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미카] All is well that ends well

※허구와 날조 100%, 공식 설정과 다른 부분이 있을 수 있습니다


아직 환한 대낮 같지만 벌써 저녁 7시 반이 넘었다. 시킨 대로 적당한 수준의 캐주얼 정장을 갖춰 입고 나온 미카는 무대의상과 달라 뭔가 어색하고 답답한 듯 목깃을 잡아당기고 있었다. 출발은 8시 반, 탑승은 8시, 그 15분 전까지는 도착해 있는 것이 신사의 교양이라는 말은 조부에게서 귀에 딱지가 내리도록 들은 이야기였다. 미카를 향해 그 말을 똑같이 반복하는 자신의 모습을 보니 속으로 쓴웃음이 나왔지만, 알고 있다. 자신이 아는 가장 훌륭한 것들은 모두 조부에게서 배웠으니 어쩔 도리가 없다는 것을.

"응아~ 강바람이 시원하구마."

나란히 강변을 걸으며 미카가 중얼거렸다. 어째서인지 행동거지가 다소 어색하고, 얼굴도 붉어서 계속 손부채를 파닥거리는 모습을 보니 고급 선상 레스토랑의 첫 경험이 어지간히도 긴장되는 모양이라는 생각에 슈는 옅은 미소를 지었다. 

"살롱에 갔다가 최근 파리에서 꽤 유행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으니, 어쩌면 내 지인과 마주칠 수도 있을 텐데… 요즘은 많이 나아졌다고는 해도 아직 매너에 조심할 부분이 많으니 신경 쓰도록."

"스승님 친구?! 내 아직 제대로 대화할 만큼 불어 잘 하지도 몬하는데에…."

조금 쑥스러운 마음을 감추려 습관적인 지적이 튀어나오는 바람에 아직 스승으로서의 습관을 채 버리지 못했다는 사실을 깨닫고 슈가 칫, 하고 혀를 차자 미카는 있는 힘껏 어깨를 움츠렸다. 모자란 자신 때문에 화가 났다고 생각하는 모양인데, 따지고 보면 아직 연인으로서의 자각이 부족한 건 오히려 슈 쪽인지도 모른다. 거기까지 생각한 슈가 긴 한숨을 내쉬자 미카는 더욱 위축되었다. 정말이지, 꽤 오래 알고 지낸 사이인데도 늘 이렇게 악순환을 달린다.

"…네 어학 실력의 미숙함을 지적하려는 게 아니라는 것이야. 다만, 나 역시…."

"응아?"

한껏 가슴이 부풀어 있었다고 입 밖으로 내어 말하는 것은 더욱 쑥스러웠기에 슈는 헛기침을 하며 시선을 돌렸다. 애초에 식당 중앙 여기저기에 놓여 있는 다인석 테이블이 아닌, 2인석이며 두 의자가 모두 창가를 바라보고 있는 프리빌레쥬 좌석을 택한 것은 물론 미카의 첫 디너 크루즈 경험을 더욱 선명하게 물들여 주고 싶은 마음과 동시에 지나가는 사람과 얼굴을 마주치지 않게 하려는 의도도 있었다. 공공장소이지만, 가능하면 방해받고 싶지 않았다. 모처럼 연인 앞에서 허세를 부리려는데 말이다.

연인. 슈는 입 속으로 그 말을 곱씹었다. 단순한 선후배, 또는 유닛 멤버이자 사제관계일 뿐이었던 담백한 사이를 그것으로 바꾼 게 과연 정답인지는 솔직히 아직도 확신이 들지 않았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현재가 바뀐 상태인지도 자신이 없다. 자신은 (오히려 미카가 당연히 뛸 듯이 기뻐하며 달려들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파리에서의 완전 동거 제안도 거절당했고, 얼마 전 일부러 미카를 베르사유 궁전의 프티 트리아농 안에 있는 사랑의 신전까지 데려가 가장 로맨틱한 고백 계획을 실행에 옮겼는데도 미카의 반응이라고는 밋밋하게 고개를 몇 번 끄덕인 뒤 금세 주위를 둘러보며 '응아~ 우리 생전장례 콘테스트 때 했던 그 무대 배경 아이가~? 사진은 마이 봤는데 실물은 처음이구마~'라고 중얼거린 정도였다. 거절할 때는 확실하게 뜻을 표시하는 아이이니 거절당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면서도, 그렇다고 승낙인가 하면 또 애매하다.

