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미카] 서프라이즈!
#미카의 파리행 #꼭두각시인형
※허구와 날조 100%, 공식 설정과 다른 부분이 있을 수 있습니다
처음으로 개인 스케줄 덕분에 파리에 가게 된 미카는 당연히 틈을 보아 슈를 보러 가야겠다는 생각에 설렜지만, 일정표를 보고 한숨을 푹 내쉬었다. 일 때문에 가는 출장이니 일을 우선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나 그렇다고 이렇게까지 1분 1초 단위로 꽉 짜인 스케줄일 줄은 상상도 못 했다.
Valkyrie 두 사람의 사이가 지극히 좋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스태프도 일정표를 건네며 미안한 표정이었다.
"아이다, 아이다. 내도 머가 먼전지는 안데이. 그카고 어거지로 시간 쥐어짜서 갔다가는 오히려 '프랑스에 온 김에 나를 만나러 오다니, 내가 덤이라는 것이냐?'하고 화를 낼지도 모르제."
"하하… 카게히라 군이 그렇게 말해 주니 다행이지만…."
당연히 서운하지 않을 리는 없었다. 그러나 휴대전화의 작은 화면으로나마 만나고 싶으면 언제든 만날 수 있으니, 그렇게 땅을 치고 한탄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며 미카는 자신의 섭섭함을 달랬다.
'캐도 마, 이런 것까지 일일이 보고할 필요는 없긋제. 나중에 기회 되믄 마 그래 다녀왔다~ 얘기 정도만 하고….'
슈를 만나고 싶어 설레는 마음에 일하다 실수라도 했다가는 오히려 나중에 슈에게 호되게 야단을 맞을 것이 뻔했기 때문에, 미카는 그렇게 스스로를 다독거렸다.
그리하여 미카는 처음으로 슈에게 아무 언질 없이 파리행 항공편을 타게 되었다.
***
"응아? 벌써 끝이가?"
시차도 제대로 적응하지 못한 채 새벽부터 정신없이 메이크업을 받고 준비를 마친 뒤 스튜디오로 가서 사진을 몇 장 찍던 미카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 카게히라 씨, 정말 미안해요. 오늘 하루 종일 스튜디오를 통으로 빌리기로 했었는데, 계약 착오로 오후에 다른 팀이 들어오게 됐다네요."
"그라믄 우야노? 이짝저짝서 같이 찍어야나?"
"아뇨, 스튜디오 측에서 정말 죄송하지만 오전 중으로 끝내 달라고…. 대신 마지막 날에 보충 촬영을 할 거예요. 그래서 항공편을 조절해서, 체류가 하루 늘어나게 됐어요. 그 보상은 스튜디오 측에서 사과의 의미를 담아 넉넉히 해 줄 거라고 하네요."
"내는 마 상관없는데…. 그라믄 오후에 딴 스케줄 있는 기가?"
"아뇨, 다른 스케줄을 당겨올 수는 없어서 오늘은 여기까지만…. 어때요, 카게히라 씨. 이츠키 씨한테 연락이라도 해 보는 건?"
"응아?"
생각지도 못했던 말에 미카는 놀랐다.
"스케줄상 만날 수는 없어도, 프랑스에 온다는 걸 알고는 있을 것 아니에요?"
"아이다… 내 말 안 했다. 스승님은 바쁜 사람이니께, 괜히 신경 쓰게 하기도 글코… 오늘은 아마 학교 갔을끼다."
그렇게 말하면서도 미카는 지도를 켜 보았다. 슈의 아틀리에와 하숙집이 생각보다 그리 먼 거리는 아니었다. 이전에 몇 번 찾아가 본 적이 있었기에 가려면 못 갈 것도 없어 보였다.
"에헤헤… 캐도, 혹시 잠깐 슬쩍이라도 보고 올 수 있으믄…."
서프라이즈! 하고 놀래 주고 싶은 마음이 조금씩 스며들었다. 미카는 천진하게 웃으며 나머지 촬영을 재빨리 마치고, 마음이 급한 나머지 우당탕 넘어지면서 정신없이 옷을 갈아입었다.
