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외

선택을 변경하시겠습니까

세상은 선택을 강요한다. 예, 혹은 아니오.

*CW: 범죄: 살해(정당방위), 시신 유기, 방조, 은닉과 죽음에 대한 묘사

흙이 부드러우면 땅을 팔 때 이런 소리가 나는구나.

정신을 억지로 떼어 무의식의 강에 흘려보낸 채 있었더니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젠 지쳐서 눈물도 나오지 않았다. 콱, 콱. 날카로운 쇳덩이가 땅을 가르는 움직임에 종종 몇 개의 흙알갱이는 지상으로 튕겨나왔다. 그럴 때마다 셴야는 손에 들고 있던 잔을 기울여 한 모금 마시기를 반복했다. 그랬는데 이 작은 보온병의 뚜껑에 담긴 커피는 줄어들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이상한 일이다.

사람을 묻어본 적이 없는 것은 아니다. 권력과 금으로 쌓은 성 안에 들어갈 자격을 얻지 못한 이들은 인생의 길이가 몇십년을 넘어 몇백년을 거뜬히 넘볼 수 있는 시대가 되어도 죽음을 피해 도망갈 방법을 몰랐다. 그랬기에 이백여년의 시간 동안 그는 스쳐지나가는 죽음을 여럿 보았다. 직접 묻은 적은 많지 않았다. 차가운 흙으로 이별을 덮어버리기 전에 연기와 불로 먼저 태워버렸던 탓에, 그렇지 않으면 이렇게 깊게 파야 하는 줄도 오늘 처음 알았다.

달빛이 서쪽으로 얼마 더 기울어졌을 무렵, 구덩이 안쪽에서 무언가 훌쩍 올라와 땅 위를 굴렀다. 삽이다. 그 다음에는 울퉁불퉁한 흙더미를 밟고 일어서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그제야 셴야는 얼마 마시지도 못하고 차갑게 식어버린 커피를 손에서 내려놓고, 어깨 위의 담요를 걷어 일어났다.

다만 오늘은 그 단순한 행동조차 쉽지 않았다. 추위인지 두려움인지, 어쨌든 그런 사유로 겁 먹은 새끼동물처럼 잔뜩 웅크리고 있던 몸은 긴장으로 온 근육이 몇 시간 째 뻣뻣하게 굳은 상태였다. 그걸 갑자기 억지로 움직이려 하니, 거리가 일 미터도 안되는 구덩이까지 걸어가는데 세 번은 휘청거리고 그 중 한 번은 진짜 넘어져 구르기 직전을 간신히 무마한 기록을 세운다.

거의 기어가듯 구덩이까지 가 닿자 까마득하게 깊은 구덩이 아래에서 어둠에 녹아든 손이 흙벽을 쥐었다. 손이 움켜쥔 벽 위로는 흙이 너무 부드러워 잡을 곳 조차 없었기 때문에 셴야는 자신을 지지대 삼으라는 듯 손을 아래로 내밀었다. 곧 뜻을 알아차린 상대가 손을 맞잡고 올라왔지만 도움이 되기나 했는지는 알 수 없다. 자신이 힘 주어 끌어올린 느낌이 없었기 때문이다.

스틱스 강까지 길을 파낸 일일 토목업자이자 전 형사는 지쳐보였다. 그는 자신보다 한 술 더 떠서 저승차사와 살갑게 인사 나눌 만큼 오랜 죽음의 친구이자 탐구자였겠으나, 부드러운 흙 수 미터 아래의 땅이 얼마나 단단한지는 오늘 처음 알았을지도 몰랐다. 단서를 파헤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영원히 덮어버리기 위한 것이 얼마나 피로한 일인지도.

셴야는 차마 안타까움의 말을 건넬 수도 없었다. 아크아바가 이를 선택하게 된 이유는 자신이 그를 불렀기 때문이다. 분명 이 일은 불운한(혹은 운 좋은) 사건이었고, 10m 아래에 파묻힌 것이 저 자가 아니었다면 자신이 되었을 게 분명했다. 충분한 정당방위였다. 누구나 그렇게 이야기할 것이다.

그러나 때때로 세상은 그렇게 돌아가지 않는다는 것도 충분히 알 만큼 오래 살았다. 셴야는 늘 성 밖의 사람이기 때문이다. 아크아바 또한 유감스럽게도 그 사실을 너무 잘 알고 있었던 게 틀림없다. 연락을 받고 달려온 아크아바가 피범벅이 된 골목과 엉망이 된 자신의 꼴을 번갈아 바라보며 한참을 말이 없다가 질책 한마디 없이 도와주었던 걸 보면 그랬다. 한참 엉엉 울고 있었던 중이라 표정을 제대로 보지 못한 게 미안했다.

"이젠 땅만 덮으면 됩니다."

오늘 충실한 순찰자가 되는 대신 공범자이자 방조자, 밤이 불러오는 비밀의 부역자가 되기를 선택한 형사가 말했다. 그러나 이곳에 존재하는 사람 둘과 사람이 아니게 된 것 하나는 모두 밤은 언젠가 끝나고 영원한 비밀은 없으며 완전범죄라는 단어는 성립할 수 없음을 충분히 알고 있었다. 그러나 형사는 이러한 세상의 진리를 경고하면서도 선택지를 내밀었다.

당신은 무엇을 고를 것인가.

▶ 거짓을 입에 담는다. 그것들로부터 등을 돌린다. 그리고 그저, 안정적인 일상을 살아가도록 스스로를 속인다.

▷ 진실을 입에 담는다. 그것들과 대면한다. 그리고 법정이란 것과 마주한다.

후회하지 않으시겠습니까?

▷ 예

▶ 아니오

선택을 변경하시겠습니까?

▷ 예

▶ ....아니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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