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ost Room in Chaldea
죽은 자들이 나타나는 방
* 2024.09.21 디 페스타 쁘띠존 게스트북 협력작입니다.
* 2024.12.31 까지 한정공개합니다. 후에 공개 예정 없습니다.
* 2부 6장까지의 내용을 일정부분 포함하고 있습니다.
* 11,000자
“ 노움 칼데아는 남극의 피니스 칼데아를 그대로 모방해서 만들어진 곳이던가? ”
“ 응, 기록에 있던 건 그대로 있을걸? ”
“ 그럼, 여기도 그거 있을까? ”
“ 그거? ”
“ 그거 있잖아, 그거. 전 소장이 만들었다던 이상한 방. ”
“ 아 그거~ 으음… 없지 않을까? ”
“ 그러려나… 하긴, 있을 리가 없지. 기록에도 남지 않았는걸. ”
“ 아니, 그 보다 말야… ”
“ 죽은 사람을 만날 수 있는 방이 실제로 있을 리가 없잖아? ”
***
고르돌프 무지크는 노움 칼데아의 소장이다. 물론, 소장이 된 지 범인류사의 시계상 약 1년조차 채우지 못한 상황이기에 아직까지 신임소장이라 불리고 있지만, 나름대로 오랜 기간 소장직을 맡으며 공상수 또한 벌써 몇 번이나 벌채했다. 한 손을 훌쩍 넘어가던 공상수를 고작 한 그루 남겨두고 있었다. 하지만 고르돌프 무지크는 피니스 칼데아에 대해서 아는 바가 전무했다. 그가 칼데아를 인수한 고작해야 세, 네 가지의 이유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 것은 타마모빗치 코얀스카야였으니 말이다. 그렇기에 고르돌프는 살아남은 몇 안 되는 스태프들이 흘리는 말이라던지, 얼마 남지 않은 기록물들을 보며 피니스 칼데아에 대해 인식하고, 이해했다.
즉, 고르돌프가 시온 엘트남 소카리스가 방황해에 만든 노움 칼데아의 구조와 피니스 칼데아의 구조가 완전히 같음을 깨달은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는 뜻이다. 갑자기 궁금해져 직접 두 칼데아의 설계도까지 찾아가며 노움 칼데아와 피니스 칼데아를 비교한 것이 얼마 전이기 때문이다. 결코, 궁금해진 이유가 스태프들의 대화를 엿들은 중에 알게 된 ‘죽은 자들이 나오는 방’ 때문이 아니다. 노움 칼데아의 소장으로서 최소한은 알아야 한다는 의무감 아래에서 나온 행동이다. 물론 소장이 된 후 시간이 오래 지난 후였지만… 범인류사의 시계로는 며칠이 채 안 지났으니 괜찮을 것이다. 그나저나 그런 방은 어디에 있는 것인지. 설계도 곳곳을 찾아보며 비교해 봐도 도저히 ‘숨겨진 방’이 있을만한 위치는 찾지 못하였다.
“ 흠, 도대체 그 ‘숨겨진 방’은 어디에 있는 것인지. ”
“ 어라, 그건 왜 궁금한 거야, 무지크 군? ”
“ 그야, 죽은 자들이 나오는 방이라니, 끔찍하지 않나! ”
고르돌프는 어두워진 안색으로 말했다. 죽은 사람이 돌아오는 방이라니, 아무리 봐도 귀신이 나오는 방이 아닌가! 물론 무지크가의 남자로서 고르돌프는 귀신 따위는 무서워하지 않았지만, 만일 방황해의 노움 칼데아에도 그 방이 있다면 당장 폐쇄시켜야만 했다. 결코 고르돌프가 귀신이 무서워서가 아닌, 심약한 마스터와 그의 데미 서번트를 비롯한 스태프 일동을 배려해서 하는 행동들이었다. 만일 귀신을 보고 무서워서 쓰러지기라도 한다면 칼데아의 일처리 속도가 늦어질 테고, 그렇다면 이성의 신에게 시간을 주는 것이지 않나. 결코 고르돌프가 무서워서가 아니다.
