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미카] 사랑이 이렇게 쉬울 리 없어

※허구와 날조 100%, 공식 설정과 다른 부분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것이 언제였는지는 이츠키 슈도 잘 기억하지 못한다. 물론 아름답다고는 처음부터 생각했었다. 너저분하게 길러 제대로 빗지도 않은, 더벅머리 속에 감춰진 푸르고 노란 두 눈동자. 가냘픈 이목구비, 무표정하게 있으면 차가워 보이기까지 하는 분위기. 하지만 웃으면 어린아이처럼 천진난만해지는 얼굴. 자신의 손으로 정리하고, 다듬고, 치장해서 투명한 유리 상자 속에 넣어 두고 영원히 감상하고 싶은 인형 같은 미모.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몸짓은 아무리 가르쳐도 서투르고, 열심히 하려는 의욕은 있으나 모든 것이 기준 이하였다. 그래서 실패작이라고 매도하고, 모자라지만 봐 줄 만한 것은 얼굴뿐이라는 험담을 퍼부었다. 그 바보 같은 인형은 그래도 괜찮다며 배시시 웃었다. 

그런데 정확히 언제인지는 떠오르지 않으나 기나긴 헌신의 기간을 거쳐 끝내 곁에 남아 준 온기를 뼈저리게 느낀 후, 가을과 겨울을 거치며 슈는 상대를 보며 단순히 아름다운 예술 작품을 감상하는 마음이 아니라 차츰 심장이 쥐어짜이는 감각을 느끼곤 했다. 마치 보이지 않는 두 손이 가슴속으로 직접 파고들어 심장을 비틀고 유린하는 그 느낌은 생각보다 고통스러웠고, 생각보다 달콤했다. 채신머리없이 소리 높여 웃고, 툭하면 고함을 지르고, 감정을 다스릴 줄조차 모르지만 때로 깊은 어둠을 드리운 채 정말로 인형처럼 앉아 있으면 깜짝깜짝 놀라게 만드는 카게히라 미카는 영원히 수수께끼의 존재였다. 

졸업 후 머나먼 타국으로 유학을 떠난 후로는 그 존재가 더욱 커다랗게 느껴졌다. 잊을 틈도 없이 전화가 걸려오고, 영상통화를 하고, 그 아이의 작업물이라는 결과가 날아오고, TV와 각종 잡지를 통해서도 소식을 확인할 수 있었지만 사실 슈를 가장 설레게 하는 것은 잠들기 직전, 몽롱한 상태로 침대에 누워 떠올리는 기억 속 미카의 다양한 얼굴들이었다. 매체를 통하지도 않고, 다른 누군가를 향한 표정도 아닌, 오로지 자신만을 바라보며 보여 주던 수만 가지 표정들. 미카의 얼굴을 떠올리며 꿈 속으로 향하면서 슈는 그 달콤한 심장의 저릿함을 차분히 즐겼다. 아아 어쩌면, 어쩌면 돈키호테가 그리던 둘시네아 아가씨는 이런 모습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렇기에 우연히 슈가 잠들기 직전 미카에게서 걸려온 전화를 받다가 무심코 내뱉은 한 마디는, 어쩌면 필연적이었을지도 모른다. 

 

"…카게히라, 나의 사랑. 너만이 나를 한층 더 높은 경지로 데려가줄 수 있는 고귀한 사람이라는 것이야. 수많은 예술가들의 연인이 그러했듯이." 

"응아?" 

 

그러나 미카는 잠시 고개를 갸웃하다 금세 활짝 웃었다. 

 

"고마 스승님, 원래도 말이 어려벘는데 프랑스 가드마 진짜 프랑스 사람처럼 말하네! 내도 사랑한데이!" 

"농!!" 

 

슈는 잠기운이 확 달아나, 벌떡 일어나 앉고 말았다. 커다란 목소리에 미카가 화면 너머에서 깜짝 놀랐다. 

 

"와, 와 그라는데? 지금 그 말에는 쫌 더 얼굴 붉히믄서 수줍어하는 기 정답이었나? 프랑스 사람처럼?" 

"그게 아니고…." 

 

물론 입만 열면 스승님 좋아한데이, 존경한데이, 마카 다 스승님이 최고다, 하는 말을 쏟아내는 미카가 새삼 그런 반응을 보일 것이라고는 슈도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슈는 도저히 수긍할 수가 없었다. 사실 어떤 답변을 들어야 만족했을지 스스로도 잘 모른 채 내뱉은 말이었지만, 그래도 저렇게 환하게 웃으면서 '내도 사랑한데이!'는 아니다. 그건 아니다. 