그래서, 디너 크루즈다. 슈는 이 로맨틱한 장소에서 다시 한 번 시도할 생각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성공하면 스마트하게 직행할 호텔도 이미 예약해 두었다.

"스승님, 여기 진짜 비싸 보이는데에…."

선내로 들어가 자리를 안내받으면서 미카가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어지간히도 긴장이 되는지 아무 것도 없는 곳에서 발을 헛디뎌 혼자 넘어질 뻔한 것을 슈가 재빨리 붙잡고 일으켜세우자, 상기된 얼굴로 헤헤 웃는다. 최근 들어서는 많이 침착해진 편이라고 생각했는데 여전히 산만한 이런 모습을 보면 예전의 그림자가 다소 그립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자신이 응석을 받아 주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눈에 힘을 주었다. 아무리 연인 사이라 해도 양보할 수 없는 부분이 있었다.

"누가 언제 어디서 보고 있을지 모르는 환경이니 늘 정신을 바짝 차리고, 누구의 눈에도 부끄럽지 않게 행동하도록."

"응아, 응."

물 흐르는 듯한 동작으로 미카의 의자를 빼 주고, 스스로도 자리에 앉은 슈는 창 밖을 확인했다. 아직 출발하지 않아 크게 볼 만한 풍경은 없었지만 주위에 있는 다른 유람선들과 거기에 탑승한 관광객들에게서 설레는 분위기가 전해져 왔다. 더위가 적당히 식은 여름 저녁, 한쪽에서는 노년의 연주자가 바이올린을 들고 조율을 하는 중이었다. 손님들이 하나둘 자리를 채우고 어느덧 시간이 되자 배가 소리 없이 미끄러지듯 출발했다. 마찬가지로 창 밖에 시선이 못 박혀 있던 미카는 어린아이처럼 깜짝 놀랐다가 부끄러워하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

"…하루이틀 정도는 시차 적응을 힘들어하는 것 같아 디너의 날짜를 오늘로 잡았다만, 문제는 없었겠지?"

"으, 응. 내도… 마음의 준비가 필요했으니께."

"후후, 이제 그만 익숙해질 때도 되지 않았느냐."

사람들에게 얼굴과 이름이 알려지는 직업을 갖게 된 지도 어느덧 짧지 않은 시간이 흘렀다. 카게히라 미카는 더이상 칸사이의 어느 허름한 고아원에서 동생들을 돌보는, 사람들이 기피하는 짝짝이눈의 고아가 아니라 Valkyrie의 단둘뿐인 멤버로서 조금 어른스러운 분위기의 저녁식사쯤은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유명 아이돌이다. 

"어, 어려운 소리 하지 마래이…."

미카가 중얼중얼 대꾸하는 가운데 에피타이저로 차가운 훈제연어와 아보카도 사과 샐러드가 서빙되었다. 천천히 창 밖으로 흘러가는 풍경은 어느덧 해가 지고 차츰 핑크빛 석양으로 물들어 가고 있었다. 눈앞에 나타났다가 머리 위로 흘러가는 센 강의 다리들에도 가로등이 켜져 분위기가 나름 무르익어 가는 가운데, 슈가 헛기침을 하고 입을 열려 할 무렵 미카가 갑자기 엉거주춤 허리를 일으키며 밖을 향해 양 손을 크게 흔들었다.

"카, 카게히라?!"

