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ue Colony

블루 콜로니. 20

CN by BX900
2
0
0

#20. 책임자

"…그럼, 이번 한 번만 같이 협조하는 거지?"

“그게… 원래는 그럴 생각이었는데…….”

눈치를 보며 말꼬리를 늘이는 그 모습에 퍼킨스가 인상을 조금 찌푸렸다. 퍼킨스는 입 하나 뻥끗 안 했으나 제 발이 저린 노먼은 슬슬 조여드는 압박감에 재빠르게 쏟아냈다.

“들어 봐. 일단은 한두 달만 같이 해보기로 했어. 고작 몇 개의 사건으론 제대로 된 능력을 판단할 수도 없는 데다가, 우리나 저쪽이나 매번 이런 일로 부딪힐 수도 없는 노릇이니까. 그리고 너도 알다시피… 자꾸 ARI를 방해하잖아. 그렇다고 그더러 관할서를 옮기라 할 수도 없고, 적어도 서로 위치 파악 정도는 하고 있어야 안심이 될 테니. 그러려면 이게 가장 합리적인 방법이라 생각했어.”

보닛에 기대어 앉은 퍼킨스가 여전히 아무 말 없이 팔짱을 끼고 노먼을 올려다보았다. 노먼은 조금 미안한 표정으로 파트너에게 거듭 사과했다.

"알아. 너와 상의하고 결정해야 했는데, 미안해. 그렇지만 네가 봤어야 해. 비에 쫄딱 맞은 치와와처럼 구는데 도저히 무시할 수가 있어야지."

마지막 말에 퍼킨스가 코웃음을 쳤다.

"치와와는 무슨. 하운드면 모를까."

퍼킨스는 여전히 굳은 표정이었으나 속으로는 노먼이 멋대로 내린 결정에 어느 정도 수긍하고 있었다. 사실, 파트너가 최근 들어 자꾸 발작을 일으키는 것을 보며 뭐든 하긴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을 ARI를 압수하는 것이었지만, 그 안경으로 인해 업무에 커다란 지장이 생긴 것도 아니기에 막무가내로 뺏어가려 들면 노먼은 절대 곱게 받아들이지 않을 터였다. 평소 노먼은 매우 논리적인 사람이었음에도 본인이 이겨야 하는 상황에선 뻔뻔스러운 궤변도 얼마든지 늘어놓을 줄 아는 인간이었다. 그런 놈과 말싸움하는 상상만해도, 퍼킨스는 벌써부터 머리가 지끈거리고 스트레스성 위경련이 도지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또 들어보면, 완전히 말이 안 되는 상황도 아니었다. 퍼킨스는 그의 파트너가 본인과 관련한 일이 아니면 가차 없이 등을 돌릴 줄 알면서도 동시에 한 번 연민이 생긴 대상으로부턴 제아무리 옆에서 눈을 가리고 잡아 끌어가도 시선을 떼지 못한다는 것 역시 알았다. 그래도 전에 비하면 많이 나아진 거였다. 퍼킨스가 옆에서 따끔하게 충고하고 말리지 않았다면, 지금쯤 노먼이 입양한 아이가 열은 족히 넘었을 테니.

당시만 생각하면 퍼킨스는 아직도 정신이 아찔했다. 두 사람이 함께 처음으로 담당했던 사건의 15살짜리 피해자를 입양하겠다 지껄이던 노먼은, 고작 25살이었다. 함께 아이를 양육할 배우자도 없는 데다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 위험천만한 직업을 갖고 있는 주제에, 아이를 맡을 사람이 없어 걱정이라는 사회복지사가 흘린 단 한마디에 눈이 돌아서는 본부로 오자마자 입양 서류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퍼킨스는 그의 뒤통수를 후려치며 개짓거리 작작 하고 보고서나 쓰라 소리쳤고 노먼은 욱해선 따박따박 말대꾸를 해댔다. 그때까지만 해도, 퍼킨스는 이런 꼴통과 함께 앞으로도 사건을 해결해야 한다는 사실에 잔뜩 열이 올라있었다.

당연하지만 그들 선에서 입양 얘기는 무산되었다. 하지만 그 후로도 노먼은 아이가 어떤 가정에 위탁되었는지, 어떤 학교에 들어가고 어떤 친구를 사귀는지 FBI의 자원을 활용해 추적조사를 했다. 그건 네 소관이 아니며 맡겨진 일에나 집중하라는 퍼킨스의 짜증스러운 면박에도 노먼은 그의 책상에 수사보고서를 휙 하니 집어던지곤 하던 일을 마저 했다. 퍼킨스는 오탈자 하나 없이 완벽하고 깔끔하게 작성된 문서에 더는 할 말이 없어졌다.