***
조금 헤매기는 했지만 그래도 무사히 아틀리에 앞에 도착한 미카는 혹시나 안에 있지 않을까 싶어 우선 문을 두드려 보았는데 반응이 없어, 슈에게 연락을 할까 말까 잠시 망설였다.
"암말도 않코 냅다 온 기 잘못이긴 하제… 마, 전화로도 충분히 놀래킬 수는 있으니께 함 해 보까?"
주머니에서 주섬주섬 전화를 꺼내려던 미카는 문득 문이 아주 살짝 열려 있는 것을 발견하고 살짝 잡아당겨 보았다. 문은 의외로 힘없이 열렸다.
"응아? 스승님 안에 있는 기가? 있어도 웬만하믄 잠가 놓지…. 내한테는 방범의식을 똑바로 가지라고 그래 호통쳐 놓구서는."
어쩌면 슈가 안에서 작업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미카는 다시 가슴이 설레는 것을 느끼며 발끝을 세워 조심스럽게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안은 고요했다. 역시 실수로 문 잠그는 것을 깜박하고 외출한 걸까.
어둑어둑했지만 커튼 사이로 빛이 비쳐들어 안을 둘러볼 정도로는 충분했다. 전에 왔을 때보다 작품이 늘어난 것을 보고 미카는 행복하게 하나하나 살펴보았다. 주인 없는 아틀리에 안을 마음대로 봤다고 슈가 화를 낼지도 모르지만, 어쩌면 슈가 바빠 오늘은 정말로 얼굴조차 보지 못하고 돌아가야 할 수도 있으니 이 정도는 괜찮겠지.
[~♪! ~♪! ~♪!]
"응아아앗! 머꼬?"
아무도 없는 아틀리에 안에 갑자기 미카의 휴대전화 벨소리가 울려 퍼지는 바람에 하마터면 떨어뜨릴 뻔했다. 미카는 허둥지둥 휴대전화를 꺼냈고, 발신인은 하필 이 아틀리에의 주인이었다. 그나마 영상통화가 아닌 것을 다행으로 생각해야 하나, 하면서 미카는 전화를 받았다.
[아아, 나야. 별일 없었느냐는 것이다.]
"응아~. 내는 잘 있제. 스승님은? 오늘은 머 했나?"
[음, 볼일이 있어 잠시 외출했는데…. 카게히라, 지금 파리에 있지?]
"응앗?! 우예 알았노?!"
미카는 또다시 휴대전화를 떨어뜨릴 뻔했다. 전화 너머로 슈가 유쾌하게 웃는 소리가 들려왔다.
[카카카카! 이 내가 파트너의 스케줄도 확인하지 않을 줄 알았느냐는 것이야. 보아하니 잠깐의 유예시간도 뺄 수 없을 정도로 혹독한 일정인 것 같다만 장소를 보니 그리 멀지 않은 것 같은데, 잠시 아틀리에에 들렀다가 그쪽으로 가 볼까 한다. 전화를 받을 틈은 있는 것 같으니.]
"아나, 스승님…. 그, 사실은…."
결국 서프라이즈를 포기한 미카가 사실을 털어놓으려 할 때였다.
문득 선반에 앉아 있는 인형 하나가 눈에 띄었다.
"응아…?"
[카게히라?]
5~60센티미터 정도 되어 보이는, 선반에 다리를 뻗은 채 앉아 있는 인형이었다. 나무토막을 정교하게 깎아서 이어붙이고 자연스럽게 움직일 수 있도록 관절이 이음매로 이루어져 있었다. 이제 신체 부위 곳곳에 실을 연결하기만 하면 얼마든지 자유자재로 놀릴 수 있는 인형, 소위 말하는 꼭두각시.
미카는 그 인형에게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카게히라, 촬영이 시작된 것이냐? 혹시 바쁘다면 그만 전화를 끊고….]
"스승님…."
[음?]
미카의 심상찮은 목소리에 슈가 눈살을 찌푸리는 것이 전화 너머로도 느껴졌다.
"스승님, 인제 인간인 내는 필요 없나? 내는… 버릴 끼가? 내, 아직도 실패작이가?"
[카게히라? 갑자기 무슨….]