"응아~ 밖에서 사람들이 손 흔든다 아이가! 응헤헤, 내도, 내도! 안녕하이소~!"

끊임없이 유람선이 오가는 센 강에서는 유람선에 탄 사람들도, 강가에 산책이나 운동 나온 사람들도, 또 다리 위로 지나가는 사람들도 거리낌없이 손을 흔들며 인사를 나눈다. 프랑스인들의 그런 소탈함을 슈도 기껍게 여기고는 있었으나, 막상 눈앞에서 파트너가 다른 곳에 정신이 팔려 있으니 그리 유쾌하지는 않았다. '앞에 내가 있으니께 내 생각만 하믄 좋겠구마'하고 미카가 가끔 투덜거리곤 했는데 그 마음을 조금은 알 것 같은 기분이었다.

"농! 갑자기 그렇게 벌떡 일어나면 주목을 끌 것 아니냐."

"응아아, 미안타. 내 그만…."

슈가 헛기침을 하며 주의를 주자 미카는 뒤늦게 자신에게 선내의 시선 몇 개가 모인 것을 느끼고 고개를 푹 숙인 채 털썩 주저앉았다. 원래도 침착하지 못한 부분을 자주 지적받기는 했지만 많이 고쳐졌다고 생각했는데, 오늘따라 유난히도 예전처럼 산만한 느낌이었다.

"디너 크루즈가 아니라 일반 유람선을 타는 편이 나았을까?"

메인디시인 농어구이와 허브 쇠고기 스테이크가 나왔을 무렵, 슈가 드물게도 조심스럽게 물었다. 사실은 어둠이 깔리고 슬슬 가로등이 켜지고 오렌지빛으로 물든 아름다운 에펠탑이 등장할 무렵 그 로맨틱한 분위기를 타고 다시 한 번 고백으로 끌고 갈 생각이었지만, 미카가 통 이 장소에 적응하지 못하고 계속 저렇게 허우적거릴 경우 의미가 없다. 

프티 트리아농도 센 강 디너 크루즈도 전부 자신이 고른 장소였다. 하지만 고백을 받을 사람은 미카고, 그런 장소들이 미카에게 어색하거나 낯설 것이라는 생각은 미처 하지 못했다. 슈는 뒤늦게나마 반성하고, 오늘은 그냥 미카의 긴장을 풀어 주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데에만 열중해야겠다는 생각에 그렇게 물었다.

그러자 미카가 깜짝 놀란 얼굴로 고개를 붕붕 가로저었다.

"아, 아이다! 무신 소리고! 스승님이 저런 데 낑겨 앉았다가는 사람 멀미 나가 강에다 대고 막 토한데이!"

"전부터 느꼈다만 너는 대체 나를 얼마나 연약하게 생각하는 것이야?"

오히려 슈에 대한 평가로 말하자면 미카의 친구인 아라시의 평가가 더 듬직하다.

"그치만 전에는 실제로 사람 많은 데 갔다가 쓰러질 뻔한 적 있지 않았나?"

"언젯적 이야기를 하는 건지. 그때에 비하면 어느 정도는 익숙해졌다는 것이야. 게다가… 보다 시끌벅적하고 대중적인 분위기를 네가 원한다면 그 희망을 들어 주지 못할 것도 없고."

"으응, 아이다…. 미, 미안타, 스승님… 내 정신 사나버가…."

"그래, 오늘따라 유난히 산만하군. 그렇게 이 차분한 분위기가 적응이 안 되는 건가?"

한쪽에서 이름 모를 가수가 잔잔한 샹송을 부르고, 그 외에는 커틀러리 딸그락거리는 소리와 낮은 대화 소리만이 깔려 있었다. 통유리를 씌운 배는 천천히 물살을 가르고 나아가며 양쪽으로 오르세 미술관, 노트르담 성당 들을 스쳐갔다.

