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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쿠조로│네 다리 짐승의 직감

짐승은 짐승을 알아본다

 

 

워터 세븐의 자랑인 갈레라 1번 부두의 목수 직공장은 항상 끌을 역수로 쥐었다.

손바닥이 다치기 쉬운 방법에 보다 못한 아이스버그는 몇번이고 교정을 권유했으나 그럴 때마다 그는 어릴 때부터 자리 잡은 버릇이라며 거절했다.

*

바다의 규율을 따르지 않는 해적이라 해도 바다에 지지 않고 나아가기 위해서는 규칙이 필요한 법이다. 누가 돛을 펴고 노를 잡는지 그런 것들. 누구보다 자유를 사랑하는 선장의 배라고 다르지 않았다. 그 외에도 고잉 메리호에 있는 규칙들을 몇 개 읊자면 이러했다. 메리 호의 머리는 루피의 자리. 밤이 되면 주방에는 나미 씨와 로빈 양을 제외하곤 아무도 들어오지 말 것. 나미의 허락 없이 귤나무와 금고를 함부로 만지지 말 것. 부상을 술과 고기, 잠으로 치료하려 들지 말 것. 망보기와 불침번은 돌아가면서 하되, 처음 보는 섬에 배를 정박할 때는 무조건 조로가 남을 것.

루피는 신념과 동료를 위해 목숨을 내걸었고, 사황 샹크스에게 받았다던 밀짚모자는 어떤 보물보다도 아꼈지만, 해적으로서 반드시 지켜야 하는 것이 있다면 단연코 그들이 타고 다니는 배였다. 미지로 휩싸인 섬을 모험한다든가, 식자재 확보라든가, 약재 채취, 유적 탐방, 해도 확인, 선박 정비 등등 각자 역할에 충실한 목표를 가지고 배에서 내릴 때 공식적으로 일당 내 유일한 전투원인 조로가 남는 건 그 때문이다.

고잉 메리 호의 수리를 목적으로 들린 물의 도시는 해적기에도 겁을 먹지 않았다.

기술로 평화를 일궈낸 문명의 도시에서 모험한다든가, 보물을 정산한다든가, 조선공을 찾는다든가, 필수 물자들을 보급하기 위해 하나둘씩 배에서 내리기 시작할 때면 조로는 적당히 햇빛이 잘 들어오는 갑판 자리를 찾아 난간에 등을 기대고 앉았다. 배 잘 보고 있으라는 일상적인 인사말에 손을 휘휘 젓는 걸로 적당히 배웅을 마치고 나면 저절로 눈이 감겼다. 비릿한 소금기가 맴도는 거친 해풍이 살랑거리는 봄바람처럼 느껴지는 날이었다. 해적들이 배를 대는 곳으로 보이는 곶은 전경이 탁 트여있어 침입이나 기습을 알아채기 쉬웠다. 몸 가장 가까이에 검 세 자루를 세워둔 채 눈을 감고 있으면 시간의 흐름을 느낄만한 건 이따끔씩 배의 장루에서 날개를 쉬었다 가는 갈매기 울음소리뿐이었다. 평화로운 도시다. 배를 지키던 조로는 그것을 부정하지 않았다.

가장 먼저 배에 도착한 건 의외로 우솝이었다. 단번에 난간을 짚고 갑판을 오르기에 당연히 루피나 재수 없는 요리사를 생각했던 조로는 길쭉한 코를 보고 슬쩍 떴던 눈을 다시 감았다가, 황급히 검을 빼 들었다. 그 잠깐 사이에 길쭉하고 ‘각진’ 코는 갑판 계단을 내려가 돛대에 덧댄 철판을 매만지고 있었다.

“오, 미안하네. 내가 깨웠나 보구만.”

칼을 겨누면 태연한 목소리로 대꾸했다. 한순간 조로는 그가 배에 달린 해적기를 보지 못한 건가 진지하게 고민해야만 했다.

“배를 보러온 조선공일세. 아까 인사도 했는데 듣지 못한 건가?”

