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피엔딩을 위하여
[외계인] / 하트 (@dauseyyy)
해피엔딩을 위하여
“우리 사이에도 외계인이 있을까?”
“갑자기?”
“아니, 그냥…. 만약에.“
“있을 수도 있지…. 뭘 그런 걸 묻냐.”
아…. 오케이. 잠뜰은 답지 않게 말끝을 흐리는 공룡을 빤히 쳐다봤다. 너 뭐 나한테 잘못한 거 있냐? 그럴 리가요? 공룡은 짐짓 태연한 얼굴로 답했다. 내가 뭐만 물어보면 잘못한 줄 알구…. 잠뜰의 의심스러운 눈초리를 한껏 받은 공룡은 꿍얼거리며 자리를 피했다. 보통 공룡이 쓸데없는, 이하 헛소리를 지껄이는 경우는 보통 어디선가 ‘미처’ 인지하지 못한 실수를 저질렀거나, 대놓고 잘못했거나 둘 중 하나인데…. 그녀가 생각하기에 최근엔 그가 잘못을 저지를 일이 하나도 없어 더 의문이었다. 애초에 근무 시간에 쓸데없는 소리를 하지 말자고 제안한 것도 본인이었으면서! 공룡이 떠나간 자리를 뚱한 표정으로 노려보던 잠뜰은 다시 모니터로 고개를 돌렸다. 안타깝게도 영양가 없는 주제로 논쟁을 벌이기에 잠뜰은 너-무 바빴다.
잠뜰과 공룡이 소속되어 있는 곳은 외계 종 연구를 주 업무로 하는 국가기관 소속 연구소이다. 약 30년 전, 벌건 대낮에 벌어진 대대적인 외계 생명체의 습격으로 마치 영화 ‘어X져스’의 한 장면처럼 지구는 혼비백산이 되었다. 차라리 영화에선 특정 도시 하나만 박살이 났지, 이 습격은 지구의 곳곳에서 벌어졌고, 결국 인류는 일련의 과정을 거쳐 새로운 체계를 만들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과학기술은 비정상적인 도약을 하게 되어, 작금의 상황에 이르게 된 것이다.
현시대에서 잠뜰과 공룡처럼 연구소에 취직하는 건 무척 당연한 수순이었다. 외계의 존재는 끝이 없었고, 정말 블루오션 그 자체랄까. 잠뜰은 언제나 제 직업에 만족하는 편이었다. 할 일도 많고, 대우도 좋고, 돈도 많이 주고. 할 능력만 있다면 무조건 하는 게 이득이었다. 그런 그녀가 최근 고민 중인 건 다른 무엇도 아닌, 최근 들어 많이 의뭉스러워진 제 동료의 태도였다.
‘아…. 나 바쁜데…. 수현 씨랑 할 일이 있어.’
‘뭔 일?’
‘…아무튼 있어, 황 연구원 가자!’
‘엥…, 나요? 공룡 씨 이게 무슨….‘
’으아아악 나 간다!‘
이런 상황이라든지,
’정 연구원님이요? 글쎄요…. 방금 나가셨는데….‘
이런 상황이라든지….
휴게 시간에 뜬구름 잡는 질문을 하길래, 대충 대답해준 뒤로 공룡이 저를 작정하고 피하기 시작한 것이다. 아니, 지가 뭐 외계인이라도 돼? 이유를 알면 모르겠는데, 이유도 모르고 계속 저를 피하기만 하니 이제 의문을 넘어 화가 나기 시작했다. 이유라도 들어야지, 이마저도 못 들으면 화딱지가 나서 죽을 것 같아, 잠뜰은 마침내 공룡의 기숙사에 찾아갔다. 초인종을 누르자 몇 초 뒤, 공룡의 목소리가 들렸다.
”누구세ㅇ….“
”열어.“
”어?“
열라고. 잠뜰이 음산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에 공룡의 목소리가 당황으로 물들었다. 왜, 왜 뭔 일인데…. 아무 일 없으니까 열라고. 안, 안돼. 왜 안 되는데. 안되니까!! 공룡의 목소리에 경악이 서릴 때까지 설전을 벌이던 그녀는 끝내, 가지고 있던 파일철로 문고리를 강하게 내리쳤다. 분노의 힘이 담긴 건지, 원래 문고리가 약한 건지 모르겠으나, 힘없이 부서진 문고리는 덜커덩 소릴 내며 빠져버렸다.
“이 새끼…. 오늘 결판을….“ 잠들은 너덜너덜한 문짝을 대충 발로 밀고 몸을 방으로 욱여넣었다. 그리고….
응???
열린 문 너머로 보인 공룡은… 웬, 날개를 달고 허망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
“…천사 코스프레…?”
”겠냐고….“
공룡의 눈동자는 체념의 빛으로 차 있었다. 어색한 공기가 그의 방에 가득했다. 공룡은 쥐고 있던 아이스 커피만 하릴없이 들이켰고, 잠뜰은 공룡의 등 부근을 계속해서 쳐다보았다.
“그만 좀 봐, 뚫리겠다.”
“진짜 네 등에서 돋은 날개라고.”
“어….”
“네가 외계인이라고….”
“맞다고….”
맞으니까 그만 물어보면 안 될까, 벌써 스무 번째야. 공룡은 이내 머리를 부여잡고 한숨을 내쉬었다. 다 끝이야, 다…. 심란한 공룡의 심정이고 뭐고, 잠뜰은 그저 어떠한 결론에 도달했을 뿐이었다. 진짜 외계인이었잖아?! 고등학교 시절부터 도합 10년을 봐 온 제 친구는 인간이 아니라 외계인이었다.
헐….
서로 조금 진정이 되고 난 후, 공룡과 잠뜰은 합의를 내렸다. 이 사실은 무조건 비밀로 해야 한다. 공룡이 굳이 ‘인간’ 행세를 하며 지구에 숨어있는 이유는 역설적으로, ‘인간 행세를 하는 외계 생명체’는 발견되는 죽음을 면치 못하기 때문이었다. 지역구에 자체적으로 배치된 특수부대에 의해 사살되거나, 실험체로써 끌려가는 것 둘 중 하나뿐인데, 하물며 ‘인간형’ 외계 생명체는 어떻겠는가. 그의 눈물겨운 사정을 들은 잠뜰은 제 친구에게 내심 측은함을 느꼈다.
“사실 우리 종족은 인간들이랑 진짜 비슷해, 외형도 그렇고… 지능도 그렇고… 날개 하나 달린 거 빼고 다 똑같단 말이야.”
“근데 왜 안전한 고향을 두고 굳이 지구로 온 거야?”
“우리 행성 망했어.”
아…. 그것참….
공룡의 어린 시절은 저와 크게 다를 바가 없었다. 그러다 지구와 비슷하게 외계 생명체의 습격을 받았고, 대응책을 만들어 낸 지구와 달리, 별다른 대응책을 만들어 내지 못해 완전히 망해버렸다고 한다. 공룡은 그 난리 통에 가족과 함께 지구로 피난을 온 것이었다. 다만 한차례 습격을 겪은 인류는 극도의 폐쇄 정책을 진행 중이던 탓에 그들은 등에 붙어있는 날개를 숨긴 채 몰래 지구에 정착해야 했다.
“아마… 내가 알기로, 날개를 숨기지 못한 동족은 비밀리에 살해당했다고 들었어….”
