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 악마도 반품이 되나요?

5화

1차 BL

Rose by 제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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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I7rkCHBHPN8?feature=shared

악마의 다급한 말 한 마디는 오스카의 남은 눈물을 쏙 들어가게 만들었다. 지상에 강림한 지 겨우 1시간 이었지만 노래 끝나면 취소 후 바로 다음 곡 시작, 간주 점프 연타 하는 사람처럼 효율적으로 시간 꽉꽉 채워 지랄하던 악마는 이제 심각한 얼굴로 방 안을 서성이며 무언가를 중얼거리고 있었다. 아까 오스카에게 '제 0의 서'에 대해 알려줄 때 보여주던 것과는 전혀 다른 모습에 알 수 없는 불안감이 스멀스멀 오스카의 발목으로 기어오르기 시작했다. 오스카가 멍하니 악마만을 바라보느라 답하지 않자 악마는 다시 소리를 빽 질렀다.

"어디냐고!"

"그게....시내에 있는 카페! 카페 건너편에 있었어요..."

악마는 단숨에 오스카의 앞으로 다가와 그의 목덜미를 덥석 잡았다. 둘의 체급 차이에도 불구하고 악마는 가볍게 일으켜 오스카를 얼굴 가까이 끌어당겼다. 누구 하나 잘못 움직이면 곧바로 접촉사고 나기 딱 좋았지만 악마는 그런 것은 전혀 신경도 쓰지 않는 것처럼 눈만 부라리고 있었다.

"지금 당장 그 서점으로 가야 해. 이해했어?"

솔직히 말하자면, 오스카는 이해하지 못했다. 오스카에겐 '설마' 나 '말도 안 돼!' 따위로 모든 상황을 이해하는 드라마 속 조연의 능력이 없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매서운 눈초리는 오스카가 엉겁결에 고개를 끄덕이며 떠듬떠듬 말하게 만들었다.

"밖에...밖에 제 차가 있어요. 지금 바로 그 서점으로 데려다 드릴게요."

다급해진 오스카는 악마를 다락방에 두고 진짜 개라도 된 것마냥 네발로 우당탕탕 지하실에서 기어 내려갔다. 방에서 간신히 면허증 하나만 주머니에 쑤셔 넣고 뛰어 내려오던 중, 마지막 칸에서 스텝이 꼬여 스스로 발을 밟자 오스카는 주사 맞은 강아지처럼 비명 질렀다.

"악!! 썅!"

발등 부러진 거 아냐? 눈물이 고였지만 걸음을 멈출 순 없었다. 발등을 부여잡고 콩콩 뛰며 오스카는 힘겹게 식탁에 있는 차 열쇠를 챙기고 집 밖으로 뛰었다. 악마는 어느새 그의 차 조수석 안에 앉아있었다. 악마는 다리를 꼰 채 늦게 온 오스카를 타박하듯 째려봤다. 서두르느라 스스로 발등을 찍은 그 눈빛에 꽤나 서러워졌지만 재빨리 안전벨트를 맨 뒤 차에 시동을 걸었다. 엔진이 가동되는 소리가 울리고 오스카가 패달을 밟자 2015년식 은색 프리우스가 부드럽게 거리로 미끄러졌다. 텅 빈 거리를 달리는 동안 차 안은 정적만 가득했다. 처음 복도를 걸을 때의 기대감 혹은 아니꼬움이 가득했던 그런 동상이몽적 침묵과는 완전히 달랐다. 불쾌할 정도로 불길한 기분. 그런 것이 공기 중을 떠다녔다. 악마는 차가 출발한 이후부터 창밖만 바라보며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는 눈치였다. 와이퍼가 전날 내린 눈을 닦는 소리만 울리던 중 오스카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조심스레 악마에게 물었다.

"저기....무슨 일인지 설명해주실 수 있나요?"

"지금 말고."

악마는 단칼에 대답을 거절하곤 계속해서 창밖만 바라봤다. 오스카는 불안감을 티 내지 않으려 노력하며 꾹꾹 눌러 담고 페달을 밟아 속도를 올렸다. 오늘은 눈이 내리지 않았던 탓에 거리는 평소보다 더 활기를 띄우며 이래저래 사람들이 가득했다. 삼삼오오 쇼핑과 영화 등 여가생활을 즐기는 발랄하고 즐거워 보이는 사람들과 달리 차 안 공기는 점점 더 무거워지고 있었다. 머릿속에서 많은 생각들이 복잡하게 얽혀가던 중 차는 곧 서점 인근에 도착했다. 오스카는 길거리에 대충 아무렇게나 처박듯 주차하고 서점을 향해 뛰어갔다.

