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팡3세

[루팡3세/루팡패밀리] 사분면

* 펜슬에 이주하며 재업함

* 해당 글은 파트4 시청 중에 쓰였으므로, 지금과는 캐해가 조금 달라졌...나...?

* 주행 중에 파트5 11화 파블로 콜렉션을 노려라! 초입의 클립(대도와 총잡이와 검호의 팥죽 취향이 멋지게 갈리는 부분)을 보고서 착안한 글 : 오로지 인간이기를 추구하는 루팡과 검과의 물아일체를 꿈꾸는 고에몽과 총과 총잡이의 양측을 공명하고 있는 지겐, 그리고 후지코는 물건과 인간은 서로 바뀌어 동치한다는 어찌보면 지겐하고 비슷한가 싶으면서도 자율성이 다른 느낌 아닐까나-하는 해석은 어떨까 정도로 봐주시면 감사합니다

* 루팡패밀리가 톳쨩 되게 맘에 들어하는 거 진짜 좋아해요. 너네 톳쨩 진짜 좋아한다.

* 세세한 설정은 틀려도 이제 나는 몰라-배짱장사 중

* 톳쨩은 더빙판 번역을 따라서 '아재'로 썼는데, 언젠가 좀 더 찰떡인 걸 찾으면 바꿉니다


세간에서 흔히 루팡 패밀리로 불리곤 하는(정작 멤버들은 각개행동을 하는 경우도 부지기수였으나, 굳이 그 단어를 부정하지는 않는다) 네 명은 여기 일본에 발이 묶였다. 그럭저럭 예상한 일이더랬다.

그야 이곳은 제니가타 경부의 출신지였으니까. 다른 때보다 촘촘하게 뻗은 포위망이 있을 것은 자명하다. 애초에 타국에서 있을 적에도 언제나 턱밑까지 쫓아오는 사내가 아닌가. 정치질에 휘말려서도 본인의 뚝심과 직감에다 부하들에게 얻은 인망과 신뢰로 거기까지 해내는 자인데 그를 고까워하는 인간이 극히 드문 고향 땅에서는 얼마나 무서운 저력을 보여줄까-를 루팡은 꽤 기대했고, 제니가타 경부는 감히 루팡 3세의 숙적이라 불리는 사나이답게 그 이상을 보여줬다. 덕택에 아예 딴판으로 챙겨뒀던 도주 경로 열두 개는 전부 막혔고(후지코가 자기 혼자서 탈출하려고 빼둔 루트를 빼고서다. 물론 그것도 못 쓰게 됐지만), 이 근방 70km 내에 구해뒀던 루팡의 아지트도 더미를 포함해 서른세 개가 다 털렸다. 평소에도 길거리에서 덥석 마주치는 걸 생각하면, 이건 정말 로또 긁어야 하는 거 아니냐며 달아나는 중에 루팡이 농담을 던졌다. 물론 경부의 답장은 수갑이었지만. 그리고 그를 따르는 수많은 경관과 형사들도 덤으로.

설마 여기까지 해내겠느냐 하면서도 마지막 아지트까지 깡그리 털린 걸 확인한 루팡은 먹잇감을 쥐었을 때보다 더 신난 얼굴을 했다. 그와 오래 함께해 온 지겐 역시 썩 다르지는 않았고, 고에몽은 그저 상대에게 감탄을 거듭했으며, 후지코는 저 정도로 끈질긴 남자는 귀찮다고 투덜거렸지만 추격전의 스릴 만큼은 듬뿍 즐기는 얼굴을 했다.

“자, 그럼 우리도 도박을 해볼까-.”

멤버의 면면을 둘러본 루팡은 악동 같은 얼굴로 히죽거리더니 곧장 안대를 했다. 그러자 맨 끝에서 따라오던 고에몽이 선두를 서고, 지금껏 맨 앞을 달리던 루팡을 엄호하듯이 중간에 자리했던 지겐이 후미로 내렸다. 눈을 가린 루팡은 후지코가 이끌지만 루팡 본인은 눈을 가린 것치고는 잘만 뛴다. 평소처럼 치대오지 않는 것을 흘금 본 후지코는 어깨를 으쓱해 보였지만 그 사실을 굳이 입에 올리지 않았다. 전부 합의된 사항이니 말이다.

 

 

꽤 오랜만에 계획 단계부터 이 네 명으로 시작했던 건이더랬다. 하필이면 일본의, 심지어 제니가타 경부가 경찰관을 시작한 지역을 끼고 하는 일이었기 때문에 그들은 최후의 최후에나 뽑아 들 도박수를 챙겨두기로 했다.

