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 글 타입〉 샘플

(제목 미지정)

커미션 작업물 | 키미가시네 | 드림

약 4000자 

 

를 비추는 눈. 안광을 번쩍이는 눈. 낱낱이 파헤쳐, 그 내면까지 들여다볼 것 같은 눈들이 소녀를 바라본다.

반들거리는 렌즈 너머로 그것들이 그를 직시하고 있다. 검고 어둑한 거울이 그의 얼굴을 비춘다. 겁에 질린 눈동자와 눈을 마주한다. 차가운 시선이 T의 전신에 닿는다. 온몸이 붙들린 듯 움직이지 않는다. 어디서 쏘아 보내는 것인지 모를 시선에 살기가 묻어 있다. T는 지난 상실의 기억을 더듬어 앞으로 일어날 일을 어렵지 않게 떠올렸다.

곧 죽을 것이다. 눈의 개수만큼 난자되어 쓰러질 것이다. 그보다 아주 긴 시간, 발버둥 치게 될 것이다. 저기 있는 자들이 충분히 절망할 수 있도록. 어떤 강건한 마음도 꺾어버릴 수 있도록.

문득 금발의 사내와 눈이 마주친다. 아연실색한 얼굴로 그가 자신을 둘러싼 카메라의 눈을 가리려 든다. 발로 차고, 억센 손으로 밀어 넘어트리고, 주먹을 내리친다. T는 그의 힘을 알았다. 하지만 안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은 없다.

검은 눈이 일시에 똑, 떨어져 바닥을 나뒹군다. 카메라 렌즈가 뚜껑을 열듯 분해된 것이다. 순식간에 텅 비어버린 눈 속에는 공허가 있었다. 아니, 그것은 공허가 아니라 거대한 아가리였다. 자신을 겨눈 수십 개의 눈이 총구의 끄트머리로 바뀌었을 때, T는 가까스로 입술을 당기고, 일그러진 얼굴을 반듯이 편다. 쥐어짜듯 그를 향해 목소리를 낸다.

K 씨. 저는 괜찮을 거예요.

“T!” 웃는 낯을 보고도 야속하게도, 그는 평소처럼 ‘우리 T’라고 부르지 않았다. 그저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달려들었다. 카메라 사이로 큰 몸을 욱여넣자, 반쯤 끼인 몸에 여럿의 손이 가로막는다. 금방이라도 앞으로 뛰쳐나올 듯한 기세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이제는 몇 남지 않은 이들이 달려들어 꽉 붙든다. 팔다리를, 허리를, 발목과 자꾸만 벗어나려 버둥거리는 손목을. K 씨도 같이 죽을 셈이에요?! 새된 목소리가 귓가를 파고든다.

웃는 낯이 조용히 젖어든다. 두려움을 숨긴 채 그저 말갛게 웃는 얼굴로, T는 그의 얼굴을 올려다본다. 괜찮아요, 다 괜찮을 거예요……. 이건 절대 K 씨 탓이…….

일순간 큰소리를 내며 발포된 탄환이 몸을 찢어발긴다. 플래시의 조명과 함께, 금속이 전신의 살갗을 파고든다. 벼려진 쇳조각에서 불타는 듯한 작열감이 일시에 덮쳐 온다. 뜨겁게 달군 쇳조각이 온몸에 틀어박힌 것 같다고 T는 생각한다. 그는 성한 팔을 간신히 짚어 고개를 치켜들고, 엎드린 채로 K를 올려다본다. 분노도, 간절함도, 공포도 죄악감도 지나가 텅 빈 검은 눈이 심연처럼 쓰러진 몸을 보고 있었다.

T는 가물거리는 눈으로, 목숨이 끊어질 때까지 그를 응시한다. 올려다본 얼굴을,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그 파리한 얼굴을, 그 눈에 비친, 아마도 그에게는 환영과 겹쳐 보일 자신의 얼굴을. 입 모양으로나마 끊겼던 말을 잇는다. K 씨 탓이…… 아니에요……. 그 소리 없는 목소리가 그에게 제대로 닿았을까?

마지막 순간에도 그는 의식의 저편에서 조용히 채 전하지 못한 말을 읊조린다.

절 구해주셔서 정말 고마웠어요.

그러니까, 꼭 살아주세요. K 씨.

 

*

 

그날 네가 죽었다. 최후의 메인 게임에서 두 명이 죽었던 날, 마치 애초부터 계획된 연출인 것처럼 몸체 뒤로 개머리판이 길게 매달린 카메라가 바닥에서 솟아났던 날.

셔터가 눌렸을 때, 플래시와 동시에 터져 나온 발포음이 지척에 서 있던 이들의 귀청을 찢었다. 눈부신 섬광 속에서 긴 은발이 아래로 고꾸라졌다. 간신히 호흡만 붙은 채로, 네가 손을 뻗었다. 몇 번 뒤척이지도 못한 채 마지막 힘으로 몸을 뒤집어 엉금거리며 나를 응시했다. 붉은 눈에서 광채가 사라질 때까지. 영영 그 숨이 끊어질 때까지. 매캐한 연기가 점차 사그라질 때까지.

곁에 선 환영이 웃었다. 아직 어떤 것도 잃어버리기 전에, 무결했던 과거에 그랬듯 호탕한 목소리로, 곧 있으면 아이가 태어난다며 말갛게 웃던 모습 그대로 그가 말했다.

어차피 네가 지킬 수 있는 건 없어. 그러니까 네가 죽어, K.