"그, 그거는 아이지마는… 내, 내는 처음이니께… 우야믄 좋을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아이가…."

슈가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아직도 그런 소릴. 다 경험이고, 무엇보다 실수가 없도록 내가 곁에서 도와줄 테니 그만 긴장하라는 것이야."

"으, 으으응… 그라믄 내, 스승님만 믿는데이…."

눈알만 데굴데굴 굴리며 눈치를 보던 미카가 겨우 메인디시 접시에 손을 댔다. 에피타이저 때부터 그랬지만, 테이블 매너는 이츠키 집안에서 잘 배운 덕인지 생각보다는 크게 흠잡을 데가 없다. 그래도 저렇게 겁을 집어먹는 것은 여전히 스스로에게 자신이 없거나, 또는 실수할 경우 슈에게 야단을 맞을지 모른다는 걱정 때문이겠지. 슈는 마음속으로 새삼 한숨을 쉬며, 앞으로는 가능한 한 칭찬을 하도록 노력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치즈를 가져온 서버가 와인을 마실지 물었다. 

"스, 스승님, 내… 도수 있는 거, 한 잔만 마시믄 안 되나…?"

미카가 움츠러든 채 물었다. 뜻밖의 말이었기에 슈는 조금 놀랐다.

"일본에서는 아직 성인이 되지 않았다만, 프랑스에서는 정해진 음주 가능 연령이 없으니 보호자인 내가 허락한다면 마실 수는 있기는 한데…."

"부탁이데이, 스승님. 내, 아무리 생각해도 와인이라도 한 잔 안 하믄 제정신으로 앉아 있기가 힘들 것 같구마."

슈는 잠시 고민했다. 긴장을 풀려는 나름대로의 노력이기야 하겠지만, 그리고 이 안에 파파라치 따위가 있을 것 같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모국에서는 아직 미성년자인 아이돌이 알콜을 마시는 모습을 혹시 사진 찍히기라도 하면 곤란해진다. 

결국 슈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네 주량이 어느 정도인지도 모르는데 밖에서 첫 음주 경험을 시킬 수는 없다는 것이야. 나중에 일본 나이로 성인이 되면 집에서 함께 마시자꾸나. 여기서는 곤란해."

"으, 응아… 그, 그렇겠제. 미안하데이, 스승님. 생떼를 써가…."

고개를 숙이고 우물쭈물하는 미카가 조금 안쓰럽게 느껴졌고, 앞으로 이런 자리에 더 자주 데려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기분이라도 내라는 의미로 미카를 위해 논알콜 샴페인을 주문한 슈는 솔직히 말하면 자신도 흠뻑 한 잔 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고백이고 뭐고, 자신은 가볍게 생각하고 그냥 '파리에서 유행이니까'라는 핑계로 데려온 디너 크루즈에서 미카가 저렇게나 긴장해서 어쩔 줄 몰라 할 줄은 정말이지 생각도 못 했다. 

체면상 와인을 벌컥벌컥 마실 수는 없어 살짝 입술을 적시는 정도로만 홀짝이며 밖을 내다보는데 어느덧 까만 밤하늘을 배경으로 환하게 조명이 켜진 에펠탑이 시야에 들어왔다. 언제 보아도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예쁘다…."

미카도 홀린 듯 그쪽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단체관광객이 가득 탄, 옆을 지나가는 유람선에서는 사람들이 저마다 휴대전화를 꺼내 사진 찍기에 바빴다. 

"응아아! 내, 내도, 사진 찍어가 나루쨩캉 리츠 군한테 보내주까…."

"농! 선상에서 보는 에펠탑은 멀리서부터 차츰 다가갔다가, 다시 멀어지는 과정을 전부 눈으로 담아야만 온전히 감상할 수 있다는 것이야! 인간의 눈이야말로 가장 훌륭한 카메라. 찰나를 사진에 담으려 해 보았자 결국 이 예술적인 풍경의 열화된 한 장에 불과할 뿐이지."