어떤 가설 하나에서 시작하는 노림수다.

제니가타 경부가 심력을 다하며 그 레이더를 드미는 것은 루팡 3세에게 한정된다. 그와 함께하는 지겐이나 고에몽에겐 신경을 쓰지 않을 때도 많다. 심지어 그 미네 후지코를 보고서도 루팡에게 이어질 단서로나 생각하는 사내가 아닌가. 그렇다면 혹시 다른 셋의 아지트라면 가끔은 신내림이라도 받은 게 아닌가 싶은 아재의 직감에도 걸리지 않는 게 아닐까?

놀랍게도 이게 먹혔다. 제니가타 경부가 일본 출신인 것처럼 여기, 이시카와 고에몽 또한 일본에서 나고 자란 이다. 거기에 별별 오지를 직접 찾아 들어가 수행하기도 하니 어떤 면에서 고에몽이야말로 일본 열도 내에서 숨어있을 만한 아지트를 찾기엔 적합한 인물이었다. 루팡이 뭔가 알아차리면 그에 맞추어 제니가타 경부도 계시 같은 직감을 얻을지도 모른다 싶어, 다 같이 침묵을 입에 물고서 산과 강을 휘돌아 일박이일 걸어간 후에 도착한 장소는 산자락을 끼고 있는 어느 촌이었다. 고에몽의 말로는 이 촌락은 지도에도 없고 따로 인구조사에 잡히지도 않는 곳이랬다.

핸드폰 전파도 터지지 않는 촌구석이라(어차피 지금은 한동안 납죽 엎드려 있어야 했으니 아무도 불평하지 않았다) 이전에 띄워둔 전용 스텔스 위성을 경유해서 일본 경찰의 움직임을 잠깐씩 확인하는 게 다다. 아마 한 달은 숨죽여야 하지 않을까. 아재 하나랑 경관 두 소대쯤은 남겠지만, 그건 따돌릴 수 있겠지. 경찰과 ICPO의 통신을 도청한 지겐이 심드렁하게 말을 뱉었다. 후지코는 빠르게 현실을 받아들였다. 뒷세계를 가장 오래도록 전전한 사내가 경찰의 물러섬을 예측하는 건 대체로 맞는다. 루팡의 보석과 미술품을 감정하는 눈이 정확한 것과 마찬가지다. 그렇게 맘을 먹으니 긍정적인 생각도 솟았다. 이왕 이렇게 된 김에 푹 쉬어두면 된다. 이 멤버에겐 굳이 과한 가식을 두르지 않아도 되니까 편하다. 때때로 화장을 지우고 맨얼굴로 있는 것도 나쁘진 않겠지. 뭐, 완전 밑바닥을 보여주진 않겠지만. 게다가 어중이떠중이의 TV쇼보다 저 셋의 멍청한 대화를 보는 게 더 즐겁기도 하고.

하여간에, 각각 하나씩을 떼어놓고 보면 입이 떡 벌어질 타이틀을 아기 주먹만 한 귀금속처럼 주렁주렁 달고 있는 주제에 이렇게 모여 있으면 그냥 바보 같은 남자애들 셋일 뿐이다.

지금은 어찌어찌하다가 뭔가 동양에서 흔히 말하는 “물아일체”라는 단어를 둘러싸고 마구 떠들고 있다. 여기서 그 단어의 명확한, 그러니까 문화적 배경까지 더불어서 이해하고 있는 건 고에몽 하나다. 지겐이나 저는 일본인으로서의 이름을 가지고 있긴 하지만(서로가 이게 본명이 맞는지조차 모른다) 오히려 서구권을 주로 돌아다녔던 탓에 동양권 문화에는 밝지 못하거나 지식 자체가 치우쳐져 있다. 그런데 이름 때문에 착각하는 건지 뭔지, 고에몽은 곧잘 저나 지겐이라면 자기가 하는 말의 맥락을 이해할 거라고 생각할 때가 있는데 아마 지금도 그중 하나지 않을까 싶다.

“아니, 검이면 검인 거고, 사람이면 사람인 거지.”

“루팡, 그대가 이걸 이해하리라고는 한 톨도 기대하지도 않았소. 그렇지만, 지겐, 그대는 이해하지 않나? 그대 역시 어느 지극한 경지에 이른 자 아닌가. 그런데도 총이 곧 나요, 내가 곧 총이라는 그런 감각을 느껴본 적이 정녕 없단 말인가?”

