리트 정글에서, 기대만큼 만족스럽지는 않은 토스트를 씹어 삼키면서. 

그래. 근데 걔넨 그 ‘아시안 게이’의 음악에 지리잖아? 

좆이나 까라지. Then I’ll fuck’em 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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