"시키는 말도 똑바로 못 듣고, 스승님 뜻대로 안 움직이고… 캐도 얼굴만은 유일한 장점이니께, 그것만 남기믄…. 실패작 아인 인형만 남는 기제? 이래 맹근, 진짜 인형만…?"
미카는 떨리는 손으로 화면을 영상으로 전환하여 선반의 인형 쪽으로 들이밀었다. 슈의 깜짝 놀란 얼굴이 화면에 비쳤다.
[농, 카게히라, 설마 지금….]
"내 버리지 마래이! 스승님, 스승님한테 버림받으믄 내는 진짜 살 이유가 없다…."
[도대체 어떻게…. 칫, 설마 또 츠키나가가…. 카게히라, 거기서 꼼짝 말고 기다리라는 것이야! 금방 도착할 테니!]
다리에 힘이 풀려 털썩 주저앉은 미카 앞에서, Valkyrie의 유닛복을 입고 파란색과 노란색의 두 유리알 눈을 지닌 꼭두각시 인형이 가만히 앞을 바라보고 있었다.
***
"카게히라!"
슈가 휴대전화를 들고 숨을 헐떡이며 아틀리에에 뛰어들었을 때, 미카는 여전히 인형 앞에 주저앉은 채 굳어 있었다. 인형처럼 깜박이지도 않아 충혈된 두 눈에서 샘처럼 맑은 눈물이 끝도 없이 흘러내렸다.
"카게히라, 내 말을 좀 들어 보거라! 아아, 정말… 카게히라!"
슈는 미카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양 뺨을 가볍게 찰싹찰싹 내리쳤다. 멍하던 두 눈동자에 초점이 돌아오고 슈의 눈과 시선이 마주쳤다.
"스승님…?"
"하아… 사람 좀 놀라게 하지 말라는 것이다. 내가 아틀리에에 오는 중이었기에 그나마 다행이지…. 올 수 있으면 오기 전에 연락을 해야지, 길이 엇갈리기라도 했다면 어쩔 뻔했느냐?"
"스승님… 내 안 버릴끼가…?"
"농!! 몇 번을 말했느냐, 버리지 않겠다고! 네게 인간이 되어 달라고 먼저 소망한 게 나였던 걸 왜 자꾸 잊는 것이야!"
"그치만 인형이…."
슈는 미카의 양 어깨에 손을 짚은 채 선반 위쪽에 놓여 있던 꼭두각시 인형을 올려다보고는 긴 한숨을 내쉬었다.
"이번 학기 과제로 제작한 것이다만…. 나도 태어나 처음 만들어 본 목각 인형에 다른 누군가의 얼굴을 얹을 마음이 들지 않아, 네 얼굴을 그린 것이 네게 이토록 상처를 줄 줄은 몰랐다."
"아이다, 스승님…."
정신이 돌아온 미카가 손등으로 눈물을 문질러 닦으며 말했다.
"괜히 소란 피워서 미안하데이…. 내 놀래서 그랬다. 놀래고… 부러워서…."
"부럽다니…?"
"저 아는 내허구 똑같이 생겼는데 태어나기도 스승님 손에서 태어나고, 스승님이 지어 주는 옷만 입고, 팔다리 움직일 때도 온전히 스승님 손에서만 놀려질 거 아이가…."
"…."
"물론 스승님이 무신 예술품을 맹글든… 그기는 스승님 맴이지마는… 내가 할 수 없는 일을 대신할 수 있는, 내하고 똑같이 생긴 아가 스승님 곁에 있다는 기 부럽고 억울해서… 쪼매 정신이 나갔었구마…."
슈는 무릎을 꿇은 채 미카에게 조금 더 다가가, 그 어깨를 껴안았다. 체온이 식어 차가워진 몸이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네가 정 그렇게 싫다면… 이 인형쯤이야 얼마든지 부술 수도 있다는 것이야."
"안 된다! 그거는 더 싫다! 저 아는 태어나기도 스승님 손에서 태어나서, 죽을 때도 스승님 손에 파괴되는 기가?! 내도 그래 몬 하는데?!"
눈이 붉어진 미카가 한껏 격정적으로 외치다가 금세 기운이 쭉 빠진 듯 슈의 품 속에서 축 늘어졌다.
