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 콜로니. 30
ACTIII
#30. 망자의 날
“트릭 오어 트릿!”
맑은 초인종 소리가 집 안을 울리고, 문을 열어젖힌 마커스의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 건 눈부시도록 밝은 아침 햇살이었다. 시선을 내리니 허리쯤 오는 아이가 대뜸 호박모양의 플라스틱 바구니를 앞으로 쭉 내밀었다. 남매로 보이는 두 아이는 각자 마녀와 마법사로 분장했고, 마커스는 살짝 당황했다.
“어, 이런…. 어쩌지? 우리 집에 간식은 없는데.”
안드로이드의 말에 아이들의 낯빛이 빠르게 실망으로 물들었다. 남자아이가 입술을 삐죽이며 웅얼댔다.
“할로윈인데 왜 간식이 없어요?”
“제이미! 아저씨한테 간식 맡겨놨어? 예의 있게 굴어!”
옆에 선 여자아이가 다소 큰 목소리로 속삭였다. 어른의 말투를 그대로 흉내 내어 동생을 혼내는 모습에 마커스는 조금 웃음이 나왔다.
“미안해, 얘들아. 괜찮으면 저녁에 다시 오지 않을래? 그 전에 사다 놓을 테니….”
소녀는 조금 고민하다가 머리를 가로저었다.
“아빠가 일찍 들어오라 해서요. 괜찮아요! 다른 집도 많이 있으니까요.”
그리곤 한층 쾌활한 목소리로 인사했다.
“감사합니다! 안녕히 계세요!”
소년도 누나를 따라 꾸벅 인사했지만, 축 늘어진 어깨는 아이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드러냈다. 두 아이가 돌아서려 하는데 집 안에서 한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기다려.”
마커스가 시야를 돌려 뒤에 선 노스를 마주했다. 노스가 현관문 밖으로 상체를 쭉 빼내어 소년의 바구니 안에 초콜릿과 사탕을 집어넣었다.
“나도 안 먹어봐서 맛은 모르지만, 포장지에 적힌 성분표를 보면 나름 대중적인 조합이긴 하더라고. 딱 너희 대 연령층의 구매율도 높은 상품이고. 그러니, 아마 맛있을 거야.”
아이가 입을 헤벌렸다. 안드로이드의 말 중 가장 마지막 단어만 겨우 알아들은 소년이 앞으로 성큼 다가와 노스의 다리를 껴안고 초롱초롱한 눈으로 외쳤다.
“누나! 고맙습니다!”
“감사해요, 언니!”
해맑은 아이의 인사에 노스는 기분 좋은 미소를 지으며 둘의 머리를 차례로 쓰다듬어 주었다. 그는 아이들이 신이 난 발걸음으로 다른 집으로 뛰어가는 모습을 바라보다가 다시 안으로 들어왔다. 마커스가 문을 닫으며 불만스럽게 투덜댔다.
“왜 난 아저씨고 넌 언니야?”
“예쁘면 원래 다 언니야.”
노스의 너스레에 마커스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웃었다.
“그나저나… ‘성분표'? ’대중적인 조합‘? 세상에. 나도 기계지만, 그야말로 정말 기계 같은 단어 선택이었어.”
“시끄러워. 할로윈 간식도 준비해 놓지 않은 주제에 말이 많아.”
마커스가 노스를 따라 거실로 들어가며 물었다.
“그러고 보니 그건 어디서 난 거야? 설마, 정말 할로윈 때문에 사 온 거야?”
노스가 어깨를 으쓱이며 창밖으로 시선을 던졌다. 라파예트 도로 너머로 공원이 하나 보였고, 벤치에 앉아 수다를 떠는 어른 몇 명과, 그의 아이들이 놀이터에서 맘껏 뛰어노는 중이었다. 노스의 눈동자에 애정이 서렸다.
“어제 다른 꼬마한테 받았어. 쟤들만 한 인간 아이였는데 아장아장 걸어와서 내 손에 간식을 한 웅큼 쥐여주더라니까. 진짜 귀엽지 않아?”
마커스는 노스의 이런 면모는 처음 본다는 듯 놀란 눈빛을 했다.
