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미카] 푸르가토리오

※허구와 날조 100%, 공식 설정과 다른 부분이 있을 수 있습니다

 

※엉망진창 사투리 주의 

※사망주의

 

 

 

 

 

 

 

 

 

응아, 누고? 방금 문 여는 소리가 들렸는데. 누가 온 기가? 

앗! 그래 갑자기 손을 만지니께 까암짝 놀랐다 안카나. 안심하란 뜻이제? 응, 응, 지나가는 길에 여가 보여서 들렀다꼬? 손바닥에 글씨로 써서 얘기하는 걸 보니께 말을 몬하는 사램이구마. 알았데이. 보다시피 내도 앞이 안 보인다카이. 

벨일이구마. 보통 자기가 죽었다는 걸 알믄 기겁을 해서 이 쪼매난 집 따위는 뵈지도 않고 천국문 쪽으로 꽁지 빠져라 달려가드마. …응아? 내는 누고, 이런 데서 머 하냐꼬? 헤헤, 글쎄. 말하자믄 긴데, 들어 줄라꼬? 내 홍차 정도는 대접할 수 있데이. 

고맙데이. 내 혼자 여서 오래 살았드니 말동무도 없고, 하도 심심해서 손 닿는 대로 인형이나 하나둘 맹글다보니 집이 요래 인형투성이가 됐다 안하나. 응아, 다 내가 맹근기다. 앞이 안 보이는데 어케 맹글었냐꼬? 살아생전에 하도 많이 꼬맸더니 손이 기억하드마. 쫌 무섭게 생기긴 해도 기엽제? 내 요래요래 앉아서 마 인형만 주구장창 맹글어뿐다카는 소문이 어데서 났는지 산타 할아버지가 글쎄 스카우트하러 왔다가 인형 생긴 거 보고 도망가뿟따. 옛날에 스승님이 산타는 없다캐서 내 그런 줄 알고 살았는데, 깜빡 속았제. 스승님 말이믄 다 옳은 줄 알았는데. 하긴, 스승님도 죽어 본 적이 없으니 우예 알겠노.

 

맞다. 내는 그 스승님 기다리는 중이다.

 

아이다, 스승님이 나보다 나이 많다. 그래봤자 한 살이지마는. 머, 오는 데 순서 있어도 가는 데 순서 없다카는 말들 마이 하지 않나. 그런 기제. 그카고 스승님 너무 빨리 오믄 몬쓴데이. 내가 쫌 빨리 와서 그렇제. 헤헤, 마 글케 됐다.

 

으응… 스승님캉 내캉, 옛날에 아이돌을 했었제. 내는 첨에 아이돌을 할라꼬 쫓아간 것도 아니었는데, 걍 스승님 가까이서 보고 싶어서 쫓아갔는데 어쩌다 보니 글케 됐데이. 캐도 마, 마냥 좋았다~ 카는 느낌밖에 안 남았구마. 내는 머리가 나빠서 안 좋은 것까지는 다 기억 몬한다. 그카고 아무리 생각해 봐도 행복했던 기억밖에 없는데 어카노.

 

학교 졸업하고 스승님은 해외로 나가서 진짜 거물답게 활동했데이. 내도 내대로 바빴제. 캐도 스승님 일하는 거 찾아보고, 머 하나 할 때마다 입이 딱 벌어지는 스케일로 예술을 하니께 을매나 멋있나. 내는 이미 홀딱 반했는데 여서 멀 더 반하게 할라꼬-! 하고 혼자 막 몸부림치고 그랬제. 윽수로 짜릿짜릿했데이, 우리 스승님 작품.

 

그나마 가뭄에 콩 나듯 오는 말동무, 스승님 자랑만 하다가 질려서 나가떨어지게 한 기 한두 번이 아닌께 자제할란다. 암튼 글케 바쁘게 활동하믄서도 더러 돌아와서 내캉 아이돌 활동도 해주고 그랬다 아이가. 우리 스승님 참 자상하제.

 

응아, 글케 머 같이 촬영하러 가다가… 사고가 난기다.

 

가파른 산길을 올라가다 촬영 버스가 전복이 됐데이. 그나마 딴 사람들은 크게 안 다쳤는데, 맨 뒷좌석에 앉아 있던 내는 거의 튕겨져 나간기다. 머리를 심하게 들이박아가꼬, 마, 그기 치명적이었제. 그카고 스승님은 그 와중에도 내를 붙잡을라카다가 눈을 다쳤다.

 

내는 여한이 없었다. 어려서 힘들게 살았어도, 스승님캉 몇 년 같이 보낸 기 을매나 행복했는지 모르제. 내 인생에 그라믄 충분한 기 아이가. 인간, 어차피 밍숭맹숭하이 오래 살아 봐야 행복한 시간이 얼마 되도 않는데 그 정도믄 내는 누릴 거 다 누렸데이.