“그…, 내가 인간으로서 할 말이 없네…. 미안….”
“네 잘못 아닌데 네가 미안해할 필요는 없지. 괜찮아, 그리고 뭐…, 우리 종족이었다고 너희랑 크게 다르진 않았을걸.”
후에 그가 친척에게 들은 말로는, 제 종족의 날개가 원래 지구의 인간들보다 ‘우월’해 보일 수 있다는 게 문제였다나. 이 대목에서 잠뜰은 화를 낼 수밖에 없었다. 공룡은 그런 잠뜰에 작게 웃었다.
“아무튼, 뭐…. 그래, 네 사정은 네 사정이고. 날 왜 피한 거야?”
“그게 본론이었군…. 그건….”
공룡은 눈알을 굴리다 느릿하게 답했다. 외계인인 거 알면 네가 피할까 봐…. 이에 잠뜰은 짜게 식을 수밖에 없었다. 와, 진짜…. 이해가 가면서 별거 없다…. 공룡은 괜히 헛기침을 여러 번 했다.
“네 반응이 그때 엄청 시큰둥했단 말이야…. 지금 안 그러면 됐어.“
”안 시큰둥한 게 이상한 거 아니야? 우리 직장이 어딘지 잊었냐.“
아…. 공룡은 조금 멍청한 표정으로 입을 벌렸다.
다행히 공룡은 날개 조절에 익숙했고, 워낙 어릴 적부터 제 날개를 숨기고 산 덕분에 문제가 생길 일은 없다고 했다. 10년을 넘게 친구로 지낸 저도 전혀 몰랐으니 어쩌면 당연한 사실이려나. 아무튼 그 일은 하나의 해프닝으로 넘어가는 듯했다.
“잠뜰 선배님”
“응.”
“공룡 선배님은 천사인가요.”
“푸흑!!”
다만, 연구소에는 꽤 많은 인원이 상주하고 있고, 모두가 식당에 갔을 거라 추정되는 저녁 시간에, 아무리 각각 떨어진 곳에 있는 개인 기숙사여도, 지나가는 사람이 하나쯤은 있을 수 있다는 예상 가능한 사실을, 그들은 격양된 감정에 잡아먹혀 완벽하게 망각했던 것만 빼면 정말 해프닝일 뿐이었다.
턱을 타고 뚝뚝 떨어지는 커피를 닦을 새도 없이 잠뜰은 다시 공룡을 호출해야 했다.
우리, 박,덕,개 연구원님이 그 꼴을 봤다고 하하하. 공룡은 고저 없는 말투로 웃으며 잠뜰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잠뜰은 그의 뚫어질 것 같은 시선을 애써 피하며 딴청을 피웠다. 일부러 사람들이 아예 없는 시간대에 찾아간 건데, 거기서 산책하고 있을 줄 누가 알았겠는가. 그러나 아무리 변명해도 제 잘못이 맞았기에 잠뜰은 입을 꾹 닫을 수밖에 없었다.
“아, 저는 식당 밥을 별로 안 좋아해서 룸서비스로 시켜 먹거든요.”
“기숙사에 룸서비스가 있어요?”
“있어요, 다들 비싸서 굳이 안 시켜 먹는 것 같긴 하지만.”
아하…. 공룡은 십 년은 더 늙은 것 같은 얼굴로 되물었다. 그래서, 이제 덕개 연구원님은 어떻게 하실 건데요?
“네? 그냥 가만히 있을 건데요, 제가…, 뭘 해야 하나요? 전 오히려 스릴 넘쳐서 좋은데.“ 덕개는 정말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로 그들을 쳐다보았다.
잠뜰과 공룡은 시선을 부딪쳤다. 이거, 맞아?
아무튼 그렇게 잠뜰, 공룡, 덕개 이 세 사람은 일종의 계약을 맺었다. 공룡은 내심 불안해했고, 잠뜰은 계약서를 작성하면서도 끊임없이 의심했고, 그에 반해 덕개는 별생각이 없어 보였지만…. 이미 도장은 찍힌 후였다.
그렇게 다시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듯했다.
*
“이것 좀 보셔야 할 것 같은데요?“
그러나 이런 평화도 얼마 못 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덕개가 건넨 스마트폰 화면에는 ‘새로운 외계 생명체 발견’이라는 제목과 함께 사진 한 장이 보였다. 생각은 한 적 있었다. 만약 정체가 들킨다면 어떻게 될까, 실험체로 끌려갈까, 아님 그 즉시 사살당할까. 당연히 들키지 않을 것이란 걸 전제로 한 의문이었으므로 상상의 여지가 많았다. 하지만 이건….
“야, 네가 아는 사람이야?” 잠뜰은 공룡에게 들릴 정도로만 속삭였다. 그러나 공룡은 듣지 못했는지, 대답하지 않은 채 신문만을 멍하니 들여다보고 있었다.
“…아무래도 좀 큰일 난 것 같은데….” 덕개는 눈치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끝내 아무 말을 잇지 않던 공룡은 헛웃음을 흘렸다. 그러니까, 왜 거기에 내가 아는 사람이 있는 거지? 대체 왜…. 그의 상태가 심상치 않음을 눈치챈 잠뜰은 공룡을 살짝 흔들었다. 너 괜찮은 거 맞아?
그제서야 살짝 정신을 차린 공룡은 제 앞의 두 명을 제대로 바라볼 수 있었다.
공룡을 오래 봐왔다 자부할 수 있는 잠뜰에게도 이런 그의 모습은 꽤나 초면이었다. 뭐라 형용할 수 없는 감정에 그녀는 입을 계속 달싹였다. 어떤 위로도 공룡에겐 통하지 않을 것 같았다. 소식을 전해준 덕개도 당황한 듯 가만히 굳어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말없이 두 사람을 번갈아 보던 공룡은 이런 상황을 버티지 못하겠는지 머리가 아프다며 자리를 피했다.
잠뜰과 덕개는 나름대로 패닉에 빠졌다. 분명 십몇 년간 들키지 않았다던 공룡의 동족들이 지금, 이 시점에서 잡혀가고, 이 소식이 뉴스에 대문짝만하게 나온다는 거 자체가 정말 이상하지 않은가? 설령 이상함을 느낀다고 해서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지만….
다음날 공룡은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출근했다. 어떠할 방도가 없던 것은 그도 마찬가지라 직장에서 소식을 듣는 게 가장 빠르게 정보를 알 수 있는 방법이었다. 잠뜰의 걱정스러운 시선을 애써 외면한 그는 차라리 서류뭉치에 얼굴을 박고 집중하기를 택했다.
“여러분, 새로 포획된 외계 생명체 두 마리 저희 연구소로 이전된답니다. 자리가 부족하대요.”
“얼마나 잡혔길래 자리가 부족하대요?“
”최소 열 마리 이상…? 잘은 몰라요, 일족이 아예 한꺼번에 잡혔다던데….“
동료 연구원들의 대화를 잠자코 듣던 공룡은 순간적으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의자 다리가 끌리는 소리에 연구실에 있던 모든 연구원의 시선이 그에게로 쏠렸다.
“무슨 일이에요, 정 연구원님?”