고에몽 쨩 너무하네! 자타공인 천재의 두뇌를 가진 루팡은 제가 이해할 수 없을 거라고 한 치의 망설임 없이 딱 잘라 베어 말하는 팀의 막내(다 같이 나이를 맞춰본 적은 없지만 틀림없을 거다)에게 징징댔지만, 상대가 나빴다. 지겐이었다면 적당한 선에서 굽혀주고 받아줬을 텐데, 아쉽게도 저쪽은 뭐든 단칼에 베어내기를 좋아하는 검호 님이시다. 흑과 백, 시와 비는 반드시 가려야 직성이 풀리는. 반면에 지겐은 막내로부터 꽤 어마한 칭찬을 듣고서도 어깨나 으쓱이고 술을 기울이고 있다. 물론 후지코에게는 손아래 동생이 눈을 부라리며 자기 답을 집중하고 있는 그 자체가 재밌어서 으스대는 걸로 밖엔 보이지 않았지만. 하여간 남자들은 단순하고 유치하다.

“뭐, 네가 무슨 느낌을 말하는 건지는 알 것 같은데. 어쩌다 있기야 하지. 분명 한참 멀리 있는 표적인데도 눈앞에 있는 것 같은. 근데 네가 말한 게 이런 거가 맞나? 게다가 검하고 총을 같은 선에 두는 것도 이상한 거 같은데.”

“소인의 것은 참철검이라고는 하나 검이 아니고 도-아니지, 지금은 이 문제가 아니었구려. 여하튼 맞소이다. 그대는 분명 이해할 거라고 생각했지!”

총잡이의 답에 검호의 표정이 확 폈다. 반대로 옆에 있던 루팡은 더더욱 오만 상을 쓰고서 뭔가 구시렁구시렁한다. 그 모습에 지겐은 가볍게 혀를 차고선 루팡의 옆구리를 찔렀다. 나잇값 좀 하라는 타박인데, 그게 먹혔으면 저 사내가 저런 식으로 방종하게 지내지는 않을 거다. 뭐, 본격적인 제지가 아닌 것도 한몫할 거고. 원래 저 남자를 가장 응석받이로 만든 것은 지겐 다이스케 본인 아닌가. 후지코는 속으로만 픽 웃었다.

거기서 지겐이 팔리아멘트를 물고 불을 붙이기에 바보 같은 대화는 여기서 끝인가 했더니, 웬걸, 필터를 물어서 약간 씹히는 발음으로 총잡이가 말을 이었다. 이 쇼도 아직 더 지켜볼 수 있으려나 싶다.

“나는 내가 총이 됐건, 총잡이가 됐건 별로 신경 안 쓰지만.”

“으음, 그대의 기술은 이미 물아일체에 가까운 경지에 이르렀는데도 그런 무욕이라니. 그야말로 공즉시색 색즉시공 아닌가. 그대는 어찌 수행의 길을 걷지도 않고 그것을 깨달은 것일지는. 아니지, 이는 오히려 소인이 물아일체에 집착하기 때문인가? 그래서 내가 번뇌에 휩싸이는 것인가!”

“고에몽 쨩, 성찰도 좋긴 한데―, 뭐랄까, 나는 우리 검호 선생님이 추구하는 바를 가로막고 싶은 생각은 없거든? 내 맘에 들고 말고를 떠나서? 그런데 거기에 지겐 다이스케를 끌고 가진 않았음 좋겠네!”

“? 소인이 뭔가 잘못 말한 게 있나? 루팡 그대, 무슨 연유로 그다지도 화가 난 게야.”

“으우우! 그래! 고에고에가 알고 말했을 리가 없지! 그런 거 알고 말했으면 벌써 나랑 사달을 냈겠지!”

루팡이 갑자기 혼자 급발진해서 다다미 위를 떼쓰는 아이처럼 마구 데굴데굴 구르자, 고에몽은 혼란스러운 얼굴을 하고 지겐과 저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자기가 말한 것 중 어디에 루팡을 자극할 요소가 있었는지 정말로 모르는 표정이다. 게다가 답을 저나 저 남자가 가지고 있으리라고 철석같이 믿는다. 꽃병이라도 깬 애 같은 표정에 후지코는 이번엔 그냥 희미하게 소리 내어 웃고 말았다. 그것만으로도 제가 이 촌극에 끼어들 생각이 없다는 게 전해졌는지 말간 시선은 지겐에게로 옮겨졌다. 어쨌든 고에몽의 직감은 맞았다. 저는 무엇이 루팡을 저런 떼쟁이로 만들었는지 분명히 알고 있고, 그건 지겐 역시 같을 것이다. 아무렴, 저쪽은 심지어 당사자이기까지 한 것을. 잠깐 새까만 총잡이와 시선이 맞았지만 후지코는 턱짓 한 번으로 그걸 물리쳤다. 이럴 줄 알았다는 식으로 혀를 차고 담배를 재떨이에 눌러 끄는 꼴이 퍽 우습다. 제가 저 대신 말해줄 거라고 생각한 건지 뭔지. 그런 생각은 서로가 하나도 없었으면서.