 

"…미안하다, 잠시 흐트러진 모습을 보였군. 나는 이만 잘 시간이 되었으니 끊자는 것이야." 

"응아, 그짝은 그런 시간이구마. 그라믄 스승님 본 뉘래이~." 

"Bonne nuit. 칸사이 억양으로 말하지 말거라…." 

 

전화를 끊은 슈는 누운 채 긴 한숨을 내쉬었다. 

 

"너의 사랑을 그토록 쉽게 얻어내다니, 그것은 납득할 수가 없다는 것이야…." 

 

유사 이래 지구를 거쳐간 인류가 대략 천 억 명 정도라고 한다면, 세상에는 천 억 가지의 사랑이 있었으리라. 때로 가슴이 벅찰 때면 사랑보다 더욱 높은 단계의 감정을 표현하는 단어가 있으면 좋겠다고 슈는 생각했지만, 세상 그 어느 언어를 찾아봐도 그런 단어는 없다. 대신, '사랑'이란 단어가 없는 언어도 없다. 누구나가 갖고 있으면서 세상 모든 사람을 고결하게 만들어줄 수 있는 그 지고의 감정. 슈는 마음이 앞서 그것을 너무 서툴게 표현한 것을 후회했고, 

 

"사랑을 주고 사랑을 받는 일이 얼마나 어려우면서도 가치 있는 일인지 아직 인간으로서 부족한 그 아이는 잘 몰라. 그러니 그렇게 쉽게 대답했겠지. 이 점에 대해서도 단단히 메인터넌스를 해 줘야겠군." 

 

 

*** 

 

 

"나루쨩, 스승님이 요새 이상해도 너무 이상하데이…." 

 

미카가 울먹이는 얼굴로 아라시에게 그렇게 털어놓은 것은 그로부터 며칠 후였다. 

 

"어머? 왜, 설마 전처럼 다시 쌀쌀맞아진 거야? 역시 사람은 안 변하는…." 

"그기 아이고, 인자는 전화가 하루에 세 번씩 온다. 아침에는 간밤에 잘 잤나, 점심에는 밥은 뭇나, 저녁에는 하루 어케 보냈나." 

"? 응." 

"그카고 입만 열면 세 마디에 한 번씩 내보고 사랑한다 캐싼다." 

"…응." 

"머 어데 좋은 데 갔다오믄 다음엔 꼭 너와 함께 갈 것이야~ 카고, 맛난 거 묵으믄 내 생각부터 난다카이. 훌륭한 예술작품을 봐도, 지나가다 꽃집이 있어도, 네 얼굴을 이길 수가 없다, 네 매력에는 세상 만물이 굴복한다, 자꾸 이라는데 내 몬살겠다." 

"미카쨩, 내가 지금 무슨 얘길 듣고 있는 걸까? 애인 자랑?" 

"아이다, 애인은 무신! 내 진짜 듣다 듣다 괴로워 디비질라카는데 스승님 전화라 끊을 수도 없고 미치겠다 안하나!" 

 

아라시는 차가운 커피를 한 모금 쭉 빨면서 그나마 달콤한 음료를 시키지 않아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고민이 있다기에 만나러 나왔더니 자신의 가장 소중한 친구는 지금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일까. 물론 예전처럼 뱃속이 뒤집어질 정도로 화나게 만드는 이야기는 아니라 다행이지만, 그래도 듣는 사람 입장도 좀 생각해 줬으면 했지만 저렇게 절박한 얼굴로 말하는 것을 보면 본인의 속내는 또 다르겠지. 

 

"사랑을 속삭이고 늘 너를 생각한다는 말이 대체 뭐가 문젠데?" 

"내는 걍 작년처럼 이 실패작! 이 모자란 놈! 뇌에 구더기라도 끓었느냐! 하고 화내는 기 차라리 낫데이. 속 편하고…." 

 

시무룩한 얼굴로 귀여운 곰돌이 모양 쿠키를 조심스럽게 쪼개는 미카를 보며 아라시는 생각에 잠겼다. 

 

"나는 아집의 껍데기 속에 갇혀 세상을 제대로 대할 줄 몰랐던 작년의 이츠키 선배보다 지금이 훨씬 낫다고 생각하는데… 이젠 그냥 미카쨩이 익숙해지는 수밖에 없지 않을까? 어쩌면 그걸 받아 주는 게 이츠키 선배의 창작활동에 더 도움이 될지도 모르잖아. 왜, 예술가들은 감정 표현이 엄청 격렬하니까." 

"그런가…?" 

