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미카] commedia d’amore

※허구와 날조 100%, 공식 설정과 다른 부분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응아~…." 

"어머, 미카쨩?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방과 후, 카페테라스에 앉아 멍하니 실뜨기를 하며 끙끙 앓는 미카를 보고 아라시가 걱정스럽게 물었다. 미카는 한동안 생각에 잠겨 있다가 문득 아라시를 보더니 퍼뜩 놀랐다. 

 

"응앗! 나루쨩, 언제부터 거기 있었노?!" 

"아까부터 계속 앉아 있었잖니. 어머나, 정말 중증이네. 왜 그래?" 

"응아아…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가…." 

"수수께끼?" 

 

아라시는 고개를 갸웃하다 문득 손뼉을 쳤다. 

 

"아, 알았다. 그러고 보니 얼마 전에 이츠키 선배가 다녀갔었지? 그것 때문이야?" 

"나루쨩 눈은 속일 수가 없구마…." 

"미카쨩이 그렇게 넋을 놓고 고민하는 일이 그 사람 일 말고 또 있겠어? 왜, 무슨 일이 있었는데?" 

 

실뜨기로 온갖 모양을 만들며 고민하던 미카가 마지막으로 그린 모양은 태양이었다. 

 

"스승님이 이번에는 그래도 꽤 오래 있다 갔다 안카나? 3주나 있었으니께." 

"으응, 지난번에 Valkyrie가 '선라이징 페스티벌'에서 꽤 큰 무대를 준비했다고 들었어. 그 완벽주의자가 시간을 들이고 신경 써서 꾸밀 만큼 중요한 행사인 건 나도 알아. 왜? 거기서 무슨 문제가 있었어?" 

"아이다, Valkyrie의, 스승님의 무대는 완벽했데이. 스승님이 요새는 자꾸 내를 앞으로 내세우고 내한테 무대 구성을 맡길라캐서 쪼매 서운했는데 오랜만에 스승님 인형이 된 거 같아서 내는 행복했다 아이가." 

"우후후, 그렇게 온 얼굴이 다 흐물흐물해질 정도로 활짝 웃는 미카쨩도 오랜만에 보는 것 같네. 그런데 왜?" 

 

미카는 식은 홍차를 한 모금 마시고 응아~ 하고 또 앓더니 입을 열었다. 

 

"사실 Valkyrie의 스케줄에는 원래 이 페스티벌이 없었데이. 근데 저번 달 말쯤인가 스승님이 갑자기 전화를 해서는 '카게히라, 출전하자는 것이야! 나는 반드시 이 페스티벌에서 우승하여 저 전위적이고도 예술적이기 그지없는 트로피를 거머쥐어야만 한다는 갈망에 사로잡히고야 말았다! 카카카!'하면서 사무소에다 자꾸 얘기하라카이 내 할 수 없이 얘기하고 신청한기제. 그랬드니 마 1주일도 안 돼서 날아와가꼬는 머에 홀린 듯이 무대를 짜고 신곡을 맹글고 안무를 맹글고 레슨을 하고 하믄서 3주가 어케 갔나 모를 정도였데이." 

"나도 요 근래 일이 바빠서, 제대로 체크하지 못했던 사이에 그런 일이…." 

"캐서 지옥 같은 준비 기간이 끝나고 나서, 스승님이 원하던 트로피를 딱 받아내고 물어봤다 안카나. 머에 그래 꽂혀가꼬 갑자기 여그를 나오자 한기가? 그랬더니…." 

"그랬더니?" 

"'카게히라, 선라이징, 선라이징이다! 떠오르는 태양! 아아, 아름다운 생명의 근원, 우리의 동포! 이 태양의 트로피를 획득함으로써 우리가 진정한 태양의 자손임을, 우리 둘이 함께라면 신도 이길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는 것이야!'하면서 내를 이르케 이르케 꽈악 안고 막…. 그카고 끝나자마자 바쁘다고 홀랑 프랑스로 가뿟따. 내는 스승님이 대체 머에 그래 꽂혔는지 아직도 통 모르겠는데…." 