그러나 서점 창문엔 수십년간 햇빛에 바랜 것처럼 희미해진 'CLOSE' 안내판이 걸려있었다. 80년대에 히트쳤던 유행어를 사용한 임대 관련 공고문이 완전 너덜너덜해진 상태로 안내판 밑에 붙어있었다. 오스카가 3주 전에 본 것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다. 깨끗했던 창문은 내부가 전혀 보이지 않을 정도로 먼지로 뒤덮여 지저분한 상태였다. 오스카의 뒤에 서 있던 악마의 목에서 무언가 끓어오르는 듯 으그르르 하는 소리가 들리자 적잖게 당황한 오스카는 해명했다.

"잠깐만요! 3주 전엔 이렇지 않았는데....."

오스카의 가슴이 쿵쾅쿵쾅 뛰었다. 상황이 점점 더 이상해지고 있었다. 오스카는 악마에게 자신의 결백을 증명해야 한다는 생각에 홧김에 서점 문손잡이를 잡고 확 밀었다. 의외로 서점 문은 열려있었다. 삐걱거리는 문을 조심스럽게 밀자 내부는 3주 전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다.

족히 수십 년은 아무도 들어오지 않은 것처럼 먼지와 벌레 사체가 가득했다. 그날 오스카가 느꼈던 포근한 책 냄새는 꿈이라도 꿨던 것처럼 불쾌한 곰팡내만이 가게를 꽉 채우고 있었다. 그 불쾌함에 오스카는 코를 살짝 막은 채 머뭇거리며 가게 안으로 조심히 걸어 들어갔다. 악마는 아예 발이 닿지 않게 살짝 뜬 상태로 오스카의 뒤로 따라 들어갔다. 오스카의 스니커즈가 닿는 곳마다 썩은 나무 바닥이 끔찍한 비명을 질렀다. 가게 내부로 들어가자 천장까지 닿는 커다란 책장이 각 벽에 성벽처럼 붙어있었고 같은 색상의 책장 여러 개가 미로를 형성하듯 어지럽게 널려있었다. 악마가 책과 책장에 뒤섞이듯 곰팡이가 잔뜩 핀 선반을 살펴보던 중 4번째 선반 위에 끈적해진 트위즐러 한봉지가 책 옆에 박혀있었다. 악마가 밧줄 같은 딸기 맛 젤리가 한가득 들어있는 투명한 봉투를 공중에 띄운 채 이리저리 돌려보자 Makes Mouth Happy! 라는 커다란 스티커 아래로 간신히 8-3-1985 라는 글자가 보였다.

"어...저기요?"

오스카가의 목소리는 조용한 매장에 메아리치듯 울려 퍼졌다. 저기요-기요-요-오...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오스카는 긴장감에 침을 꿀꺽 삼키고 다시 한번 말했다.

"저기..여기 누구 있나요?"

하지만 여전히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오스카는 조심스럽게 카운터를 향해 걸으며 눈으로 책장을 훑어보며 의심스러운 것이 있는지 살폈다. 책장엔 팔 한 쪽이 떨어져 나간 케어베어나 짧게 유행한 후 단종된 소다 캔 같은 것들이 찌그러진 채 아무렇게나 놓여있었다. 오스카는 그것이 예전에 80년대 광고 에세이를 쓸 때 주제로 삼은 음료임을 깨달았다.

"여기서 저번 주에 책 한 권을 샀는데......이 책에 대해 확인할게 좀 있어서요..."

하지만 여전히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서점 안은 인간의 흔적은커녕 거미줄과 먼지, 벌레 사체로 가득 차 있었다. 최소 수십 년 간 이 가게에 아무도 들어오지 않은 것처럼 말이다. 오스카는 책상 근처로 다가갔다. 3주 전 친절한 서점 아저씨가 앉아있던 의자는 다리 하나가 부러져 사람이 앉을 수 없는 상태였으며 책상은 두껍고 끈적한 먼지로 뒤덮여있었다. 마치 오스카를 조롱하듯 말이다.

어느새 오스카의 뒤로 다가온 악마는 오스카의 바지 주머니에 끈끈한 트위즐러 봉투를 강제로 쑤셔 넣었다. 악마는 오스카가 놀라든 말든 신경 쓰지 않고 책상 앞으로 다가가며 조용하고 숙연한 목소리로 말했다.

"소용 없어. 이미 늦었거든."

악마는 얄쌍한 손가락을 뻗어 책상을 쓰윽 훑자 두툼하고 찐득찐득한 먼지가 손가락에 잔뜩 묻었다. 끈적한 먼지가 덕지덕지 붙은 손가락을 서로 비벼 덩어리로 만든 후 악마는 오스카에게 먼짓덩어리를 튕겼다. 몇 번 더 손가락을 튕기며 남은 먼지를 털어내는 악마의 얼굴은 더할 나위 없이 엄숙했다.

"우선 네 집으로 돌아가지, 우리에겐 대책이 필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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