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
1차 BL
노크소리?
헤임과 오스카는 동시에 현관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마리아가 아마존으로 주문했던 공구 박스가 이제 도착한 걸까? 아니면 카밀라가 주기적으로 집에 보내는 영양제? 아니, 지금은 오전 9시다. 이 작은 마을은 택배든 편지든 무조건 오후 2시부터 배송을 시작한다. 적어도 오스카가 기억하는 한 10년 동안은 그랬다. 그런고로 우체부는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누굴까? 늘 상냥한 말투로 꼽 주는 스타인 부인? 아니면 캘리포니아의 찬란한 햇빛에 지쳐 우중충한 에바데일 밑으로 기어들어 온 누나? 그것도 아니라면 10년 전 실종된 아빠? 전부 말이 안되는 소리뿐이다. 고로 지금 집에 올 사람은 없다. 평소라면 그냥 문을 열었겠지만 상황이 상황인지라 오스카는 잔뜩 긴장했다. 헤임 또한 문을 주시하며 살며시 숟가락을 손에 쥐었다. 오스카와 헤임이 동시에 서로를 봄과 동시에 이전보다 더 성급한 노크 소리가 울렸다.
똑똑똑.
작은 노크 소리가 총성처럼 집을 울렸다. 오스카는 헤임과 계속 눈을 맞춘 상태로 입 모양으로 말했다.
'열까요?'
헤임은 고개를 끄덕이고 식탁 의자 끌리지 않게 조심히 일어섰다. 중력 때문에 달달 떨리는 다리로 미끄러지듯 나아가자 오스카 또한 살금살금 그의 뒤를 따랐다. 현관문에 바짝 몸을 붙인 헤임은 숟가락을 단단히 쥔 채 오스카를 향해 끄덕였다. 오스카는 천천히 손을 뻗어 문고리를 감쌌다. 축축해진 손 때문에 문고리는 유난히 미끄러웠다. 오스카는 후, 내쉬고 천천히 문고리를 돌렸다. 끼익- 경첩이 투덜거리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문 앞엔 아무것도 없었다. 아무도 없다. 그저 차가운 겨울 공기만이 오스카의 뺨을 찌르고 지나갔다. 제자리에 선 오스카의 발목에 무언가 싸늘한 것이 천천히 기어 올라갔다. 오스카는 얼어붙은 채 멍하니 제자리에 서서 문고리만 꽉 잡았다.
그때, 아래쪽에서 짜증 섞인 헛기침 소리가 들렸다. 오스카는 화들짝 놀라 몸을 움츠리며 고개를 아래로 내렸다. 긴장감에 시야가 극도로 좁아졌던 그는 드디어 무언가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문 앞에 서 있던 것은 초등학생 정도로 보이는 초록색 모자와 조끼를 입은 여자아이 두 명이었다. 오스카는 그들 중 한명을 알아보았다. 같이 AP 세계사 수업을 들었던 헤일리의 동생 조던이었다. 반짝이는 뱃지 몇 개를 모자챙에 꽂은 조던은 수줍은 듯 촘촘하게 땋은 머리 끝만 꼬고 있었다. 그 옆에 있던 햇빛에 잘 그을린 구리색 머리에 주근깨가 얼굴에 콕콕 뿌려진 아이가 작은 주먹을 입 앞에 대고 헛기침 하더니 빳빳하게 코팅 된 종이 하나를 꺼냈다. 소녀가 미소 짓자 교정기와 조끼에 전리품처럼 달아놓은 여러 뱃지들이 햇빛에 반짝였다.
"안녕하세요! 저희는 에바데일 걸스카우트에요. 맛있는 쿠키를 구매하시고 제3세계 어린이들을 위한 기금 모금에 동참하세요!"
오스카는 다리가 풀릴 뻔했다. 맙소사. 지금 걸스카우트 쿠키 판매 때문에 그렇게 겁을 먹었다고? 친구들이나 가족들이 봤다면 10년은 족히 놀림 받았을 것이다. 어쩌면 묘비에 적힐지도. 오스카는 주머니를 더듬거렸다. 친구 동생이니 예의상이라도 하난 사야 했다. 그때 어둠 속에서 창백한 팔 하나가 아주 고요히 문틈 사이로 뻗어 나왔다. 그리곤 쿠키 목록이 적힌 종이를 소녀의 손에서 뽑아갔다.
"으악!"
"으아아!"
"악!"
헤임의 귀신 같은 등장에 세 명 모두 놀랐다. 조던은 카트 손잡이를 놓쳤다. 구리색 머리 소녀는 눈이 커다래진 채 가슴에 손을 얹고 진정하려고 노력했다. 헤임은 모두를 무시하고 쿠키 목록을 흥미롭게 보고 있었다. 파이몬 휘하의 악마들은 대체로 지적 능력이 뛰어났는데, 모든 지적인 생물들이 그러하듯 기본적으로 호기심이 많았다. 특히나 헤임은 인간계로 소환되는 악마가 아니었기에 더 그랬다. 구리색 머리 소녀는 기회를 놓치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의 뱃지가 꽁으로 얻어진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소녀는 금세 밝은 목소리로 영업을 시작했다.
"저희는 다양한 맛의 맛있는 쿠키를 판매하고 있어요."