‘물론 짐작하는 이유는 있지만. 진짜 별로라니까.’

루팡은 여전히 바닥을 데굴데굴 좌우로 구르고 있고, 고에몽은 난감한 눈치다. 그 사이를 지겐이 슬쩍 끼어들어서 꽤 능숙한 폼으로 양쪽을 달랬다. 칼잡이 쪽은 그의 고갯짓 한 번에 어깨에 들어간 힘을 빼고 슬그머니 자리를 물러나 제 쪽으로 와서는 평소처럼 정좌했고(후지코는 여기서 결국 다시금 웃고 말았다. 하여간 귀엽게) 그걸 곁눈질로 확인한 지겐은 나잇살 먹은 어른이 되어서는 코흘리개 어린애처럼 투정 부리는 중인 파트너는 아예 머리를 구깃구깃 쓰다듬어댔다. 퍽 다정한 행동이었으나 거기서 나온 말은,

“너어는 작작 좀 해라.”

꽤 냉랭했다. 물론 씨알도 안 먹혔다. 루팡은 여전히 생떼를 쓰고 있고 슬슬 거짓 울음까지 꺼내 들 참이다. 질기게 오래 보아온 면면이라 통할 리 없는 건 뻔히 알면서도. 후지코는 슬슬 이 촌극을 닫고 싶은 맘에 아주 너그럽게도 운을 떼주기로 맘먹었다. 값은 나중에 루팡에게서 털어가면 되지 않을까. 지겐이어도 괜찮고. 인원수대로 배분해도 어차피 저쪽은 둘이서 지내니 삼 분의 일씩으로 나눴어도 좋았을 텐데(이전에 건의했던 사항이다. 깔끔하게 기각됐다) 말이지.

“뭐어, 루팡은 사람을 물건 취급하는 걸 썩 안 좋아하니까. 그렇지? 한때는 값이 비쌌던 킬러 씨?”

굳이 보수나 의뢰비가 아니고 값이라는 단어를 썼다. 물건에다가 쓰는 단어. 단어 선정은 언제나 그 자체보다 많은 것을 말해주곤 한다. 사기를 밥 먹듯이 하는 도둑들에게는 더더욱.

과연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이쪽으로 시선이 훅 쏠렸다. 바로 옆자리에서는 호기심이, 정면의 둘에게선 아주 상반된 온도를 가진 눈길이. 후지코가 짐짓 모르는 체를 하고서 이제는 네가 말할 때라며 고개를 돌리자, 지겐은 그저 한숨만 푹 쉬고서 말을 받았다. 굳이 여기까지 이야기가 흘러올 게 뭐냐는 식이다. 루팡은 이제 널브러진 그대로 입술이나 비죽거리고 있다. 그러면서도 제 파트너가 무어라고 말하려나에는 확실히 집중하고 있다. 맘에 안 드는 답이 튀어나오면 가만두지 않겠다는 눈초리이기도 했다.

“왜 화살이 나한테 돌아온 건데. 야, 고에몽. 너도 이 녀석이 쓸데없는 살인은 안 좋아하는 건 알지?”

“그야 그렇소만. 우리가 일 할 때면 그게 언제나의 전제조건 아닌지. 귀찮은 조건이긴 하다마는.”

“그래그래. 솔직히 손 많이 가고 귀찮은 일이긴 하지. 죽이는 게 어쨌든 제일 쉽게 정리하는 수단이니까―아니, 루팡. 알잖아. 그냥 얌전히 듣고나 있어. 젠장. 하여튼 몇 년이 지나도 넌 애새끼야―. 그러니까, 고에몽, 얘는 내가 남한테 고용돼서 총잡이가 아니라 총처럼 사용되는 걸, 그렇게 사람을 죽이는 걸 싫어하는 거야. 나로선 고용되면 그게 총이지 뭐야 싶긴 한데, 재미없는 건 사실이잖아. 남의 의지로 무기를 휘두르는 건.”