“ 그럴 의도는 없었지만… 어쩌다 보니 죽은 사람들의 공간이 되긴 했지. 그래도 살아있는 사람들도 종종 찾는다고. 무엇보다 처음엔 거기— ”
“ 쯧, 아무튼간에. 자네는 알고 있나? ”
고르돌프는 책상 뒤, 소파에 앉아있는 남성의 말을 끊으며 물었다. 남성에겐 눈짓 한 번 주지 않은 채였다. 아무튼간에 고르돌프는 그 숨겨진 방을 찾는 것에 온 힘을 다하고 있었으므로 남성에게 할애할 시간이 없었다. 그런 고르돌프에 남성은 머쓱하다는 듯 뒷목을 만지작거렸다. 목 근처에서 보이는 흰색의 장갑이 눈에 띄었다.
“ 에~ 나도 정확히는 기억 안 나는데… 아마 이쪽 창고쯤에 있을 거야. ”
남성은 소파에서 일어나 천천히 걸어왔다. 그의 머리에서 포니테일이 달랑거리고 있었다. 요란 스래 움직이는 모습에 시선을 줄 법도 한데, 고르돌프의 시선은 방 한가운데에 놓여있는 테이블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테이블은 고르돌프가 마구잡이로 펼쳐둬 이리저리 구겨진 노움 칼데아와 피니스 칼데아의 설계도가 가득 채우고 있었다. 남성은 유심히 바라보다 한쪽 구석을 가리켰다. 피니스 칼데아에선 물적 자원들을 모아둔 창고였다. 인리소각 시기엔 자원을 아끼기 위해 폐쇄된 구역이었는데, 노움 칼데아는 그 걱정을 덜어내 지금은 공개된 구역이었다. 하지만 인리수복기간과 그 후 1년여간 다져진 습관으로 인해 피니스 칼데아의 스태프들은 부러 접근하지 않는 구역이었다. 그렇기에 네모들은 지금에 와서는 자주 쓰이진 않는 자원들을 모아두는 방으로 지정해두었다. 필요하지만 지금 당장 필요한 것은 아닌 것들을 모아둔 한쪽 구석을 든든하게 차지하고 있는 구역이었다.
하지만 그쪽 근처엔 딱히 방을 숨길만한 곳이 없을 텐데…
고르돌프가 중얼거린 말에 남성은 어깨를 으쓱거렸다. 나도 잘은 기억 안 난다니까… 중얼거림은 덤이었다.
“ 이제 슬슬 앉지 그래? ”
“ 아, 벌써 그런 시간인가? ”
테이블 뒤, 문 쪽에서 또 다른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르돌프는 깜짝 놀라 뒤를 쳐다보았다. 같이 설계도를 보던 남성 또한 예외는 아닌 듯, 놀란 듯 비명을 내질렀다, 이내 머쓱해진 듯 다시금 한쪽 손을 뒷목에 가져다 대었다. 남성의 포니테일이 그에 맞춰 달랑거렸다.
“ 아직 못 찾았네만… ”
“ 하하, 그 방에 대한 것은 나중에 다시 찾아보고, 우선 앉자. 무지크군. ”
“ 고르돌프라 불러라! ”
“ 네네, 고르돌프군. "
고르돌프는 불평하듯 작게 중얼거렸다. 포니테일을 한 남성은 그런 고르돌프의 눈치를 살피듯 급하게 설계도를 말았다. 돌돌 말린 큰 설계도 두 개를 벽 한켠에 기대어두고는 비어있는 의자에 앉았다. 빛이 비치지 않는 어두운 쪽의 의자는, 남성의 표정을 알아보기 힘들게 하였다.
“ 어서 앉아, 고르돌프군. 네가 내리는 홍차, 꼭 마셔보고 싶었거든. ”
포니테일을 한 남성은 이내 고르돌프를 바라보았다. 고르돌프는 한숨을 내쉬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무지크 가 대대로 내려져 오는 것이 아닌, 그의 메이드들이 알려주고 그가 개량을 마친 특유의 홍차를 내릴 준비를 했다. 찻잎은 언제 가져다 두었는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최근에 고르돌프가 즐겨 마시는 종류의 찻잎들이 다즐링 되어 있었다. 자신도 모르게 옅은 미소를 지으며 평소보다 조금 더 공을 들여 홍차를 내리기 시작했다.
