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토마토 그리고 나
22.07.19 피어나는 꽃에 관해 써라
피어나는 꽃에 관해 상상하다 보니 집에 있는 방울토마토 종이화분이 생각났다. 꽃은 아니지만 어쨌든 같은 식물이니까. 지금 켜놓은 타이머가 뽀모도로(토마토)이기도 하다. 작년 말 겨울에 받아서 구석에 박아 뒀다가 몇 주 전에야 종이화분을 뜯고, 겉면에 희한한 그림도 그리고 이름도 붙여서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베란다에 두어 봤다. 이미 죽었을 거라고 생각은 했지만 그래도 혹시나 해서.
잘 자랐을까? 역시나 죽은 것 같다. 싹도 못 틔우고. 안타깝지만 집에 가면 잘 버려야겠다.
‘꽃을 피운다’라는 건 사람으로 얘기하자면 보통 결실을 맺고 아름답게 성공한다는 뜻이다. 나라는 꽃을 나는 얼마나 잘 피우고 있나 생각하니 그 토마토 같았다. 시기를 놓쳤고, 자랄 거라고 기대도 하지 않았고, 그래서 물도 게을리 줬다. 혹여 실낱 같은 생명의 끈이 살아 있었다 해도 죽을 수밖에 없었다. 내가 식물이었다면 이미 난 죽었을 것이다. 내가 연약한 식물이 아닌 사람임에 안도하게 되는 순간이었다. 식물은 너무나 쉽게 죽어버렸지만, 나라는 꽃은 피지 못하고 곧 똑 떨어질 것 같아도 이렇게 살아있으니까. 죽지 않은 이상 다시 필 희망은 있다.
늦었다고 한탄하는 내게, 상냥한 누군가는 꽃이 피는 계절이 각자 다를 뿐이라며 위로를 건넸다. 완전한 위로는 되지 않았지만 그렇게 다독이며 울음을 참던 시절이 있었다. 꽃을 못 피우는 것이 언제나 심은 사람의 탓만은 아니다. 씨앗이 뿌리 내린 곳이 성장에 적합하지 않은 토양일 수도 있다. 하늘에서 천둥이 치고 홍수가 올 수도 있고 거센 바람으로 뿌리가 뽑혀 나갈 수도 있다. 나도 그랬다. 그래서 하늘을 원망하고, 나는 영영 싹을 틔울 수 없을 거라고 절망했다.
하지만 결국 책임져야 하는 것은 나였다. 비를 많이 맞은 씨앗을 어떻게든 살려 보려고 노력하는 대신, 이미 살 수 없을 거라고 판단하고 무심히 내버려둔 건 나였다. 나라는 식물의 종류를 바꿀 수는 없어도 흙을 바꿔 옮겨심고 영양제를 줄 수 있다는 걸 깨달은 건 한참 뒤였다.
토마토든 꽃이든 사람이든 시들어 죽는 건 참 슬픈 일이다. 물을 과하게 머금은 토마토 화분의 흙을 보며 다시 무언가를 키운다면 정말 제대로 해야겠다고 씁쓸히 다짐했었다. 무엇이라도 다시 죽이고 싶지는 않다. 다시 내 손이 생명의 씨앗을 잡는다면, 믿음과 기대를 가지고 끝까지 결실을 보겠다는 마음으로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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