“…조금 착각해서 말이지.”

남자의 옷차림과 길쭉하고 각진 코를 다시 한번 확인한 조로는 뽑아 든 검을 칼집으로 되돌려 놓으며 말했다.

“다시 자도 괜찮네. 검사는 오래 걸리지 않아.”

“조선공이라 할지라도 배 밖 사람이다. 마음대로 돌아다니게 할 생각은 없어.”

경계를 숨기지 않으면 시선이 머무는 것도 잠깐이었다.

“그것참… 한 마리 짐승 같군.”

남자는 사람 좋게 웃으며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다. 조로는 남자의 태평한 태도에 덩달아 긴장을 내려놓는 대신 팔짱을 끼고서 본격적으로 배 이곳저곳을 살펴보는 남자를 관찰했다. 곳곳에 덧댄 나무판자를 살펴볼 때마다 경악이 섞인 감탄사를 감추지 못하는 남자는 길쭉해 보이는 만큼 몸이 날랬고, 걸음에서 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조로는 입을 여는 대신 고개를 살짝 들어 그를 내려다본다.

마스트에서 특히 눈을 떼지 못하던 남자는 금세 구조를 익혔는지 갑판 바닥에 달린 문을 열어 단번에 선실 내부로 들어갔다. 마스트 바로 밑 내부는 남자 선원들이 쓰는 방이었다. 내부에도 어디 구멍이 뚫렸던가. 이따끔씩 우솝이 판자와 망치를 들고 선실에서 낑낑거리던 기억이 단편적으로 존재할 뿐, 대부분 시간을 장루나 갑판에서 트레이닝으로 보낸 조로는 생각나지 않는 것에 시간을 소모하는 대신 남자를 시야에 넣어두기로 했다. 내부 선실로 들어간 그를 보기 위해 2층 갑판에서 내려와 마스트 근처에서 적당히 자리를 깔고 앉았다. 열린 문으로 본 남자는 발에 힘을 주어 못질이 헐거운 마룻바닥을 찾고 있는 것 같았다. 그닥 듣기 좋지 못한 삐걱임이 규칙적으로 울렸다. 그러는 것도 잠깐, 어느 지점에 도착한 남자는 한쪽 무릎을 꿇고 판자를 뜯어낸다.

“이봐.”

“난 전문가야. 배를 함부로 상처 내는 짓은 하지 않아.”

그가 뜯어낸 판자 밑으로는 복잡하게 짜인 듯한 배의 바닥이 보였다. 봐도 무엇이 문제인지 알 수 없는 조로는 뚱한 얼굴로 남자를 보았다. 밑을 확인하자마자 말이 없어진 걸 보아 상태가 좋지 못한 건 분명했다. 세로로 두 뼘 채 안 되는 직사각형의 구멍으로 전체를 식별하는 건 무리가 있었는지, 그는 옆 판자까지 마저 뜯어내려고 했다. 조로는 그런 남자를 말 없이 지켜보았다. 턱끝까지 올린 지퍼와 눈가에 그늘이 지도록 푹 눌러쓴 모자 때문인지, 남자는 얼굴보다도 손이 잘 보였다. 그의 손안에 잡힌 굳은살은 자신의 손에 박힌 것들과 위치가 똑같다. 조로는 그 유쾌하지 못한 공통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안다. 돌연 그가 오른손으로 허리께를 더듬거리기 시작했다. 무언갈 찾는 모양새였다. 조로는 마찬가지로, 자신의 허리에 매달린 백색 검집에 손을 올렸다. 한참을 허리께를 더듬거리던 남자가 퍼뜩 고개를 들어 올린다. 다시 한번 남자에게 검을 겨누기 직전,

“끌을 두고 뛰었던 걸 잊어버렸다…!!”

“네 놈 전문가라 하지 않았냐!!!”

튀어나온 건 얼빠진 소리였다. 반사적으로 그의 말에 참견한 조로가 혀를 차며 팔짱을 꼈다. 조로가 있는 쪽으로 고개를 돌린 남자는 멋쩍게 웃으며 뒤통수를 긁적였다.

