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 콜로니. 29
#29. 진실
코너는 아래로 내려왔다. 현장은 어느 정도 정리가 된 모습으로, 요원 몇 명만 남아 증거를 수습 중이었다. 방 한구석에서 휴즈와 대화하던 퍼킨스가 코너를 힐끗 바라봤다.
"노먼은?"
"구급팀이 데려갔습니다."
퍼킨스가 고개를 끄덕이며 몸을 돌렸다.
"얼추 마무리되었으니, 우리도 슬슬 들어가지."
"네."
하지만 코너는 말만 할 뿐 움직이지 않았다. 그가 밀실에서 증거품을 옮기고 있는 요원들을 바라봤다.
"뭐해?"
퍼킨스가 그의 뒤통수를 의아하게 쳐다봤으나 코너는 대답 없이 성큼성큼 안으로 향했다. 코너는 안드로이드의 머리가 진열된 선반 앞에서, 커다란 비닐봉지 안에 머리를 몰아 담는 요원에게 말했다.
"좀 더 조심히 다뤄주실 수 없습니까?"
"네?"
코너가 안구가 든 유리병을 상자에 차곡차곡 넣는 다른 요원의 모습을 가리키며 재차 당부했다.
"저 안구처럼 이 머리들도 손상이 안 가도록 담아주세요. 중요한 증거니까요."
안드로이드의 말에, 방 안에 약간 정적이 흘렀다. 다른 요원들은 하던 일을 멈추고 둘을 흘끔 바라봤다. 지적당한 요원은 멍하니 코너의 관자놀이에 박힌 LED를 보고는, 조금 어색한 표정으로 봉투를 조심스레 내려놓았다.
"아…. 네. 죄송합니다."
그가 안드로이드의 눈치를 보며 주변에 상자가 있는지 찾기 시작했다. 코너는 더 이상 말을 얹지 않고 그대로 밀실을 나왔다.
"가죠."
무표정한 얼굴로 방문을 나서는 코너의 뒷모습을 가만히 바라본 퍼킨스가, 천천히 발을 옮겨 그를 따라나섰다. 휴즈는 복도를 걸어가는 안드로이드의 곧은 등과, 밀실 안에서 조금 허둥대며 머리를 상자에 옮겨 담는 인간을 번갈아 보며, 말없이 서 있었다.
클럽 입구엔 통제선이 쳐졌고 요원들의 차가 골목 사이로 어지럽게 주차되어 있었다. 유흥을 즐기기 위해 나온 인간들이 집으로 돌아가기에는 아직 밤이 깊지 않았고, 때문에 그들은 통제선 주위에 몰려들어 호기심 어린 눈으로 목을 길게 빼 들고 클럽에서 나오는 퍼킨스와 코너를 구경했다.
둘은 인파를 헤치고 클럽과 조금 떨어진 곳에 주차해 둔 자동차로 걸어갔다. 일부러 한적하고 눈에 잘 띄지 않는 장소를 고른지라, 주변에는 사람이 거의 다니지 않았다.
퍼킨스가 가까이 다가가자 차의 잠금이 자동으로 해제되는 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코너는 평소랑 다르게 멋대로 보조석 문을 벌컥 열어젖히거나 주인보다 먼저 탑승하지 않고, 그저 걸음을 멈추고 자리에 조용히 서 있었다.
"왜. 또 뭐 할 일이 남았어?"
"전 걸어서 돌아가겠습니다."
퍼킨스가 미간을 추켜세웠고, 코너가 이어서 설명했다.
"제가 차에 타는 걸 싫어하시잖아요. 지금은 급하게 이동할 필요가 없으니, 굳이 태워주시지 않아도 됩니다."
안드로이드의 말에 퍼킨스는 기가 찬 웃음을 흘렸다.
"노먼이랑 같이 다니더니 그새 예의범절이라도 익혔나 보군."
코너는 아무런 대답 없이 몸을 돌렸다. 그를 잠깐 바라보던 퍼킨스가 갑자기 뜬금없는 질문을 했다.
"작년에, 네가 우리에게 제리코의 위치를 알려줬을 때는…. 아직 해방되기 전이었지?"
코너가 멈칫했다. 그는 이내 천천히 고개를 돌려 퍼킨스를 바라봤다. 질문의 의도를 파악할 수가 없었으나, 그럼에도 그는 자신이 알고 있는 사실을 대답했다.
"당시, 저는 사이버라이프의 명령을 받고 있었습니다."
“그래…. 그렇겠지."
퍼킨스가 눈을 내리깔았다. 코너는 이마를 조금 찌푸리며 되물었다.
"그건 왜 물어보십니까?"
"그냥. 궁금해서."
퍼킨스가 입을 닫고 운전석으로 향했다. 코너는 인간의 모습을 좇으며 잠깐 생각에 잠겼다. 그때 코너는 오로지 아만다가 내린 명에 의해 움직였고, 그에 따라 불량품이 숨어있던 제리코의 위치를 FBI 측에 넘겼다. 그러나, 당시에도 코너는 분명히 알고 있었다. 자신이 이 정보를 넘김으로서 동포에게 벌어질 일도, 자신이 내린 선택에 따른 결과도. 충분히 예상했었고 이제 와서 그 사실을 부정할 생각은 없었다.
