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샤샤샤

Polaris

01

끼익, 낡은 문이 열리는 소리에 하이엠스는 자리에서 일어나서 입구를 돌아보았다. 열린 틈으로 들어온 바람이 갓 구운 빵 냄새를 휘저었다. 실제로 매대에는 종류는 적어도 따끈따끈한 빵들이 나열되어 있었다. 작은 부엌이 딸린 방을 얻어 개조한 이 곳은, 아직 삶의 터전들이 재건되고 있는 이 지역에서는 보기 드문 빵집이었다. 그런 만큼 항상 저녁이 되기 전에는 빵이 다 팔리는 곳이었는데, 점심과 저녁 그 사이 애매한 시간대에는 손님이 많이 없었다. 그런만큼 보통이면 자리를 비우거나 느긋하게 앉아 휴식을 취하는 편인데, 이 애매한 시간에 한 남성이 가게 안으로 들어섰다. 정작 계산대 앞에 앉아있던 하이엠스는 그 얼굴이 익숙하다는 듯 서글서글하게 웃었다.

“오랜만에 오셨네요.”

“워낙 바빠서 말이요.”

환대에도 손님은 꽤나 무덤덤히 답했다. 빵 앞에서 고민하듯 서성이는가 싶더니 대충 식사 때 먹기 좋은 빵을 하나 골라 계산대로 가져왔다. 빵을 포장해서 종이 봉지에 담는 동안 손님은 주머니에서 꼬깃꼬깃하게 접힌 지폐를 꺼냈다. 이미 가격은 알고있다는 듯이 돈 뭉치를 대충 하이엠스의 손 위에 얹어준 그는, 봉지를 받아들며 무심히 입구를 향해 돌아섰다.

“요새 이 근처에서 쥐들이 많아졌다던데, 방역 잘 하쇼.”

“걱정도 많으셔라. 우리 가게는 청결이 일 순위니까 걱정마시죠.”

“알아. 그래서 하는 말이야. 워낙 이런 것에 예민하잖아.”

문을 열기 직전에 그는 뒤돌아보며 입 꼬리를 올렸다. 끼익, 다시 낡은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그가 가게를 나서자 하이엠스는 부엌으로 들어갔다. 빵을 굽느라 달구어졌던 오븐이 점차 식어가고 있는 공간, 바깥에서 사람이 보지 못하는 자리에 왔을 때 하이엠스는 꼬깃꼬깃 접힌 지폐들 사이로 홀로 색이 다른 종이를 펼쳤다. 그걸 내려다보는 표정은 어느샌가 무표정했다. 그의 입에서 쪽지의 내용이 그대로 흘러나왔다.

“…최근 대대적인 인사이동 발견. 9구역 내에 전소된 부대의 생존자들이 8구역 안으로 이동. 정확한 인원까지는 파악 불가.”

쪽지를 보는 그의 눈빛이 가라앉았다. 이 나라는 점차 방벽을 세우고 그 벽 하나마다 구역을 나누었다. 그렇게 해서 외부와 단절하는 가장 큰 방벽을 기점으로 내부는 13개의 구역으로 나뉘었다. 하이엠스는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이 덕분에 사람들이 괴수의 위험으로부터 멀어져 일상을 재건할 수 있던 것을 부정하진 않았다. 자신조차도 그 일상을 살고 싶었기에 반년 전, 내부의 방벽을 넘어 이 구역으로 왔다. 이 곳은 8구역. 그가 이전에 있던 곳이 9구역. 그 안에 전소된 부대는 한때 그와 사야샤가 몸을 위탁했던 곳이었다.

“아는 얼굴은 없었으면 좋겠는데….”

그 당시 하이엠스와 사야샤는 부대 안에 불을 지르고 도망쳤다. 그 안에 있는 모두와 싸워서 이길 리도 만무했지만 도주로를 확보함과 동시에 주요인물을 처리하는 시간을 벌기 위해서였다. 가장 효율을 높이기 위해 깊은 새벽에 불을 질렀는데도 역시나 대처는 빨랐다. 그 자리에 있는 모두를 죽이고 싶었던 건 아니었기에 신경쓰지 않았지만, 그 인원들이 자신이 있는 구역으로 넘어온 거라면 말이 다르다. 단순히 새로운 곳으로 이전된 것일 수도 있지만 만에 하나라도 하이엠스와 사야샤, 두 사람을 알고 있는 이들이라면 그들을 쫓아온 건 아닐까라는 합리적인 의심까지도 할 수 있었다.

“당분간 조심하라고 샤샤에게도 말해둬야겠네.”