문 쪽에 서 있던 남성은 그런 두 명을 보며 슬쩍 미소 지었다. 이내 발소리 하나 없이 천천히 걸어 중앙의 테이블로 향했다. 남성 특유의 긴 금발이 흔들거렸다. 빛을 등지며 걸어온 남성은 이내 빛과 어둠이 경계 지는 부분에 앉았다. 각자의 자리에는 조각 케이크가 한 개, 아직은 비어있는 찻잔이 하나씩 놓여 있었다. 남성은 그것들을 지긋이 쳐다보더니 포니테일을 한 남성과 고르돌프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 오랜만이네, 티타임은. ”
“ 그러게 말이야. "
“ 자, 잔을 이리 건네라. ”
고르돌프는 적절히 우려진 홍차를 따라내었다. 특유의 향기가 방 안을 가득 채웠다. 쯧, 이런 건 내가 아니라 시종을 시켜야 하는 건데. 앞에 앉은 남성들이 할 것 같진 않으므로, 고르돌프가 직접 나서는 수밖에 없었다. 어느덧 각자의 자리엔 붉은색의 오묘한 아름다움으로 가득 찬 찻잔이 놓여있었다. 처음의 강렬한 향기는 어디간 것인지 조심스럽게 올라오는 홍차의 향기에 자연스레 미소가 지어지고 마음이 편안해졌다. 이번에도 잘 우렸군. 고르돌프는 급하게 설계도를 찾아보던 시간을 뒤로하고 여유로운 한 때를 보내기 시작했다.
“ 마론 케이크! 이거 꼭 먹고 싶었어! ”
“ 자네는 케이크를 정말 좋아하는군. ”
“ 후후, 그게 매력이지. 그나저나, 응. 이거 맛있네. ”
“ 난 이거 말고 크로와상을 먹고 싶었어. ”
“ 다음에 준비하도록 하지. ”
포니테일을 한 남성이 먼저 케이크를 한 입 떠먹기 시작했다. 고르돌프는 그런 그를 보더니 고개를 저었다. 먹는 것을 좋아하는 자신도 저렇게까지 케이크를 좋아하진 않는다. 정말 달콤한 것을 좋아하는 남성이었다. 고르돌프는 달콤한 디저트류보단 한 끼 든든하게 먹을 식사를 좋아했기에 나온 본능적인 반응이었다.
그런 그를 뒤로하고 금발의 남성은 불만을 중얼거렸다. 크로와상이라… 전에 한 서번트와 먹었던 것이 정말 맛있었지. 아쉽게도 이곳에 고르돌프 특제 크로와상은 없었다. 다음을 기약하며 고르돌프 또한 케이크를 한 입 떠먹었다. 그런 그에 금발의 남성 또한 홍차를 마시기 시작했다. 우아하지만 어딘가 단호한 느낌이 나는, 출생이 좋다는 것을 한눈에 느낄 수 있는 방식이었다. 얇은 손목으로 들어 올린 찻잔은 그와 잘 어울렸다. 온통 순백의 옷을 입은 남성의 중간중간 들어간 푸른색 장식이 찻잔의 장식과 비슷하여, 이 찻잔이 오로지 그만을 위해 제작된 것처럼 보였다. 고르돌프는 나오려는 감탄을 내리눌렀다. 역시, 저 남성의 가문은… 그에 비할 바는 못되지만, 무지크 가 또한 명문 가문이기에 어느 정도의 품위는 나올 것이다. …아마. 저 남성에 비할 바는 아니겠지만.