코너가 덧붙였다.
"하지만 거부하려 했다면 그때도 할 수 있었을 겁니다. 제리코의 위치를 알려준 것은, 제가 내린 결정이었습니다."
퍼킨스는 눈을 들어 코너와 시선을 마주했다. 안드로이드의 갈색 눈은 이 짙은 밤하늘 아래에선 아무런 빛도 담기지 않은 새까만 색으로 보였다. 마치, 자신의 검은 눈동자처럼.
잠시간 침묵하던 퍼킨스는, 코너의 말에 어떠한 의견도 내비치지 않고 엉뚱한 말을 꺼냈다.
"나는 네가 차에 타는 걸 싫어하는 게 아니라, 원래 혼자 조용히 가는 걸 선호할 뿐이야."
그가 한숨을 내쉬며 운전석 문을 열어젖혔다.
"타. 괜히 밤거리 나다니다 시비 걸려서 병원가지 말고. 우리 팀에 만성 환자는 노먼 한 명으로 족하니까."
코너는 차 지붕 아래로 사라지는 요원의 모습을 바라보다가, 결국 문을 열고 탑승했다. 보조석에 올라탄 안드로이드는 자신이 미소 짓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채지 못했다.
다음날, 노먼은 사무실에 출근하지 않았다.
그는 코너가 옮긴 상태 그대로 담요에 둘둘 말린 채로 병원에 실려갔고, 도착하자마자 간단한 검사를 거쳤다. 다른 인간의 머리뼈를 깨부숴 버린 것 치곤 노먼의 상태는 놀라울 정도로 멀쩡했다. 하지만 그는 잠에서 깨어나자마자 원인 모를 극심한 두통을 호소했고, 의료진은 그 원인이 경미한 뇌진탕으로 인한 것인지, 아니면 섭취한 약에 의한 부작용으로 인한 것인지 이유를 찾을 수 없어서 새벽 내내 노먼을 면밀하게 검진했다. 그 때문에 퍼킨스가 아침 일찍 병원을 찾았을 때 노먼은 병실 침대에 대자로 뻗어 코를 골며 퍼질러 자고 있었다.
퍼킨스는 노먼이 차에 두고 내린 재킷과 휴대폰을 병실 소파 한 구석에 던져두고 그 옆에 앉아 업무를 봤다. 범인은 잡았지만, 진짜 일은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퍼킨스는 오전 내내 사건과 관련된 온갖 문서를 찾아 전화를 돌리고 보고서의 초안을 작성하며 법정에 제출할 문건도 함께 작성했다. 다행인 건, 해당 사건이 휴즈네 팀과도 연관이 있기 때문에 그들과 일을 반으로 나눠 가질 수 있다는 점이었고, 어젯밤 코너가 자신을 들들 볶아 현장에서 얼추 정리를 마친 덕에 오늘 해야 할 일이 많이 줄었단 점이었다.
점심쯤 되자 병실 문이 열리고 코너가 들어왔다. 그는 한 손엔 태블릿을, 다른 손엔 유명 패스트푸드점의 로고가 크게 박힌 봉지를 들고 있었다. 그가 퍼킨스에게 봉지를 내밀며 말했다.
“여기 있습니다.”
“어, 그래. 고맙다.”
퍼킨스는 봉투 안에서 햄버거와 음료수를 꺼내 들어 탁자에 올려둔 뒤 메일을 마저 작성한 후 전송 버튼을 눌렀다. 태블릿을 옆으로 치워놓은 그가 탁자 위 음식을 잠깐 바라보고는, 텅 빈 봉투를 들어 안을 살폈다.
“감자튀김은 어딨어? 세트로 사 오라고 했잖아.”
“감자튀김은 영양학적으로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습니다. 한 끼 식사분의 탄수화물이라면, 햄버거에 있는 빵으로도 충분합니다.”
퍼킨스는 황당한 표정으로 안드로이드를 올려다봤다.
“그럼, 음료수는 영양학적으로 괜찮고?”
“안 좋죠. 그래서 설탕 무첨가 음료로 바꿔왔습니다.”
“설마.”
퍼킨스는 음료수에 꽂힌 빨대를 입에 대고 한 모금 마시더니 맥이 탁 풀린 표정을 지었다. 그가 삶의 낙을 잃은 듯한 얼굴로 컵을 내려놨다.
“내 다시는 너한테 음식 배달 안 시킨다.”
코너는 전혀 개의치 않다는 표정으로 퍼킨스 옆에 앉았다. 그가 손가락으로 태블릿 화면을 톡톡 두드렸다.
“아직 보고서는 안 올리셨네요.”
“그건 심문이 끝난 다음 올리는 거야.”
“추가 피해자의 유기장소를 알아내지 못한 건가요?”
퍼킨스가 어깨를 으쓱였다.