다행히 성인이 돼서도 철이 들긴 하는 건지, 아니면 퍼킨스가 귀 아프게 잔소리를 해대서 그런 건지, 노먼의 이런 작태는 시간이 지날수록 사그라들긴 했다. 경험과 연차가 쌓여가며 피해자를 향한 과도한 동정도 가해자를 향한 분별 없는 증오도 차츰차츰 가라앉았고, 퍼킨스가 술자리에서 그 일을 끄집어내면 노먼은 붉어진 얼굴과 함께 이제 그 얘기 좀 그만할 수 없냐며 투덜댔다. 그래. 그때와 비교하면 이런 일은 아주 양반이었다.

퍼킨스는 한숨을 내쉬었다.

"알았어. 이미 하기로 한 거 뭐 어쩌겠어. 한번 입양하기로 한 치와와를, 파양시킬 수도 없고."

하지만 여전히 안심이 안 되어 추가로 덧붙였다.

"언제까지고 같이 다닐 수 없다는 건 알고 있지?"

노먼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아. 하지만… 너도 봤다시피 DPD 인간들을 도저히 믿을 수가 있어야지. 일단 몇 주만 같이 해보고 국장한테 정식 영입을 제안해 보려고. 어차피 우리 팀도 일손이 부족하잖아. 인원도 충원하려 했고. 안드로이드 수사라면, 확실히 같은 안드로이드가 수사팀에 끼어있는 게 맞긴 해.”

그건 퍼킨스도 동의하는 바였다. 클라인 사건 당시, 자신들이 안드로이드에 얼마나 무지했는지 코너를 통해 여실히 깨달은 적이 있었다. 안드로이드에겐 기본 상식일지라도 인간에겐 전혀 생각지도 못한 부분을 코너가 몇 번 짚어 주었고, 퍼킨스는 이를 잊지 않았다.

"알았어. 그럼 잠시만이야. 그리고 별 도움이 안 되면 그걸로 끝인 것도 알아둬. 우린 FBI지, 보호소가 아니니까."

"걱정 마. 내가 보기에 코너는 어떤 면에선 다른 수사관 보다 훨씬 나아."

"인간에겐 없는 기능을 가졌으니 그렇지."

노먼은 어깨를 으쓱였다.

"뭐, 어찌 됐든."

시선을 돌린 퍼킨스가 경찰서 정문으로부터 그들을 향해 걸어오는 코너를 바라보았다. 기계는 어울리지도 않는 미소를 짓고 있었다. 퍼킨스는 그 얼굴에 괜스레 속이 답답해져 보닛 위에 올려둔 커피를 벌컥 들이켰다. 차가운 아침 공기에 빠르게 식어버린 커피가 퍼킨스의 식도를 타고 내려갔다.

코너가 노먼에게 다가와 태블릿을 내밀었다.

“FBI에 제출할 이관요청 수락문입니다. 제이든 요원, 퍼킨스 요원. 두 분의 서명이 필요합니다.”

노먼이 펜을 뽑아 화면 한구석에 사인하며 말했다.

“이젠 같이 일하는 사이니까, 그냥 노먼이라고 불러요. 여기저기 FBI입네 홍보하고 싶진 않으니까.”

그가 다시 태블릿을 건네주자 코너가 이를 받아들였다.

“알겠습니다. 노먼.”

그러고는 곧바로 퍼킨스에게 내밀었다. 안드로이드가 나긋한 목소리로 말했다.

“리처드.”

퍼킨스의 얼굴이 와그작 구겨졌다. 기계의 다정한 어투에 소름이 끼치고 피부에 닭살이 돋은 퍼킨스가 펜을 거칠게 낚아채며 툴툴댔다.

“거북하니까 그냥 원래대로 불러라. 난 이 녀석과 다르게 감투 쓰는 거 좋아해.”

“…알겠습니다. 요원님.”

퍼킨스마저 서명을 마치자, 코너가 무언가를 입력하고는 전송 버튼을 눌렀다.

"다 끝났어요?"

노먼의 질문에 코너가 빙긋 웃었다.

"네. 어제저녁부터 오늘 아침까지, 제가 담당하던 업무의 인수인계 문서와 사건보고서를 전부 작성해서 넘겼습니다. 비품 이관 서류 역시 처리했으니 남은 건 지금 제출한 문서뿐이었어요. 모두, 마무리되었습니다."