“아, 그, 갑자기 속이 안 좋아져서, 아까 밥 먹은 게 체했나 봐요….“
”아까도 많이 못 드시지 않았어요? 병원 가보셔야 하는 거 아녜요?“
”아…. 그 정돈 아니고 조금 쉬면 될 것 같아요, 미안해요.“
”아니에요, 들어가세요~.“
공룡은 핼쑥한 안색으로 대충 짐을 챙겨 연구실 밖으로 나갔다. 그런 공룡의 발걸음을 눈으로 좇던 잠뜰은 심란한 감정을 숨기지 못했다. 역시 다른 연구원들처럼 ‘새로운 실험체’들을 구경하러 갈 기분이 아니었던 잠뜰도 결국 반차를 내고 기숙사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미친 듯이 쏟아지는 기사들을 하나하나 살펴보던 잠뜰은 얼굴을 쓸어내리며 한숨을 쉬었다. 이건… 걷잡을 수가 없다. 코드네임 ‘천사’…. 이 정도 정보량이면 벌써 연구 시작을 위한 초석이 전부 깔려있을 게 분명했다. 이게 어디서부터 잘못된 거지? 꼬리를 물고 늘어지던 잠뜰의 상념은 격한 노크 소리에 겨우 멎었다.
“선배님, 선배님, 좀 나와보세요!” 노크 소리의 주인공은 덕개였다.
잠뜰은 다급하게 덕개의 팔을 잡아끌어 현관 안쪽으로 그를 들어오게 했다. 이게 무슨 소란이에요…!
“헉, 아오, 일부러 사람 없는 시간대에 뛰어오느라고….”
“왜, 뭔 일이길래….“
“공룡 선배님이 사라졌어요, 이 쪽지만 남기고 사라졌다고요…!”
“뭐요?”
잠뜰은 덕개가 건넨 쪽지를 건네받았다. ‘그동안 고마웠어.’ 이딴 작별 인사가 어딨어? 잠뜰은 진심으로 격분했다. 이건 진짜 아니야, 어떻게 이럴 수가…. 저도 모르게 손톱을 물어뜯던 잠뜰은 다소 격해진 목소리로 덕개에게 물었다.
“이거 어떻게 찾았어요?”
“제 사수님이 공룡 선배님한테 전해달라면서 서류를 주셨는데 연구실에 안 계시더라고요, 그래서 어차피 전 저녁 시간에 기숙사 들어가니까 그때 전해주려고 찾아갔는데….”
문이 열려있었어요…. 잠뜰은 덕개의 마지막 한마디에 허탈한 숨을 내쉬었다. 일족이 전부 잡혀간 거라면 공룡의 가까운 가족마저도 잡혀갔을 게 뻔했다. 공룡만은 아무 탈이 없었던 걸 보니 그의 가족들이 의도적으로 흔적을 지운 듯하고, 머리를 팽팽 굴리던 잠뜰은 순간 제 가족들을 떠올렸다. 저와 그의 가족은 예전부터 친한 사이를 유지하지 않았는가? 덜컹- 심장이 끊임없이 추락하는 기분과 함께 잠뜰은 덕개를 붙잡고 입을 열었다.
“이봐, 후배님…. 아마 공룡이네 친족들이 사는 동네 주민들까지 싹 다 뒤졌겠지?”
“아마도요…?”
“그럼 거기서 그들과 조금이라도 친하게 지냈다는 사람들이 있으면 정부에서 무슨 짓을 할 거 같아?”
“일단은 인간이니 해는 가하진 않겠지만…, 심문하겠죠…?”
그런데 그건 갑자기 왜…. 덕개는 지진 나듯 흔들리는 잠뜰의 동공을 볼 수 있었다.
”선배님네 가족도 그쪽에서 거주하시나요?“
“한 블록 건너서….”
덕개는 이내 고민하는 듯 몇 번 눈알을 굴리더니 고개를 들었다. 선배님 저를 믿으시나요?
뭐?
*
결과적으로, 잠뜰과 덕개는 모든 연락을 무시하고 차로 미친 듯이 달리고 있었다. 이 상황을 설명하려면 약 30분 전으로 돌아가야 한다.
“뭘 믿어요?”
“제가 지금 안 들키고 연구소를 빠져나갈 방법이 하나 있어요, 근데 선배님의 신뢰가 필요합니다.”
“뭐…, 일단 시간 없으니 들어는 볼게요.”
“제가 주차장에 차가 하나 있어요, 최신 기능 다 때려 박은 차라 신호 무시하고 달리면 진짜 빠르거든요.”
“저도 그런 차는 있어요, 그게 방법이에요?”
“그게 포인트가 아니에요, 직원 주차장이 아니라 제 건 임원 주차장에 있어요….”
그게 뭐…. 임원이요? 잠뜰은 진심으로 놀라 되물었다. 그럼 후배님이 이곳 임원이라고요? 불신이 조금 섞인 질문에 덕개는 머쓱한 듯 헛기침을 하며 대답했다.
“아니요, 전 아니고- 아버지가요…. 사실상 아버지 차죠. 근데 저도 그쪽 들어갈 권한은 있어요. 아버지께 바로 연락이 가는 구조긴 한데….“
아버지가…. 충격적인 소식에 잠뜰은 놀라서 말을 잇지 못했다. 그, 그쪽 주차장은 정문 안 거치고 나갈 수 있는 건가? 덕개는 손목의 스마트워치를 몇 번 만지작거렸다.
”다행히, 오늘은 경비원이 없네요. 그 임원들만 비밀리에 나갈 수 있는 출구가 하나 있어요. 아, 이거 기밀인데 괜찮겠지….“
“그럼, 고민할 필요가 없네. 가죠.”
“네, 네? 진짜요? 와 정말 믿어주실 줄 몰랐는데…. 그러면 일단 선배님은 패드나 스마트워치 같은 전자기기 다 빼시고 연구원 키카드만 챙겨오세요.“
”후배님 거는요.“
“전 괜찮아요, 위치추적 기능 다 빼놔서 못해요 어차피.”
“이것도 그 ‘임원’ 권한이에요?”
“아뇨, 이건 그냥 아버지께 안 들키려고….”
가운과 키카드만 챙긴 채 연구소에 들어온 잠뜰은 자연스럽게 덕개를 따랐다.
‘다행히 아직 선배님의 정보까진 전달되진 않았나 봐요, 여기 연구소가 외진 것도 있겠지만….’
‘최대한 자연스럽게 다니세요, 제가 커버칠게요.’
‘빽이 좋긴 좋네….’
어쩐지 그 비싸다던 룸서비스를 매일 시켜 먹더라…. 저번에 호기심에 찾아본 룸서비스의 가격은 일반 연구원 월급 삼 분의 일을 웃돌았다. 거기다 고급 기숙사면…. 미친, 좀 이상해 보이는 이유가 있었네….
그들은 당당하게 복도를 지나갔다. 잠뜰은 조금 불안한 듯 손을 쥐었다 폈다를 반복했지만, 다행히 휴식 시간이 끝나지 않았던 터라 딱히 그들에게 이상함을 느끼는 사람들은 없었다. 그 덕에 큰 사건 없이 주차장 입구까지 도착한 잠뜰은 그제서야 한숨 돌릴 수 있었다. 여기 이런 데가 있었구나…. 연구소의 꽤 깊은 곳까지 들어가더니, 완전히 다른 느낌의 통로가 그대로 임원 주차장까지 이어져 있었다.
그러나 그의 예상과는 달리 주차장 입구에는 경비원이 여전히 상주하고 있었다. 당황한 낯을 숨기고 아무렇지 않은 얼굴을 가장한 덕개는 경비실 창문을 톡톡 두드렸다.
