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출
청명당보 청당
* 본 작품은 2차 창작물로 원작 스토리 진행과는 일절 관계가 없습니다.
* 원작 날조, 적폐 캐해 유의
* 원작 외전 조우 약스포, 날조 有
막 지학이 넘은 당보는 망할 집구석의 독공 수련에 피로감을 느꼈다. 어릴 적부터 비도에 흥미를 보이니 적당히 가르쳐주기는 하였으나 대부분은 독공 수련이 위주였다. 독을 밥에 조금씩 섞거나 물에 섞어 섭취하여 내력으로 만들어내야 했다. 섭취하는 독의 양이 점점 많아져 이틀을 꼬박 끙끙 앓다 겨우 회복한 당보는 도저히 참지 못하고 담장을 넘었다.
사천 성도를 돌아다니는 것도 자유롭지 못했다. 녹장포를 입었으니, 누가 봐도 사천당가의 도련님인 줄 알 게 아닌가. 괜히 ‘어, 그 댁 도련님이 여기 계시올시다’, 하고 말이라도 들어갔다간 꼼짝없이 뒷덜미를 붙잡힌 채 돌아가야 했다. 그런 상황은 겪고 싶지 않던 당보는 타지로 실어 나르는 우마차 뒤에 몰래 숨어 탔다. 어디로 가는지는 몰라도 적어도 사천은 벗어날 수 있으리라.
당보는 소매에 감춰둔 패물을 슬쩍 꺼내보았다. 어머니가 종종 선물이라고 쥐여주던 것들인데, 제 몫의 용돈이 떨어질 때를 대비해 챙겨 나왔다. 가능하면 이걸 팔 일은 없길 바라지만... 지금 마음 같아서는 적어도 칠 주야는 나돌다 들어가고 싶었다. 그 사이에 당가에서 그를 찾아낸다면 별수 없지만. 덜컹대는 마차 안에서 몸을 옹송그린 당보는 간만에 편안하게 잠들었다.
**
“여기가 어디래...”
사천에 비하면 그리 크지 않은 동네지만 사람이 북적한 게 제법 살기 좋아 보였다. 화려한 물건을 팔거나 비싼 것들을 내다 파는 장은 잘 보이지 않은 게, 그리 큰 성도는 아니겠거니 싶던 당보는 주린 배를 채우고자 객잔에 발을 들였다.
“아이고, 도사님! 화산에서 도사님이 술 못 드시게 하라고 단단히 부탁하셨대도요!”
“아니, 내가 내 돈 내고 마시겠다는데 그것도 안 돼?”
“그게 남의 돈이면 더더욱 안 되지요. 안됩니다요, 안 돼. 몰래라도 내어드렸다가 경을 칠 일이 있습니까? 아무튼 이 화음에서는 술 한 방울 맛보실 수 없을 겝니다!”
“아오!”
“양민을 겁박하려는 건 아니시겠죠?”
“... 안 그래!”
당보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객잔의 주인과 실랑이를 벌이는 무인을 쳐다보았다. 약관은 넘었을까, 꽤 다부진 몸을 한 사내는 가슴팍에 매화 문양을 단 무복을 입고 있었다. 화산이구나. 그렇다면 이곳은 화음이렷다. 당보는 꽤 멀리까지 왔다고 생각하며 빈자리를 찾기 위해 고개를 쭉 빼 주변을 살폈다.
“어이.”
“... 에?”
“그래, 너. 사천 놈이 여기까진 웬일이냐?”
사천을 벗어나면 쉽게 알아보지 못하리라 여겼건만. 하기야 구파일방에 속한 화산이 오대세가를 못 알아본다는 것도 우스운 일이다. 그의 입장에선 갓 지학쯤 되어 보이는 아해가 당가의 옷을 입은 채 홀로 객잔을 서성이니 무슨 일인지 관심을 둘 법도 했다.
“음... 산책이라 하면 믿으시렵니까?”
“가출했구먼, 이거.”
“출가라고 해주십시오.”
“출가는 개뿔이... 조막만 한 게 함부로 나다니는 거 아니다. 집 나오면 고생이라는 말 몰라?”