코너는 마치 뒤도 안 돌아 볼 것처럼 말했다. 퍼킨스와 노먼은 조금 걱정이 되었으나 이미 벌어진 일이었고, 서류에 도장은 찍혔다. 퍼킨스는 이 기계가 자신들에게 해가 될지 이득이 될지 전혀 가늠이 안 갔으나 이렇게 된 이상 해보는 수밖에 없었다.

그가 베이글을 쌌던 봉지를 빈 컵에 담아, 근처에 위치한 쓰레기통으로 휙 던졌다.

"자. 팀원이 모였으니 회의를 시작해 보자고.”

그리곤 팔짱을 끼며 코너에게 곧장 물었다.

“아까 전달한 사건 파일, 확실하게 숙지했나?"

"네."

"정리해서 말해봐."

퍼킨스의 질문에 코너가 조금 전에 읽어 본 내용을 줄줄 읊기 시작했다.

"목이 없는 안드로이드의 시체는 어제 발견된 것까지 총 아홉 구이며, 가장 오래전에 유기된 것부터 최근에 사망한 개체까지, 범행 방식이 조금씩 달라지고 있습니다. 유기 장소를 숨기고 흔적을 지우려 큰 노력을 쏟았던 과거와는 달리 뒤로 갈수록 무분별하게 시체를 버리고 있어요. 방어흔이 사라진 것으로 보아 피해자를 납치 장소로 꾀어내고 안심시키는 방식은 능숙해졌을 거라 봅니다. 안드로이드에겐 약물이 통하지 않고, 시스템이 해킹된 것이 아닌 이상 억지로 끌고 가는 사람 앞에 얌전해질 이유가 없죠. 결박 역시 합의하에 이루어졌고 관계 후 곧바로 머리를 분리했을 것으로 추측됩니다."

코너는 이제 노먼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어제 템플 스트릿에서 발견된 시체를 조사한 후 추가로 알아낸 게 있습니다. 피해자는 두 대 빼고 전부 상이한 모델이며 생김새는 아홉 대가 모두 다릅니다. 성적 동기를 가진 연쇄살인범은 주로 비슷한 특징의 타깃을 고르지만, 이번 사건의 범인은 달라요. 그는 외적인 공통점이 없는 안드로이드를 범행 대상으로 삼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기능이나 옵션이 같은 것도 아닙니다. 가정용부터 공업용, 성인용 안드로이드까지, 종류가 다양합니다."

코너의 설명에 퍼킨스가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그건… 이 범인이 컬렉터라서 그래."

"컬렉터요?"

"그래. 수집가 유형. 안드로이드의 머리가 범인의 기념품인 건 알고 있지? 그는 지금 각기 다른 사냥감을 수집하는 중이야. 아마 집 한구석엔 머리를 나열해 놓은 전시대가 있을 거다."

"머리를 수집하는 거라면, 굳이 이런 위험한 방식을 택하는 이유가 있나요? 안드로이드 매매가 불법이긴 하지만 암시장에는 작년에 폐기된 부품이 공공연하게 거래되고 있습니다. 물론 머리도 있을 테고요. 그곳에서 얻을 수도 있을 텐데요."

기계의 순수하다 못해 순진한 생각에 퍼킨스는 입꼬리를 올렸다.

"아니. 이 자는 자신이 '정복한' 안드로이드만 수집해. 머리마다 범인 나름의 추억이 깃들어 있는 거지. 모르긴 몰라도, 다른 수집품도 많을 거다. 동전이나 우표 정도면 귀여운 수준이지."

인간의 설명을 나름의 언어로 처리하는 듯, 코너의 LED가 노랗게 돌았다. 퍼킨스는 안드로이드가 생각을 정리하게 놔두고 이번엔 노먼에게 물었다.

“검식 관이 올린 보고서는 확인했어?”

“아직. 뭔가 들어왔어?”

“현장에서 수거한 담배꽁초의 감식 결과가 나왔다는군. 범인의 유전자와 일치하는게 있대.”

“종류는?”

“던보 로열.”

노먼이 고개를 갸웃했고, 코너가 말을 얹었다.

“던보 로열 시리즈는 멘톨, 바닐린, 강한 계피 향이 특징이고 시중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상품이 아닙니다. 미국 내에선 더는 가향 담배를 생산할 수 없으니, 해외에서 들여왔을 겁니다. 때문에 시판되는 상품보다 가격대가 몇 배는 높고요.”