“어, 유 실장님 아직 퇴근 안 하셨어요?”
“곧 해야죠, 박 연구원님은 어디 가시려고요? 이사장님 뵈러 가시게요?“
“아뇨, 다름이 아니라…, 저랑 친한 선배분인데 조부모님이 다치셨다는 연락이 와서…. 정문으로 나가려면 좀 절차가 많잖아요….”
“아이고, 정말 친하신 분인가 보네, 그러면 제가 이사장님한테 연락드릴 테니까 얼른 가보세요.”
감사해요~. 덕개는 여전히 웃는 낯을 유지한 채 주차장으로 들어갔고, 곧이어 잠뜰도 가볍게 눈인사하곤 주차장에 들어갔다.
“된 거예요?”
“한 이십 퍼센트 정도….”
“안됐다는 거예요?”
“아뇨, 그게 아니라. 저분 경호실장님이에요, 아마 아벚, 아니 이사장님께 연락하면 오 분 내로 저희 잡으러 올 거거든요. 정말 다행히도! 이 차의 위치추적 기능은 가짜에요, 제가 또! 바꿔놨거든요. 그러니까 이제부터 타임어택이에요.” 덕개는 쉬지 않고 말을 쏟아냈다.
“그…, 알았어요, 빠르게 갑시다….“
주차된 차로 빠르게 올라탄 그들은 출구가 막히기 전에 주차장을 빠져나왔다. 바깥 풍경이 보이기 시작해서 잠뜰은 땀에 흠뻑 젖은 손바닥을 가운에 대충 문지르고 의자에 등을 기댔다. 어차피 연구소 터는 비밀 유지를 목적으로 엄청나게 외진 지역으로 선정되므로 그들이 달리는 도로는 사실상 차가 없는 고속도로나 다름없었다.
”…아버지가 아마 모든 걸 다 알게 된다고 하더라도 도로 통제까진 좀 걸릴 거예요, 중간에 국도 같은 데로 빠지면 되니까…. 이제 오십 퍼센트는 했네요.“
“…근데 아까부터 궁금했는데 왜 이렇게까지 돕는 거예요? 저도 경황이 없어서 물어보진 못했는데…. 이사장 아들인 거 알고 나니까 더 수상한 거 그쪽도 알죠?”
잠뜰의 날카로운 질문에 운전하던 덕개는 고민하는 투로 말을 늘리다 결국 입을 열었다. 그. 딱히 제가 아버지를 존경하지 않아요.
“원래 이쪽 분야는 발 들일 생각이 전혀 없었거든요. 그런데…. 네, 뭐 이렇게 됐네요…. 반항심에 나온 돌발 행동 같은 거죠, 원래 말 잘 듣던 자식이 한 번 반항하면 더 배신감 느끼는 거 알죠?”
“이유가 부족한데, 그게 다예요?”
“진짜 이게 단데…. 아니, 엄…, 그…. 어릴 때 친한 친구가 하나 있었어요.“
진짜 친했어요. 그땐 아버지가 재단 물려받기 전이라 경험 쌓는다고 이사를 엄청 다녔거든요. 그러다가 아버지가 꽤 오래 소장직을 맡았던 지부 근처 동네에서 그 친구를 만났어요. 어릴 땐 진짜 소심하고 조용해서 적응을 못 하는 편이었는데, 그 앤 허물없이 다가와 줘서 친해질 수 있었어요. 그리고 뭐… 동네도 자주 돌아다니고, 비밀 장소도 만들고, 그때 친구랑 할 수 있는 걸 다 했었어요. 그러다가… 그 친구가 어느 순간 안 보이더라고요. 부모님은 급히 이사 가느라 연락을 못 한 것 같다고 말씀해주셨는데, 나중에 알게 됐죠, 걔도 외계 종족이었어요. 공룡 선배님이랑 같은.
덕개의 말을 잠자코 듣던 잠뜰은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럼 그 친구도….“
”죽었겠죠, 그게 시작이었어요. 내가 꼭 이 재단을 물려받아서 하나하나 뜯어고쳐야겠다. 와, 이 이야기 선배님한테 처음 해봐요.“
“원래 꿈은 뭐였는데요?”
“…배우요, 진짜 안 어울리죠.”
“아니 뭐…. 아까 연기 잘하던데요.”
진짜요? 덕개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잠뜰은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공룡을 떠올렸다. 걔도 최선의 선택이었겠지? 어째 여기는 우울한 사정의 사람들밖에 모이지 않은 듯싶었다.
”여기서 외진 길로 빠져야 할 것 같아요. 지금부터 은폐 기능 켤게요.“
“에, 지금까지 그 기능 있는데 왜 안 켠 거예요?”
“배터리 다니까요…. 우리 충전소 가면 백 퍼센트 걸려요, 저는 몰라도 선배님은….”
“아무쪼록 조심히 가줘요, 죽긴 싫으니까….”
늦은 시간 덕분인지, 은폐 기능을 켜고도 지나다니는 차가 많지 않아 사고 없이 주행할 수 있었다. 도심 변두리에 있는 그녀의 집까지 이제 몇 분이면 도착했다. 그러나 그 지역의 초입에 도달하자, 꽤나 어수선한 분위기로 웅성대는 소리가 들렸다. 가운을 벗고 차에서 내린 덕개는 제 앞 차의 운전자에게 말을 걸었다.
“여기 무슨 일 있나요?”
“몰라요, 무슨 외계 종이 발견되었다나, 온 동네를 폐쇄해놔서 들어가지도 못해.”
“아, 그럼, 이쪽으로는 아예 들어갈 방법이 없는 거예요?”
“그렇다니까. 가족들이 있는데 연락도 안 되고, 참….”
“선배님, 큰일이 났어요. 아예 지역 자체를 폐쇄하고 통신도 끊어버린 것 같아요.”
“그럼….”
“사실, 아까부터 아버지한테 계속 연락 오는데 무시하고 있었거든요. 일단 저희도 사람 없는 데로 숨어야 할 것 같아요.”
반대쪽으로 차를 돌린 덕개는 다시 빠른 속도로 인파에서 멀어졌다. 잠뜰은 이젠 돌아갈 수 없을 고향을 미련이 남은 얼굴로 돌아봤다.
**
배낭에 중요한 짐 몇 개만 쑤셔 넣은 공룡은 반차를 핑계로 연구소를 빠져나왔다. 딱히 어딜 가야겠다며 목적지를 정해놓은 것은 아니었지만, 상황이 이렇게 된 이상 그가 갈 수 있는 곳은 한 곳뿐이었다. 충동적으로 결정한 터라 성의 없는 쪽지 한 장만 남긴 채 나올 수밖에 없었다. 그들이 그 쪽지를 발견해줄 가능성은 미지수였지만, 어쨌든 그들은 이른 시일 내로 제가 탈주했다는 소식을 듣게 될 것이었다. 공룡은 입술을 깨물고 차에 시동을 걸었다.
차를 몰고 그가 도착한 곳은 산 위에 있는 허름한 건물이었다. 길목에 차를 세운 공룡은 그곳으로 들어갔다. 이 건물은 일찍이 이곳에 정착한 제 종족들이 사용하기 시작한 비밀 아지트 같은 곳이었다. 원래는 잠깐 본모습을 드러내러 오는 약소한 공간이었지만, 외계 종에 대한 감시가 커지면서 비밀 접선을 하기 위한 요충지로 변모했다고 한다. 공룡 본인도 지구에서 살아오던 십 년이 넘는 세월 동안 이곳에 올 일이 없었기에 그에게도 새로운 공간이었다.