 

캐도 스승님은 아직 작품 더 해야지 않나. 예술 더 해야지 않나. 오~래오래 살아서 세상 사람들이 스승님 대단한 걸 다 알아 줄 때까지, '어리석고 무지한 속물 대중들이 참된 예술의 진가를 알아볼 때까지'-아차, 스승님 말버릇이 옮아버렸데이. 헤헤, 말하자믄 머 그런 기다.

 

그러니 스승님 눈 다친 거 보고 내가 죽어서도 그 자리를 몬 떠나고 뱅뱅 돌았다 아이가. 그나마 내 눈이 살아 있어서 스승님 줄 수 있게 됐다는 거 보고 내 춤을 췄데이. 어차피 아무도 몬 보니께 맘껏 췄제. 그래 엉망진창으루다가 추는 걸 스승님이 봤으믄 마 호통을 쳤겠다마는, 헤헤.

 

생전에 내 눈은 짝짝이였데이. 응, 이짝이 파란색. 이짝이 노란색. 지나가는 사람들마다 다 쳐다보면서 손가락질들 해대니께 내는 참 싫었데이. 스승님캉 아이돌 하믄서는 그래도 쫌 좋아졌다마는…. 암튼 그런 내 눈이 스승님한테 도움이 되다니 세상 오래 살고 볼 일이제. 응헤헤, 오래는 몬 살았지마는. 내 시력은 그냥저냥 쓸만해도, 혹시 스승님 원래 눈이랑 달라서 앞을 보는 데 폐가 되믄 어카노… 하는 걱정도 했는데, 마 내 눈으로 봐도 스승님 얼굴도 아름답고 스승님 작품도 아름다우니께 큰 차이는 없을끼라고 생각해뿟따.

 

그거까지 다 보고 나서 후련하게 터덜터덜 저승으로 왔는데 마 문제가 생겼다 아이가. 내 스승님하고 약속했데이. 지옥 끝까지 같이 간다꼬. 근데 혼자 이래 와뿟다. 내 머리가 나빠서 여까지 다 와서야 그게 생각이 난기다. 아차차, 우야노.

 

마, 말은 그래 했어도 내는 우리 스승님 진짜 지옥 갈 끼라고는 생각 안한데이. 그케 아름다운 예술을 수십 년 빚어낸 사람인데 하느님도 생각이 있으믄 스승님 천국으로 델따가 천국을 치장하는 데 써야지 않긋나. 캐도 마 어차피 죽으믄 일루 한 번 오게는 돼 있으니께, 내는 여서 꼼짝도 안 할끼라고 주저앉아서 발버둥을 쳤데이. 우리 스승님 혹시 내가 먼저 지옥 가뿟따고 생각하고 지옥 쪽으로 갈까봐 걱정이 돼서, 잘 지키고 기다렸다가 몇 십 년 후에 오믄 스승님 이짝이 아이다~ 천국은 저짝이다~ 하고 잘 갈켜줄라꼬.

 

응아? 아, 내는 마 자신은 없다마는 최대한 매달려 볼끼다. 우리 스승님 가는 데 내도 따라가게 해 달라꼬, 자리 크게 안 차지하고 그냥 옹크리고 있을텡게 옆에만 있게 해 달라고 싹싹 빌어봐야제.

 

진짜다, 내는 스승님에 대한 기억빼고는 인제 남은 기 거의 없어서 진짜 자리 안 차지하고 쪼맨하다. 내 이름도 까묵었데이.

 

첨에 내가 여 주저앉아서 스승님 올 때까지 기다린다카니까 그러기는 하드마. 연옥에 오래 있으믄 기억이 다 날아간다꼬, 영혼은 기억으로 맹글어져 있는데 기억이 다 날아가믄 차츰차츰 영혼이 소멸되는 기나 마찬가지라꼬, 그래서 연옥에 오래 있지 말고 천국이든 지옥이든 빨랑 선택해서 가야 된다고 그라드마는. 내는 그래도 개안타 캤다. 스승님에 대한 기억만 꼭 붙들고 있는다 캤다. 내가 다 날아가도 좋으니께 우리 스승님만 오래오래 살았으믄 좋겠데이. 백 살 이백 살 살아서 마스터피스 많이많이 남기고, 최대한 늦게 와야제.

 

욕심이 있다믄 그래도… 완전히 다 날아가기 전에만 와 주믄 좋겠데이.

 

응아아… 와 우노, 우지마래이. 아이고 수도꼭지 열렸네. 여긴 인형 맹글다 남은 천쪼가리밖에 없다 아이가. 먼지투성이라 이런 걸로는 눈물 몬 닦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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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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