"태양의 자손…? 신도 이길 수 있음…?" 

 

미카의 말을 곱씹던 아라시의 얼굴이 갑자기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응아, 나루쨩? 얼굴이 와 그라노? 열 나나?" 

"아이참, 이래서 무자각이 더 무섭다니까…. 세상에, 그렇게 열렬한…. 하긴, 좋은 쪽으로나 나쁜 쪽으로나 열정적인 사람이긴 하니까…." 

"멀 그래 혼자 중얼중얼하는 기가?" 

"아니야, 어휴. 왜 이렇게 덥니?" 

 

아라시는 손부채질을 하며 얼굴을 식혔다. 당사자인 미카는 고개만 갸우뚱하면서 천연덕스러운 얼굴인데, 아라시 입장에서는 괜히 옆에 있다가 엉뚱하게 유탄을 맞은 꼴이었다.

 

"하아… 미카쨩네 스승님, 정말 로맨티시스트네. 알고는 있었지만." 

"응아? 방금 얘기에서 무슨 흐름으로 그래 되는데?" 

"아니야, 뭐. 정답은 미카쨩 스스로가 찾아내야지 내가 말해 줘서 될 일이 아닌걸. 그보다 그 태양의 트로피라는 거, 어떻게 생겼는지 보여줄 수 있니?" 

"아, 그기라믄 사진 찍어놨데이." 

 

미카가 열심히 갤러리를 뒤져 사진을 보여주자 아라시는 또다시 성대하게 한숨을 내쉬었다. 

 

"정말…. 일부러 그런 건지, 우연인지…." 

"으으응?" 

"하아아…. 아니야. 미카쨩, 아마 성주관 북 룸에 가면 답을 알 수 있을 거야. 거기 상주하는 서클 사람들에게 이츠키 선배가 했던 얘기를 하고 어떤 책을 보면 될지 물어봐." 

 

미카는 아라시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말하는 걸로 봐서는… 나루쨩은 정답을 알고 있는 거 같은데? 와 나루쨩이 말 안 해 주는기고? 말 몬할 사정이가?" 

"나는 미카쨩이 진실을 알았을 때의 얼굴을 보고 싶은 마음이 1, 안 보고 싶은 마음이 9거든." 

"응아? 내는 태양의 자손이라카길래 아마테라스 오오미카미 얘긴가, 스승님이 갑자기 일본 신화에 꽂혔나 하고…." 

 

갑자기 아라시가 미카의 두 손을 감싸쥐더니 무시무시하게 정색을 하고서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단언컨대 그건 아니야. 내가 차마 직접 올바른 길을 제시해 줄 수는 없지만, 제발 부탁인데 엉뚱한 데로 새진 말아 줘." 

"웅냐?" 

 

 

***

 

아라시의 태도를 도무지 이해하지 못한 채 미카는 북 룸으로 향했다. 어두컴컴한 그 안에서는 누군가가 서가 앞에 서서 책 페이지를 넘기고 있다가 인기척을 느끼고 뒤를 돌아보았다. 

 

"아니, 미카 군. 무슨 일이에요?" 

"츠무쨩 선배! 선배가 있어서 다행이데이." 

 

미카는 반색을 하며 다가갔다. 츠무기가 다정한 미소를 지으며 읽고 있던 책을 덮었다.

 

"제가 있어서 다행이라니, 그런 말은 참 오랜만에 듣네요." 

"내사 머 물어보고 싶은 기 있었는데 츠무쨩 선배라면 편하제. 츠무쨩 선배,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을 잘 듣고 정답이 뭔지 맞춰보래이." 

"후후, 수수께끼인가요?" 

"첫째, 태양의 자손." 

"으응?" 

"둘째, 둘이 함께라면 신도 이길 수 있음." 

"저, 지금 남의 연애 이야기를 듣고 있는 건가요?" 