“그 거지 같은 집구석에 다시 들어가느니 강호에서 고생하다 죽겠소!”
“웃기는 놈이네...”
저 돌산 같은 사내의 눈이 번쩍일 때, 당보는 도망쳐야했다.
“... 분주 하나 주시오.”
“귀한 댁 도련님이신가 보오! 자, 여기 있소.”
“고맙네.”
술을 한 병 산 당보는 뚱한 표정으로 저 멀리 서서 자신을 지켜보고 있을 이에게 다가갔다. 병을 쓱 내밀자 기특하다는 듯 머리를 싹싹 쓸어준 사내는 그 자리에서 입구를 똑 따더니 병째로 들이켰다.
“캬! 이 맛이지. 너도 한 모금 주랴?”
“그쪽이 입댄 걸 내가 어찌 마시오?”
“새끼... 사내놈이 까탈스럽게 굴기는. 어디 보자, 아직 지학밖에 안 된 놈이 장포 끝자락에 자수도 놓고. 누가 뭐라 안 하냐?”
“어머님이 놔주신 거니 괜찮소.”
“어어~ 그 어머니가 자식새끼 날라서 없는데 잘도 좋아하시겠다.”
“이익!”
할 말이 없어진 당보는 사내의 몸을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하지만 그는 꼼짝도 하지 않았고, 결국 당보의 주먹만 아프게 되었다. 악! 하고 비명을 내지른 당보는 뭐 이리 몸이 단단하냐며 투덜댔다. 무력으로는 도무지 한 방 먹이기 어렵겠다 싶은 당보는 냅다 사내의 손에 들린 분주를 빼앗아 제 입에 털어 넣었다. 보란 듯 빈 병을 품에 안겨주고는 히죽 웃었다. 하지만 사내는 당보의 상식에선 꽤 많이 벗어난 이였기에, 당보는 그대로 딱밤을 얻어맞은 채 술을 다섯 병 정도 더 사 와야만 했다.
골목에서 계속 마실 수는 없으니, 사내는 제가 자주 가는 곳이 있다며 당보를 이끌었다. 화산의 가파른 중턱에 위치한 동굴까지 가느라 당보는 쎄가 빠졌다. 아직은 미숙한 경공을 어설프게 펼치며 겨우겨우 따라붙었는데, 저 무인은 조금도 힘들어 보이지 않았다. 여유롭게 흘깃흘깃 뒤를 쳐다보며 당보의 속도를 맞춰주기까지 했다. 겨우 화산에 도착했다 싶더니 이제는 저 산의 중턱을 올라야 한다고 했다. 그새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른 당보를 보던 그는 혀를 끌끌 찼다.
“늬들은 경공 수련도 좀 해야겠다.”
“... 하고 있소!”
“어엉, 한다는 놈이 고작 화산에 좀 올랐다고 숨이 그리 차?”
사내는 더 볼 것 없다는 듯 당보를 허리춤에 끼고는 덥석덥석 경사를 올랐다. 높다란 경사를 내려다보는 모양새가 된 당보는 얼굴이 새하얗게 질린 채 사내의 옷자락이 구명줄이라도 되는 양 꽉 쥐었다. 점점 높이 올라갈수록 뒷덜미가 오싹해져 그의 팔뚝에 고개를 묻은 채 눈을 질끈 감기까지 하니 위에서 웃음소리가 들렸다. 기분이 상했지만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경사진 곳 위에 자리한 동굴은 제법 아늑했다. 최근에 발견한 곳인데, 경사져 아무나 함부로 올 생각을 못 한다며 제법 뿌듯하게 말한 사내는 그 안으로 들어갔다. 이부자리가 펼쳐져 있고, 작은 탁상까지 마련되어 있는 게 은신처로서 제 역할을 톡톡히 하는 듯했다.
“습. 초면인 놈을 여기까지 데려오는 일은 처음이지만... 뭐, 가출한 놈 잠시 맡아둔 셈 치고.”