“애가 갖고 싶은 거야?”
그 말에 노스가 눈썹을 한껏 치켜세웠다.
“그냥 귀엽다고만 했지, 누가 갖고 싶대? 애를 키우기엔 난 책임감도 없고 즐기고 싶은 것도 너무 많아. 100년쯤 뒤면 또 모를까.”
노스가 거실 소파에 풀썩 주저앉아 TV를 틀었고, 마커스는 그런 노스를 바라보며 조용히 미소 지었다.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안드로이드 중 가장 책임감이 높은 자를 꼽으라면 마커스는 일말의 주저 없이 노스를 선택할 것이었다. 노스는 제리코의 그 누구보다 자유를 향한 갈망이 강했으며 그랬기에 그 누구보다 높은 책임감을 가진 이였다.
마커스는 자신과 가장 가까운 동료 옆에 나란히 앉아 소파에 등을 기대었다. 채광이 좋은 거실, 깊숙한 구석까지 비춰들어 오는 햇볕이 가구를 따뜻한 색으로 물들였고, 환기를 위해 활짝 열어놓은 창문 너머로 한껏 차가워진 아침 공기가 건조한 낙엽 냄새와 함께 실내로 밀려 들어왔다. 정원에 식재된 나무에 둥지를 트고 눌러앉은 찌르레기의 울음소리는 괘종시계의 째깍거림과 묘한 조화를 이루는 듯했다. 마커스는 눈을 돌려 자신이 앉은 붉은 소파와, 바닥에 넓게 깔린 세심한 패턴의 주홍빛 러그가 공간에 활기찬 색채를 더해주는 것을 애착 어린 시선으로 바라봤다. 천장에 매달린 거대한 바다생물의 뼈는 마치 이곳을 몇백 년간 유영하는 모습이어서 어쩌면 그만큼이나 오래된 집의 역사를 상징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18세기에 만들어진 고택을 개조한 집은 몇백 년에 걸친 다양한 양식과 기술이 혼합된 건축물이었고, 마커스는 원주인의 예술적 감각이 더해진 이곳을, 자신의 유산으로 물려받은 이곳을 정말 좋아했다.
"볼 게 너무 없네."
노스가 손가락을 들어 원격으로 채널을 돌리며 투덜거렸다. 한참동안 손짓만 하던 그는 결국엔 뉴스 채널을 찾아 틀었다. 백인 남성 앵커가 진중한 목소리와 명확한 발음으로 소식을 전했다.
[-UN 의장, 더글라스 콘웰이 지난달 비공식 행사에서 사무총장에게 한 발언으로 구설수에 휩싸였습니다. 그는 미국의 사례를 따라 모든 회원국이 안드로이드 보호 법령에 대한 실행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논란이 불거지자 콘웰 의장은 공식 석상에 나와 해당 발언은 사실무근이며 안드로이드 법령은 각 국가의 정치 문화적 요소에 맡겨야 한다며 해명했습니다. 하지만 회원국은 의장의 평소 미국 친화적인 행동과 발언을 문제 삼으며-]
노스는 심각한 표정으로 뉴스에 집중했으나 마커스는 멍한 얼굴로 전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저 앵커는 꽤 오랫동안 같은 방송사에서 브리핑을 진행했고, 마커스는 아침마다 칼의 식사를 차려주며 거실에서 항상 저 목소리를 들었었다. 자연스레 그와 관련된 기억이 속속들이 떠올랐고 기억은 이내 작년 이맘때쯤에서 멈추었다. 마커스가 거실 한구석에 놓인 피아노를 연주했을 때 칼은 식탁에 앉아 눈을 감고 연주를 들었고 그가 서재에서 책을 읽을 때 칼도 근처에서 다른 책을 뽑아와 읽었다. 둘은 창가에 앉아 오늘과 똑같은 햇빛 아래에서 체스를 두었으며 칼은 마커스에게 붓을 넘기고 캔버스에 그림을 그려보라고도 했다. 칼은 노인 특유의 관록과 명석함으로 마커스에게 좀 더 깊은 사고를 할 수 있는 창구가 되어주었고, 언제나 마커스를 그와 같은 인간처럼, 하나의 생명체처럼, 마치 제 아들처럼, 깊이 존중하고 아껴주었다.