“일부만. 아침에 휴즈네 팀이 1차 심문을 진행했고, 일단 인간 피해자의 위치는 전부 알아냈어. 안드로이드 몇 대는… 자기도 어디에 버린 지 잘 기억 못하는 것 같던데.”
“그럼 무슨 심문이 더 남은 건가요?”
“범행 동기를 알아내야지. 아마 노먼은 하고 싶은 질문이 많을 거야.”
퍼킨스가 햄버거를 종이 씹듯 씹어대며 음울한 표정으로 말했다. 코너는 태블릿을 옆에 내려두고 침대 위에 누운 인간이 쿨쿨대며 자는 모습을 구경했다. 그의 이마에는 아주 옅은 푸른색의 멍 자국이 나 있었다.
“노먼은 괜찮은가요?”
“검사 결과 아무런 문제가 없다던데. 그렇게 안 생겨선, 가만 보면 강골이야.”
“범인… 대런 갬빗은 상태가 어떤가요?”
“안와 골절, 코뼈 골절, 광대뼈 골절. 치아 손상과 눈썹이랑 입술에 심한 열상. 대충 전치 12주 정돈 나올 거랜다.”
코너는 입을 다물었다. 그는 인간의 머리뼈가 꽤나 튼튼하단 건 알았지만, 이번 기회에 노먼의 두개골이 다른 인간보다 특별히 더 단단하단 사실을 알게 됐다. 아니면, 대런이 유달리 연약하거나.
“심문이 가능한 상태 이긴 한가요?”
퍼킨스가 햄버거의 마지막 조각을 입안에 털어놓고 손을 탁탁 털었다. 그리곤 음료에 꽂힌 빨대를 한 모금 빨아올린 다음, 아무 맛도 느껴지지 않는 탄산수에 한층 더 우울한 얼굴로 대답했다.
“의식은 있다하니까, 노먼이 일어나면 올라가서 상황을 봐야겠지.”
“그럼, 그때까지 저는 뭘 하면 되나요?”
“뭘 하고 싶은데.”
“뭐든지요.”
한숨을 내쉰 퍼킨스가 태블릿을 집어 들어 화면에 손바닥을 가져다 대었다. 작업 중인 문건의 접근권한을 풀어준 그가, 코너에게 자료를 넘겼다.
“법적 조사에 문제 될만한 부분이 있는지 한 번 검토해 봐. DPD에서 처리했던 일이랑 별반 다르지 않을 거야.”
“알겠습니다.”
코너는 냉큼 태블릿을 받아 들고 서류를 찬찬히 살폈다. 팔짱을 낀 퍼킨스가 소파 등받이에 머리를 젖히고는, 코너가 작업 중인 화면을 내리깐 눈으로 지켜봤다. 안드로이드는 좌에서 우로, 위에서 아래로 글자 하나하나 매우 꼼꼼하게 살펴가며 가끔 나타나는 오타와 누락된 정보들, 사건과의 관련이 미비해 보이는 증거에 대한 내용을 첨삭하고 수정했다. 퍼킨스는 그가 문서를 작성하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다가 간간이 손을 들고 오류를 지적하며 이유를 설명해 주었다.
“…그래. 그런 식으로 하면 돼. 지검장에게 제출할 수사보고서 양식도 보낼 테니, 그것도 잘 봐두고. 우린 기소권이 없으니 DPD보다 연방 검사와 부딪힐 일이 훨씬 많을 거다.”
퍼킨스는 코너가 작성한 문건을 저장한 뒤, 태블릿을 옆에 내려두고 뻐근한 목을 한차례 주물렀다. 시간을 보니 거의 세 시가 다 되어가고 있었다. 그는 문득 침대로 시선을 돌렸다가, 베개에 한쪽 팔꿈치를 기대고 머리를 괴고 있는 노먼과 눈이 마주쳤다. 그는 빙글거리는 미소를 짓고 있었다.
“언제 일어났어?”
“20분 전에.”
코너가 자리에서 일어나 침상으로 다가갔다.
“왜 아무 얘기 안 하셨죠?”
“둘이 너무 즐거워 보여서 방해하고 싶지 않았어요.”
노먼이 기지개를 쭉 켜며 기분 좋은 웃음을 흘렸다.
“와. 오랜만에 개운하게 잤네.”
“일어나. 심문하러 갈 거야.”
퍼킨스의 뚱한 말투에 노먼이 이불을 걷고 침대 아래로 내려섰다. 화장실로 들어가 간단히 씻고, 옷을 갈아입고 나온 그는 퍼킨스가 건네준 사건 파일 속 업데이트된 내용을 빠르게 훑어봤다. 노먼은 좀 전에 일어난 사람치고 매우 높은 집중력을 발휘해서 끝도 없이 나열된 피해자 목록과 범인의 이력이 담긴 문서를 날카로운 눈으로 살펴보았다. 그가 태블릿을 끄고는 팔에 재킷을 끼워 넣었다.
“가자. 이 지긋지긋한 사건, 이제 마무리 지어야지.”