“달릴 때 끌이 부딪히면 다리가 아파서 말이지.”

“알까 보냐!”

내질러도 여전히 허허실실 웃는 얼굴이었다. 한쪽 무릎을 꿇고 메리의 안쪽을 보던 남자가 모자의 챙을 들어 올렸다.

“배를 뜯는 게 그리도 걱정되나?”

살짝 드러난 동그란 눈동자가 향한 곳은 조로의 검집이었다. 남자의 질문이 함의하는 바를 눈치챈 조로는 직전까지 검을 쥐고 있던 것을 부정하는 대신 입을 다물고 고개를 돌렸다. 메리의 손상이 걱정되느냐고? 묻는 게 우스운 질문이었다. 저뿐만 아니라 모두에게 있어 메리는 단순한 배, 그 이상이다. 메리는 추억이 깃든 집이었으며 모험으로 인도하는 친구이자 거센 파도로부터 저희를 지켜주는 또 다른 동료였다. 단지 메리를 자식처럼 여기며 아끼는 건 제 역할이 아닐 뿐. 그러나 조선공의 선택이라고 한다면 쓸데없는 생각은 얹지 않는다. 조로는 한 사람이 책임지고 있는 부분에는 결코 참견하지 않았다. 선장을 대신하는 나미의 명령에 짜증을 내다가도 불온한 기류를 예민하게 읽어낸 항해사의 오더에는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그런 조로가 메리의 수리를 위해 들린 조선공에게 날을 세우고 있는 건 한 가지 이유밖에 없다. 배를 지킬 때는 언제나 감각을 날카롭게 세워야 했고, 조선공이라던 남자의 손은 검을 잡는 손이었으니까.

남자의 시선이 옆으로 돌아간 제 뺨을 찔러온다. 답을 듣기 전까진 움직이지 않을 모양이었다. 짧게 친 뒷머리를 긁적이던 조로는 결국 크게 한숨을 쉬었다.

“손이다. 네놈 손이 거슬려.”

갑작스레 등장한 화제에 남자는 멍하니 제 손을 쥐었다 폈다가, 뒤늦게 무언갈 눈치챈 사람처럼 과장되게 고개 끄덕였다.

“끌을 항상 역수로 잡거든. 굳은살이 박힌 곳이 조금 특이하지?”

비로소 의문이 해소됐다는 듯 시원하게 웃은 남자는 보란 듯이 왼손을 폈다. 눈앞에 들이 밀어지면서 분명히 보게 된 그의 손에는 자신의 직업에 자긍심을 갖지 않고서야 생길 수 없는 흔적들로 가득했다. 그가 살아온 인생을 대변하는 훈장이기도 했다. 조로는 작게 혀를 찼다.

“…실례했군.”

“오해도 무리는 아닐세. 우리는 배를 가리지 않으니까. 하지만 가끔씩 난리를 피우는 해적들은 퍽 곤란하단 말이지. 그렇다고 해도 끌을 칼처럼 써본 적은 아직 없구만.”

“그래서, 판자를 뜯는데 필요한 도구가 지금 없다는 건가?”

“깔끔히 뜯을만한 게 없다는 거다. 애초에 끌은 목재를 깎는 데 쓰는 도구인 걸. 처음 뜯은 판자는 못질이 허술한 덕에 쉽게 열었지만, 옆은 다르더군. 물론 자네가 허락만 해준다면야….”

남자가 일부러 말끝을 흐렸다. 늙은이나 쓸법한 말투로 넉살을 떠는데도 크게 짜증이 나지 않는 건 순진함을 어필하는 동그란 눈 때문인지, 허풍 떠는데 익숙한 녀석을 떠올리게끔 하는 코 때문인지는 알 길 없었다. 조로는 짧게 고개만 까닥였다. 마음대로 하라는 뜻이었다. 조로의 사인을 눈치챈 남자는 곧바로 작업에 착수했다. 그러니까, 남자는, 그다지 힘을 준 것 같지도 않은 손으로 못질이 잘 되어있다고 말한 판자를 뜯어냈다. 허. 기도 안 찬다는 듯 조로가 코웃음 쳤다. 머쓱하긴한 모양인지 사람 좋게 웃던 남자의 얼굴은 배 밑바닥을 보자마자 다시 굳어간다. 이번에 조로는 남자를 보는 대신에 봐도 모르는 배 바닥을 보았다.

