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차 창작

'선명' 을 읽고 : 다이앤 아르터스

프리마베라 : 더 비기닝 / 독후감 / 2020.03.13 업로드

'집필 과정에 많은 도움을 준 나의 사랑하는 배우자 폴 도메른에게 이 책을 바친다.'

작가가 궁금해서 찾아보았다. '테논 도메른.' 제국 서부 지방 출신으로, 자신과 배우자의 이야기를 각색해서 '선명'을 지었다고 한다. 배우자 역시 제국 출신으로 알려져 있다.

이 책을 처음 봤을 때, 제목을 보고 당연히 색이 선명하다 할 때 그 선명인 줄 알았다. 그런데 알고 보니 매미가 우는 소리를 선명이라고 한다더라. 이 책의 배경은 여름이며, 꽤 더운 날씨로 묘사된다. 또한 선명이라는 단어는 '귀찮게 옆에서 자꾸 지껄이는 소리'라는 비유적 의미도 가진다고 한다.

책은 1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주인공은 가상의 왕족이다. 이 책의 특이한 점은, 주인공을 비롯한 그 어떤 인물의 이름도 작중에 등장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주인공은 그저 '나'일 뿐이며, 그 외에는 해당 인물의 자리나 위치 등으로 서술하여 구분한다.

책의 내용을 대충 요약하자면 이렇다. '나'는 왕의 하나뿐인 자식이며, 탄탄한 교육을 통해 왕위를 이어받을 준비를 하나하나 마치고 있는 중이다. '나'가 준비가 되었다고 판단한 왕은 '나'에게 왕실에 들일 물건을 거래하는 일의 처리를 넘겨주고, 연합에서 온 상인과 '나'는 주기적으로 만나 이야기를 나눈다. 처음엔 공적인 이야기뿐이었으나 곧 '나'는 이 상인이 마음에 들기 시작하고, 이 사람을 친구로 삼아야겠다 마음먹는다. 다만 그 감정이 사랑으로 발전하는 데에는 많은 과정이 필요하지 않았으며, 심지어 상대도 우연히 같은 마음을 키우고 있었을 뿐이다. '나'는 왕의 자리와 사랑 사이에서 고민하고, 그의 내적 갈등이 책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로맨스 소설이라 구분하나 막상 애정이 담긴 장면이 그리 많이 나오지 않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그러다 결국 '나'는 매미가 노래하는 어느 여름 밤, 상인의 손을 잡고 궁을 빠져나가기에 이른다. 물 위를 가르고 멀리 나아가는 배 위에는 손을 잡은 두 사람이 일출을 보며 서 있다.

이 책은 이것으로 끝난다. 그 후에 어떻게 되었는지는 독자의 상상에 달려 있다. 가장 인상 깊었던 문장은 '나'가 애인과의 밀회 중, 궁을 빠져나가기로 결심한 순간의 것이다. '그 달콤한 선명에, 나는 내가 기억해야 할 것을 스스로 잊었다.' 위에 적은 비유적인 의미에 모순되는 '달콤한'이라는 단어가 붙은 역설적인 문장이라서가 첫 번째. 그리고 두 번째로, 나는 왠지 그 상인이 오래 살지 못했을 것 같다. 애인의 목소리가 여름 한 철 뜨겁게 살다 사라지는 매미에 비유된 것이 어떤 복선으로 느껴져서. 그래서 나는 이 사랑이 비극이었을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실제론 어떨지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매미가 짧은 생을 누구보다 애절하게 불태우고 사라지는 만큼, 그 상인도 행복했을지 모른다. 그리고 그 상인이 죽고 '나'가 전혀 슬프지 않은 얼굴로 그를 따라 스러졌다면, 그것은 그들에게 행복이 아닌가. 고작 종이를 통해서나 그들을 볼 수 있는 나는 그런 것을 짚어 판단할 수 없다.

한편으로는 유일한 왕 후보가 사라진 궁이 걱정되지 않을 리 없다. 가장 무거운 기둥이 사라졌다는 것은 곧 피바람을 의미했기에. 그러나 그까지 생각하고 있자면 이것이 로맨스 소설의 범위에서 한참 벗어날 듯한 예감에 그만두기로 했다.

'나'가 애인과 도망을 가기로 한 부분까지는 나도 그것이 그른 선택이라 여겼다. 어떻게 사랑 때문에 왕이 될 사람이 나라를 져버리는가. 그러나 이것이 소설이라는 점을 까먹지 말자. 실제였다면 당장에 난리가 날 일이나, 책 속이기에 일어날 수 있는 일은 한계가 없다. 그리고 무엇보다, 마지막 단락을 읽고 책을 덮을 때의 나는 '나'를 다그칠 의욕을 모두 내려놓고 말았다. 그가 업은 수많은 갈등을 눈으로 직접 목격했기 때문인지, 그 사랑이 너무 처연하고 깨끗해서인지 모르겠다. 그냥, 내가 그의 가치를 마음대로 재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건 그의 인생이고, 이 책은 그 생의 극히 일부일 뿐이다. 누구나 마음 속에 더 중요히 여기는 가치가 있다. 그리고 그건 언제든지 바뀔 수 있는 것이다. 특히나 한 사람이 한 사람을 사랑한다는 감정의 무게를 내 마음대로 저울에 달아볼 수는 없는 것이다. 그냥 그렇게 여기기로 했다. 다시 강조하지만, 이건 현실이 아니기에 할 수 있는 말이다. 과거든 현재든 미래든, 나라를 버리는 지도자는 없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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