“그! 러! 니! 까! 내가 남의 총이었던 ‘지겐 다이스케’를 내 파트너, 인간 ‘지겐 다이스케’로 훔쳐 오는 데 얼마나 걸렸다고 생각하는 거냐구! 그거를 되돌리는 놈은 누가 됐든 정말 용서 못 하니까!”

“…그런 의미였구려. 그 점, 몰라뵈어 죄송천만했소. 그러나, 자신의 무기와 동화될 수 있는 경지에 이르는 것은 그것과 다르지 않을지.”

간신히 진정됐다 싶었던 루팡이 고집을 꺾지 않는 고에몽의 발언에 다시금 폭발했다. 키아악 따위의 무슨 괴성을 내지른다. 물론, 막내 녀석은 눈 하나 깜짝 안 한다. 지겐은 사태를 방치 중이고. 그 꼬라지를 일견한 후지코는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하, 그래. 이 시커먼 남정네들한테 촌극을 멈추라며 은근하고 세련된 방식으로 등 밀어봐야 헛수고였다. 그냥 처음부터 나설 것을. 후지코는 바닥을 한번 쾅 세게 내리쳤다. 간드러진 목소리로 불러봤자 이쪽을 볼 인간이 하나뿐이니 별수가 없다.

“정리해보면, 고에몽은 자신이 검이었으면 싶은 거고, 루팡은 어디까지나 인간은 인간이라는 주장인 거잖아. 지겐은 그 양쪽에 애매하게 걸쳤고―하여간에 남자들은 왜 그렇게 시시하고 별거 아닌 걸로 고집을 부리고 떼를 쓰나 모르겠어. 정말 유치해.”

동그랗게 뜨인 눈 세 쌍이 이쪽을 완연히 향했다. 이거 선생님이라도 된 기분인데? 학생이라고 치기엔 다들 나이가 있지만. 어쩌면 저쪽도 이 ‘물건이냐 인간이냐’는 물음에 대한 미네 후지코의 답이 궁금한 걸지 모르겠다. 이토록 간단한 문제를 심각하게 이야기하고 있는 바보들에게 그는 별 게 아니라는 식으로 툭하고 말을 뱉는다.

“물건도 인간도 결국 동치되는 거야. 구분에는 의미가 없어. 난 그렇게 평생을 살았으니까. 루팡, 현명한 당신은 내가 말한 게 무슨 뜻인지 알겠지?”

“―그으래, 후지코 쨩. 이 세상에서 가장 빛나는 보석, 최고로 화려하게 피어난 꽃! 명답, 이긴 한데! 으으, 역시 내 맘엔 안 들어….”

“하여튼 정말 다들 바보 같아. 평생 물화되어 살아가는 여성의 삶을 조금은 생각해주겠어? 뭐, 그런 바보들이 세상 절반이라 일하기는 쉽지만.”

“바보라서 미안하게 됐수다.”

“하나도 미안하지 않은 주제에.”

“그건 그렇지.”

아마도 여기서 자신의 답변과 가장 유사한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을 총잡이와는 몇 초 눈이 맞았으나, 저쪽에서 결국 먼저 피했다. 후지코는 속으로 혀를 찬다. 그래서 당신이 날 맘에 안 들어 하는 거겠지. 물건으로도 사람으로도 있을 수 있지만, 나는 스스로 그 자리를 택하므로. 너는 지금 사람으로 있긴 하지만 그조차도 루팡이 그렇게 방아쇠를 걸었기 때문이고. 후지코는 꽤 오래전에 동드루아에서 보았던, 아직은 총에 훨씬 가까웠던 시절의 지겐 다이스케를 떠올린다. 나중에 전해 듣기론, 그가 총이 아니고 총잡이였기에 살았다고 했다. 그게 가장 큰 계기 아니었을까. 그가 이편에서 저편으로 떠밀려 오게 된.

저 남자의 성정으로 볼 때, 있을 자리를 스스로 결정하는 사람들(저를 포함한 나머지 셋 말이다) 사이에 있는 것이 결단코 나을 것이다. 뭐, 굳이 제가 신경 안 쓰더라도 파트너인 루팡이 알아서 할 테니 답지 않은 걱정은 여기까지다.

아까까지의 분위기는 이제 오간 데 없이, 이 바보 같은 남자들은 또다시 다른 바보 같은 화젯거리를 들고 서로 시끄럽게 떠들기 시작했다. 돌릴 수 없는 채널이란 게 정말로 유일한 흠이다. 후지코는 희미하게 미소를 지으며 세 사람의 목소리를 배경음악으로 삼아 툇마루 바깥에 펼쳐진 풍경을 감상했다.

나쁘지 않은 한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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