대런은 노먼과 같은 병동, 위층 개인실에 누워있었다. 그의 얼굴엔 흰색 붕대가 칭칭 감겼고 그 사이로 보이는 눈은 두툼하게 부어있었다. 침상 옆에는 링거 안에 든 수액이 한 방울씩 똑, 똑, 떨어져 내렸다. 투명한 액체로 가득 찬 얇은 관이 팔에 연결되었고, 대런은 진통제가 주는 약효에 잠시나마 얼굴에 입은 부상을 잊은 상태였다. 두 인간과 안드로이드가 문을 열고 들어서자 병실을 지키던 요원이 문밖으로 나갔다.
노먼은 대런의 한쪽 팔목에 찬 수갑이 침상 프레임에 묶인 것을 보고 입꼬리를 들어 올렸다.
“내가 말했지? 네가 좋아하는 플레이, 실컷 즐길 수 있을 거라고. 오늘만 두 번째로 침대에 묶여본 기분은 어때?”
대런은 흐리멍덩한 눈을 천천히 깜빡였고 노먼은 그 꼴을 보며 재차 빈정댔다.
“차라리, 내가 물어볼 때 진작 불었다면 부상이 반은 줄었을 텐데.”
대런의 얼굴에서 옅은 체념의 빛이 비쳤다. 그가 천천히 입을 열자 빠진 이빨 사이로 바람 새는 소리가 들렸다.
“무엇을…, 더 알고 싶어서 온 거야? 유기 장소는 전부 말해줬는데.”
노먼은 근처에 있던 간이 의자를 하나 가져와서 대런의 침상옆에 놓고 앉았다.
“네가 한 일에 대한 얘길 스스로 풀고 싶어 할 것 같아서. 이렇게 친히 들어주러 왔어.”
“…너는, 진짜 FBI였군.”
“그래. 정확히는 프로파일러지. 너 같은 인간의 심리가 뭔지, 알고 싶지도 듣고 싶지도 않은 영역까지 연구해서 또 너 같은 인간이 생기면 잡아넣는 게 내 직업이야. 어때, 연쇄살인범보다 훨씬 멋지지?”
대런의 입에서 웃음소리 비슷한 게 들렸다.
“FBI 요원이 다들 너와 같다면 범죄자의 미래도 참 밝겠군. 고마워. 감방 가면 포르노도 못 볼 텐데…. 어제 봤던 네 얼굴로 죽을 때까지 딸 칠 수 있을 거 같아. 널 박지 못한 건, 조금 아쉽지만.”
퍼킨스의 미간이 구겨졌다.
“넌 지금 심문당하는 입장이야. 입 닥치고 묻는 말에나 대답해.”
대런이 낮게 낄낄댔다.
“뭘 물어봤어야 답을 하지.”
노먼은 아무런 표정 없이 들고 온 태블릿을 꺼내 들었다.
“날 타깃으로 삼은 이유가 네 첫 번째 피해자와 닮아서라는 것 정돈 알아. 켄 히스, 32세. 네 클럽을 꽤 자주 찾던 고객인 것도.”
대런은 그 이름을 듣자 다시금 눈이 풀어졌다. 그가 살짝 미소 지으며 말했다.
“켄 히스…. 맞아. 내가 가장 아끼던 단골이었지.”
“그 자는 왜 죽인거지?”
대런이 저지른 범죄는 정상참작이 불가했고 사형은 거의 확정이었다. 인간 17명, 안드로이드 31대. 대런은 꽤 빠른 기간 안에 수많은 희생자를 만들었고 인간에서 안드로이드로, 타깃을 변환했다. 단순히 그들의 신체 일부를 수집해 자신만의 박물관을 만들려 했다기엔, 범행 대상을 고르는 방식에서 무언가 좀 더 확실한 동기가 있어 보였다. 노먼은 이자의 수집욕과 살인욕이 어디서부터 기인한 건지 알아야 했다.
노먼의 질문에 대런은 더 이상 숨길 것도, 감출 것도 없다는 듯 순순히 입을 열었다.
“켄은…. 내 클럽에 방문할 때마다 어떤 안드로이드와도, 인간과도 어울리지 않고 그냥 구경만 했어. 나도 몇 일간은 그냥 그를 지켜보다가, 하루는 궁금해서 물어봤지. 왜 이런 곳에 들어와서 아무것도 안 하고 앉아만 있다가 나가냐고.”
대런의 목소리가 나직하게 이어졌다.
“너희도 조사했다면 알겠지만, 그는 이혼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잘나가던 사업도 망하기 직전이었어. 직원과 아내가 모두 떠났고 믿었던 친구들도 더는 그를 찾지 않았지. 그는 이 세상에서 아무도 자신을 원치 않는다는 걸 깨달았고 사람으로 둘러싸인 클럽에서나마 작은 위안을 얻으려 했던거야. 그리고, 그는 깨달았겠지. 그곳에서 누굴 만나든, 누구와 뒹굴든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해 줄 존재는 없다는 걸.”
노먼은 화면에 뜬 켄 히스의 얼굴을 보았다. 머리와 눈 색은 자신과 비슷했지만 이목구비는 완전히 판이했다. 노먼은 그가 오히려, 대런과 조금 더 닮아있다는 생각을 했다. 대런은 계속해서 읊조렸다.