"아이다, 먼 소리고. 응아, 이걸로 모르겠으믄… 맞다, 사진." 

 

미카가 마찬가지로 스마트폰을 꺼내 사진을 내보이자 츠무기는 안경을 치켜올리며 빤히 들여다보았다. 

 

"이건… 상패 위에 둥그런 구가 있고, 그 구에서 길게 뻗어나온 돌기가 정확히 같은 간격으로 여덟 개… 방금 태양의 자손이라고 했으니까 이걸 태양이라고 생각하면… 아! 알았어요, 미카 군." 

"이걸로 아는 기가? 그러고 보니 나루쨩도 이걸 보고 무릎을 치드마." 

"네, 미카 군. 잠시만 기다리세요. 아마 이 근방에…." 

 

츠무기가 허리를 숙여 아래쪽 서가를 한참 들여다보더니 얇은 책을 한 권 뽑았다. 

 

"플라톤의 <향연>이랍니다. 아마 아리스토파네스의 연설 부분인 것 같네요." 

"어데 보자…." 

 

-먼 옛날, 인간은 둥근 몸뚱이에 네 개의 팔과 네 개의 다리를 가진 존재였다. 

-남자 두 명이 등을 맞대고 붙어 있는 자는 태양의 자손, 여자 두 명이 등을 맞대고 있는 자는 땅의 자손, 남녀가 등을 맞대고 붙어 있는 자는 달의 자손. 

-이들은 너무나 강한 나머지 오만했고, 그리하여 제우스는 이들을 번개로 내리쳐 각각 반으로 쪼개 버렸다. 

-이리하여 원래 둘이 하나였던 인간은 자신의 반쪽을 그리워하며 지금도 하염없이 서로를 찾아다닌다. 

 

"응아… 맞는 거 같구마. 츠무쨩 선배 대단하데이. 아, 나루쨩도 대단한 건가?" 

"유명하니까요, <향연>은. 슈 군이 낸 수수께끼인가요?" 

 

츠무기가 웃으며 물었다. 미카는 고개를 끄덕이는 것도, 가로젓는 것도 아닌 애매한 동작을 취했다. 

 

"아마 스승님은 자기가 수수께끼를 냈다고 생각도 안 할끼다. 내가 걍 몬알아듣고 낑낑대서 그렇제." 

"아하하. 그래도 뭔가 슈 군답네요." 

"그런가아? 마, 내한테는 그냥 스승님 혼자서 태양 같꼬 신 같은 존재라 굳이 둘이 아니어도 최강인데…. 캐도 마, 스승님한테는 나즈나 형도 있었고 오기인 친구들도 있었지만 지금 일케 등을 맞댈 수 있는 인간은 나뿐이라는 얘기것제?" 

 

츠무기는 웃는 얼굴로 얼어붙었다. 

 

"미카 군?" 

"고맙데이, 츠무쨩 선배. 선배 없었음 내 혼자 한참 낑낑댔을끼다. 그라믄 수고하이소~." 

 

남겨진 츠무기가 혼자 중얼거렸다.

 

"슈 군, 고백한 건 슈 군인데 왜 제가 대신 차인 기분일까요." 

 

 

***

 

 

그날 늦은 저녁, 미카가 파리로 영상통화를 걸어 "스승님! 내 <향연> 읽고 왔데이!"-"호오? 부족한 머리로 생각보다 금세 정답에 도달했군? 그래서… 큼큼. 무슨 뜻인지 알았느냐는 것이야."-"옹! 내 스승님이 내한테 항상 등을 맡길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서 예술활동 열심히 하겠데이!"-"농…!!!" 벌떡 일어나는 바람에 책상 위에 있던 선라이징 페스티벌 트로피가 거꾸로 떨어져 슈의 머리를 강타하고, 슈가 머리를 부여잡고 주저앉자 영상통화 너머로 미카가 "스승님 괘안나! 스승니이이임!!"하고 애타게 부르짖기까지, 앞으로 네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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