작은 서랍에서 잔을 꺼낸 그는 당보에게 쥐여주더니 술을 가득 채웠다. 혼자만 마시면 섭섭하잖아, 덧붙이더니 멋대로 잔을 부딪쳤다. 당보는 낯선 사람에게 함부로 주먹을 휘두르는 이도─사내는 그게 딱밤 정도라 생각한 모양인데, 당보는 정말로 눈앞에 불똥이 튀는 느낌이었다─, 초면에 냅다 자기 은신처랍시고 데려가는 이도 처음이라 정신이 다 혼란스러울 지경이었다. 그래, 그냥 마시자! 적셔! 당보는 사내와 마주 앉아 술잔을 부딪치며 연신 들이켰다.
“아니이, 그래서요오...”
“어엉, 그래서.”
“망할 넘들이... 비도는 안 갈켜주고! 자꾸우... 독만 쳐먹이잖아요오... 으잉. 술이 없넹.”
“자자, 채워주마.”
“히히. 앵님, 보기보다 좋은 분인 것 같소~”
“이 새끼가... 그래서 뭐.”
“웅. 그래서 가출했죠... 허구헌날! 독만 맥이는데! 지겨워가지고...”
“그런데 가출하면 뭣 하냐. 어차피 돌아가야 하잖아?”
“그건... 그런데... 하아아... 그래도 당가 사람이니까요, 저는... 응.”
어느덧 불콰하게 술이 올라 볼을 발갛게 물들인 당보는 그새 사내의 도호이자 이름이 청명임을 알았다. 형님 아우, 하게 된 게 방금이었는데 집안일을 줄줄 읊으며, 얼마나 속상한지를 토로했다. 청명은 쬐깐한게 술 좀 마셨다고 제 팔뚝에 들러붙어서는 이리저리 쫑알대는 꼴이 제법 귀엽다고 생각했다. 아직 어려서 그런가?
“야. 힘부터 키워, 인마. 지금은 네가 아무리 뭐라 한들 집안 어른들이 말을 들어주겠냐? 그 독공이란 것도 어쨌든 내력 키우는 데 도움이 되는 거면 잘 받아둬라. 내력이 중요한 거거든.”
“웅... 녜. 열씨미 받으께요... 내력! 중요하지... 앵님, 앵님은 내력이 얼마만합니까아? 대따 크겠죠?!”
“어어, 이놈이!”
상체가 술기운에 허물어져 청명의 허벅지에 고개를 박는 꼴이 된 당보는 손을 뻗어 그의 단전에 손바닥을 가져다 대었다. 그래봐야 무복에 가려져 제대로 뭔가 느껴지지도 않을 터인데 더듬대던 당보는 그대로 잠에 빠져들었다. 허탈한 웃음을 지은 청명은 당보를 갈무리해 곱게 눕혀놓고 장포를 덮어주었다.
다음 날, 해가 뜨자마자 청명은 당보를 마차에 실어 당가로 곱게 보내주었다. 화음에서 궁둥이 붙이고 살 것도 아니고, 잠시 가출한 놈 잘되라고 보내주는 마음이었다. 당보는 잠시 버둥댔으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다는 걸 깨달아 얌전히 마차에 실려 화음 밖으로 향했다. 이대로 집에 돌아갈지 중간에 또 빠져서 허우적댈지는 모르겠다만, 청명은 언젠가 또 보자는 말을 남겨주었다.
**
“나는... 형님에게 비도 한 번은 박아 넣을 수 있을 줄 알았소...”
“성장은 너만 하냐? 새끼. 야, 아까 마지막 공격은 좋았다. 웬만한 놈들은 훅 가겠구먼.”
“으으...”
흙바닥에 널브러진 당보가 찢어진 입가에서 흐르는 피를 훔쳐내고는 끙끙대며 몸을 바로 잡았다. 살짝 위로 치켜 올라간 눈매가 얄밉다는 듯 청명을 흘겼으나 그는 별로 개의치 않았다. 입꼬리를 한껏 올려 웃은 청명은 아주 오래 전의 추억을 되새겨 보았다. 막 지학이 지난 어린놈이 냅다 가출한답시고 화음까지 와 술에 취해 청명에 엉겨 붙던 날의 기억을.
