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완벽한 방법
1주년 기념
츠키노 아이카는 자신이 아이돌을 동생으로 둔 사람이라는 사실에 익숙해진지 오래였다. 하루네코 고등학교에서 스쿨아이돌로 활동을 시작한 동생의 유명세로 이름을 알린 카페가 점차 단골을 늘려가며 성황을 이루는 것도 좋았다. 돈은 옳다. 그래서 아이카는 동생을 나름 '복덩이'로서 잘 대해주고자 마음먹었다.
하지만 츠키노 아이카는 여느 집안의 남매와 별 다를 바 없이 자란 평범한 누나였다. 지금이야 머리가 굵어서 조용조용 지낸다지만 한창 어려서 날뛸때에는 서로의 머리채도 잡아보고 뭐, 그런 친한 사이였다는 소리다. 그래서 아이카는 지금 자신의 눈 앞에서 벌어지는 일을 쉽게 용납하지 못하고 결국 입을 열고 말았다.
“징그러우니까 작작 좀 해! 무슨 뷔페 여냐?!”
아이카가 식탁을 세게 내려치자 작은 동산을 이루며 쌓여있던 미니 슈크림들이 퐁실퐁실 들썩였다. 있는 것은 그 뿐만이 아니었다. 그 옆에는 화이트 초콜릿을 바른 페스츄리가, 그 옆에는 슈가파우더를 듬뿍 뿌린 브라우니가, 그 옆에는... 정말 제과점을 털어왔다고 해도 믿을 만큼 다양한 종류의 빵과자들이 수두룩 놓여있었다.
츠키노 가의 주방은 녹아내린 초콜릿의 달달함과 쿠키가 구워지는 고소함에 점령당한지 오래였다. 카페에서 일하며 커피나 제과류 냄새에 익숙해진 아이카였지만 집에서까지 맡고 있자니 지겹기 짝이 없을 정도였다. 그 한가운데, 머리를 쥐어싸매고 이리저리 분주하게 돌아다니던 나츠히코가 고개를 번쩍 들고 소리쳤다.
“안그래도 심란하니까 누나는 좀 나가!”
바야흐로 키쿠하스이 카렌과 연인이 된 지 1년, 그 하루 전날의 일이었다. 아이카는 그러한 사정을 알면서도... 아니, 알기에 오히려 눈꼴시리다는 감정을 감출 수가 없었다.
“연애를 안해본 것도 아니면서….”
아이카는 결국 투덜대면서 주방을 나섰다. 아예 놀러나가는 것이 속편하겠다며 외출복으로 갈아입으러 간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수순이었다.
그리고 남겨진 나츠히코는 아이카의 마지막 한 마디에 더욱 큰 대미지를 받고 의자에 쓰러졌다. 꼼꼼하게 말아올린 머리카락이 툭 풀리며 늘어졌다. 주섬주섬 모아 묶어올리려다 말고 다시 늘어진 나츠히코는 멍하니 허공을 응시하며 생각을 정리할 시간을 갖기로 했다.
연애란 무엇인가? 나츠히코가 이러한 의문을 가져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많은 수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연애 경험이 없는 것도 아닌 나츠히코였지만 이전에는 한 번도 이렇게나 심각하게 고민한 적은 없었다. 몸에 밴 자연스러운 예의와 배려는 풋풋한 그 시절엔 오히려 지나칠만큼 완벽했다는 것이 한몫 했을 터였다.
친절하게, 상냥하게, 상대에게 집중해서, 만나는 시간만큼은 당신 하나만이 전부이듯이.
이거면 된거 아니야? 라고 하기엔 '카렌'은 너무도 특별한 존재였다. 동경과 존경, 슬픔과 죄악감을 넘어 사랑으로 발전한 감정은 지금까지 느껴본 그 어떤 '사랑'과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깊었다. 그러나 나츠히코가 어떤 의미로든 카렌을 좋아해 온 시기는 꽤나 긴 편이었다. 늘 봄볕처럼 따스한 감정의 온도가 그 깊이를 가리고 있었던 것이 나츠히코가 별안간 비상사태를 맞이한 이유였다.
카렌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고 싶다.
한 번 그렇게 생각해버리니 웬만한 것으로는 만족할 수 없었다. 카렌은 필요한 것은 혼자 전부 구할 수 있는 재벌에 능력자였다. 그에 비하면 나츠히코는 어떤가? 노래를 좀 잘하는 평범한 일반인이다. 제딴에는 아무리 비싼 물건을 보더라도 카렌이 평소에 하고다니는 물건들을 생각하면 다시 놓아버릴 수밖에 없었고, '정성이 담긴 수제~' 를 준비하고 있자면 차라리 사는게 낫지 않냐는 의견이 고개를 번쩍 들었다.
“허으으….”
나츠히코는 앓는 소리를 내며 자신이 만들어 둔 파베 초콜릿을 입에 넣었다. 부드럽게 녹아내리는 것을 혀 위에서 데굴데굴 굴리고 있자니 근심걱정도 함께 살살 녹...기는 개뿔. 나츠히코는 세상에 완벽한 것은 없다며 절망한 과학자의 기분을 만끽했다.
“카렌... 난 쓰레기야….”
그렇게 중얼거리던 나츠히코는 가늘게 뜬 눈으로 허공을 노려보며 굳어있다가 고개를 흔들었다.
“취소. 취소.”
키쿠하스이 카렌의 연인이 쓰레기라니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나츠히코는 스스로의 자책 발언에 되려 힘을 입어 몸을 일으켰다. 나츠히코는 양 허리에 손을 당당히 얹고 어깨와 허리를 반듯하게 폈다. 그리고 온 힘과 정성을 와르륵 쏟은 온갖 과자들을 내려다본다. 버리기엔 아까워 죽을만큼 잘 만들어진 것들이었다. 여전히 부족하다고 여겼지만 선물 중 하나로 두기엔 완벽하다. 나츠히코는 손에 묻은 코코아 파우더를 닦고 머리를 질끈 올려묶으며 포장지를 가지러 방으로 올라갔다.
하지만 생각은 끊임없이 이어졌다. 가까운 날에 화이트데이가 있어 달콤한 것을 준비하긴 했지만, 정말로 주고 싶은 선물은 이런 것이 아니었다. 마음속에서 울렁이는 이름 모를 것이 형태를 이루지 못한 채 계속 요동치기만 할 뿐이다.
가장 좋은 것. 가장 원하는 일. 가장 만족스러운 것. 우리의 첫 기념일을, 가장.
“……!”
순간 벼락같은 깨달음이 내리쳤다. 나츠히코는 눈을 번쩍 뜨고는, 계단을 오르다 말고 다급하게 다시 주방으로 향했다. 나츠히코가 주방으로 돌아와 한 일은 곧장 스마트폰을 들어 전화 어플을 켜는 일이었다. 나츠히코는 0번을 꾹 눌렀고, 이내 신호음이 울리기 시작한 액정 위로 카렌의 이름이 떠올랐다.
그렇다! 나츠히코의 선택은...
“카렌. 내일로 우리가 사귄지 벌써 1년이 되더라. 그래서 뭔가 선물을 준비하고 싶었은데... 네가 가장 받고 싶은 것을 주고, 하고싶은 일을 같이 하고 싶어서 직접 물어보기로 했어. 말해주지 않을래?”
답안지를 들춰보는 일이었다. 평생 올바르게 살아왔고 그러기 위해 노력했던 나츠히코는 오늘, 기꺼이 불량학생이 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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