퍼킨스가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며 혼잣말처럼 덧붙였다.

“맞아. 문제는 이 정도 정보론 용의자를 추려낼 수가 없다는 거야. 쉽게 구매할 수 없다지만 또 불가능할 정도로 어려운 것도 아니니까. 미확인범의 인적 사항에 선호하는 취향 하나가 추가 됐을 뿐이지…….”

곰곰히 생각하던 퍼킨스는 이번엔 노먼을 향해 턱짓을 했다.

"범인의 프로파일이 나왔다고 했지? 너도 어제 조사한 내용이랑 같이 브리핑해 봐.“

몹시도 자연스러운 명령조에, 노먼은 새삼스러운 눈으로 퍼킨스를 쳐다봤다. 명백한 상관 같은 말투는 어떤 위화감도 어색함도 느껴지지 않아서 노먼은 기분이 나쁘기보단 오히려 묘하게 안심이 됐다.

생각해 보면 퍼킨스는 원래 이랬다. 처음 만났을 때만 해도 노먼은 자신과 같은 부서도 아닌데 자꾸 아랫사람 대하듯 명령하던 그의 태도를 매우 고깝게 여겼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그건 그저 일을 효율적으로 처리하려는 퍼킨스의 말버릇,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님을 알게 됐다. 게다가 노먼이 그의 고압적인 자세에 거북함을 드러낸 후에는 퍼킨스도 말투를 누그러뜨리려 노력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물론, 잘 되진 않았지만. 오래도록 굳어 온 습관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고 가끔씩은 저도 모르게 튀어나오는 것 같았다. 나중엔 노먼도 적응했고, 파트너가 특별히 거만해서 그렇다거나 악의를 가진 게 아님을 알았기에 차츰 익숙해졌다.

무엇보다, 작년만 해도 퍼킨스는 지부의 단 다섯뿐인 책임 요원의 위치까지 오른 자였다. 현재는 패트릭이 차지했으나 그 전엔 퍼킨스가 대테러 부의 책임자였고 족히 다섯 개가 넘는 팀을 총괄하던 사람이었다. 그래서일까 파트너의 지시를 듣는 이 순간, 어제 들었던 코너의 질문이 떠올랐다. 노먼과 퍼킨스, 둘만 있을 때는 미처 깨닫지 못했지만 확실히 셋이 모이니 퍼킨스가 자연스레 상황을 통제해 나가고 있었다. 노먼은 밤새도록 누구에게 어떤 업무를 맡겨야 할지 골머리를 앓다가, 에라 모르겠다, 하며 잠들어버린 게 기억나서 저도 모르게 미소지었다.

퍼킨스는 대뜸 자기를 보고 웃는 그 표정에 인상을 찡그렸다.

"왜 쪼개? 기분 나쁘게."

"그냥. 갑자기 마음이 편해졌어."

그리고, 조금 미안하네. 마지막 말은 입 밖으로 꺼내지 않은 노먼이 퍼킨스가 앞서 한 질문에 대답했다.

"코너가 전달해 준 범인의 외형은 185cm에 90kg 이상의 체격을 가진 남성이야. 수집가 유형은 통계적으로 연령대가 있지. 범행 방식을 생각하면 너무 많지도 않고. 그러니 나이는 30대 후반에서 50대 초반. 살해 당하기 직전까지도 피해자가 방심한 걸 보면 범인은 부드럽고 유려한 화술을 구사하며, 평소엔 다소 침착하고 여유롭게 행동하며 매력적으로 보일 가능성이 높아."

노먼이 손에 깍지를 끼곤 입술 앞으로 가져다 댔다.

"초반에 발견된 시신의 해체 방식과 지워낸 흔적을 보면 일반인보단 기술이 좋지만 완전한 전문가라 보기도 어려워. 손재주가 있던 사람이 범행을 반복하면서 숙련되어 가는거지. 범행 주기가 짧지만 불필요한 시신 손괴도 없고, 뚜렷한 목적성과 지배적인 성향, 절제되어 있는 모습을 봐선 직장에서 높은 직위에 있거나 본인 명의의 가게 하나쯤은 소유하고 있을지도 몰라. 아니면, 의외로 비서 중에도 그런 성향을 가진 사람이 있지."

퍼킨스는 턱을 매만지며 골똘히 생각에 잠겼고 코너 역시 실시간으로 노먼의 분석을 데이터로 정리하는 듯했다.