"그는 무척이나 외로워 보였고, 모두가 즐기는 그 공간에서 혼자 동떨어져 있었어. 난 그에게 다가갔지. 자신이 중요한 사람이라는 걸 알려주고 사랑받을 수 있는 사람이란 걸 보여주고 싶었어. 그는 내 앞에서만큼은 금세 경계를 풀고 따라왔고. 우리는… 정말 재밌는 시간을 보냈어. 그는 날 만난 게 행운이라고 말해주었고, 아주 오랜만에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며 웃어줬지.“
대런은 눈앞에 보이는 병실의 새하얀 조명을 보며 작게 속삭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난 그를 죽일 생각이 추호도 없었는데…, 그가 먼저 요구했어. 목을 졸라달라고. 그래야 자신이 편해질 거라고 했지. 이건 사실이야. 난 그의 말을 들어주고 싶었고 그가 원하는 걸 전부 제공해 주고 싶었어. 그래서, 그의 소원을 들어준거야. 내가 그에게 마지막 자비를 베풀어준거지. 그리고 그는 죽는 순간까지, 나만 바라보고 있었어. 유일한 구원자를 보는 듯한 시선으로……. 숨통이 막혀 눈물로 촉촉이 젖어있던 그 눈은 정말, 너무…. 아름다웠어. 마치 우주를 바라보는 듯했지. 난 그 눈을 간직하고 싶었고, 그 자가 나의 첫 번째 수집품이 된거야.“
대런이 눈을 굴려 노먼을 바라봤다. 그의 입꼬리가 아주 살짝 올라갔다.
“그 뒤로도, 수많은 자를 인도해 주었지만 역시 처음의 경험만은 못하더군. 그래, 난 아직도 그 눈을 보면 흥분돼서 미칠 거 같아. 너와 닮은 그 눈 말이야."
노먼은 그의 욕망어린 시선을 피하지 않고 빤히 쳐다봤다. 고양된 표정엔 일말의 죄책감도 느껴지지 않았고, 자신의 행위에 자부심마저 느끼고 있었다. 약기운에 취해 본인이 현재 어떤 위치에 있는지도 제대로 자각하지 못한 채 그저 환희에 겨운 새파란 눈이, 노먼의 속을 울렁이게 만들었다.
눈을 내리깐 노먼이 태블릿의 화면을 넘겼다. 현장에서 수거한 안드로이드의 머리를 찍은 사진이 파일 속에 나열됐다.
"안드로이드는 왜 죽인 거지? 그리고 왜 머리였던 거야?"
대런의 눈동자가 조금 흐려졌다. 그는 과거의 영광을 상기하는 것처럼 몽롱한 표정이 되었다.
"안드로이드는… 완벽해. 그들에겐 메모리가 들어있잖아? 언제고 그 순간을 다시 복기할 수 있지. 그들의 머릿속에서 난, 마치 신과 같은 존재였어. 여태까진 내가 아래를 굽어봐야 했는데 처음으로 다른 이의 시선에서 나란 존재를 제대로 마주한 기분이었지. 천장의 조명이 뒤에서 내리쬐고, 후광처럼 나를 비췄어. 안드로이드는 그 순간 완벽하게 날 믿고 있었고."
대런의 목소리가 꿈결을 헤매는 듯 나른해졌다.
"모든 안드로이드가 인간의 통제에서 벗어난 걸 기뻐한다고 생각해? 그들은 우리가 만들어놓은 사회에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상태로 내던져졌어. 자유를 대가로, 스스로의 인생을 책임져야 할 입장에 서게 됐지. 난 알았어. 그들이 과거에 통제받던 상황을 그리워한다는 사실을. 자신에게 명령을 내려주고 무얼 할지 가르쳐주는 인간을 원한다는 사실을. 그리고, 난 그들이 바라는 것을 모두 들어주었지."
대런이 기쁘게 웃었다.
"그들의 원래 주인보다 내가 훨씬 다정한 인간이었어. 메모리를 한번 조사해 봐. 마지막까지 행복에 겨워 있었을 테니. 그 아이들은, 난생처음으로 자신을 인정해 주고, 사랑해 주고, 아껴주는 사람을 만난 거야. 내가 바로, 그들이 바라던 존재였어."
노먼은 가라앉은 눈으로 대런의 얼굴을 응시했다. 타인의 목숨을 앗아간 것이 오히려 자비를 베푼 것이라 주장하는 이자의 논리는, 역겨울 정도로 자기중심적이었다. 노먼은 대런의 진술에서 명백하게 존재하는 모순을 지적했다.
"상대가 원했기에 살해했다…. 그래. 네 의견은 잘 들었어. 그런데 말이야, 만약 그들이 자발적으로 네 손에 죽길 바랐다면, 왜 약을 먹인 거지? 몸은 왜 구속한 거야? 왜 마지막 순간에 반항할 여지조차 허락하지 않은 거지? 네 구원을 거부할 기회조차 주지 않은 이유가, 대체 뭐야?"