"마, 맞데이…."

고분고분 휴대전화를 집어넣고 창 밖으로 눈을 돌리는 미카를 보며 슈는 또 마음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자신과 함께 있을 때는 자신 생각만 하라고, 먼 바다 너머에 있는 친구들이 그리운 마음은 알겠지만 그들은 어차피 자신이 없을 때 너를 독점할 것이 아니냐고, 그렇게 솔직하게 말할 만큼은 아직 솔직해지지 못한 자신이 조금은 신물이 났다. 하지만 막상 그렇게 말하는 스스로를 생각하면 또 그 풍경 역시 도무지 용납되질 않았다.

결국 이렇게, 미카의 미숙함을 야단치는 형태로 자신의 소망을 관철시키고 만다. 

"하아… 나도 아직 부족하다는 것이야."

"응아? 스승님은 항상 최고로 멋지고 세상에서 제일 훌륭한 사람이데이!"

미카가 숨 돌릴 틈도 없이 반박했다. 슈는 마치 그 단정한 이마에 딱밤이라도 맞은 표정으로 눈을 잠시 끔뻑거리다가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정말이지, 생각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어…."

역시 아직 연애감정이라고는 제대로 알지 못하고, 그저 스승에 대한 순수한 경애의 마음만이 가득한 이 아이에게 고백이니 호텔에 데려가느니 하는 일은 시기상조였는지도 모른다. 이제 학교도 졸업했으니 프랑스와 일본을 오가는 일도 훨씬 자유로워졌고, 두 사람이 함께 보낼 시간은 작년보다 훨씬 넉넉하다. 함께 같은 마음을 쌓아올리는 일을 지나치게 서두를 필요는 없지 않을까.

슈는 그렇게 마음을 정리하고, 역시 오늘은 식사가 끝난 후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집에 돌아가는 편이 좋겠다고 결정했다. 성급하게 방을 잡아 놓았다는 사실을 들키는 것은 부끄러우니 디저트를 먹은 후 배가 부두에 귀환하기 전, 화장실이라도 다녀오겠다는 핑계로 잠시 자리를 비워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미카가 발그레한 얼굴로 자신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 식사 시간이, 거의 다 끝나 가네에…."

"응? 그렇지. 2시간 반 코스였으니… 집에 돌아가면 목욕하고 자는 일만 남았군. 유럽의 저녁식사는 시간이 늦고 또 길기까지 해서, 깜빡 방심하면 금세 한밤중이 되곤 한다니까. 이것만큼은 통 적응이 되질 않아."

"지, 집에 가는 기가?! 그냥?!"

"응?"

미카가 갑자기 커다란 소리로 외치는 바람에 슈가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있는데, 미카는 그만 디저트 접시 옆에 풀썩 엎드리고 말았다.

"내, 내, 내느은… 응아아아… 아, 아이다아…."

"진정해, 카게히라. 갑자기 왜 그러지? 무슨 일이야?"

"응아아… 응아아아…."

어깨를 흔들어 겨우 고개를 들게 하니 미카의 얼굴은 완전히 푹 익어 새빨갛게 물들고, 눈물까지 글썽글썽했다.

"스, 스승님, 내 모지란 바보여도, 내 버리믄 안된데이… 스승님이 그런 거 싫어하는 거 알았으믄서, 내 억수로 어마어마한 착각을 해가꼬… 응아아아아…."

"버리지 말라는 말도 오랜만에 듣는구나. 대체 무슨 착각을 했다는 거지?"

"내, 내는…."

"응."

슈가 참을성 있게 고개를 끄덕이자, 미카는 들릴 듯 말듯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밥 묵고… 그…."

"응."

"호텔 가는 줄…."

"응?"

슈가 입을 딱 벌리자 미카는 양손을 마구 내저으며 울상을 지었다.