 

미카는 아직 석연치 않은지 고개를 들지 못했지만, 아라시는 이 서투른 친구가 이제라도 행복해졌으면 하는 마음에 진심으로 말했다. 

 

"여전히 미카쨩과 이츠키 선배 둘 사이에만 통하는 논리와 이치는 나도 잘 모르겠지만 그래도 좋은 말에는 좋은 말로 답해 주는 게 최고라고 생각해. 미카쨩이 그걸 알았으면 좋겠어." 

"응아… 알았데이, 나루쨩! 내 스승님의 창작활동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함 열심히 해볼끼다!" 

"우후후, 좋은 자세야. 역시 사랑 이야기는 언제 해도 즐겁다니까." 

"나루쨩이 생각하는 사랑 얘기캉은 쪼매 다른 거 같은데…." 

 

미카가 에헤헤, 하고 머쓱하게 웃었지만 아라시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어머, 이건 내가 생각하는 아주 로맨틱한 사랑 이야기가 맞거든." 

 

 

***

  

 

당장은 귀국할 수가 없어 전화로 자신이 표현할 수 있는 최대한의 사랑을 성의껏 표현하던 슈는 차츰 미카의 변화를 알아차렸다. 처음에는 "응아! 와카노? 내 근지러워서 몬살겠데이!"하고 어쩔 줄 몰라 하던 미카가 어느 순간부턴가 사랑한다는 말에 "응아~ 그라믄 스승님 오늘 하루도 힘내래이~."하고 물 흐르듯 넘겨버리게 된 것이 아닌가. 

너무 과했나? 진심이 담겨 있지 않은 말이라고 생각했나? 하지만 어째서인지 슈는 그럴수록 더욱 고양되는 기분을 느꼈다. 그랬다, 사랑한다는 말에 사랑한다는 답변을 그렇게 쉽게 받아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사랑을 쟁취하기가, 특히 카게히라처럼 가치 있는 존재의 사랑을 얻어내기가 그렇게 쉬워서는 안 돼. 이것은 내게 주어진 시련인 것이야!' 

 

하지만, 어떤 의미에서는 미카에게 주어진 시련이기도 했다. 

 

"사랑하는 카게히라, 늘 전화로는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정말 오랜만에 이렇게 직접 만나니 기쁘기 그지없다는 것이야." 

"응아, 내도 좋긴 한데… 전화로는 쫌 익숙해졌는데 막상 실물한테 들으니 도로 원래대로 돌아와뿟따…." 

 

공항에서 얼굴을 마주하자마자 캐리어도 내팽개치고 미카의 두 손을 감싸쥐며 달콤하게 속삭이는 슈 앞에서 미카는 전신이 새빨개지고 말았다. 

 

"아직도 내 말을 믿지 못하겠느냐? 카게히라, 아아, 장미꽃처럼 붉어진 얼굴마저 이토록 아름다운…." 

"알았다, 알았다! 알았으니께 후딱 가재이!" 

 

지나가는 사람들도 많은 곳인데 혹시 누가 알아볼까 두려워 미카는 슈의 손을 잡고, 다른 손으로는 캐리어를 끌며 서둘러 걸었다. 슈는 미카의 뒤통수를 사랑스럽게 바라보며 뒤를 따랐다. 

 

"수줍음과 부끄럼이 많은 카게히라, 역시 네게서 사랑한다는 말을 듣기란 어려워야 마땅한 것이야. 네 한 마디는 그만큼의 가치가 있지. 나로 하여금 그 한 마디를 들어내려 노력하게 만들 정도의 가치-." 

"응아, 스승님이 듣고 싶다카믄 내 얼마든지 말해줄 수 있데이." 

"농, 그래선 안 돼." 

"듣고 싶은 기가, 안 듣고 싶은 기가?" 

 

미카가 혼란스러운 얼굴로 돌아보았다. 

 

"듣고 싶다만, 그렇게 척수반사적으로 나오는 대답을 원치는 않는 것이야. 내가 듣고 싶다고 해 주는 고백이 아니라 네 마음에서 우러나는 진심어린 고백을 원한다는 것을 모르겠느냐?" 

"내는 항상 진심으로 하는 말인데…. 스승님한테는 그래 들렸나?" 

"…카게히라?" 

 

자신을 바라보는 미카의 두 눈동자에 차츰 눈물이 차오르는 것을 보고 슈는 당황했다. 

 

"내는… 그야 내는 스승님을 기쁘게 해 주고 싶지마는! 글타고 맘에도 없는 소리는 안 한데이! 내도 진심을 담아가 한 말인데! 스승님한테 글케 들렸다믄 내는… 우야믄 좋노?!" 