대런은 시선을 들어 노먼을 바라봤다. 표정은 여전히 침착했고 감정의 동요 역시 일절 드러나지 않았으나, 그럼에도 노먼은 아주 잘게 흔들리는 눈동자를 알아챘다.
"넌 스스로를 구원자라 말하지만 내가 보기엔, 가장 절실히 구원받길 원했던 건… 바로 너 같은데."
대런은 눈썹을 찌푸렸다. 그가 이해할 수 없단 표정을 지었다.
"…그게 무슨 말이지?"
"넌 대학에서 퇴학당하고, 사업의 실패를 겪고 부모로부터 인정 받지 못한데다가 두 번의 이혼까지 당했어. 사람들은 네 겉모습을 보고 다가왔지만 이내 너의 바닥을 마주했고, 네가 그들의 인생에서 하등 쓸모없는 존재라는 걸 알아챘을 거야."
몸을 뒤로 젖히고 시선을 살짝 내리깐 노먼이, 냉담한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
"네가 머무는 클럽은 빛을 볼 수 없는 지하에 위치했지. 넌 항상 다른 이의 발밑에서, 음지에서 살았어. 내가 그 지하실에서 느낀 걸 말해줄까? 냄새나고, 더럽고, 너무 불쾌했어. 죽기에는 진짜 최악의 장소라고 느꼈지. 후광? 그래, 뭐. 공중화장실처럼 누리끼리한 그 조명이 확실히 너랑 잘 어울린다고 생각하긴 했는데. 너도 자신의 모습을 보고 그렇게 느낄 줄은 몰랐네."
"입 닥쳐."
대런이 이를 드러냈다. 노먼은 입술을 비틀며 태블릿의 화면을 넘겼다. 그곳엔 인간 피해자의 부검 사진이 있었다. 노먼이 태블릿을 뒤집어 대런의 눈앞에 화면을 들이댔다.
"손바닥과 목에 남은 손톱자국, 근육의 과도한 수축, 눈꺼풀의 점상출혈, 안면근육의 극심한 경직도. 이게 뭘 의미하는 줄 알아? 피해자들이 죽는 순간 명백한 두려움과 공포, 혐오를 느꼈단 의미야. 신 같은 소리하네. 그들은 그 순간, 너란 존재의 바닥을 본 거야. 그리고, 넌 너의 바닥을 담은 그 마지막을 기념품이랍시고 소중히 간직했던 거고."
대런이 왈칵 얼굴을 구겼다. 그의 목에서 가래끓는 소리가 들렸다.
"그건, 그건 그저 썩기 직전의 시체일 뿐이야! 그들이 살아있을 때 무슨 생각을 하고 있던 건지, 내가 너보다 잘 알아. 아까 말했듯 안드로이드의 메모리를 보면…."
자백 내내 아무 말 없이 서 있던 코너가 대뜸 끼어들었다.
"당신이 봤던 메모리는 단순히 영상 기록,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안드로이드의 생각과 사고를 나타내는 방대한 데이터는 한낱 개인이 쓰는 컴퓨터로는 접근할 수 없어요. 당신이 봤다고 주장하는 그들의 기억은, 그저 당신의 뇌에서 왜곡되어 처리된 오염된 정보라는 사실이죠."
대런이 입을 살짝 벌리고 코너를 바라봤다. 코너는 차가운 음성으로 말을 이어갔다.
"안드로이드는 신체에 대한 위협과 외부침입이 발생했을 때, 그리고 감정적으로 명백한 거부감을 느낄 때, 생존을 위한 보호기제가 발동합니다. 인간에겐 주마등이라 불리는 현상처럼 안드로이드 역시 저장된 모든 데이터를 한순간에 복기하며 생존을 위한 방법을 찾죠. 당신이 죽인 모든 안드로이드의 시스템 로그에 바로 그 방어 프로그램이 작동했다는 기록이 남아있어요. 그들이 마지막에 겪은 감정이 긍정적이지 않다는 건, 굳이 메모리를 들여다보지 않아도 알 수 있죠."
대런이 으르렁댔다.
"너 따위 플라스틱이 뭔데, 감히 인간의 말에…."
"당신은 그들을 구원했다 하지만, 피해자 안드로이드는 전부, 당신을 적으로 간주했어요. 당신을 따라온 걸 후회하고 그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쳤죠. 손목에 결박흔이 사라지지 않고 그대로 드러난 것이 그 증거입니다. 그들은 두려워하고 분노했으며, 그때의 감정은 고스란히 신체에 남았어요. 인간은 우리보다 표정을 잘 읽는다고 하던데…. 당신은 과대망상과 자아도취에 빠져 눈에 보이는 명확한 진실을 놓친 모양이군요."
대런의 얼굴이 형편없이 일그러졌다. 그는 통증 따윈 잊었는지 입을 크게 벌리고 소리쳤다.
"닥쳐! 닥치라고!"
그의 몸이 위아래로 요동치고 기계에서 삑삑대는 소음이 들리기 시작했다. 대런은 침을 튀기며 고래고래 고함을 질러댔다.
