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푸커

시선

이푸커 선관로그

1차 by 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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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것을 두려워했다. 어린 시절부터, ──쭉. 그리고 그것만큼이나 어둠 또한 두려워했다. 다만 그것은 공포를 학습해 버린 인간의 최후일 뿐이기에, 바뀌는 것은 하나도 없을 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매정한 유년 시절은 나에게 날 선 문장만을 들이밀었기에, 그저 맥없이 적의에 가득 찬 이들의 공격을 허용하기 일쑤였다. 예를 들면, ‘내가 도둑이라는 소문’ 같은 것들. 그런 것들은 순식간에 거대해져서는, 사람을 꿀꺽 삼켜버렸다. 나는 그 서늘한 시선을 기억한다. 아무도 나를 믿어주지 않던 순간의 무력함을, 믿었던 어른마저 나를 배신했던 때의 절망을, 네가 나타났던 순간에 느꼈던 당혹감과 안도마저도. 나는 그것의 차갑고 뾰족한 내부에서 무력하게 잠들어 있었다. 그런 나를 구한 건 너였다. 그 빌어먹을 소문의 사이를 제 발로 걸어들어와, 나를 대신해 그 검은 분노를 전부 뒤집어쓴 건, 결국 너였다.

···내가 그러지 않았다면, 그랬다면 너는 뭔가 달랐을까?

이 질문도, 분명히 더는 답을 들을 수 없는 질문일 게 뻔했다. 그리고, 지금은 이런 잡담만 줄줄이 늘어놓으며 현실을 외면해도 될 시간이 아니었다. 추억팔이도 정도껏이지, 지금은 그 때가 아니야.

알고 있어. 그렇지만, 나는 아직도 이렇게 미련한 선택만 하는구나.

아마도, 스스로 자리를 비운 것일 너를 찾으려 자리에서 일어났다. 심한 몸살감기라도 걸린 듯이 떨던 모습을 생각하면, 멀리 가지는 못했을 게 뻔하다. ···고 생각했다. 네 성격이면, 아래층으로 내려가는 쪽에 있을까? 아니, 어쩌면 더는 본관으로 돌아갈 수 없을지도 모른다. ‘살아서는’ 갈 수 없다면, 죽음을 불사하고서라도 가면 되는데. ······, 너의 몫까지 살아가야 한다는 구차한 변명이 입안을 쿡쿡 찌르고, 상처에서 흐른 죄책감이 텁텁한 맛을 남긴다. 아직도, 시간이 지나도 변하질 않고. 변하지 않은 건 결국 너도나도 마찬가지였는데. 이제 와서 처연해진대도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그럼··· 어떻게 할까? 몰래 무리를 빠져나가서라도 너를 만나러 갈까?

······아니. 아마 너는 그런 행동을 싫어할 거야. 네 목숨으로 살려진 비싼 인생인데, 죽으면 안 되겠지. 마지막에 함께 있어 주겠다는, 나만의 일방적이고 이기적인 약속을 제멋대로 지키기 위해 주변을 잠시 둘러보다가, 인파를 피해 화장실이라도 가듯이 가벼운 발걸음으로 본관이 잘 보이는 창가로 간다. 저기에, 저 어두운 건물 사이 어딘가에 네가 있다는 걸 되새기자, 기분이 한없이 우울해진다. 이번에도 나는 너를 돕질 못했구나? 그리고, 조사에도 끼질 못하고, 그저 민폐만 끼치고······. 이래서는, 내가 살아남은 의미가 없는데. 그렇지만, 설령 죽고 싶어진다 해도 죽으면 안 된다. 나는 네 몫까지 살아가야만 하니까. 그러니까, 살아있어야 한다.

☑︎ 죽으면 안 돼.

사각형 상자에 체크 표시를 하고,

☑︎ 나는, 살아있어야 해.

수첩에 적은 글자에 줄을 주욱 그어 지웠다.


[ 그렇지만··· 좀 힘들다, 나. 조사 나간 사람들은 자꾸 다치는데, 나는 조사는 끼지도 못하고. 아니, ‘하지 않은’ 건가? ·········너라면, 뭔가 도움이 됐을 텐데. 계속 잠들어 버리는 건, 그때 탓이 뻔한데도 이상하게 안 잘 수가 없더라. ···그렇네. 이것도 다 변명이지. 내가 행동으로 증명해 내면, 뭔가 다를까. ]

만약 ‘유건’이 문제고, ‘견주아’가 문제가 아니라면, 너는 도움이 됐었다면. 그럼 내가 너를 흉내 내면, 나는 ‘괜찮은’ 게 되는 걸까? 나 혼자서는 답을 낼 수 없는 질문이 입안을 가득 채웠다. 더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해서, 연결음만 들리는 휴대전화를 손에 꾹 쥐었다. 야, 견주아. 마지막으로 하는 질문이니까, 대답 좀 해줘라. 이젠 더는 귀찮게 간섭 안 할 테니까. 그러니까, 어딨는지만 알려달라고. 넌 내가 너 말린다고 1년 내내 블루투스 이어폰 끼고 사는 거 알면서, 계속 전화 무시하냐? 치사하네, 견주아. 화난 거 알겠으니까, 좀만 봐달라고. 캠프 끝나면, 신청하는 대로 다 요리해 줄 테니까.

[ ·········그러니까, 전화 좀 받아. 제발. 사람 무섭게 장난이나 치지 말고. 견주아, 주아야. ···내가 미안해. 그때 어떻게든 못한 거, 아직도 정말 후회하고 있으니까, 제발 뭐라고 답 좀 해줘. 정말로 죽었다는 듯이, 이렇게 말없이 있지만 말고. 제발···············. 너 이렇게 죽어버릴 성격 아니잖아. 끝까지 살아서, 다 엿이나 먹으라고 하면 했지. 그러니까, 그러니까······ 뭐라고 말 좀 해줘. 제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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