그렇기에 마커스는 이곳을 떠난 직후부터 한순간도 빠짐없이 칼의 간병인으로 살았던 순간을 그리워했다. 그가 시위 후 다시 칼에게로 돌아가려 한 것도 같은 이유에서였다. 칼의 곁에 남아 그를 돌보고 옛 주인의 마지막을 함께 하는 것이 자신이 만들어진 이유였고, 그는 진심으로 그리하고 싶었다. 하지만 이미 마커스에겐 책임져야 할 수만의 안드로이드가 있었고 모든 안드로이드의 권리를 대변하는 입장에 선다는 것은 말처럼 매력적인 일도, 달가운 일도 아니었다. 그는 개발된 직후부터 10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스스로를 간병인 안드로이드라 정의해왔는데, 그 생각이 고작 며칠 만에 제리코의 리더 자리에 앉게 된 것으로 바뀔 리가 없었다. 그러니, 칼의 임종을 지키지 못한 마커스가 모든 걸 다 때려치우고 제리코를 떠나겠다 결심한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인간의 시간은 안드로이드의 시간보다 빠르게 흘러갔고 그들에겐 언제나 마지막 순간이란게 존재했다. 고목처럼 딱딱해진 손을 잡으며 마커스는 오랫동안 눈물을 흘렸다. 칼의 얼굴 위로 흰 천이 덮이고 그가 들것에 실려 집 문을 나설 때도, 칼의 변호사가 이 집을 마커스에게 넘기겠다는 유언장을 읽어주었을 때도, 마커스는 그저 하염없이 칼의 그림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렇게 고장 난 안드로이드처럼 며칠간 움직임을 멈춘 채 멍하니 있던 마커스를 일으켜 세운 것은 노스였다. 그리고, 그가 리더를 그만두겠다고 했을 때 잡아 준 것 역시, 노스였다. 마커스는 그때 자신을 설득하고 막아 세운 그에게 고마워해야 할지 원망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당시 노스는, 그들을 여기까지 이끌어온 마커스가 떠나는 순간 제리코는 단번에 무너질 텐데 어떻게 이딴 식으로 무책임하게 구냐는 말로 마커스를 매섭게 다그쳤다. 마커스는 노스의 협박어린 회유에 어쩔 수 없이 남게되었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드는 생각은, 어차피 자신이 없더라도 노스로 인해 제리코는 유지되고 세상은 바뀌었을 거라는 점이었다.
그렇기에 도리어 마커스는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다. 그가 앞으로 나가 싸울 때 노스는 뒤에서 누구보다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주었고 그를 받치는 버팀목이 되어주었다. 노스가 계속 그 옆에 있을 거란 걸 안 이상 마커스는 등에 지워진 막중한 책임감이 조금은 가벼워지는 것을 느꼈다. 다만, 최근 들어 그의 마음을 복잡하게 만드는 게 있다면 그건….
마커스는 TV 화면으로 시선을 돌렸다. 뉴스에선 이제 다른 소식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어젯밤 디트로이트 검찰에 송치된 대런 갬빗은 피터보로 가에 위치한 유명 클럽의 소유주로, 자신의 사업장을 찾은 고객을 대상으로 범행을 벌였습니다. 반년간 수십 대의 안드로이드를 살해하고 무려 17명의 사람들까지 그 손에 안타까운 생명을 잃은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피해자 대다수가 이삼십 대 청년으로, 유가족은 법원 앞에 모여 범인의 엄벌을 촉구하며 시위를 벌이는 모습입니다. 조스 더글라스 기자 연결하겠습니다.]