"사람이 자주 지나다니는 곳에 시신을 유기한 걸 보면 눈에 띄는 차량을 몰고 다니진 않아. 한 번에 여러 구의 시신을 버리기도 했으니 차량 역시 작지 않을 테고. 밴이나, 어두운 색의 SUV 차량을 중점적으로 조사해야 해."

노먼이 말을 마치자, 퍼킨스가 코너에게 시선을 돌렸다.

“좋아. 그럼 네가 피해자가 발견된 장소에서 노먼이 말한 것과 비슷한 차량이 찍혔는지 찾아봐. 그런 추적 조사는 안드로이드가 빠르니까."

코너가 곧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네. 알겠습니다, 요원님."

"그리고 노먼. 넌 다른 수집가 유형 범죄가 있는지 찾아보고. 미제사건이 있다면 그것도 같이 분석해 봐. 뭔가 연결고리를 찾을지도 모르니."

"네. 알겠습니다, 요원님."

노먼이 능글맞게 대답하자 퍼킨스가 얼굴을 구겼다. 노먼은 뒤로 훌쩍 물러나 정강이로 날아오는 퍼킨스의 구둣발을 피했다. 노먼이 웃으며 말했다.

"할 일 배정 끝났으면 나머지는 가면서 조사하자."

"그래. 어스킨 가에서 한 구 더 발견됐다며?"

노먼이 미소를 거두고 조금 착잡한 표정을 지었다.

"응. 어젯밤에. 문제는, 그 근처에서 오늘부터 행사가 있어서 시체는 바로 부검소로 옮겼대. 그래도 현장은 보존해 놓았다 했으니 들렀다 갈까 해서."

“신원은 모르고?”

“별다른 단서가 나오면 연락을 줬을 텐데 아직 그런 얘긴 없었어.”

노먼이 이마를 문지르며 덧붙였다.

“신원을 파악해야, 아니, 적어도 피해자의 동선 정도는 알아야 범인과 접촉한 방식도 찾아낼 수 있을 텐데…….”

“그래. 범행 수법으로 보아 면식범의 소행은 아닐 것 같지만 그렇다해도 겹치는 루트는 있을 테니까.”

“그럼 먼저 어스킨 가로 갔다가 부검소로 가자. 아니면, 내가 현장에 갈테니 너랑 코너가-”

노먼의 제안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퍼킨스가 고개를 저었다.

"현장은 내가 가서 살펴볼 테니 네가 저 녀석이랑 부검소로 가. 조사 끝나면 합류하는 걸로 하고."

“…코너가 현장에 직접 가보는 게 낫지 않겠어?”

은근슬쩍 떠보는 노먼의 말에 퍼킨스는 입꼬리를 올렸다.

"아니. 범인은 현장엔 거의 흔적을 남기지 않으니 둘 까진 필요없어. 네가 부검소로 데려가. 안드로이드 시체는 안드로이드가 조사하는 게 나을 거고, 게다가 피해자학은 네 전문이잖아?"

피해자학 같은 소리하네. 노먼은 그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으나 애써 삼켜냈다. 그의 파트너도 노먼 못잖게 피해자학에 빠삭하단 사실을 알고 있었으나, 그 훤히 보이는 저의에도 노먼은 더 이상 반박할 수 없었다.

"후…, 알았어. 조사 끝나면 연락해."

노먼이 결국 수긍했고 퍼킨스는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퍼킨스가 몸을 돌리자, 노먼 역시 걸음을 옮기며 코너에게 손짓했다.

"코너. 이리 와요."

코너는 노먼이 차 키를 꺼내 들어 잠금을 푸는 모습과, 본인의 차량에 올라 문을 닫는 퍼킨스의 모습을 번갈아 보았다. 자신의 의견은 묻지도 않고 멋대로 짝을 지어버린 데다 또다시 노먼이 운전하는 차를 타고 가게 된 그는, 다소 불만스런 심정이었다. 하지만 벌써부터 인간의 명령에 불복해서 괜한 갈등을 만들어낼 순 없었다. 무엇보다 퍼킨스의 말대로 자신이 직접 안드로이드 조사하는 것이 좀 더 효율적이며 논리적인 역할 배분처럼 보였기에, 코너는 어쩔 수 없이 발을 내디뎠다.

보조석에 오른 코너가 안전벨트를 매며 들리지 않게 작은 숨을 내쉬었다. 마치 인간이 내뱉는 한숨과도 같은 그 조용한 숨소리가 안드로이드의 마음을 대변했다.

카테고리
#기타

댓글 0



추천 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