"초콜릿 쿠키에 민트 오일을 넣어 굽고 코팅한 바삭바삭한 씬 민트, 바삭한 쿠키에 코코넛칩이 잔뜩 뿌린 후 초콜릿으로 코팅한 사모사, 부드러운 버터 쿠키 위에 상큼한 레몬 아이싱이 발린 레몬-업, 달콤한 캐러멜이 짭짤한 버터 쿠키에 박힌 글루텐프리 토피-테이스틱 등 모든 쿠키는 에바데일 내 베이커리에서 직접 만든 신선하고 맛있는 쿠키입니다. 달콤한 쿠키와 함께 여유로운 오후를 즐겨보세요!"
흥미로움에 눈 색이 더 짙어진 헤임은 코팅된 종이를 오스카에게 내밀며 손가락으로 노란색 동그란 쿠키를 가리켰다. 소녀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눈을 빛내며 카트에서 지갑을 꺼냈다.
"쿠키는 한 상자 당 5달러입니다. 거래는 현금만 가능하세요. 만약 쿠키를 원치 않으신다면, 지역 걸스카우트 커뮤니티를 통해 후원해주실 수도 있습니다. 뭐로 드릴까요?"
오스카는 지갑을 벌렸다. 다행히 10달러 한장이 있었다. 오스카는 10달러를 꺼내며 소녀에게 건넸다.
"어... 그래, 레몬-업 하나랑 씬 민트 하나만 부탁할게."
"네!"
소녀가 돈을 받자 조던이 카트에서 쿠키 두 상자를 꺼내 건넸다. 수줍음이 많은 조던은 쿠키를 건네며 아주 작은 목소리로 감사합니다, 라고 속삭였다. 소녀는 야무지게 지갑에 돈을 넣고 노트에 체크한 뒤 해맑게 웃었다.
"오늘 저희 쿠키를 구매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더 많은 걸스카우트들이 성장하고 지역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데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이제 가자 조던!"
"으응...."
소녀는 씩씩하게 카트를 끌며 다음 집으로 향했다. 두 소녀는 조용히 속닥거렸지만 동네가 워낙 조용했기에 둘이 소곤거리는 소리가 다 들렸다.
"야, 네가 말한 언니 친구가 저 사람이야? 잘생긴 바보 같은데?"
"아냐 근데 공부는 잘한다고 했어..."
"근데 왜 인기 없는지 알겠다...."
두 소녀는 냉정한 평가를 두고 초록색 카드를 끌며 사라졌다. 순식간에 앞담 당한 오스카는 문가에 서서 황당한 얼굴로 눈만 끔뻑이고 있었다.
"어려도 눈은 정확하군, 음. 확실해."
헤임은 한쪽 입꼬리만 말아 올리며 오스카를 비웃곤, 그의 품 안에 있는 노란색 쿠키 봉지를 얄밉게 쏙 뽑아갔다. 오스카는 집 안으로 들어가는 헤임의 뒷모습을 보며 억울한 듯 중얼거렸다.
"바보 아니라구요오......"
오스카는 문을 닫은 후 꿍얼거리며 헤임의 뒤를 따라갔다. 헤임은 또 다시 자연스럽게 오스카의 말을 무시하며 소파에 앉았다. 오스카는 조금 떨어진 곳에 앉았다. 테이블 위에 있던 리모컨으로 티비를 킨 후 채널 23을 틀었다. EMN (에바데일 모닝 뉴스)에선 한참 어제 있던 마을의 소소한 사건·사고에 대해 얘기하고 있었다. 오스카는 그걸 배경음 삼으며 핸드폰을 꺼내 밀린 연락을 확인하고 답장을 했다. 헤임은 봉지에 적힌 정보들을 꼼꼼히 읽으며 오스카에게 물었다.
"이거 먹어본 적 있어?"
오스카는 빠르게 답장을 보낸 후 테이블에 핸드폰을 뒤집어놨다. 그 또한 테이블 위 상자를 집어 들곤 헤임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네... 누나가 걸스카우트였거든요. 어릴 때 웬만한 건 다 먹어봐서 신메뉴가 나오면 종종 사 먹어요. 그거 새콤하고 맛있어요."
"흐음...."
헤임이 봉투를 뜯자 큼지막한 레몬 쿠키 10개가 들어있었다. 쿠키엔 여러 문구들이 쓰여 있었다. I'M A LEADER, I'M A BOLD, I'M A FREE SPIRITS, I'M A GUTSY, I'M STRONG, I'M GO-GETTER 그 외 등등. 그 중 헤임은 [I'M A LEADER] 라고 적힌 레몬 향이 풀풀 나는 쿠키 하나를 집고 조금 베어 물었다. 지옥의 것과는 달리 인공적이고 좀 달긴 했으나 그럭저럭 괜찮은 맛이었다. 헤임은 쿠키를 씹으며 검지 손가락으로 오스카의 손등을 콕콕 눌렀다.
"저건 무슨 맛이야?"
"씬 민트요? 음... 초콜릿 쿠키인데 페퍼민트 맛이 엄청나요. 드셔보실래요?"
"지금 말고. 좀 나중에."
헤임은 새침하게 덧붙인 후 작아진 조각을 입에 쏙 밀어 넣었다. 손에 묻은 가루를 테이블 위에 털고 한쪽에 몰아넣은 다음 쿠키를 집었다. 채널 23에선 이제 날씨에 대해 얘기하고 있었다. 오스카는 날씨가 나오자 조금 집중을 기울였다. 에바데일의 궂은 날씨 때문에 기상 예보는 마을 주민들의 아침 루틴 중 하나였다. 오스카는 볼륨을 좀 더 올린 채 귀를 기울였다. 이윽고 화면이 전환되며 마을 유명 인사인 브루넷 헤어의 기상캐스터가 매력적인 미소를 띈 채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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