제가 사는 지역도 대대적인 수색 작업이 시작됐다고 했지만, 한두 명쯤은 도망친 제 동족이 있길 간절히 바라며 계단을 타고 지하로 내려간 그는 끝내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공룡이 지하 공간으로 발을 들이자, 그에게 몰리던 경계의 시선은 곧 환영의 포옹에 묻혔다. 혈연으로 이어진 관계는 아니었지만, 피난을 왔던 인원도 워낙 얼마 되지 않았기에, 한 다리 건너면 모두가 가까운 지인이었던 덕이었다. 여러 동족과 반가움의 포옹을 나누던 공룡은 저 멀리 보이던 새빨간 머리카락을 발견하고 기쁜 표정으로 그를 불렀다.
“야, 서라더! 진짜 다행이다. 너 무사했구나.“
”너야말로, 너 연구소에 일하는 거 다들 아니까 걱정 많이 했어. 다행히 네 흔적은 며칠 전에 전부 처분했다고 하더라.“
”…그래서였구나. 그래서 조금 더 버텨보려 했는데….“
”구역질 나지, 반나절이라도 버틴 게 어디야, 진짜 수고했다. 집으로 온 걸 환영해.“
집이라…. 공룡은 밝은 표정의 라더를 오묘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분명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던 친구와 제 동족을 만난 일은 그에게도 의미 있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마지막까지 저를 걱정하던 잠뜰의 모습이 아른거렸을 뿐이었다. 저를 아는 이들이 위험에 더 노출되지 않도록 일찍이 탈출을 시도한 것이었고, 결과적으로 잘된 일이었지만 조금 걱정이 되는 것은 사실이었다.
“우리와 친분을 쌓았던 인간들까지 해를 입히진 않겠지?”
“설마, 그 정도로 잔인하겠어. 아무리 그래도 동족이잖아.”
“동족….”
소수만이 지구로 이주를 해온 이래로, 공룡의 종족은 동족 의식이 유별날 정도로 강해졌다. 저들끼리 뭉치는 빈도가 무척 잦게 된 것이다. 하지만 인간들이 그럴 수 있을까. 공룡은 연구소에 입사한 것을 잘한 결정이라 되뇌면서도 언제나 후회했다. 인간들의 속담 중에 ‘등잔 밑이 어둡다’라는 말이 있었다. 외계 생명체 연구의 최전방인 정부 소속 연구소에 입사하는 일은 가장 위험하면서도, 가장 정체를 지키기 쉬운 곳이었다. 적어도 저가 연구원으로서 연구소에서 일하는 동안 제 가족이 의심받을 일은 적을 것이고, 실제로 지금까지의 오 년은 그래왔다.
하지만 그들이 ‘혐오’하는 외계 종족의 처지에서 인간들이 행하는 연구를 보는 일은 쉽지 않았다. 우리도 마찬가지로 또 다른 종족의 침입을 받고, 거의 멸종하다시피 피난을 온 처지지만, 다른 한 편으로 유리창 너머의 외계 생명체와 저의 처지가 크게 다르다고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의 직장은 언제나 그에게 큰 딜레마를 안겼다.
이제 이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 공룡은 심호흡을 한 번 내쉬고는 라더를 정면으로 응시했다.
“그래서, 우리가 해야 하는 게 뭐야?”
정부군에게 포획된 제 동족은 여러 지부의 연구소로 나눠서 보내지는 걸로 보였다. 이미 도착한 이들은 곧바로 구하러 가진 못하겠지만 아직 수송차에 실려 가는 중인 이들을 구하는 게 당장의 목표라 들었다. 그들에겐 여태껏 쓸 일이 없던 ‘비행’ 능력이 존재하니 말이다. 공룡은 익숙하지 않은 감각의 날갯죽지를 손으로 쓸었다.
“안 난 지 꽤 돼서 비행 능력이 익숙하지 않을 텐데.”
“그래도 이게 가장 최선이었어. 괜찮을 거야, 우린 원래 하늘을 활보했던 종족이었잖아, 벌써 잊었어?“
아…. 단말마를 뱉은 공룡은 천장 높은 곳 가까이에 설치된 작은 창문 너머로 보이는 하늘을 쳐다보았다. 맞아…, 나는…. 자유롭게 하늘을 날던 것도 벌써 십여 년 전이라 까맣게 잊고 있었다. 인간과 비슷하면서도 다른 그들은 하늘에서 가장 자유로웠다는 걸.
“이제 이판사판이야. 시간 지나면 영원히 못 할 수도 있는 거, 하루 정도는 괜찮잖아.“
”맞아, 우리의 선택이었지만…. 어찌어찌 인간들 사이의 섞였을 때도 다들 느꼈을 걸. 영원히 섞일 순 없다는걸.“
라더의 말에 주변의 젊은 동족들도 그의 의견에 힘을 싣기 시작했다. 그래 나도 한 번쯤은….
날아봐도 되지 않을까.
공룡의 마음속 깊은 곳에 묵혀뒀던 감정이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
“발포해! 잡을 수 있는 만큼 잡아서 간다."
"탄이 얼마 없어 저희가 밀립니다!"
"쓸모없는 자식들, 속도나 올려! 고속으로 바꾼다."
목적지는 전장이었지만 실로 오랜만에 비행하는 하늘은 상쾌하기 그지없었다. 감각을 다 잊어버린 줄로만 알았는데 날개를 펼쳐 공중으로 솟구치니 잊었던 감각들이 저절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할 수만 있다면 평생 날고 싶다. 지구에서의 첫 비행의 감상이었다. 공격에 대비하여 무장복을 입고 무기를 챙긴 탓에 완전히 가볍다고 볼 순 없었지만 거대하고 튼튼한 날개는 그런 그들을 보강해주기 충분했다. 라더는 탈환조의 인원이 하늘에 날아오른 걸 확인하고 말했다.
"적들은 제압 과정에서 한차례 전투를 겪은 탓에 남아있는 탄이 별로 없다. 수송차도 대부분 우리 동족을 수송하기 위해서 무기들을 빼놓았을 거야. 우린 그걸 노린다."
라더는 말하면서도 이를 빠득 갈았다. 공룡은 굳은 얼굴로 광활한 밤하늘을 응시했다.
미리 수송차에 GPS를 달아놓은 덕에 추격은 수월했다. 빠른 속도로 저공비행을 하며 수송차를 찾아낸 그들은 발견과 동시에 공격을 가하기 시작했다. 초반에는 막상막하의 상황이었지만, 이내 포탄과 탄알이 떨어진 경비 부대는 하늘에서 쏟아지는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공룡을 포함한 그의 동족들 또한 끊이지 않던 공격에 지친 것은 마찬가지였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만큼 빨리 상황을 정리해야 했다. 공격을 가하는 남은 적들을 막아내고 수송차의 문을 전부 땄을 즈음에, 다행히 경비 부대 대원들은 대부분 빈사 상태에 이르렀다. 갇혀있던 동족들을 꺼내 다시 기지로 가려던 라더는 그 자리에서 가만히 있던 공룡을 발견하고는 멈춰 섰다.
"우리도 전력 소모가 많아, 빨리 가자."