“그렇게 심각한 거냐.”

“수리를 맡기겠단 말을 하는 게 놀라운 정도야. 혹시 배에 조선공이 없는건가?”

“안그래도 이번에 영입할 생각이다.”

“이 섬에서? 자네들 정말로 여기까지 조선공 없이 왔다고?”

“그래.”

“…어쩐지 철판에 못질이 영 어설프다 싶었다만. 용케도 사지 멀쩡히 살아있구려.”

돛대의 밧줄을 살짝─우솝과 나미는 자신을 탓했지만 조로의 기준으로 그건 정말로 살짝이었다─잡아당긴 정도로 마스트가 꺾였던 아침의 소동을 떠올린 조로는 대답을 돌려주는 대신에 입을 다물었다.

“그래도 이 섬에서 조선공을 구한다면 이후에 걱정은 없겠군. 갈레라의 조선공이라면 누구 하나 뒤처지지 않으니까.”

그때까지 난간 밖 풍경 어딘가에 시선을 걸치고 있던 조로가 돌연 고개를 돌려 남자의 얼굴을 보았다.

“그런 의미에서 너, 이 배에 타고 싶지 않으면 밀짚모자를 조심해라.”

“밀짚모자?”

“우리 선장이다. 그 녀석은 코가 길고 웃긴 놈을 좋아하거든.”

그렇게 말하는 조로의 얼굴은 누가 봐도 골려주는 사람의 모양새였다. 남자가 동그란 눈을 깜빡였다.

“난 당연히 자네가 이 배의 선장인 줄 알았는데.”

“난 일개 선원에 불과해. 동료 같은 거 딱히 누가 들어오든 상관없다.”

여태까지 넉살을 떨어왔던 것처럼 적당히 돌려서 거절하든지 할 줄 알았던 남자의 입에서 나온 말은 항해해오며 숱하게 들어온 소리였다. 짧게 대꾸를 마친 조로는 다시 손깍지 낀 팔을 머리 뒤로 해, 마스트에 등을 기대고는 눈을 감았다. 배에 올라탄 이에 대한 경계가 완전히 풀어진 모습이었다.

“아아, 세 자루의 검인가.”

조로가 감았던 한쪽 눈을 떴다. 바다에 퍼져있는 자신의 이명 따위에는 관심 없는 조로였으나, 저를 수식하는 말 중에 가장 유명한 게 삼도류라는 것쯤은 알았다. 남자가 고개를 돌렸다.

“…조만간 만날 일이 있었으면 좋겠군. 아마 없겠지만.”

“무슨 뜻이지?”

“그야 당연히, 배의 이야기다.”

뜯은 갑판을 다시 제 원위치로 돌려놓은 남자는 숙였던 몸을 일으켜 세웠다. 짧은 시간 동안 자신이 검사한 배의 상태와 진단을 내리는 그의 표정은 더없이 진지했다. 진검을 뽑아 들어 경계할 때조차 실실 웃던 남자는 웃지 않았고, 그의 말이 끝났을 때 조로는 다시 만날 일이 없다던 남자의 말뜻을 온전히 이해할 수밖에 없었다.

돌이켜 생각해보건대, 남자는 우솝과 착각한 자신이 우습게 느껴질 정도로 완전히 다른 사람이었다.

*

완전히 다른 사람.

배에서 만났었지, 롤로노아.

한눈을 팔다니 여유로구나.

완전히, 다른,

사람.