화륵, 손에 들려있던 쪽지가 불타올라 허공에 재가 되었다. 땅에 떨어진 잿가루를 치우고 가게로 나오면 아직 미처 팔지 못한 빵들이 보였다. 별로 알고 싶지않은 사실을 알아서일까. 마음이 불안해졌다. 톡, 톡. 카운터에 앉지도 못하고 말없이 책상 위만 손가락으로 두드리던 그는 결국 금일 장사를 마무리하기로 마음먹고 빵들을 정리해서 품에 한아름 안았다. 가게 입구에 팻말이 ‘닫힘’으로 바꾸고 발걸음이 집을 향해 돌아갔다.

‘다를 건 없겠지.’

돌아가는 그 짧은 길 위에서조차 시선이 분주히 움직였다. 사람이 숨기 쉬운 골목길이나 벽 뒤, 가로등, 심지어는 건물의 옥상까지도. 평소에도 사람들의 모습을 시야에 담았지만 그것과는 명백히 다른, 경계심 어린 시선이었다. 그 탓에 일상의 모습은 하나도 눈에 들지 않았다. 고작 세 문장 하나 보았다고 신경이 극도로 날카로워졌다. 현관문 앞에서는 한 번 더 뒤를 돌아볼 정도였다. 원래의 그였다면 절대로 하지 않았을 행동이다. 조심은 할지언정 차라리 상대가 먼저 쳐들어온다면 그 상대를 마주하는 게 자신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럴 수 없는 이유가 있었다.

“삼촌? 오늘은 빨리 왔네.”

현관을 열자마자 보이는 거실. 그만큼 작은 집 거실에 놓인 소파에 앉아 책을 읽고있던 그의 소중한 조카, 사야가 활짝 웃으며 그를 반겼다. 집까지 오는 동안 일자로 굳어있던 하이엠스의 입매가 단숨에 호선을 그렸다. 빵 봉지를 들지 않은 손이 자신을 향해 걸어오는 사야의 동그란 머리를 쓰다듬었다.

“샤샤는?”

“놀러 다녀오겠다면서 나갔어.”

“그래서 혼자 책 읽고 있었어?”

키득키득, 하이엠스는 품에 안고있던 봉지를 식탁에 내려놓았다. 그 안에서 빵을 꺼내 늘어놓으면서 옆으로 다가온 사야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사야를 만난 그 순간부터, 하이엠스는 사야에게서 쉽사리 눈길을 떼는 일이 없었다. 언제나 사랑스럽다는 듯 사야를 보았고, 다정함과 온기를 담뿍 담은 시선과 말을 건넸다. 빵이 봉지에서 식탁으로 모두 나오면 하이엠스는 몸을 돌려 냉장고로 향했다. 그 안에 재료들을 뒤적이면서 또 다시 사야에게 물었다.

“샤샤가 놀다오면 딱 저녁쯤이겠네. 샤샤도 샤도 좋아할 음식으로 같이 저녁 준비나 해볼까?”

“응!”

“오늘은 식사에 먹을 빵이 많으니까 빵과 스튜에다가 샐러드랑 스테이크 먹을까?”

“너무 많은 거 아니야?”

“못 먹을 거 같아?”

“아니.”

히죽, 사야의 미소를 본 하이엠스는 다시 한 번 그 머리를 쓰다듬고 재료들을 꺼냈다. 앞치마를 허리에 두르고는 마찬가지로 옆으로 오는 사야에게도 앞치마를 둘러주었다. 그 모습이 귀여워서 하이엠스는 또 그 머리를 쓰다듬었다. 머리 닳겠다는 사야의 투덜거림을 듣고서도 웃음소리를 흘린 하이엠스는 사야를 의자 위에 앉혀서 야채를 씻는 걸 맡겼다. 퉁, 퉁, 퉁. 곧 부엌 안은 도마 위에 재료들이 손질되는 소리나 후라이팬에 기름이 자글자글 끓는 소리, 냄비의 물이 부글부글 솟아오르는 소리로 가득찼다. 한창 깨끗이 손질한 재료들이 냄비나 후라이팬 안으로 들어갈 때쯤 요란하게 현관문이 열렸다.

“자기, 샤! 나 왔어!”

“재밌게 놀다 왔어?”

부엌에서 나온 하이엠스가 사야샤의 겉옷을 받아들고 뒤따라 나온 사야가 옆에 나란히 서 사야샤가 든 물건을 받았다. 그 모습에 사야샤는 깔깔 웃으며 몸을 낮췄다. 앞치마를 두른 앙증맞은 아들이 귀여웠는지 새하얀 손으로 아직은 여린 볼을 잡고 늘리며 더 가까이서 보기 위해 얼굴을 가까이 들이밀었다. 사야는 사야샤가 왜 그러는지 알고 있었기 때문에 머쓱하게 시선을 피하기는 했어도, 그 손길이나 눈길을 거부하지는 않았다.