"여기 대장 말이야, 따로 끌고 가서 심문하면 정보가 더 나올 거 같은데. 연구소에서 일할 때도 봤거든."
"그렇다면야…, 눈을 가리고 데려가자. 네가 가장 최전방에 있었으니 더 잘 알겠지."
"…고맙다."
공룡은 무표정으로 쓰러져 있는 경비 부대의 대장을 응시했다. 이를 위해 가지고 온 약품 몇 개가 있었다.
공룡은 실험할 때 사용하던 약품 몇 개를 사용하여 경비 부대 대장에게서 정보를 얻어냈다. 연구소 내에서도 색출 작업이 시작되었으며, 특히 그가 일하던 중앙지부 연구소는 더 심한 검문이 이뤄지고 있다는 사실. 그가 살던 D시는 진작에 폐쇄되어 주민들의 생사를 확실히 알 순 없고, 다른 지역 또한 폐쇄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 하나같이 암울하기 짝이 없었다. 그나마 흥미로운 소식을 하나 꼽자면, 전국에 위치한 외계 종 연구소 전체를 총괄하는 재단 이사장의 아들이 탈주해 완전 비상이 걸렸다는 소식이었다. 중앙지부연구소의 인턴으로 일하고 있었다는데, 저는 몇 년 동안 일하면서도 전혀 몰랐으니 정말 잘 숨겼다 싶었다. 이다음에는 각 지부의 연구소에 대충 몇 명의 동족이 가게 되었는지 파악할 수 있는 사실이었다.
그 외에는 별 도움이 안 되는 정보였으나 어쨌든 돌아가는 상황은 알 수 있었다. 아마 정부에서도 처음 겪는 상황이라 확실한 대응책이 마련되지 않아 여러모로 시끄러운 모양이었다. 뭐, 공룡이나, 그의 동족에게는 희소식이었다.
얻을 정보를 다 얻어낸 공룡은 완전히 뻗어버린 제 앞의 인간을 보다가 냉소를 흘렸다. 며칠 전에도 외계 생명체들에게 사용하던 약품이었는데, 이걸 버티지 못하고 뻗어버린 인간의 연약함에 대한 비웃음이었고, 이 약품을 서슴없이 사용하던 본인에 대한 자조의 웃음이었다. 그렇다고 인간이 싫냐 묻는다면, 다른 이들과 달리 공룡은 쉽게 싫다고 말할 수 없었다. 라더나 다른 동족들은 보통 동족들이 모여 사는 곳에서 마을을 형성하여 사는 게 보통이었지만, 공룡의 가족은 모종의 사유로 완전히 인간들 사이에서 섞일 수밖에 없었다. 공룡은 오히려 그들 사이에 섞여 그들에게서 온정을 배웠고, 우정을 배웠고, 사랑을 배웠다. 그가 줄곧 느껴오던 딜레마가 해결될 줄 알았는데, 되려 심해진 느낌에 머리가 지끈거렸다.
그 이후에도 공룡은 라더를 중축으로 하여 수송차를 습격하고, 제가 아는 정보를 활용하여 연구소들을 습격하는 나날을 보냈다. 힘들지 않다면 거짓말이겠지만, 적어도 상념에 젖지 않아도 되니 편했다. 당연히 정부의 대응은 날이 갈수록 강경해졌고, 이젠 크게 다쳐 움직이기도 힘든 동족들이 늘어났다. 라더는 심란한 공룡의 어깨를 토닥였다.
"아직 구하지 못한 동족들도 있지만 많이 구출해냈잖아. 설령 우리가 다쳤더라도 절대 네 탓 아닌 거 알지?"
"그럼…. 아주 잘 알지…."
공룡은 확신이 없어, 말끝을 흐렸다. 며칠 전에 다쳤던 어깨 부근이 욱신거렸다.
대망의 중앙지부 연구소 습격 날이 밝았다. 중앙지부는 원래도 감시와 검문이 일상인 곳이었지만 그들의 탈환이 몇 차례 성공하면서 경비가 더욱 삼엄해졌다. 워낙 촘촘히 짜인 건물 구조 탓에 그들은 오랜만에 땅 위에서의 전투를 준비해야 했다. 솔직히 말해 옛 직장을 공격하는 일은 직장인의 입장에서 조금 신나는 일이었다. 동료들은 정말 좋은 사람이었지만, 오랜 시간 말단부터 구르며 퇴사하고 싶었던 날들이 하루 이틀이 아니었다. 애초에 연구소 전체를 공격하는 것이 아니라 공룡이 구조를 잘 아는 만큼 잠입 후 필요한 곳에서만 전투를 치를 예정이었기 때문에 오히려 마음이 편한 것도 있었다. 하지만 잠뜰과 덕개를 마주하고 싶지는 않았다. 아는 얼굴들을 보면 쉽사리 공격할 수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저 그들이 무사히 연구소 밖을 빠져나갔기를 빌어 볼 뿐이었다.
"G동은 정리 완료, 다행히 몇 명 없어서 쉽게 구출할 수 있었어."
"그래? 듣던 중 희소식이네. 전투 불능인 대원들이랑 구출자들 통로로 내보내 줘."
공룡이 기기에 떠오른 홀로그램을 보며 위치를 알려주는 동안 그 외의 인원은 최소한의 전투를 통해 실험체로 끌려간 동족들을 구출해오기 시작했다. 듣기로는 그의 가족들 또한 중앙지부 연구소에 있다고 하였으므로 공룡 또한 최선을 다했다. 그들의 변장과 잠입술이 어느 정도 먹힌 덕인지 전보다 전력 손실이 확연하게 줄어있었다. 이걸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공룡은 한쪽 눈에 붕대를 감은 라더를 곁눈질했다.
"공룡아, 저기 네 가족 맞지."
서서히 연구소 깊은 곳까지 잠입한 덕에 잡혀갔던 그의 가족들까지 구할 수 있었다. 체감상 너무나 오래 걸린 재회에 공룡은 제 가족들을 힘껏 껴안았다. 웬만한 적들을 제압하고 내려온 길이라 그의 가족만 데리고 나가면 사실상 모든 실험체가 구출되는 것이었다. 공룡은 절뚝거리는 그의 어머니를 부축하며 미리 파둔 통로로 향했다. 부모님의 말씀으로는 외형도 외형이고, 나이대도 나이대라 연구원들이 굉장히 조심스레 대했다고는 하지만, 부모님이 이런 일을 겪게 한 것 자체가 마음이 좋지 않았다.
"근데 엄마, 여기 잠뜰이 있었어?"
"잠뜰이? 글쎄…. 나는 못 봤는데."
"아빠도 못 봤다…."
"아, 그래?"
"아,! 맞어, 여기 애들이 사담하는 거 조금 들었는데, 잠뜰이가 이사장 아들을 데리고 무단퇴사를 했다더라. 여기 소장이 진짜 화났다네."
뭐? 공룡은 순간 너무 놀라 소리를 질렀다. 이에 그의 아버지를 부축하던 라더도 발걸음을 멈췄다. 잠뜰이면 네 인간종 친구 아니야? 공룡은 로봇마냥 고개만 끄덕였다. 걔가 무단퇴사를 했다고, 근데 같이 무단퇴사를 저지른 용자가….
"잠뜰이가 이사장 아들을 데리고…."