"잠깐, 카게히라. 그런 것이 아니라…." 

"내도 진짜 사랑하니까 사랑한다칸기다! 와 모르나!"

  

카게히라가 몸을 홱 돌리더니 앞으로 마구 뛰쳐나갔다. 그 손에는 여전히 슈의 캐리어가 들려 있었기에 우당탕거리는 소리가 주위에 울려 퍼졌다. 

 

"카게히라… 카게히라! 내 말을 좀 들어 다오!" 

"사람 진심도 모르는 스승님하고는 인자 말 안 할란다!" 

 

고개를 마구 내저으며 돌진하는 미카와 한 손을 내민 채 그 뒤를 따라 정신없이 쫓아가는 슈. 둘을 알아본 사람들이 하나둘씩 웅성거리기 시작했고 누군가는 휴대전화를 꺼내 사진을 찍기도 했지만 정작 둘은 주위에 신경 쓸 바가 아니었다. 

 

"응아-!" 

"카게히라!"  

 

무턱대고 한참 뛰어가던 미카가 캐리어 때문에 균형을 잃고 미끄러지는 순간, 겨우 따라잡은 슈가 팔을 붙잡고 허리를 지탱해 사고를 면할 수 있었다. 

 

"허억… 헉… 네 말을… 신용하지 않았다는 것이 아니야…." 

 

슈는 가쁜 숨을 고를 틈도 없이 겨우 붙잡은 미카의 귀에 그렇게 속삭였다. 미카는 여전히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했지만 더 이상 도망칠 생각은 없는지 엉거주춤하게 안겨 있었다. 

 

"다만… 너의 사랑을 얻어내기 위해, 나 역시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을 뿐이다…. 아무 대가 없이 네 사랑을 받다니, 그건 너무 분에 넘치는 일이라고… 나는…." 

 

슈의 말에 미카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스승님이 분에 넘치는 기 어데 있노? 내 스승님한테 줄 수 있는 기 있으믄 남김없이 다 준다꼬 항상 말하지 않았나? 내가 둘이 있으믄 둘, 셋이 있으믄 셋을 다 줄끼다. 아, 캐도 암만 내라도 스승님을 노나 갖기는 싫은데…." 

"네가 둘이 있으면 두 배, 셋이 있으면 세 배로 세상이 아름다워지겠지…." 

"역시 스승님 쫌 이상하데이…." 

 

미카가 슈의 품에서 벗어나 균형을 잡고, 저 멀리로 날아가 버린 캐리어를 주워서 돌아왔다. 눈물로 얼룩덜룩해진 얼굴로도 최선을 다해 웃으며 자신을 바라보는 미카를 보던 슈는 문득 뒤통수를 세게 얻어맞은 기분을 느꼈다. 

 

"네가 내 몫까지의 노력을 했구나, 카게히라." 

"응아?" 

"너와 나의 관계에서 네가 두 배, 세 배… 나로서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의 엄청난 노력을 했던 것이야. 그렇기에 사랑의 말을 그토록 쉽게 표현할 수 있었어…." 

 

슈는 다시 한 번 팔을 뻗어 미카를 세게 껴안았다. 자신의 품에 가볍게 들어오는 비교적 작은 키, 여린 어깨. 하지만 그 안에는 머나먼 고향에서부터 유메노사키 학원까지 찾아올 행동력이, 낯선 환경도 견뎌내는 의지력이, 익숙지 않은 아이돌 생활을 해낼 정도의 뚝심이 들어 있었다. 

그리고 우주보다도 더욱 큰 사랑이. 

 

"대가 없이 받는 사랑이라고 말해서 미안하다, 카게히라. 그 모든, 여기까지 오는 동안 있었던 모든 대가를 너 혼자 치렀다는 걸 미처 몰라서… 미안하다." 

 

멍하니 안겨 있던 미카도 조심스럽게 손을 내밀어 슈의 허리에 팔을 감았다. 

 

"지옥까지 같이 가자는 말, 농담으로 한 기 아이다. 스승님 몰랐나? 내 사랑은 똑같이 우주 같은 사랑이래도 코즈믹 호러데이. 요 속을 열어 보믄 스승님 깜짝 놀랄끼다." 

"하하… 그 정도는 되어야 내 파트너라고 할 수 있지." 

 

 

***

  

 

그 시각, SNS를 체크하던 코즈프로의 사에구사 부소장은 생각지도 못한 해시태그와 끝없이 올라오는 공항 인증샷에 위장병을 앓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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