"스승님… 와 내는 스승님 없는 데서 태어나가 지금도 스승님하고 떨어져 살아야 하는 기고…."
코를 훌쩍이는 미카의 등을 가만가만 쓰다듬으며 슈는 한참 아무 말이 없었다.
"…카게히라, 스케줄은 어떻게 하고… 여기에 온 것이지?"
"응아…? 하루 꼬박 스튜디오 촬영이 있었는데 갑자기 문제가 생겨서 오늘은 스케줄이 떴데이. 마지막 날에 하루 추가해서 다시 한다카이… 내는 오후에는 자유시간이다."
"그렇군. 그렇다면 마침 보고 싶었던 전시회가 있었는데, 함께 가자꾸나."
"스승님캉 전시회?"
미카가 고개를 반짝 들었다. 금세 생기를 되찾은 그 얼굴을 보고 슈는 쓴웃음을 지었다.
"그래. 그 얼굴로는 나갈 수가 없으니, 일단 내 하숙집으로 가서 세수를 하고… 간단한 식사를 하자는 것이야. 보아하니 아침도 챙겨 먹지 않았겠지?"
"새벽부터 오전까지는 정신없이 바빠가 물도 몬 먹었다 아이가…."
풀이 죽은 미카의 머리를 쓰다듬은 슈가 몸을 일으키며 미카의 팔도 잡고 일으켜 세웠다.
"파리 하면 보통 루브르나 오르세 등의 거대한 미술관만 떠올리기 쉽지만, 이 예술의 도시에는 언제나 소규모의 유의미한 전시들이 수없이 열리고 있다는 것이야… 카게히라, 어찌되었든 우리에게 귀한 시간이 주어졌으니 함께 향유하자꾸나. 내가 보려던 전시가 너의 예술에 어떤 영향을 줄지 모르는 일이니."
"…스승님?"
"나도, 혹여 네가 파리에 휴가차 왔을 때 함께 하고 싶은 일들을 하나하나 적어 두었을 만큼 들떠 있던 남자라고 하면… 너는 나를 경멸할까?"
"무신 소리고! 아이다, 아이다! 스승님, 내캉 하고 싶은 거 있었나?! 내는 너무 좋고 신나제!"
슈의 팔에 매달린 미카가 머리가 떨어져 나가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고개를 마구 가로저었다.
팔짱을 낀 채 밖으로 나가는 두 사람의 뒷모습을, 선반에 앉은 꼭두각시 인형이 오드아이의 유리알 눈으로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
작품 하나하나 슈의 설명을 들으며 전시회를 관람한 뒤, 슈가 자주 간다는 노천카페에 나란히 앉아 내리쬐는 햇살을 받으며 과일차를 마시니 언제 우울했느냐는 듯 미카는 기분이 무척 좋아졌다.
달콤하게 졸여 캐러멜 소스를 끼얹은 서양배 타르트를 포크로 조금씩 떼어 먹는 미카를 보며 슈가 문득 말했다.
"카게히라, 내가 대등한 '인간'인 네게 가장 원하는 게… 무엇인지 짐작이 가지 않느냐는 것이야."
"응아?"
"너는 본래 오늘 내게 무엇을 하려 했지?"
"실은… 말없이 찾아와서 깜짝 놀래 줄라캤데이. '스승님 서프라이즈~!'하고."
슈가 미소를 지었다.
"그래. 서프라이즈. 놀라움을 선사해 주려 했지. 그것은, 내 손으로 빚어낸 작품에서는 결코 얻어낼 수 없는 감정이다."
"…."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만 만들어져, 내가 이미 갖고 있던 생각 그대로만을 답습하는 인형은 절대 내게 놀라움을 줄 수 없어. 무슨 말인지 알겠지?"
"마, 그야…."
"방금 작품들을 보면서 네가 별 의미없이 내뱉었던 말들, 내가 미처 보지 못했던 것을 네가 지적한 포인트. 그것은 내게 새로운 시각을 선사해 주었다는 것이야. 옛 사람들이 남긴 작품은, 예술의 세계는 너무나도 크고 넓어서 혼자 헤엄치기에는 도저히 불가능한 바다와도 같지. 때로는 불안하고 외로울 때도 있지만…."