엄청난 충격에 공룡은 고장 난 인형처럼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잠뜰이 애초에 이사장 아들의 존재를 알고 있었던가. 알 수야 있겠지만 저에게 알려주지 않은 것은 조금 괘씸했다. 하지만 이사장 아들이라 짐작 가는 이도 딱히 없어 어떻게 알아냈는지가 의문이었다. 그러던 중, 머리를 스쳐 지나가는 한 이름이 있었다.
"박덕개…?"
어쩐지 그 비싼 룸서비스를 막 시키더라…. 공룡은 허탈함에 헛웃음을 흘렸다. 그렇게 바깥쪽과 이어진 출구와 가까워졌을 무렵, 멀리서 큰 소란이 들려왔다. 이에 공룡은 저가 나가보겠다며 라더를 말렸다.
"덜 다친 내가 가는 게 맞아."
"하지만…."
"부모님이랑 같이 있어 줘, 망만 보고 올 테니까."
밖에서 보이지 않는 각도로 선 공룡은 바깥쪽에 길게 늘어진 무장군인들과 그 가운데 서 있는 소장을 발견했다. 통로는 바깥에서 보면 거대한 미로나 다름없었기에 진입하지 못하고 있는 듯 보였다. 밖에 제 동료가 몰고 온 트럭이 없는 것으로 보아, 그들은 미리 다른 곳으로 대피한 듯했다. 바깥으로 나오자마자 저나 라더는 날개를 펼쳐 빠르게 도망칠 순 있었겠지만, 그의 부모님은 불가능했다. 저가 나가서 최대한 막아보는 수밖엔…. 이런저런 전략을 짜던 공룡의 귀로 순간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야, 이 개것들아. 잘 만났다!"
박잠뜰? 제가 아는 사람이라면 저 목소리는 무조건 잠뜰의 목소리가 맞았다. 그런데 왜 저기서….
그때, 무언가 터지는 소리와 함께 거대한 섬광이 일었다.
*
D시를 빠져나와 다시 반대쪽으로 달리던 잠뜰과 덕개는, 곧장 외진 산길로 빠져 잠시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도망치듯 도심을 빠져나오며 뉴스 기사를 읽어보니 이제 대부분의 포장도로에는 무장한 군부대가 잔뜩 깔릴 예정이라 들었다. 그렇다면 그들이 마지막으로 선택할 수 있는 곳은 산길밖에 없었다. 죄인도 아닌데 첩보 영화를 찍게 되다니…. 잠뜰은 막막한 현실에 이마를 짚었다. 덕개는 배터리가 거의 다 되어가는 계기판을 보며 걱정스러운 한숨을 내쉬었다.
"오늘 밤은 은폐 기능으로 버틸 수 있을 것 같은데, 내일은 진짜 방전될지도 몰라요."
"은폐 기능 끄면 시동을 아예 끌 수 있지 않을까 싶은데…."
"주변에 나무가 같은 게 많긴 한데…. 길 잃을까 봐 산길 초입에 세워둔 거라 금방 들킬 수도 있어서요…. 그래도 들키면 어떻게든 튀면 되니까 그냥 시동을 끌까요."
"그게 나을 것 같아요, 이사장도 후배님이 산속에 숨어있다고 생각 못 할걸요. 이사장이 아들을 지극정성으로 키웠다고 들었는데."
"아하하…. 네 뭐…, 반은 맞으니까 맞는 걸로 쳐요. 그러게요, 저 지금 아버지가 생각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반대로 해보고 있네요…."
"소문만 들으면 온실 속 화초던데. 역시 소문은 믿을 게 못 되나 봐."
"그래서 그런지 인턴으로 일하는 동안 아무도 모르더라고요, 잘 된 거죠."
장장 다섯 시간 만에 찾아온 평화에 잠뜰과 덕개는 허리를 펴고 조금 쉴 수 있었다. 운전면허를 땄어야 했는데, 생판 남인 저를 위해 이 정도까지 해주는 덕개에게 미안한 감정이 컸다. 그래도 당장 내일까진 차를 이용할 수 있어 다행이었다. 무려 은폐 기능이 있는 차라니, 왠지 이 기능을 넣은 이유가 짐작 가지만 굳이 입 밖으로 꺼내지 않기로 했다. 그렇게 안전하게 밤을 날 수 있을 줄 알았지만 잠뜰과 덕개는 곧 그들을 비추는 밝은 빛에 의해 깨야 했다.
"아, 뭐야?"
"저희 들킨 거예요?"
"그럴지도…. 어? 정부나 군부대 쪽은 아닌데?"
그들의 앞을 정면으로 막아선 빛의 정체는 차량 전조등의 불빛이었다. 곧 불빛이 사라지며 사람 둘이 검은색 세단에서 내렸다. 덕개 차량의 문을 다시금 잠갔고, 잠뜰은 챙겨온 커터칼을 저도 모르게 꽉 쥐었다. 무언가를 들고 터벅터벅 걸어오던 두 인영은 운전석 창문 쪽으로 몸을 돌렸다.
그리고,
"아! 맞네, 제가 맞을 거라고 했죠?"
"야, 누가 이사장 아들이 이 산속에 있을 거라 생각하냐."
"팀장님은 도망 안 가봤어요?"
"내가 도망을 왜 가냐?"
그들의 차로 다가온 두 인영은 잠뜰과 덕개 모두가 아는 인물들이었다. 잠뜰의 동기인 수현과 덕개의 사수인 각별이었다. 그들은 너무 놀라 입을 벌린 채 굳을 수밖에 없었다. 아니, 저 인간들이 여기 왜 나와? 최초로 잠뜰과 덕개의 마음의 소리가 일치한 순간이었을 것이다.
수현의 차로 옮겨탄 그들은 정부의 추적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러나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 상황에 잠뜰은 앞 좌석의 두 사람에게 따져 묻기 시작했다.
"일단 옮겨 타래서 타긴 했는데, 진짜 정부 소속 아닌 거 맞아요?"
"명함이랑 신원 확인용 카드까지 보여줬는데…."
"연구원 황수현도 가짜였는데 이것도 가짜일지 어떻게 알아요?"
"그거 일리 있다. 수현아 좀 배워라."
"아! 팀장님은 좀 닥쳐요! 팀장님 때문에 내가 시말서 쓸 뻔했다고!"
잠뜰과 수현의 대화는 어느새 수현과 각별의 소모적인 말싸움으로 변질해있었다. 이에 이해하기를 포기한 잠뜰은 냅다 의자에 드러눕는 걸 택했다. 후배님, 그쪽 사수 원래 저래요? 네….
수현과 각별의 정체는 다름 아닌 세계 외계 종 보호 협회(WEPA)의 파견 요원이었다. 한국 내 연구 협회, 그중 중앙지부 연구소의 비리가 심각하다는 제보를 받고,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둘만 갑자기 뚝 떨어진 입장이라 쌓인 스트레스가 많은 듯했다. 그 와중에 한국은 외계 종족 탄압 정책을 본격화하니, 세계 협회가 이를 두고 볼 수 없었던 모양인지 냅다 그들을 연구소에 집어넣었다고 한다. 덕분에 특히나 수현은 전혀 공부해본 적도 없는 분야의 연구원으로서 함께 야근하고…. 뭐 그런 꽤나 힘든 삶을 산 듯했다.
"그래도, 금방 여러분을 찾아서 다행이에요. 더 늦게 찾았으면 제 파견 기한이 더 늘어났겠죠! 하하!"
"이미 오 년에서 두 달 늘어났는데, 이왕 할 거 일 년 더 채우면 좋지…. 난 여기 업무 마음에 드는데."