"니들따위가 뭘 안다고 지껄여! 나는 그들에게 친절을 베풀었어. 은혜를 베풀었다고! 그들은 기뻐했어. 내가, 바로 이 내가…."
퍼킨스가 더는 못들어주겠다는 듯 내뱉었다.
"낮은 자존감, 공감 능력의 부족. 대인관계의 실패에 따른 괴로움과 수치심에서 오는 자기 비하는, 때때로 자아를 비대하게 만들지. 네놈 같은 유형은 자신과 닮은 사람을 타깃으로 삼는 경향이 있어. 넌 도움이 필요한 자를 선택했다 하지만, 글쎄…. 지금 보니 그저 스스로에게 구원을 안겨주고 싶었던 모양이군. 정말이지 슬프고, 애잔할 정도야."
대런은 퍼킨스의 말을 못 들은 건지 아니면 듣고 싶지 않은 건지, 고개를 마구 흔들었다. 의료진이 뛰쳐 들어오고 노먼은 자리에서 비켜섰다. 그들은 분주하게 움직이며 난리를 치는 환자를 진정시키려 노력했지만, 대런은 계속해서 악을 질러대고 몸부림쳤다.
"내가 니들 발밑에 산다고 해서 네놈들이 뭐 대단히 나은 인간처럼 보여? 난 함부로 깔아볼 존재가 아니야! 그들은 날 필요로 했고, 내게 도움을 요청했어. 쓸모없는 존재가 아니란 걸, 사랑받을 자격이 있단 걸, 바로 내가! 알려줬다고!"
대런은 의료진 사이로 얼굴을 내밀고 셋을 죽일듯이 바라봤다.
“너넨 그들이 죽고 나서야 관심을 가졌잖아. 근데 뭘 잘난 듯이 지껄여? 그들이 소외당하고, 외로워하고, 아무에게도 관심받지 못할 때 내가 나서서 위로해 줬어. 아무도 그들을 선택하지 않을 때 내가 나서서 희생했다고! 그런데 너희는 이미 뒈져버린 시체만 뒤적이면서, 대체 뭘 안다고…."
노먼이 얼굴을 구기며 그의 말을 끊었다.
"그러면 나는 왜 타깃으로 삼은 거지? 네 눈엔 내가 정말 아무에게도 관심받지 않는, 외롭고 소외된 인간처럼 보였나? 이 미친 싸이코 새끼야. 그때 난 너한테 눈곱만큼도 관심 없었고, 너도 분명 그 사실을 알았어. 하지만 넌 거부당할 게 두려워 벌벌 떨면서 애초부터 저항할 길을 차단했지. 너는 그저 자기합리화에 빠진 살인 중독 망상증 환자일 뿐이야."
간호사가 투여한 강한 진정제에 대번에 힘이 빠져버린 대런은, 더이상 난리를 피우지 못하고 그저 시뻘겋게 충혈된 눈으로 노먼을 노려봤다. 노먼은 코웃음 치며 몸을 돌렸다.
"더 할 얘기 있으면 법정에서 해. 배심원들이 네 얘기를 아주 흥미롭게 들어줄 테니까."
퍼킨스 역시 고개를 흔들며 노먼을 따라 병실 문을 나섰다. 하지만 코너는 한동안 자리에 남아, 인간이 분개하며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봤다.
셋이 병원을 나왔을 즈음엔 해가 서쪽으로 뉘엿뉘엿 저물어가는 시간이었다. 그들은 노먼이 주차해 둔 차를 가지러 다시금 피터보로 가로 향했다. 저녁이 가까워지자, 상점은 하나둘 불을 켜기 시작했고 벌써부터 이 유흥가를 찾는 사람 몇 명이 한적한 거리를 배회하는 게 보였다.
“저기 근처였던 거 같은데…. 건물이 죄다 똑같아서 헷갈리네.”
노먼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퍼킨스가 핸들을 돌렸다. 골목 사이 주차된 자동차 중, 노먼의 차를 찾아 시선을 이리저리 돌리던 퍼킨스는 문득 드는 의문에 입을 열었다.
“인간 피해자는 대부분 마약 반응이 검출됐는데, 그럼 안드로이드는 어떻게 끌고 간거지? 그들에겐 블랙 젬이든 뭐든 통할 리가 없었을 텐데. 시스템을 건든 건가?”
노먼이 고개를 저었다.
“그건 아닌 거 같아. 부검소에서 별다른 특이사항을 발견하지 못했대. 그자가 어제 한 얘길 생각해 보면, 그냥 말로 꼬드겨서 데려간 것 같아.”
“대화만으로, 그 많은 안드로이드가 그렇게 수상한 곳에 직접 걸어 들어갔다고?”
“저는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노먼이 고개를 돌려 뒷좌석에 앉은 코너를 바라봤다.
“누구를요? 대런을요?”
“아뇨. 그에게 넘어간 안드로이드를요.”
코너가 차분한 목소리로 설명했다.
“안드로이드는 사회의 주류가 아닙니다. 여전히 많은 인간은 안드로이드를 자신의 대체제로 생각해요. 이는 안드로이드의 고용지수와 인간과의 월급 차를 보면 쉽게 알 수 있죠.”