“ 그나저나, 도대체 왜 부른 거냐. ”
“ 하하, 긴장하지 마. 오랜만에 티타임을 즐기고 싶던 거니까. ”
“ 이런 여유로운 시간은 모두 오랜만이잖아? ”
고르돌프는 짧게 불만을 내뱉었다. 안 그래도 이상한 방에 대한 소문을 들어 마음이 심란하던 차에 불린 모임이었다. 애초에 고르돌프는 저 백수 두 명과 달리 바쁜 몸이다. 마스터가 엉망으로 적은 보고서도 검토해야 했으며, 직접 빵도 구워야 했다. 네모 베이커리를 비롯한 주방조가 만든 것과는 다른 고르돌프 특유의 맛-킥-이 첨가된 것이 포인트인 빵이다.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운전 시뮬레이션도 연습해야 했으며, 기술고문과 경영고문이 낭만에 가득 차 만들어낸 것들도 보고 절충안을 말해야 했다. 아무튼, 고르돌프는 앞의 두 남성과 달리 아주아주 바쁜 몸인 것이 중요했다.
“ 이런, 너무 바쁘게 살면 일찍 죽을 거라고? ”
“ 음음. 너무 열심히 살면 일찍 죽을 거야. ”
“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 네놈들은! 차라리 저주를 해라! ”
고르돌프는 인상을 크게 찌푸리며 소리쳤다. 이정도면 그냥 악담 아닌가. 사람 말은 귓등으로도 안 듣는 마이페이스가 강한 놈들이다. 정말이지… 고르돌프는 여러 명의 서번트들, 특히 다수의 아르토리아들을 상대하며 얻은 내공으로 불타오르는 속을 내리눌렀다. 자기주장 강한 놈들과의 대화는 언제나 힘들었다. 고르돌프는 이럴 때마다 마스터에게 자연스레 넘기며 빠져나가곤 했는데… 기가 쭉 빨리는 느낌이다.
“ 하하하! 케이크를 다 먹으면, 말해줄게. ”
“ 꽤나 빨리 말해주네. ”
“ 에, 이것도 느리다 생각했는데?! ■■■군은 얼마나 늦게 말해주려고 한 거야? ”
“ 이런 티타임은 오랜만이니까. ”
금발의 남성은 찻잔으로 입을 가리며 웃었다. 우아한 손짓 아래의 저 웃음이 사악해 보이는 것은 고르돌프만의 착각이라 믿고 싶었다. 고르돌프가 해야 할 일이 정말 잔뜩 있었기 때문이다. 그나마, 자신이 내린 홍차가 평소보다 조금 더 맛있었기에 겨우 웃을 수 있었다.
찻잔의 홍차가 절반 이상 사라진 시점일까. 고르돌프는 남은 케이크를 마저 먹었다. 케이크 위에 올라간 토핑의 밤은 달콤했다. 아이싱 전체가 달콤한 밤맛이 우러나지만, 같이 먹는 홍차에서 올라오는 씁쓸한 뒷맛이 어우러져 적당한 달달함이었다. 음, 맛있군. 정말 맛있어. 적절하게 구워진 시트는 폭신했고, 시트와 시트 사이에 들어간 설탕에 조린 밤은 식감을 풍부하게 해 주었다. 레시피를 받아두고 싶을 정도로 잘 만들어진 케이크였다. 고르돌프의 입에서 작은 감탄이 자꾸만 새어 나왔다.
“ 그나저나 고르돌프군, 여행은, 어때? ”
“ 무슨 여행 말하는 거냐? ”
“ □□가 말하는 건 공상수 벌채 여행일 거야, 고르돌프. ”
“ 그걸 여행이라 해도 되나? ”
“ 물론! 우리는 인리수복기도 여행이라 하는 걸. 지금 당장은 힘들어도, 뒤돌아보면 하나하나가 소중한 추억이 되어있을 거야. ”
고르돌프는 바쁘게 움직이던 손을 멈추었다. 입은 꾹 닫은 채였다. 그건 처절한 여정의 시간이 아니었냐며 반박하고 싶었지만, 입이 떼어지지 않았다. …공상수 벌채는 정말 힘들었다. 아니, 힘들다. 당장 처음 갔던 러시아 이문대만 해도 죽을 뻔했다. 그들은 살기 위해 절박하게 움직였다. 당장 닥쳐오는 위협에서 벗어나고자 처절하게 절규했다. 하지만… 하지만. 그래, 고르돌프 자신도 여태 부정하고 있었던 답이었지만,
“ …꽤나, 즐거웠어. ”
“ 그렇지? ”
부정할 수 없었다. 그들과의 그 처절한 여정이, 내일도 살아가기 위해 절박하게 움직이던 시간이 즐거웠다는 것을.