"내, 내 진짜 지인짜 멍충이 같은 착각을 했데이! 아이다! 잊어 도!"

"아니, 카게히라. 이, 일단… 우리가, 크흠, 교제하는 사이였다는 자각은 있었던 것이야?"

슈 입장에서는 오히려 그쪽이 더 놀라웠다. 

"스, 스, 스, 스승님이…."

"내가?"

"생일선물로… 옷을 받아 줬다 아이가… 내가 직접 맹근 셔츠를…."

"? 그랬지."

"내, 내… 스승님 생일선물 머 주까 고민하다가… 엄청 찾아봤데이. 옷을 선물하는 의미는… '당신을 구속하고 싶습니다'라 카드마…."

"…."

"근데 스승님은 기쁘게 받아 주고… 살롱 가서 자랑한다 카지 않았나. 심지어… 오늘도 입고 나오지 않았나…."

슈는 자신의 상의를 내려다보았다. 미카의 말대로 그것은 작년 생일에 미카가 직접 만들어 준 셔츠였다. 입기 편하고, 라인도 깔끔해서 애용하고 있었다. 그리고 오늘 입고 나온 것 역시 일종의 승부복 의도도 있기는 했다.

"캐서 내는… 우, 우, 우리가… 그때부터 사귄다꼬 생각했는데에…."

꽃말이나 선물의 의미 등에 조예가 깊은 슈가 그것을 모를 리 없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물론, 알고 있었다. 하지만 슈는 오히려 미카가 그런 것을 알 리가 만무하다고 여겼다. 고백은 반드시 자신 쪽에서만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럼 프티 트리아농에서 반응이 미지근했던 게…."

"응아아… 베르사유 궁전? 거, 거기는 데이트 갔던 기 아이가? 설마 그것도 데이트 아니었나?!"

미카는 완전히 울음을 터뜨리기 일보 직전이었다.

미카 입장에서는 그저 데이트 중에 슈가 사랑의 말을 속삭인 데 불과했던 것이다. 그러니 수줍고 부끄럽기는 해도, 그렇게 큰 리액션을 보일 이유가 없었다. 슈는 그제야 전말을 깨닫고 아연해했다.

"그래가 오늘은 선상 레스토랑에서 저녁을 먹는다카이 시간이 딱 끝나믄 호텔 가기 좋을 거 같아가, 우야노, 드디어 내 오늘 밤에 스승님캉 진짜 연인들이 하는 그런 거 하는 기가, 내 안기는 기가, 하고 아까부터 계속 안절부절몬했는데에… 지금 내 창피해가 딱 죽을 것 같데이… 창문이 뚫려 있었으믄 절루 뛰어들었을끼다…."

"네가 센 강의 물고기밥이 되어서는 내가 곤란하다는 것이야."

슈가 테이블 너머로 팔을 내밀어 미카의 손목을 잡았다. 작년보다는 살이 좀 붙기는 했지만 그래도 여전히 야윈 미카의 손목은 꽉 쥐면 바스라뜨릴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슈는 고개를 숙여 그 하얀 물고기 같은 손등에 가볍게 키스를 했다.

"?!"

"후후, 공공장소에서 이런 행동을 해도 누구 하나 뾰족한 눈길을 보내지 않는 나라에 있다는 것은 실로 편안한 일이지. 카게히라, 사랑스러운 나의 카게히라…."

눈물이 쏙 들어간 미카가 어쩔 줄 몰라 하며 주위를 두리번거리는데 사람들은 정말 슈 말대로 아무도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러기는커녕 점점 부두가 다가오자 각자 짐을 정리하느라 바빴다.

"걱정하지 않아도, 집에는 내일 날이 밝은 후에 돌아갈 것이야."

미카의 얼굴이 다른 의미로 다시 빨개졌다. 슈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휴대전화를 꺼내 호텔에 취소 연락을 하는 대신, 택시기사에게 전달할 호텔 주소를 다시 한 번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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