눈이 있어야 할 자리에 시커먼 공허를 담은 환영이 목을 졸랐다. 컥컥대며 바닥을 기는 사이 염려의 목소리가 귓가에 스치고 지나갔다. 숨이 막혔다. 어떤 소리도 선연히 들리지 않았다. 어떤 말도 위로가 되지 못했다.

총기가 사라진 자리를 기어 너의 손을 쥐고, 죽은 눈과 눈을 맞췄다. 온기가 채 가시지 않았을 텐데도 바닥을 짚은 손이 차가웠다. 어느새 나를 일으키려는 손길이 저만치 물러나 있었다. 한숨과 흐느낌, 몇 차례의 호통과 만류가 지나갔다. 순간 손등을 타고 날카로운 통증이 느껴졌다.

“아하하, K 씨. 꼭 그때랑 똑같은 표정이네. 맘에 들어.”

보기보다 무거운 체중으로 미도리가 내 손을 밟고 있었다. 구명줄처럼 쥐고 있던 네 손과 함께 관절의 마디마디가 뒤틀리고 부서졌다. 기괴한 형태로 얽혀든 흰 손과 내 손을 목도했을 때, 그를 향한 증오가 머리끝까지 치밀어올랐다. 분노가 환영을 몰아냈다. 마지막까지 살아남아 꼭 네놈을 죽이겠노라고, 오로지 그것만을 목표로 살아남았다.

마침내 그곳을 벗어나자 불명예스러운 햇볕이 머리 위로 쏟아져 내렸다. 모든 게 끝난 뒤, 짧지 않은 기간 동안 죽었던 이들의 흔적이 내 앞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그럼에도 네가 죽던 날의 기억은 여전히 내 안에 잔존해 있다. 지금도 나는 생각한다. 차라리 같이 죽었더라면 어땠을까. 아무것도 모른 채 처음 다 같이 모였던 1층 로비에서 조우할 수 있었을까. 그렇다면 그때는 결말이 조금은 달라졌을까.

아마 달라지는 건 없을 것이다. 마지막 생존자들이 너무 많은 걸 알아버렸으므로, 아스나로는 그만한 대책을 준비할 것이다. 지금처럼 메인 게임을 넘어 바깥으로 나올 수 없었으리라고, 나는 확신한다. 하지만 나는 때때로 후회하고, 그날의 다른 가능성을 머릿속으로 그리는 데에 하루의 절반을 썼다. 절망 속에서 잠깐이나마 빛났던 희망은 꺼지고, 삶은 다시 환영과 함께 나락으로 가라앉았다.

“만약 K 씨가 대역 카드를 받게 된다면 어떻게 할 거예요?”

언젠가 네가 불쑥 물었다. 목숨을 저울질하는 바깥의 처우에 비해 2층의 개인실 내부는 단정하게 꾸며져 있었다. 안온한 스탠드 불빛 아래서, 나는 뻔뻔하게도 네 침대 위에 드러누워 한 팔로 머리를 괴고 있었다. 나는 새카만 창 너머로 일렁이는 붉은 그림자에서 시선을 떼고 씩 웃었다.

“글쎄. 경찰 아저씨랑 같이 도망갈래? 우리 T.”

“하하, 그게 뭐예요. K 씨도 참….”

문득 머리를 쓰다듬고 싶어졌으므로, 나는 네게 손을 뻗었다. 한쪽만 누운 자세로는 머리칼에 잘 닿지 않아 손을 이쪽으로 까딱거렸다. 네가 고개를 점점 낮추다가, 아예 내 옆에 누웠다. 죄를 짊어진 손으로 네 은발을 사락사락 넘겨주었을 때, 너는 날 보며 애매한 미소를 띠었다. 아, 이런. 나는 머쓱하게 손을 거두고 능청스레 덧붙였다.

“우리 T 머릿결이 좋아 보이길래. 경찰 아저씨 나쁜 사람 아니다?”

“아…. 괜찮아요. K 씨를 믿으니까요.”

짧은 대화를 끝으로 잠시 정적이 찾아왔다. 그때 나는, 너로 인해 조금은 평안해졌다. 네가 내게 의지가 되어줬음을 지금은 안다.

정말로 둘만 도망칠 생각은 없었다. 보기보다 상냥하고 심지가 굳은 네가 단둘만 살아남는 걸 반길 리 없음을 알았다. 나가서도 감히 손대지 못할 만큼 너는 좋은 사람이었다. 앞으로 살아갈 날이 많았고, 바깥에서 더 좋은 인연을 만날 자격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만약 대역 카드를 받는다면 차라리 죽음을 택하겠노라 다짐했다.

“뭐… 내가 대역 카드를 받는다면 명예롭게 죽어야 하지 않겠어? 미래가 창창한 소년소녀들이 많으니, 경찰 아저씨는 일찍 가서 기다려야지.”

너의 등 뒤로 붉은 그림자가 선명해졌다. 그것이 웃으며 나를 손짓했고, 나는 잠깐 시선을 두었다가 떼었다. 다시 돌아본 너는 눈을 내리깐 채 상념에 빠져 있었다.

그때 너는 무슨 생각을 했어?

대역 카드를 손에 쥐게 되었을 때, 넌 누구의 얼굴을 떠올렸어?

이제 물어볼 사람은 없다. 단지 지긋지긋한 환영과 그날 손에 닿았던 차가운 총기의 감촉이, 손바닥에 밴 쇠 냄새만이 여전히 내 곁에 남아 있다.

나는 결코 네 목숨을 등에 업고 살아갈 자격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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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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