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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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잔향 by R2dir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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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6CepN82atU8?si=r-uTajebY-UuKgsR

집 앞의 흙은 비가 내리고 나면 특유의 질척임 때문에 늪 같다고 생각이 들 정도였다. 달린이 그날의 기억에 묶여있는 것은 그가 유난히 제 집 앞의 해바라기밭을 사랑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진흙 속 푹푹 빠진 발을 빼어내지 못해 발목까지 잠긴 지금 달린은 멍하니 하늘을 바라볼 뿐이다. 그는 생각한다, 겨울이었다면 이 땅이 얼어 잠길 일이 없을 텐데. 이렇게 잠겨있는 것은 따스한 햇볕이 얼릴 틈을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달린은 언제나 여름 속에 잠겨 있었다.

" 죽은 사람에게 너무 얽매이진 말아. "

전에도 지금도 차양에서 벗어날 적 햇빛이 들지 않음에도 눈을 깜빡이는 워렌을 보며 큰 흐름의 변화 속에서도 여전하구나 싶었다. 여전한 것은 여전한데 왜 추억은 그 자리에 있지 않은 것일까. 진흙, 죽은 아버지, 의식불명의 어머니. 달린은 여전히 그곳에 얽매여있는다. 그들을 잊는 것은 악몽으로 다가올 것이며, 복수는 제 신념을 죽이는 일이며, 추억은 아래로 자신을 끌어내린다. 

네가 말한 대로였다. 자신을 보며 수군거리는 사람도 있겠거니 손을 내미는 사람도 그러니까 너희가 있었다. 그것이 화가 될까 선뜻 그것을 잡지 못하면서도 내칠 수도 없었다. 아래로 잠겨가는 나를 위해 손을 내미는 너희가 있지만, 그 또한 추억 속 내가 남긴 흔적을 향해서가 아닐까.

" 대가를 치른다는 건 뭘까. "

문장 그대로의 의미였다. 그들의 대가를 치른다는 알량한 선행을 베푼 것에 대해 목숨으로 사죄하는 것이었다. 내가 추억을 그대로 짊어지며 뿌린 희망에 대한 대가는 어떻게 돌아올까. 버티면 추억으로, 추억은 대가로. 네가 말하고자 하는 결론은 이런 의미가 아니겠지만, 전처럼 마냥 긍정적인 생각이 나지는 않아서 자신의 결론은 그랬다. 

살갗이 타오르는 여름의 정원 한가운데 해바라기들 속에서 전날 온 비 때문에 진흙밭이 되어버린 곳에서 달린은 드러눕는다. 자신을 끌어내리는 것이 진흙임에도 이 장소에서 가장 시원한 것은 우습게도 진흙이었으니까. 

너와 하는 둥실 떠오르는 대화는 여름 하늘의 구름이었다. 정원 위 짙게 푸른 하늘에 떠다니는 새하얀 구름, 그렇지만 언제 먹구름으로 변모할지 모르는 알 수 없는…. 죽은 사람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이 없으며 그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버티는 것밖에 없다는 것을 새삼 일깨워주는 너의 문장이….

" 졸업 축하해. "

완전히 닫지 않은 기숙사 문 사이로 달린은 이야기했다. 자신의 부정적인 생각 때문에 인간관계를 틀고 싶지는 않았으니 마지막으로 할 수 있는 말이라곤 이것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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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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