마커스는 굳어진 얼굴로 클럽의 입구를 바라봤다. 굳게 닫힌 검은 철문 앞에는 시민이 가져다 놓은 꽃과 피해자들의 사진이 놓여있었다. 검찰에서 일하는 안드로이드에게 들은바, 저 자에게 희생된 안드로이드의 수는 자그마치 서른 한 대였다. 언론이 안드로이드 피해자보다 인간 피해자를 더욱 조명하는 듯한 방송을 하는 것도, 유가족이 있을 리가 없는 피해자 안드로이드가 이름도, 얼굴도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채 그대로 폐기될 거란 사실도 마커스의 신경을 긁었지만, 그를 가장 답답하게 하는 것은 아직도 그의 동포들이 해방 전과 다를 바 없이 인간의 손에 끔찍하게 희생되고 일개 수집품으로써 전시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불과 얼마 전까지 제리코와 완전히 같은 편에 섰다고 굳게 믿었던 페이지 클라인 의원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는 조금 예민하고, 신경질적이었으며, 다소 권위적이었으나 마커스는 그가 진심으로 안드로이드의 권익을 위해 싸운다고 믿었다. 주요 정책 논의를 위해 클라인의 집을 방문할 때마다 마커스가 본 것은, 가정부 안드로이드에게 몹시 다정하게 대하는 클라인의 모습이었다. 마치 자신의 옛 주인 칼처럼…. 하지만 클라인이 KR200을 죽인 방식에 대한 얘기를 전해 들은 후부터 마커스는 좀처럼 인간을 믿을 수가 없게 되었다.
안드로이드가 잠깐 생각에 잠길 동안 뉴스는 계속해서 진행됐고 노스가 혀를 쯧 차는 소리에 마커스가 눈을 들어 TV 화면을 바라봤다.
[-다음 소식 전해드립니다. 지난주에 발생한 대학생 실종 사건의 유력한 용의자가 오늘 아침 구속되었습니다. 수사당국은 아직 자세한 사항을 밝히고 있지 않으나, 제보에 따르면 구속된 용의자가 TW400 안드로이드란 사실을 입수했습니다. 캐나다 영사관은 공식 입장을 내놓지 않았지만 이번 사건이 가져올 반향을 생각하면 사안은 결코 가볍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인간을 대상으로 한 안드로이드 범죄가 갈수록 증가하는 지금, 얼마 전 당선된 하원의원 윌러드 깁슨은 개정된 법안이 가져온 사회질서 혼란에 시민 개개인이 경각심을 갖고—]
노스가 인상을 잔뜩 구겼다.
“안드로이드 서른 대 죽여버린 미친 범죄자가 인간일 땐, 그 작자한테만 죄를 전가하면서 용의자가 안드로이드일 때만 온갖 호들갑은 다 떨어대고 있네.”
마커스는 이마를 문지르며 무거운 표정으로 화면을 바라봤다. 똑같은 TW400 모델이지만 이 사건의 용의자가 아닌, 명백히 다른 안드로이드의 얼굴이 ‘또다시’ 자료 사진으로 제공되고 있었다. 인간 범죄자와는 달리 안드로이드 범죄자의 신상은 언제나 개별이 아닌 모델로써, 종족으로써 통칭하여 특정됐다. 마커스가 한숨을 내쉬며 물었다.
“제리코 내에 TW400 모델이 있나?”
“구성원 목록은 조쉬가 관리하고 있지만, 내 기억상으론 아마 두 세대 정도는 있을 거야.”
“언론에 얼굴 좀 비쳐야겠군. 의료지원이나 지역 봉사로든, 뭐든.”
"그래야겠지."
마커스는 턱을 매만지다가 퍼뜩 노스를 바라봤다.
"맞아. 나디아랑은 연락됐어?"
노스는 침울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마커스는 골이 아파졌지만 의연한 목소리로 노스를 위로했다.
"너무 마음 쓰지 마. 모든 안드로이드가 제리코와 뜻을 같이하는 건 아니니까. 나름의 방식대로 자신이 있는 곳에서 싸울 거라 믿어."
"그 방식이 잘못됐으니까 그렇지."
노스의 툴툴거림에 마커스는 무언가 할 말을 찾으려 노력했으나, 생각을 정리하지 못하고 그냥 입을 닫아버렸다. 예전이었다면 그 역시 나디아의 방식은 들을 가치도 없는 것으로 여겼을 것이다. 하지만 1년이 지난 지금. 마커스는 자신이 그렇게나 확신했던 신념이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하는 것을 느꼈고, 이제는 어떤 입장과 태도를 취해야 할지 스스로도 점점 알 수가 없었다.