“ 물론 마스터와 그 데미 서번트는, 정말로 다루기 힘들었다. 기술고문과 경영고문을 비롯한 스태프들은 자신들만이 아는 대화를 하기 일쑤였다. 나는 그곳에 끼지조차 못했다. 러시아는 너무 추웠고, 북유럽은 처음으로 목숨의 위협을 받았다. 경영고문은 크게 다치기까지 했다. 중국에서 만난 시황제는 곧바로 우리를 죽이려 했으며, 죽음의 위기가 코앞까지 닥쳐왔다. 인도의 아르주나의 기술 하나하나 모두 끔찍했다. 아틀란티스의 아르테미스는 두려웠으며, 브리튼의 요정들은 잔혹하다는 말로 끝낼 수 없었다.
하지만… 그래, 스태프들과 같이 먹은 베이컨은 꽤나 맛있었다. 처음 해본 캠프파이어는 꽤나 신기했다. 다 같이 즐겼던 첫 티타임은 다시는 잊지 못할 추억이 되었다. 중간중간 직전의 여행에서 한 자신의 활약들을 자랑하는 시간은 꽤나 웃겼다. 춥고, 힘들었다. 당장 내일 죽을 수 도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함께라서 살아남을 수 있었고, 함께였기에 이겨낼 수 있었다. …나를 ‘무지크’가 아닌 ‘고르돌프’라 봐주는 사람들과, 신임 소장이라 부르는 자들과 함께하는 것은 꽤나 행복한 경험이었다. “
고르돌프는 눈을 감으며 말했다. 생각 자체를 거부하고 있던 것을 그만두자, 생생할 정도로 기억나기 시작했다. 눈앞으로 스쳐 지나가는 그 아름다운 시간들에 고르돌프는 자연스레 미소를 지었다. 앞에 있는 남성들에게 그 시간들을 말할 필요는 없었지만, 왜인지 모르게 말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고르돌프는 자연스레 말을 이어나갔다. 그런 그를, 두 남성은 웃으며 바라보았다. 어딘가 뿌듯한, 부드러운 미소가 함께였다.
“ 그래. 나는 그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즐거웠다. 그것 하나만은 확실해. ”
“ 하하, 그거면 돼, 고르돌프. ”
“ 그거면, 충분해. ”
두 남성은 미소 지었다. 고르돌프 또한 여태까지의 비웃는 듯한, 자조하는 듯한 미소가 아닌 진 심어린 미소를 지었다. 힘겨운 여정이었지만 지금 와서 돌아보면 전부 추억이었다. 즐겁고 행복하기만 한 여행은 아니었다. 비율로 따지자면 힘든 것이 더 많았다. 그럼에도 중간중간, 그 짧은 순간 하나하나에서 행복을 찾아냈다. 즐거움을 찾아냈다. 고르돌프는 그런 여행을 했다. 그런 시간을 보냈다. 수많은 여행을 하며, 수많은 즐거움과 행복을 찾을 수 있었다.
그럼에도 짧은 순간 하나하나에서 즐거움을 찾아냈다. 고르돌프는 그런 여행을 했다. 범인류사의 시계로는 채 며칠도 되지 않을 짧은 순간동안 수많은 여행을 했다.
“ …자네들은, 즐거웠나? ”
“ 물론! 리츠카, 마슈와 함께한 그 1년의 여행을 난 평생 잊지 못할 거야. ”
“ —물론, 나도. 카이니스와 A팀들과 함께 한 그 시간을 평생 잊지 못하겠지. ”
“ ——그런가. 너희들도, 그런 건가. ”
어느덧 감았던 눈을 뜬 채로, 그들은 서로를 바라보았다. 이름 잃은 두 남성은 고르돌프를, 현재를 살아가는 남성은 ■■■과 □□을. 그와 함께 짧았던 티타임이 끝났다. 더 이상 환상은 존재하지 않으며, 모든 것은 제자리로 돌아갈 시간이었다.