“샤도 같이 요리 한 거야?”

“응. 되게 요리 잘 해. 아마 몇 년 뒤면 식당도 열 걸?”

“그 정도까지는 아니야.”

칭찬이 머쓱한지 투덜대듯 답하는 모습에 두 사람은 함께 웃음을 터트렸다. 거실까지 흘러나온 음식 냄새가 침샘을 자극했다. 세 사람은 각자의 자리로 가 식사를 준비했고, 곧 부엌은 식기 움직이는 소리나 오늘 하루에 관한 이야기로 가득찼다. 대부분은 사야샤가 떠들었고, 그 다음이 사야였으며, 하이엠스의 목소리는 대부분 그 둘의 말에 대한 대꾸가 전부였다. 그런데도 세 사람의 얼굴에는 즐거움이 가득찼다.

“잘 먹었습니다.”

“잘 먹었어!”

담소가 오가던 식사가 사야와 사야샤의 인사와 함께 마무리되었다. 먹은 자리를 정리하고 소파에 앉아 도란도란 시간을 보내는 덕에 시간은 금세 밤이 되었다.

“하암-”

“슬슬 잘 시간이네. 샤 재우고 올게.”

“응. 다녀와.”

누가 보면 내가 애인줄 알겠다는 사야의 투덜거림이 이어졌지만 하이엠스는 키득거리며 너 애라는 반박을 해주었다. 사야도 단순히 투덜거림에 가까웠는지 방까지 따라들어와 잠들 때까지 옆을 지키는 그를 밀어내지는 않았다. 오히려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옆을 지키는 삼촌의 손을 잡으며 졸린 목소리로도 미처 끝내지 못한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하이엠스는 그 이야기를 모두 받아주며 부드럽게 사야의 머리를 쓰다듬었고 눈을 몇 번 깜빡거리고, 하품을 한 번 더 한 사야는 마침내 눈을 감고 잠에 빠져들었다. 그 모습까지 살피고 나서야 하이엠스는 조심히 일어나 방을 나왔다. 소파에 기대 눈을 감은 사야샤의 옆에 앉아 그의 고개를 제 어깨에 기대게 해주었다. 사야샤는 싱긋 미소를 지으며 그를 돌아보았다.

“샤는 잠들었어?”

“어, 아주 곤히 잠들었어. 누굴 닮았는지 자기 전까지 말하더라.”

“하하! 샤샤 닮았다고 말하는 거지?”

사야샤의 웃음소리에 하이엠스가 그 어깨에 팔을 두르며 너스레를 떨었다. 둘 사이에 잠시 침묵이 내려앉았고 그것을 깬 건, 나직한 하이엠스의 목소리였다.

“샤샤. 낮에 선배가 왔었어.”

“왠지. 가게에 가니까 자기가 없더라. 빵도 많이 남았던데. 무슨 일 있어?”

“큰일은 아니야. 아마도? 우리가 있던 곳의 인원이 이 구역으로 넘어왔대.”

“우리 따라 왔나?”

“글쎄. 우리를 아는 녀석들은 없겠지. 그래도 혹시 모르니 샤샤도 조심하라고. 우리 둘만 있을 때는 상관없지만 이제는 샤도 있잖아.”

그렇다. 두 사람이 함께 있을 때는 걱정되지 않는다. 물론 사야샤가 다쳐도 걱정되지만, 사실상 그를 걱정하는 건 오지랖이나 다름없었으니까. 두 사람은 그만큼 강한 편에 속했다. 한편으로는 약했다. 지킬 사람이 있었기 때문에. 누군가를 죽이는 건 참으로 쉽게도 하는 둘이었지만 누군가를 지킨다는 건 미숙한 둘이라서. 패배란 모르는 사야샤는 승부와 적에 집중했을뿐 등뒤에 사람을 생각한 적이 없다. 그리고 하이엠스는 이미 누군가를 지키지 못한 경험이 있다. 그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서로이기에, 함께 아픔을 공유하며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 들어갔기에 하이엠스는 조곤조곤 할 말을 마쳤다. 사야샤는 그의 어깨에 고개를 기대며 벽난로에 타오르는 불꽃을 보았다.

“아무 일 없을 거야. 샤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나도, 자기도 가만 안 둘거잖아.”

“그건 그렇지.”

“그러니까 미리부터 걱정할 필요 없잖아. 우리는 강하니까.”

“그러게. 내가 너무 걱정이 많았네.”

피식 웃은 하이엠스는 사야샤의 어깨를 감싼 손을 올려 그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부디 그의 말처럼 부질없는 걱정이었기를 타오르는 불을 바라보며 바랐다. 다시는 잃고 싶지 않으니까. 그 바람을 담아 사야샤의 손을 꼬옥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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