*

톰즈 워커즈의 옛 본사였던 지저분한 창고는 조금 있는 것만으로도 옷 위에 쉽게 먼지가 쌓였다. 아쿠아라구나가 덮치기 전, 에니에스 로비로 돌아가기 위한 바다열차 안에서 카쿠는 몇 번이고 자신의 어깨를 털었다.

“당신, 심란해 보이네.”

“커티 프람을 연행했을 때부터다.”

칼리파가 입을 열면 블루노가 덧붙였다. 눈동자만 위로 굴려 동료를 본 카쿠가 다시 시선을 돌렸다.

“조선공으로서 마지막 일을 제대로 마무리하고 싶었거든.”

“그러고 보니 당신이 마지막으로 맡았던 배가…….”

“밀짚모자 일당의 배였지.”

카쿠가 대답하자마자 루치의 기분을 대변하는 흰 비둘기가 낮게 울었다. 심기에 거슬린다는 뜻이었다. 그가 갈레라에서 보냈던 5년의 세월에 환멸을 느끼고 있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던 일원들은 일제히 입을 다물었다. 그 이상으로 자신의 기분을 더 설명하고 싶지 않았던 카쿠에게는 고마운 일이다.

바다를 항해하는 배에는 시간이 스며든다.

배라는 건 단순히 목재를 깎아서 철골로 이어 붙인 게 전부라는 감상이 끝인 누군가와 다르게, 카쿠는 그 시간들을 엿보고 수리하는 일들이 마냥 싫지만은 않았다. 거친 해풍에 깎여나간 염료 칠들을 다듬고, 적과 용맹하게 싸운 상흔이 남은 선체를 갈아 끼우고, 썩어가는 돛대를 세우면서 그들이 거쳐왔을 항로를 엿보는 일들을, 카쿠는 사실, 꽤 좋아했다.

수리가 필요하다는 말에 끽해야 찢긴 돛대와 배 바닥에 뚫린 구멍 정도를 생각하며 하늘을 달렸던 카쿠는 바위 기슭에 정박해놨다던 양 머리의 배를 보자마자 그들이 거쳐온 항로가 보통 뱃길과는 다르다는 것을 직감했다. 선체 곳곳에 덧대어진 철판에는 진심으로 배를 소중히 여기는 마음들이 녹아 있었다. 물이 새어 나오는 구멍을 막기 급급한 임시방편이 아닌, 진심으로 배를 위한 처사였음이 느껴지는 엉성한 못 자국들. 카쿠는 그런 헛된 정성을 싫어하지 않았다. 그들은 단지 무지했을 뿐이다. 그리고 무지한 자들은 대개 자신들의 안일함이 낳은 업보가 얼 만큼 큰 줄도 몰랐기 때문에, 그대로 둬도 별 문제가 없었다.

카쿠가 이해하지 못하는 건 이미 벌어진 일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배는 시간과 정성이 쌓일수록 깎여나가는 소모품이다. 추억이 녹아 있다고 한들 더 이상 사람을 태울 수 없는 배는 바다로 나갈 수 없다. 나가서는 안 됐다.

갈레라의 자신 역시 그런 배들과 다르지 않다. 임무의 성공이 가까워질수록 운 좋으면 실종, 아주 높은 확률로 사망 처리되어 잊혀질 소모품 신분. 카쿠는 그곳에 남은 자신의 미련을 부정하지 않는다. 초인이 되기 위한 육식 중에 마음을 도려내는 기술이 없는 탓이었다.

배의 수명을 정하는 게 조선공이라면 자신의 가치와 수명을 정하는 건 세계 정부다.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배가 바다에 나가서는 안 되는 것처럼, 사사건건 정에 휩쓸리는 정의는.

“후련한 게 아니었나.”