저 멀리서 발소리가 들려온다. 뚜벅, 뚜벅. 구두소리가 텅 빈 복도를 울린다. 잠시, 문 앞에 멈추더니 그것을 두드린다. 똑,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울려 퍼진다. 고르돌프는 짧게 들어오라는 말을 꺼낸다.
“ 신임 소장님, 여기 계셨군요. 뭐 하고 계셨나요? ”
“ 키리에라이트인가. 무엇을 하긴, 티타임을… ”
“ 티타임을… 혼자서 말인가요? ”
“ … ”
고르돌프의 안색이 새하얗게 변했다. 테이블에 놓인 찻잔은 단 한 개. 케이크도, 단 한 개. 어두운 곳에 놓여있던 의자도, 그 사이에 놓여있던 의자도 어느덧 사라져 있었다. 남은 것이라곤 밝은 곳에 놓인 고르돌프의 찻잔과, 두 개의 설계도뿐.
“ 그나저나 이 방은… 로스트 룸, 이네요. 노움 칼데아에도 있었군요. ”
“ …로스트, 룸이라고? ”
“ 아, 네. 전임 소장님께서 관제실 뒤쪽에 만드신 방인데— ”
“ …그럼, 내가 만난 자들은— ”
고르돌프는 마슈 키리에라이트의 말을 다급히 끊어냈다. 로스트 룸. 분명 자신이 찾던 방이다. 잃은 것들, 혹은 잃을 것들을 만날 수 있는 방. 환상을 꿈꾸는 방이었다. 스태프들이 지나가며 하는 말을 듣고 이 방에서 설계도를 펼치며 찾고 있었다. 도중에 같이 찾기 시작한 남성도 있었는데—- 그게, 누구였지.
분홍색의, 머리카락을 가졌었다. 목을 간지럽히는 포니테일이 포인트였다. 녹색 눈은 서번트 한 명과 닮아 있었으며, 툭하면 뒷목을 만지작거렸다. 지금은 입는 자가 없는 칼데아 지정 의료복을 입고 있어 새하얗게 보이던 남성이었다.
“ ..로마니 아키만. ”
“ 네? ”
고르돌프는 입 밖으로 나가는 이름을 막을 수 없었다. 실제로 만난 적은 없지만, 묘한 확신이 들었다. 그 남성은, 로마니 아키만이다. 로망을 동경해 사람이 되었다. 그리고 사람을 위하여 사람인 채로 죽었다. 그 낭만이 가득한 남성을, 고르돌프는 보았다.
" 신임소장님? “
그리고 한 명 더, 있었다.
금색의 긴 장발과 화려할 정도로 아름다운 벽안. 언뜻 보면 흔한 조합이지만 그렇기에 더욱이 아름다워 보였다. 흰색과 눈을 빼닮은 청색으로 조화를 이루는 아름다운 옷을 입은, 우아함을 인간으로 만든다면 이렇지 않을까 싶은 듯한 남성이 있었다. 화려한 망토는 어디다 벗 던진 것인지, 마지막에 보았던 모습보다 편안한 복식으로 마주 앉아 크로와상이 먹고 싶었다며 불평하던 남성이 있었다.
“ —키르슈타리아 보다임. ”
그래, 고르돌프는 두 사람과 함께 티타임을 가졌다. 홀로 가진 것이 아닌, 두 명의 ‘살아있었던’ 사람과 함께.고르돌프의 안색이 더욱 희게 질리자, 마슈는 걱정이 가득 담긴 눈으로 그를 보기 시작했다.
“ 나, 나는 가서 쉬어야할 것 같네. 키리에라이트, 정리를 부탁해도 괜찮나? ”
“ 네, 네! 맡겨주세요, 고르돌프 신임소장님! ”
고르돌프는 지끈거리는 이마를 짚으며 방— 로스트룸에서 나왔다. 관제실 뒤편, 구석진 곳에 위치한 곳이었다. 이렇게 흔한 곳에 있는 것인데, 왜 눈치채지 못한 것인지 모르겠다. 분명, 설계도로 이곳을 보고 있었는데. 아아. 모르겠다. 모르겠어. 전부 잊고 자고 싶다. 피하기 위해 찾고 있었지만, 사실은 그 안에 있었다니.