"스승님도?"
"나도 고향을 떠나와 객지 생활을 하는 유학생일 뿐이야."
슈는 손깍지를 끼고 턱을 괴며 미카의 어깨 너머를 바라보았다. 일본에서는 볼 수 없는 다양한 머리색과 피부색을 지닌 사람들이 각자의 길을 오갔고, 노래하는 듯한 프랑스어 또한 슈가 아무리 유창하게 구사한다 한들 모국어에는 없는 낯섦을 풍겼다.
"사에구사에게서 네가 스케줄이 있어 파리로 오게 된다는 말을 들었을 때 기쁘던 마음, 그리고 도저히 단 1분의 시간조차 낼 수 없어 만나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의 섭섭함…. 그래서 내가 직접 일하는 네 모습을 보러 가기로 결심했을 때, 깜짝 놀라는 네 얼굴을 볼 생각을 하니 설레던 마음. 이 모든 것이 인형에게서는 느낄 수 없는 감정이지. 나는 그 전부가 몹시도 사랑스럽고, 너도 니토도 다시는 내 인형으로 돌아오기를 바라지 않아…. 그래서 인간은 인간만을 사랑할 수 있다고 하는가 보다, 라고 생각했다는 것이야."
어느덧 해가 저물고 있었다. 내일도 다시 새벽부터 바쁜 스케줄이 있으니 적어도 9시 전까지는 호텔로 돌아와 달라는 스태프의 연락이 있어, 하룻밤 슈의 하숙집에서 자고 가는 일조차 허락받지 못한 미카는 조금 시무룩해졌지만 그래도 둘이 함께 유익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던 것만으로도 행복한 일이라고 생각을 고쳐먹었다. 뭐니 뭐니 해도 오늘은 얼굴조차 보지 못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기에.
"물론 아직까지 스승이라 불리는 입장으로서 나로서는 가능하면 네가 선사해 주는 놀라움이 불쾌한 쪽보다는 바람직한 쪽이기를 바라지만 말이지."
"응아… 정진하겠심더."
슈는 마지막으로 하숙집에서 가벼운 요리로 미카에게 저녁을 챙겨 먹인 뒤, 함께 메트로를 타고 호텔로 데려다 주었다. 끝까지 슈에게 착 달라붙어 떨어지기 싫어하던 미카도 스태프가 마중 나오는 것을 보고 고분고분 안으로 들어갔다.
미카가 묵는 호텔을 한참이나 올려다보다 어쩌면 떨어지기 싫은 건 자신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슈는 발걸음을 돌렸다.
아틀리에의 스페어키를 갖고 있는 레오가 몰래 들어왔다가 문을 잠그지 않고 나가는 일이 더러 있다는 사실은 슈도 잘 알고 있었다. 그 사소한 습관이 오늘 같은 일을 불러올 줄은, 전혀 예상치 못했지만.
"예상치 못한 일의 연속이, 결국은 인생이라는 것이지. 나는 그런 불의의 사태로부터 너희를 지키려 했고 그것이 사랑이라고 생각했다만…."
인형 제작은 필수과목은 아니었다. 그러니 슈 스스로가 과목을 보고 마음이 끌려 신청했다는 사실은 결코 부정할 수 없다. 사실, 한때는 인형사를 자부하던 입장에서 인형 제작에 손을 뻗어 보는 것이 그리 놀랍지는 않은 일이다.
하지만 결국 슈는 완성된 꼭두각시 미카 인형에 실을 매달지 못했다. 실을 달아, 직접 조종해 보는 것까지는 차마 시도해 볼 수가 없었다.
축 늘어져 있는 그 인형은 마치 미카의 시체 같았고 거기에 실을 묶어 움직여 보았자 시체를 억지로 일으켜세우는 느낌밖에 들지 않을 것이 뻔했기 때문이었다.
"너의 살아 있음이, 너의 생기 가득한 채 계속해서 바뀌는 표정이…."
이토록 벅차고 사랑스러워.
메트로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깜깜한 어둠 속에서 슈의 뺨에 가느다란 한 줄기 눈물이 흘러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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