상념을 끊는 목소리였다. 입을 연 건 루치였다. 높낮이 없이 일정하게 울리는 목소리는 듣는 사람의 해석에 따라 느낌이 다르다는 장점 아닌 장점이 있었다. CP9의 편의를 위해 대기하고 있던 정부 요원 중 한 명은 루치가 카쿠를 나름대로 걱정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둘은 여러 의미로 같은 일을 5년이나 함께한 동료였으니까. 다른 한 명은 허튼 생각하지 말라는 협박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아니면 후련한 게 아니더라도 후련해야 한다는 반강제성인 명령이거나. 그리고 카쿠는, 일정한 루치의 목소리에 그가 특별한 생각없이 던진 말임을 알았다. 때문에 카쿠는 섣불리 대답을 돌려주는 대신 살짝 고개를 숙여 목 끝까지 잠근 옷깃에 입가를 완전히 숨겼다.

조선공으로서 마지막으로 맡았던 그들의 배와 임무가 끝나가던 갈레라의 자신을 겹쳐봤다고 한다면 지금 그 배를 처분한 지금 제게 남은 것은 심란함인가 후련함인가.

그들의 배를 떠올리면 우습게도 거기에는 짐승 하나가 따라왔다.

배를 지키는 중이라던 일개 선원. 카쿠는 그들의 배가 워터세븐으로 들어오기 며칠 전, 임무 종료가 멀지 않았다는 말과 함께 밀짚모자 일당의 수배서와 특이사항을 브리핑받은 바 있었다. 그가 선장이 아니라는 건 마주 보기 전부터 알고 있었음에도 오해한 것처럼 말을 건넸던 건, 일개 선원이라는 보잘것없는 단어로 소개될 기백이 아니라는 걸 직접 피부로 느꼈기 때문이다. 태평하게 늘어져 있어도 결코 검자루에서 손을 떼놓지 않았던 남자. 그는 5년간 목공용 도구들에 익어가던 손의 원래 쓰임새를 눈치챘다. 걸음걸이에 배어있는 출신을 의심했다. 평범한 갈레라 조선공인 자신을, 경계했다.

팔짱을 끼고 있던 손바닥이 간지러운 착각이 들었다. 불과 몇십분 전에 갈레라 저택에서 그와 겨뤘던 합을 기억한다. 그의 검자루를 보며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아쉬웠던 교전이었다. 몸의 상태를 보건대 전력은 아니었으리라. 그런 와중에도 그는 무기 대용으로 쓰던 함선용 끌의 날을 완력만으로도 부러트렸다. 자신의 선장이 나아갈 틈을 만들었다. 몸이 꿰뚫리고도 이길 수 없는 상대에게 덤벼들었다. 떠올리고자 했던 건 아쿠아라구나에 집어 삼켜질 배일텐데도 끝에 남는 건 그것을 지키던 남자였다. 어떻게 된 생각의 흐름인가.

또다시 이어지는 물음표 속에서 카쿠는 불현듯 답을 찾는다.

“아쉬움이든, 무엇이든 상관없지 않나.”

명쾌한 목소리였다. 칼리파와 블루노의 시선이 카쿠에게로 향한다. 그는 동료에게로 시선을 돌려주는 대신 모자챙을 잡아 아래로 눌렀다. 갈레라의 생활을 좋아했다. 각기다른 이야기를 품고 워터 세븐으로 쉬러오는 배들을 보는 일을 좋아했다. 물 비린내가 배어있는 도시를 좋아했고, 두 다리만으로 도시 전경을 누비던 시간은 필시 그리워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내 즐거움은 그곳에만 있는 게 아닌 것을.”

모자의 챙 그늘 속으로 얼굴이 완전히 가려지기 직전, 마지막으로 카쿠가 보인 것은 갈레라에서 일하는 동안 단 한번도 보이지 않았던 미소였다. 전력으로 겨룰 수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마지막으로 남은 미련은 갈레라에 존재하지 않았다. 이윽고 이른 출발을 알리는 열차의 경적 소리가 울렸다. 수면 밑에 깔린 선로가 요동친다.

이제는 떠날 때였다. 

*

마침내 카쿠가 사법의 탑에서 마수를 다시 만난 날.

그는 손에 익은 검을 뽑아들고, 역수로 쥐었다.

조로가 예상했을 모습 그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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