하지만 그들과 함께 한 티타임은 즐거웠다. 케이크는 맛있었으며, 고르돌프표 특제 홍차는 늘 그래왔듯이 향이 좋았다. 케이크와 잘 어울리기까지 했다. 아주 짧았던 그 시간을 되돌아보면, 정말 즐거웠다.
“ —나는, 제대로 소장인 것인가? ”
고르돌프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질문을 던진다. 듣고 있을지도 모르는 두 명의 망자에게. 아직도 미련이 남아 떠돌고 있는 두 명의 인간에게.
***
“ 응, 너는 제대로 소장이야. 고르돌프군. ”
포니테일을 한 남성이 멍하니 허공을 바라본다. 이곳은 망자들의 방이자 현실을 살아가는 자들의 방이다. 남성은 이곳에서 나갈 수 없었다. 아니, 문 근처에도 다가갈 수 없었다. 시체조차 남기지 못한 채로 죽은 자의 말로였다.
“ 만족했어, 닥터? ”
“ 물론이지, 보다임군. ”
금발의 남성의 물음에 포니테일을 한 남성이 답했다. 입가에 짙은 미소가 맴돌았다. 사실 많은 걱정을 했다. 고르돌프 무지크란 남성은 칼데아에 관심이 많아 보이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남성은 지켜보았다. 몇 개의 이문대를 거치고, 몇 개의 특이점을 거치며 성장해 나가는 그들을 바라보았다.
피니스 칼데아조차 처음에는 미숙했다. 다들 어떻게든 이겨내려 했지만 미숙하였기에 실수도 잦았다. 레이더 탐지가 익숙지 못해 툭하면 와이번이 나타났다. 모든 것을 준비해 왔던 남성만이 그나마 능숙하게 대처할 수 있었다. 하지만 노움 칼데아는 정 반대였다. 보더 속 스태프들은 능숙했지만, 신임 소장인 고르돌프 무지크는 미숙했다.
피니스 칼데아와 달리 그들 중 가장 미숙한 것은 소장인 고르돌프 무지크였다. 그리고 고르돌프 무지크는 그 현실에서 벗어나는 것을 택했다. 어떻게든 발버둥을 쳐 스태프들의 대화를 이해해 나갔다. 궁금한 것은 찾아보았으며, 그래도 안된다면 기술고문이라 명명한 라이더 다빈치에게 물어보았다. 때로는 경영고문이라 명명한 홈즈에게도 물어보았다. 고르돌프 무지크는 몇 번의 여행동안 발전해, 지금에 이르렀다. 지금의 고르돌프는 명백한 ‘소장’이었다. 어쩌면, 남성보다 더 능숙한. 그리고 남성은 그의 노력을 바라보았다. 모든 것을 지켜보았다.
그저 지켜보았다. 그 여행을.
“ 응, 고르돌프군이라면, 맡길 수 있어. 리츠카와 마슈를. 범인류사를. ”
그러니까 맡길 수 있다. 고작 20대의 도련님이 맡기엔 너무나 커다란 짐일지도 모르겠지만, 그럼에도 맡길 수 있다. 고르돌프 무지크라는 사람이기에 맡길 수 있다.
로마니 아키만이란 한 인간의 미련을 넘겨줄 수 있었다. 그 커다란 짐을 줄 수 있었다. 그렇기에 로마니 아키만은 고르돌프 무지크를 로스트 룸으로 불렀다. 고맙다는 말을 대신 자신의 여행을 되돌아볼 수 있게끔 시간을 주었다. 그렇기에 세 명은 티타임을 가졌다. 두 번 다시없을 시간을 가졌다. 로마니 아키만은 그 시간 동안 확신을 가졌으며, 그를 보며 웃을 수 있었다.
“ 보다임군은 어때? ”
“ 저 사람이라면 할 수 있을 거야. ■■■■■을— ”
“ 그렇지? ”
금발의 남성과 포니테일의 남성은 다시 티타임을 가진다. 아까보단 조금 맛없어진 홍차를 가지고, 영원한 티타임을 갖는다. 방금 전의 티타임과는 달리, 그 어떠한 영양가도 없는 그저 시간을 죽이기 위한 티타임을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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