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더스 게이트 3

[아스타브] 마더 구스

조각보 by 유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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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와 똑같은 새벽이었다. 혹은 비슷했을 수도 있고, 그게 그렇게 중요하지는 않았다. 단지 아스타리온은 언제나처럼 잠들지 않았고, 야영지의 모닥불이 꺼지지 않도록 지키는 중이었다. 다른 날이었다면 그의 곁에 와서 앉는 게 섀도하트였을 수도 있고, 윌이었을 수도 있겠지. 그러나 오늘 새벽 그의 불침번 동료는 조금 다른 사람이 될 모양이었다.

특유의 가벼운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키샨은 자기 발밑의 풀이 꺾이지 않는 걸음을 가졌는데, 일행 중에서도 청각이 예민한 인원들만이 그의 걸음 소리를 잡아내곤 했다. 아스타리온은 언제나 그 인원에 여유 있게 포함되었고, 오늘도 키샨이 그의 옆으로 오기도 전에 뒤를 돌아보았다. 키샨은 잠시 동그란 눈으로 그를 쳐다봤지만, 이내 사박사박 걸어 모닥불 앞, 그의 옆에 앉았다. 가벼운 눈인사가 오가고, 말은 별로 오가지 않았다. 애초에 이 이상한 드루이드는 자신이 관심 있는 것이 아니면 말이 많지 않았고, 아스타리온도 오늘은 그냥 조용히 있고 싶은 기분이었다.

대신 그는 키샨의 옆얼굴을 바라보았다. 이유는 별 거 없었다. 그는 불침번을 설 때마다 대체로 심심했고, 운 좋게 누군가가 깨어나지 않는다면 새벽 내내 별을 보거나 명상을 할 뿐이었다. 적어도 별보다는 사람의 얼굴을 바라보는 게 재밌었다. 모닥불의 그림자가 키샨의 얼굴에 이상한 그림자를 만들었고, 짙은 어둠이 가린 그의 인상은 낮과는 다소 달라졌다. 낮에는 온갖 호기심으로 빛났던 얼굴인데, 불을 바라보고 있는 지금은 고요하기 그지없었다. 뭘 보고 있을까? 문득 든 궁금함이 그의 말을 이끌었다.

"뭘 그렇게 보고 있어?"

키샨은 거의 바로 대답했다.

"나뭇잎들. 얘기하고 있거든. 매일 밤 잠들지도 않는 엘프가 있다는 얘기."

그러니까 드루이드식 농담이란 거지. 아스타리온은 키샨이 종종 하는 엉뚱한 소리를 가벼운 농담 정도로 취급했고, 이번에도 별로 다르지 않았다.

"아, 그래. 뭐라고 하는데?"

"음... 이렇게 오래 안 잠들기엔 너무 잘생겼다."

반사적으로 웃음이 나왔다. 키샨은 칭찬을 칭찬같지 않게 하는 재주가 있었다. 외모에 대한 칭찬은 너무 익숙해서 반응에 대한 가짓수도 많았지만, 이런 경우에는 그냥 웃어버리게 되고 만다.

"나뭇잎들도 얼굴을 봐? 그런 거라면 보는 눈은 있네."

잠깐 웃음소리가 와락 하고 피어올라 둘 사이를 채웠다. 그리고 다시 모닥불이 타는 소리가 정적을 덮는다. 키샨의 표정은 방금 전보다 부드럽게 풀려 있었고, 그래서 아스타리온은 그의 얼굴에서 익숙한 부분을 찾아낼 수 있었다. 동그란 눈매나, 회색빛 피부, 곱슬거리는 머리카락 등, 그와 닮은 것 같으면서도 전혀 다른 요소들, 사랑받고 자란 사람에게 어울리는 것들이었다. 드로우의 핏줄이라는 것을 증명하듯 생각보다 차가운 인상이지만, 그 점이 키샨을 이루는 데 과연 얼마나 포함됐을까? 아스타리온은 반절도 채 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저 머리카락이 그랬다. 아침마다 섀도하트나 그 자신이 한 시간씩 걸려서 빗어주는 머리카락, 키샨이 어렸을 때는 동물들이 핥아주고 스승님이 정리해 주었다는 저 머리칼은 마치 정리되어야 했던 적이 한 번도 없는 것 같았다. 그러니까, 누군가에게 강요당한 적이 없다는 뜻이다.

만약 그의 '참나무 아버지'가 키샨을 만들었다면, 무엇으로 이루어졌을까?

아마도 햇빛, 나뭇잎, 그리고 거짓 없는 마음일 것이다.

그렇다면 카사도어가 새로 만들어낸 아스타리온 자신은? 아마도 무덤의 흙, 조잡한 향수, 그리고 지긋지긋한 피겠지.

이제와 스스로를 연민할 생각은 없었지만, 이런 종류의 생각은 언제나 그 자신을 바닥 없는 늪으로 끌어당기곤 했다. 그리고 그런 주제에 점착성이 있어서 잘 떨어지지도 않았다. 잡생각을 없애줄 사람도 없는 새벽에는 특히 그랬다. 괜히 심심하다고 사람을 관찰하면 안 됐다고 생각했지만, 그는 그냥 익숙하게 우울을 가라앉혔다. 이백 년이나 홀로 새벽을 보내다 보면 질척한 감정에 대처하는 것 정도는 숨쉬듯이 해낼 수 있었다.

그리고 아스타리온이 표정도 변하지 않고 우울을 삼키고 있을 때, 키샨도 곁눈질로 그를 보고 있었다. 저 새하얀 엘프는 늘 아주 낯선 것을 보는 듯한 눈으로 자신을 보았다. 마치 옷을 입고 두 발로 걸어다니며 말을 하는 아울베어를 일행으로 삼기라도 한 것 같은 눈이었지만, 키샨에게는 오히려 아스타리온이야말로 정말 낯선 것들로만 이루어진 사람이었다. 백색과 붉은색과 웃음소리, 그는 숲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것들로만 이루어졌고, 키샨의 얄팍한 지식으로는 비유할 만한 것조차 찾을 수 없었다. 꽃을 얘기하기엔 너무 차갑고, 보석을 얘기하기엔 너무 연약했다. 약한 불티와 바람이 비추는 아스타리온은 꼭 시냇물 같았다. 밤의 달빛이 잔잔하게 내리 비추는, 사람의 눈이 닿는 순간 사라져 버리는 한 순간의 반짝임. 그것조차 딱 맞는 비유는 아니었지만, 키샨이 아는 한 그것보다 빛나는 것은 찾을 수 없었다.

두 사람이 각자의 생각에 잠긴 채 얼마나 흘렀는지, 모닥불이 금방이라도 꺼질 듯 일렁였다. 아스타리온은 새 장작을 불 속으로 밀어 넣었고, 키샨은 슬슬 졸린 듯 하품을 한 번 하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평소와 같은 목소리로 그를 불렀다.

"아스타리온."

"응?"

그 다음 말은 왜 그렇게 낯설었을까?

"잘 자. 내일 보자."

키샨은 다시 왔던 길로 사라졌다. 아마 그대로 침낭 안에 들어가 숨소리도 없이 곤히 잘 것이다. 아스타리온은 잠시 가만히 있다가, 듣는 이가 사라진 대답을 건넸다.

"잘 자, 내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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