당보는 술에 취해 저가 무슨 소릴 지껄였는지는 죄 잊어먹었지만, 그때 청명을 만난 일은 잊지 않았다. 이제는 각자 종심에 망구가 지난 나이에도 그 시절의 작은 일탈은 제법 기억에 깊이 남아있었다.
딱히 서로 서신을 주고받거나 종종 만나며 지냈던 건 아니지만 당보가 일수탈명으로 불릴 정도로 꽤 실력이 좋아졌다거나, 청명이 일절매화로 불려 악명 아닌 악명을 쌓고 있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물론 당보가 저렇게 훤칠하게 자란 건 청명은 몰랐다.
“너희 집안은 좀 어떻냐.”
“뭐... 여전합니다. 아해들은 독공을 배우느라 낑낑대고 있고, 저는 비도 가르칠 제자 좀 몇 들여달라 했더니 형님을 이기면 준답디다. 졌으니 이제 국물도 없겠죠.”
“그놈의 집안은 뭐 그리 꽉 막혀선. 독공만으로는 어렵다고 말해도?”
“해도요. 가주를 붙잡고 얼마나 설득했는지 모릅니다.”
“습. 내가 깽판 한 번 쳐주리?”
“형님이요? 원로원이 날아가겠구먼….”
“바라는 바 아니냐?”
그대로 당가에 쳐들어갈까 싶어 후다닥 그의 바지춤을 붙잡고 있으려니 청명이 퍽 귀찮다는 표정을 지었다.
“너는 이것도 안 돼, 저것도 안 돼. 대체 되는 게 뭐냐? 좋게 좋게 말해서 안 들으면 매가 답이지!”
“그건 형님이나 하는 짓이고요...! 아무리 그래도 당가에 아해들도 있는데 대놓고 패면 좀...”
“하, 이 까탈스러운 새끼...”
청명은 잠시 팔짱을 끼고 퉁퉁 부은 얼굴을 한 당보를 내려다보았다. 다른 놈 같았으면 진작에 주먹 한 대 날리고 더 상대를 해주지 않았을텐데 과거의 연 때문인지, 아니면 얻어맞고 부어오른 뺨을 하고도 제법 귀여워 보이는 저 낯짝 때문인지는 몰라도 쫓아낼 마음은 없었다.
“문파나 세가에서는 절정 고수를 밖으로 내돌리지 않지.”
“저도 압니다. 그 때문에 여태 남궁이나 무당이랑 붙지도 못하고!”
“그래서 나랑 붙으라 했겠지, 내가 그 두 놈을 나란히 작살을 내주었으니 그런 나를 이기면 네가 중원제일인 아니겠냐. 뭐... 발상은 나쁘지 않긴 한데, 당가에서도 당가제일인이 납치당하면 당황스럽겠지?”
“에? 예?”
“넌 이제 한동안 화산에 박혀 있어라.”
그놈들도 너 귀한 줄 알아야지, 덧붙인 청명은 짓궂은 미소를 짓고 당보를 답삭 들어 옆구리에 끼워─마치 육십 년 하고 더 된 옛일에 단장애로 올라가던 그때처럼─ 경공을 펼쳤다. 안 그래도 얻어터져서 내력은 내력대로 소모하고 온몸이 삐걱대는데 머리를 땅으로 향한 채 몸이 반절 접혀 흔들리니 괴로운 신음을 뱉어내던 당보는 이 말코를 잠시나마 그리워한 자신을 때려주고 싶었다.
“우웨엑...”
“아! 이 새끼가 신성한 도관에서 토악질하고 있어!”
“웩...”
결국 당보는 화산에 도착하자마자 대화산파 현판 아래에서 헛구역질을 해대고 말았다.
**
근심 걱정이 어린 얼굴로 한숨을 푹푹 내쉬는 대현검을 앞에 두고 발가락을 꼼지락대던 당보는 며칠만 신세를 지겠노라 답하고는 청명과 사이좋게 밖으로 나섰다. 살다 살다 화산파 장문인을 볼 일도 다 있군... 슬슬 노을이 지는 산등성이를 보니 기분이 묘했다. 예전에도 저걸 봤는데. 물론 술에 절어있긴 했다만.