TV 화면이 전환되고 수갑을 찬 TW400 안드로이드가 인간의 손에 붙들려 건물 안으로 들어가는 모습이 비쳤다. 마커스는 매우 익숙한 한 인간의 얼굴과 역시 익숙한 또 다른 안드로이드의 얼굴을 발견하곤 눈썹을 살짝 찌푸렸다.
“저자가 왜 저기에….”
“응?”
노스가 마커스의 시선을 따라 눈을 돌렸으나 어느새 화면은 빠르게 바뀌어 앵커의 모습만 비췄다. 마커스가 고개를 젓곤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무것도 아냐. 조쉬에게 연락하고 올 테니 잠시만 기다려. 시간이 좀 걸릴지도 몰라.”
노스가 덩달아 일어나며 말했다.
“그래? 그럼 나도 나갔다 올래.”
“어디 가게?”
“다른 꼬마 손님이 찾아 올 지도 모르니까. 그 전에 간식 좀 사다 놔야지.”
마커스가 헛웃음을 흘리곤 어쩔 수 없다는 듯 말했다.
“너무 많이 사 오진 마. 오늘 다 못 나눠주면 내년 할로윈까지 그대로 남아 있을 테니.”
노스가 손을 휘적이며 거실을 나섰고, 마커스는 이어지는 앵커의 목소리에 다시금 시선을 고정했다.
[-실종자는 18세 여성 제시 캘버리로, 지난주 월요일 수업을 마친 후 연락이 두절되었습니다. 사진 속 여성을 목격하거나 행방을 아는 분은 아래에 적힌 핫라인으로 연락해 주시길 바랍니다. 제시의 가족이 시민 여러분의 제보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습니다.]
마커스는 저 여자가 살아있을 확률이 얼마나 될까 계산해 보았다. 비록 수사 로봇은 아니지만, 이런 식으로 사라진 실종자가 무사한 경우는 그리 높지 않다는 것 정돈 알았다. 그는 제시가 살아있길 바랐지만 그게 저 여자의 목숨을 가엾게 여겨서인지, 아니면 이번 사건으로 인해 제리코가 애써 끌어올린 안드로이드의 권리가 흔들리는 상황을 두려워해서인지는 그로서도 명확히 말할 수 없었다.
댕, 하는 소리와 함께 바늘이 오전 10시를 가리켰다. 마커스는 창밖으로 눈길을 돌렸다. 아까 본 두 남매가 잔뜩 신이 나서 호박 바구니를 앞뒤로 흔들며 공원 벤치에 앉은 부모에게 뛰어가는 게 보였다. 그는 문득, 머릿속으로 저 아이들의 미래를 그려보았다. 저들이 자라나 성인이 되고 제 부모처럼 가정을 꾸리며 칼과 같이 나이가 들어 죽게 될 즈음, 안드로이드의 위치는 어디쯤에 있을까. 안드로이드가 과연 이 땅에 남아있긴 할까? 하지만 마커스는 더 이상 생각을 전개하지 않고 머리를 흔들어 상념을 떨쳐냈다. 할로윈이라는 특수성 탓일까 자신이 오늘따라 인간의, 안드로이드의 죽음에 대해 너무 깊이 생각하고 있음을 깨달았고 이런 상상은 그를 더욱더 우울하게 만들었다. 실내는 여전히 햇살로 밝았고 평화로운 공기가 집 안 가득 감돌았으나 마커스의 기분은 어느새 잔뜩 가라앉아 있었다. 그는 깊이 한숨을 토하며 창에서 시선을 떼었다.
앵커의 짤막한 브리핑이 지나간 후 용의자 안드로이드가 들어간 빌딩이 화면에 비췄다. 콘크리트로 지어진 새하얀 외벽 건물 입구엔 ‘V. 맥나마라 연방 빌딩’이라고 적혔고, 갈색 머리의 회색 정장을 입은 남자가 기자가 들이대는 카메라와 마이크를 무시한 채 빠르게 안으로 걸어 들어가는 게 보였다. 마커스는 아까 봤던 안드로이드의 모습을 찾았으나 끝끝내 발견하지 못하고 결국 TV를 꺼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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