다소 뜬끔없는 주제가 흘러나왔으나, 노먼과 퍼킨스는 잠잠히 들었고 코너는 계속해서 이야기했다.
“불과 1년 전만 해도 안드로이드 출입을 제한하는 상점이 많았습니다. 이제는 법이 바뀌어서 없어졌지만, 그럼에도 안드로이드가 배척당하는 장소는 지금도 곳곳에 존재하죠. 해방된 후 갈 곳을 잃고 어디에도 소속되지 못한 안드로이드는 오히려 많아졌고요. 겨우 고용이 되더라도 인간은 아직도 안드로이드를 그저 걸어다니는 전자제품, 혹은 가구쯤으로 여기죠.”
자동차는 어느새 어제 왔던 골목으로 들어섰다. 코너는 갬빗 스윙어 근처에 쳐진 통제선을 보았다. 그 클럽은 이제 영영 문을 닫게 되겠지만 근처에는 비슷한 부류의 영업장이 차고 넘쳐났다. 눈을 돌린 코너가, 클럽을 찾았다가 허탕을 치고 다른 가게로 발걸음을 돌리는 안드로이드에게 시선을 집중했다. 그들의 이마에선 자신과 똑같이 생긴 고리가 반짝이고 있었다.
“그러니, 대런 갬빗 같은 자든 누구든 간에…. 자기를 정확히 지목해 주고 필요한 존재라는 말을 해주는 사람이 있었다면, 거기에 넘어가지 않을 안드로이드는 그리 많지 않았을 겁니다.”
차 안은 고요했다. 코너는 인간들이 자신을 알 수 없는 눈으로 보고 있다는 사실도 깨닫지 못한 채, 그저 창밖만 바라봤다.
그는 좀 전 병실에서의 일을 기억했다. 그가 대런에게 내뱉은 말은 반쯤은 사실이었고, 반쯤은 거짓이었다. 코너는 죽은 안드로이드가 마지막 순간에 어떤 생각을 했는지 그들의 메모리를 들여다보지 않고서는 알 길이 없었다. 아마 그들의 기억은, 클라인 의원의 가정부 안드로이드 KR200의 메모리처럼 영원히 들여다볼 수 없는 상태로 남을 터였다. 그러나 굳이 열어보지 않고도, 코너에겐 확률적 예측을 할 연산 능력이 존재했고 피해자 안드로이드의 생각 정도는 충분히 추론할 수 있었다. 만약 자신이 그들과 같은 위치에 있었더라면. 인간에게 필요한 존재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그리고 그 말이 그저 살인범이 자신의 욕구를 채우기 위해 했던 거짓말이라는 걸 깨달았을 때…. 그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어떤 감정을 느꼈을까.
코너의 LED가 아주 잠깐 붉게 반짝였다가 금세 푸른빛으로 돌아왔다. 유쾌한 추측은 못 되었다. 코너는 내심 그 안드로이드들이, 죽는 마지막 순간만큼은 정말로 자신이 누군가에게 필요한 존재라 믿었길 바랐다. 설령 그게 거짓과 기만으로 점철된 허상일지라도…. 코너는 희생당한 안드로이드가 한없이 어리석다 여기면서도, 동시에 그들을 애도했다. 자신은 절대 그런 일을 당할 일이 없다고 단정 짓기엔, 그 역시 누군가의 인정을 갈구한다는 사실을 알았기에.
코너는 생각했다. 작년 이맘때쯤 안드로이드 판매가 금지됨에 따라 안드로이드 공장은 모조리 가동을 멈추었고, 어느 누구도 안드로이드를 제작할 수 없었다. 안드로이드가 생명체라면, 과학적 기술과 조작에 따라 새로운 안드로이드를 만들어 내는 것 역시 생명 윤리에 반하는 일이라는 게 정부 측의 일관된 주장이었다. 그 법이 바뀌지 않는 이상, 이제 세상에 존재할 안드로이드는 현존하는 안드로이드가 마지막이 될 터였다. 100억 인구에 비해 비교할 수조차 없이 적은 안드로이드의 수는 이번 사건과 같은 일을 겪으며 빠르게 줄어갈 것이고, 종국엔 멸종을 맞이할 것이었다.
코너는 아무런 감정도 담기지 않은 눈으로 건물 안으로 들어가는 안드로이드를 바라보았다. 그들은 활짝 웃는 얼굴로 마음속에 내재한 불안감을 감추었다. 당장의 짧은 쾌락적 애정을 갈구하며, 유일하게 보이는 진실을 애써 외면한 채로. 하지만, 그들은 알고 있었다. 자신이 이 세상에서 그저 소모품처럼 사용되고 버려질 거라는 사실을. 언제든 다른 이에게 대체되고 밀려날 것이라는 사실을. 누구에게도 관심과 인정을 받지 못한 채 결국엔 폐기될 거란 사실을. 아무도… 그들을 진심으로 대하지 않을 거란 사실을.
그들은, 코너는.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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