"그쪽은 실질적으로 연구하는 게 없잖아요…. 나도 팀장급으로 꽂아달라고 할걸…."
"그래도 그 공룡인가? 그 외계 종 친구랑 잘 지내던데. 즐기던 거 아녔어?"
"하…. 말을 말자…."
수현과 각별의 대화를 듣던 잠뜰은 '공룡'을 언급한 대목에서 눈을 떴다. 공룡을 외계 종으로 언급하는 걸 보면, 진작 알고 있었던 거야? 혼란스러운 마음에 잠뜰은 조수석의 각별을 붙잡고 물었다.
"세계 협회에서는 이미 공룡이가 외계 종인 걸 알았던 거예요?"
"애초에 공생 가능 종이라 분류 등급도 안전이라서…. 그냥 한마디로 인간의 다른 버전으로 분류된 거지."
"그런데 왜 한국에선…."
"재단 때문이에요, 연구 협회 쪽을 하필 돈 많은 재단이 삼켜버린 바람에 우리 쪽에서도 터치하기가 껄끄럽달까…. 정부 내에도 세력이 있는 바람에 정보 통제도 심한 편이고…. 하지만 요즘에는 이사장의 행보가 너무 강경파라 비난 여론도 많이 나오고 있는 편이죠." 수현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잠깐, 저를 찾은 이유가 혹시 재단 관련 문제 때문인가요?"
"인턴이 똑똑하네, 서류상 이사장의 유일한 혈족인 박 인턴이 지분을 꽤나 많이 쥐고 있거든? 이걸 공식적으로 철회 선언해줘야 재단 쪽 힘이 공중분해 돼. 이렇게 되면 인턴의 지분은 한국 내 보호 협회랑 우리 직장으로 자동 분할될 거고. 몰랐지?"
"네…. 전혀요…."
잠뜰은 숨을 들이켰다. 그럼, 그럼 혹시 공룡이 소식은 아시나요? 수현은 잠뜰의 물음이 조금 떨리는 걸 보곤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답했다.
"조사해보니까 같은 종족 사람들한테 갔더라고요, 안심해도 돼요. 일단 잠뜰 씨랑 덕개 씨는 저희 관할하에 있는 센터로 갈 거라 안전은 보장할 수 있어요."
안전하다면야…. 길바닥에서 나자빠지기 직전이었으니 뭐든 노숙보다는 나았다.
그렇게 협회의 보호 속에서 덕개는 지분 포기를 위한 만반의 준비를 하느라 바빴고, 잠뜰은 협회 수사팀의 도움을 받아 공룡의 행방을 알아내는 데 시간을 할애했다. 뭐가 됐든 아무도 죽지 않았으니 다행이었다. 공룡의 생존 소식을 들으며 하루에도 몇 번씩 롤러코스터를 타는 기분이었다.
한편, 덕개는 이사장 반대파 재단 임원들의 동의로, 그들의 앞에서 무사히 지분 포기를 선언할 수 있었다. 나름의 콩고물을 노리던 임원들에겐 배 아픈 소식이었지만, 덕개의 지분은 공공기관 및 세계 협회로 흘러갈 수 있었다. 이사장은 제 영향력이 대부분 소실된 것을 확인하고 스스로 자수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러나 가장 큰 문제는 이사장도 아니고, 중앙지부의 소장이었다. 이 인간은 어째, 절대 포기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재단의 지지를 잃은 소장은 결국 마지막 발악으로 군부대를 불러 모아 강경 진압을 선언했다. 들리는 바에 의하면, 위험 외계 종 진압 성공 후 이를 빌미로 정부의 요직을 꿰차려는 수작이었으나, 외계 종을 혐오하는 세력에겐 꽤나 달콤한 계획처럼 들렸을 것이다. 이에 잠뜰을 포함한 세계 협회 세력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잠뜰 씨가 위험하다고 판단되면 합의 없이 데리고 나갈 겁니다. 진짜 위험한데 이걸 왜 하겠다는 거예요…."
"직장 상사를 쥐어팰 수 있다는데 당연히 제가 해야죠, 그리고 후배님이 너무 큰 일을 해줘서 아무것도 안 하기가 영…."
"네…. 뭐…. 위험해질 것 같으면 꼭 수신기 눌러요…."
잠뜰은 이 계획을 뒤통수 계획이라 말했는데, 실제로 이 계획이 소장의 뒤통수를 친다는 원대한 계획이었기 때문이었다. 세계 협회로서도 소장의 흠이 필요했기에 허락한 전적으로 잠뜰에 의해 만들어진 계획이었다. 그렇게 세협 한국지부 소속 경호부대 다섯 명과 수현을 포함해 중앙지부 연구소로 몰래 잠입하던 잠뜰은 연구소가 입구부터 굉장히 어수선하다는 걸 느꼈다. 이미 그들이 먼저 다녀가 한바탕 일을 치른 모양이었다. 잠뜰은 급하게 연구소에 들어갔다.
안쪽에는 별다른 위협 요소는 없었고, 그저 기절한 것으로 보이는 정부 소속 군인들을 피해 앞으로 나아가는 게 관건이었다. 여러 번 수색해 본 결과 안에는 모두가 탈출한 것 같다는 소견을 받은 그들은 얼마 안 가 소장이 후문 쪽에 진을 치고 있다는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잠뜰은 이제 정말 마지막일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다.
바야흐로, 최후의 순간이었다.
잠뜰은 헬리콥터를 탄 상태로 군부대와 소장이 서 있는 위치로 섬광탄을 던졌고, 그사이에 세협 소속 전투 요원 및 경호부대 대원들이 침입해 빠른 속도로 그들을 진압할 수 있었다.
"목숨이 참 질겨요, 안 그럽니까?"
"이미 기절했잖아요, 그만 해요 잠뜰 씨…."
원하던 만큼 소장을 두들기던 잠뜰은 수현이 옆에서 애원 조로 말하고 나서야 주먹질을 멈췄다. 그녀의 상태는 별로 좋지 않았지만, 표정 하나만큼은 시원해 보였다. 부모님과 심한 상처를 입은 라더를 세협 직원들에게 넘겨준 공룡은 마침내 잠뜰과 마주 설 수 있었다.
"못 만날 것처럼 인사하더니, 결국 만났네."
"그러니까…. 아…, 진짜…. 여기서 보니까 반갑네…."
"마찬가지야…. 밥은 먹었냐?"
*
일이 어느 정도 마무리된 후, 각별의 차를 타고 온 덕개가 헐레벌떡 달려왔다. 선배님들 살아있어요??? 공룡은 괜히 심술 난 투로 답했다. 그럼 죽었겠어요? 그렇게 말을 하면서도 공룡은 쿡쿡 웃고 있었기에 덕개도 그저 웃고 말았다.
그 이후는 여느 해피엔딩 스토리와 비슷하다. 공룡의 종족이나 스스로 사고가 가능한 외계 종에 한하여 한국 내에 거주권을 얻을 수 있도록 법이 개정되었다. 그 덕에 공룡은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게 되었고, 덕개는 원하던 연기를 배울 수 있게 되었다. 모두가 나름의 행복한 결말을 얻었으니, 이 정도면 된 게 아닐까. 공룡에게 줄 편지를 쓰던 잠뜰은, 오후의 나른한 햇살 아래서 잠깐 낮잠을 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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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차창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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