“이제는 절벽 좀 타겠지.”
“에이, 이제 그 정도 가는 걸로 빌빌거리진 않소!”
“아까 현판 밑에서 구역질 해댄 새끼는 누구더라.”
“그건 형님이 저를 무슨 짐짝 들듯이 들고 그리 빨리 움직여대니 속이 뒤집혀 그런 거요.”
“핑계는 많네.”
픽 웃은 청명은 단장애가 위치한 곳으로 턱짓을 해댔다. 이번에는 청명의 옆구리가 아닌 그의 뒤를 따랐다.
오래전 들렀던 단장애는 여전했다. 좀 더 사람 지내는 티가 나는 정도일까. 멀쩡히 화산 내부에 청명의 방이 있음에도 꼭 여기 와서 노는 이유는 아마 술 때문이리라.
“내 살다 살다 형님같이 술 좋아하는 도사는 처음 봤네.”
“나 같은 놈도 있어야 이 세상의 균형이 맞는 거다. 도 닦는 놈들은 저기 무당 놈들도 있고, 어? 저 화산에 사형제들이 있으니, 걔네더러 닦으라 해.”
“형님은 절대 등선 못 할 거요.”
“이게 덜 맞았지?”
청명은 커다란 주먹을 흔들어 보이다 이내 동굴 틈에 숨겨둔 술병을 와르르 끄집어냈다.
“햐, 이게 또 서늘한 곳에 묵혀두면 그 맛이 다른 법이거든.”
“차라리 술 빚는 장사치를 해보지 그러오?”
“남이 빚어야 맛있지. 야, 받아라.”
두 사람은 추억의 모습 그대로 마주 앉았다. 다탁에 놓인 건 아해들이나 먹을 법한 당과 몇 개가 전부였다. 하지만 두 사람에게는 못 본 세월의 이야기가 안주로는 충분했다.
어느덧 해가 완전히 져 어두움이 찾아왔다. 청명이 어디서 훔쳐 박아 넣은 야명주 덕에 동굴 안은 환했다. 당보는 그걸 보며 도사가 세가보다 더한다며 말을 얹는 바람에 또 한 번 더 얻어맞았다.
“야, 이제는 술 좀 마시네.”
“그때는 어릴 때고요...”
“지학 좀 넘었을 때였나, 갓 지학이었나... 애새끼가 쫑알쫑알. 술에 취해서 발음이 꼬부라지던 게 어제 같다.”
“아잇! 참... 자꾸 옛날얘기 꺼내지 마시오!”
“왜, 새삼 부끄럽냐? 너 내가 귀한 조언을 해준 덕에 그리 잘 된 것 아냐!”
“아니 그 정도 조언은 개방 거지도 할 줄 아오!”
“기어오르네, 자꾸.”
청명은 이마를 쥐어박을 심산으로 몸을 기울였다. 그러다 다탁에 걸려 당보의 낯짝이 훅 가까워졌다. 아, 이놈 눈이 원래 이런 색이었나... 꼭 솔잎처럼 푸르른 옥빛이 눈에 띄었다. 홀린 듯 손을 뻗어 뺨을 어루만지자, 당보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당황했구먼, 장난기가 치밀어 오른 청명이 슬 몸을 가까이해 커다란 상체로 당보를 뒤로 눕히다시피 젖혔다.
“야. 당보야.”
입술이 맞닿았다. 일평생 색이라곤 모른 채 무위만 닦아오던 둘이 꼭 이때를 기다린 것처럼 바싹 붙었다. 당보는 팔을 뻗어 청명의 목을 당겨 안았고, 청명은 당보의 허리를 끌어안았다. 틈 없이 붙은 두 사람의 입술 새로 붉은 혓바닥이 오갔다. 좁지 않은 단장애에 츕츕, 타액이 섞이는 소리와 옷깃이 스치는 소리가 울렸다.
“야, 너희 가주한테 가서 말해라. 서방 찾아왔다고.”
한참 구흡을 하던 후에 떨어진 청명이 당보의 젖은 하순을 엄지로 문질러내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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