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 콜로니. 31
#31. 위협
“요원님! 사건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한 마디만 해주세요!”
“CNB기자입니다! 방금 들어간 안드로이드가 제시를 납치한 범인 맞나요? 제시는 어디있죠? 무사한가요? 영사님은 현재 어떤 상태인지 말씀 좀 해주세요!”
“안드로이드의 권리를 인정하지 않는 국가에 대한 테러라 보는 시각이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번 사건으로 캐나다와의 외교 충돌이 있을 거라 보십니까?”
노먼은 눈앞에 들이밀어지는 마이크를 뿌리치며 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기자들은 앞을 가로막고 끊임없이 질문을 퍼부어댔다. 주변 다른 요원과 경비 안드로이드가 없었다면 아마 오늘 중에 건물로 들어가는 건 불가능했을 터였다. 노먼은 겨우겨우 빌딩 로비 안으로 몸을 피하고서야 한숨을 돌릴 수 있었고, 엘리베이터 앞에서 헝클어진 옷매무새를 정돈하며 옆에 선 여성에게 물었다.
“대체 누가 언론에 흘린 건가요?”
사라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높게 올려 묶은 금발이 그의 고갯짓에 따라 좌우로 흔들렸다.
“알려질 수밖에 없죠. 다른 사람도 아니고, 캐나다 총영사의 딸이 실종되었으니.”
노먼은 입 안 살을 잘근잘근 깨물며 구둣발로 바닥을 탁탁 두들겼다. 캐나다 영사건 뭐건, 그에겐 전혀 관심 대상이 아니었고 지금은 납치된 피해자가 어디에 있는지 오직 그것만 중요했다.
“케빈이 입을 열었습니까?”
“모르겠어요. 당신 팀의… 코너였나요? 그와 리처드가 먼저 심문하러 들어갔다는 것만 전달받았어요.”
노먼은 가만히 머리를 주억거리곤 엘리베이터가 내려오는 것을 기다렸다. 사라가 그에게 되물었다.
“그런데, 제이든 요원은 어떻게 바로 용의자를 찾아낸 건가요?”
“제시의 일기장에서요. 케빈과 자주 찾던 데이트 장소가 상세하게 적혀있었습니다.”
사라가 눈썹을 찌푸렸다.
“일기장이 있었어요? 이미 제시의 SNS 계정과 컴퓨터는 물론이고, 방과 집 전체를 샅샅이 뒤졌는데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했는데요.”
엘리베이터가 도착하자마자 노먼이 안으로 올라타 버튼을 누르곤 대답했다.
“제시는 비밀이 많은 아이였으니까요. 일기장 같은 물건을 아무 데나 둘 순 없었겠죠. 침대 밑, 좌측에서 세 번째 마룻바닥 아래에 숨겨져 있었습니다. 잘 보지 않으면 홈도 없고 맨눈으로 찾긴 어려워요.”
“그런데 당신은 어떻게…….”
사라가 아, 하면서 알겠다는 표정을 했다.
“ARI인가요? 정말, 당신만큼 그 안경을 제대로 쓰는 사람은 없을 거예요. 저는 쓰다가 어지러워서 바로 반납했는데.”
노먼은 별것 아니라는 듯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저도 요즘엔 오래 쓰면 멀미도 나고 그래요. 확실히 젊을 때만큼은 몸이 안 따라주는 것 같습니다.”
사라가 웃으며 말했다.
“그런 말은 한참 연장자 앞에서 하는 게 아니에요.”
“책임님도 그렇게 나이가 많아 보이시진 않은데요?”
“리처드보다 정확히 3살 많죠.”
노먼이 입을 벌리며 사라의 얼굴을 빤히 쳐다봤다. 그가 진심으로 놀랐다는 듯 눈을 깜빡였다.
“설마요.”
“저도 여기서 리처드를 거의 10년 만에 만났을 때, 깜짝 놀랐어요. 대체 워싱턴에서 얼마나 험한 일을 도맡은 건지….”
노먼은 입을 다물었다. 퍼킨스는 노먼이랑 파트너가 되고 나서부터 눈에 띄게 주름이 늘었다며 매일 같이 투덜댔지만, 그와 항상 붙어 다니던 노먼은 달라진 점을 전혀 알아채지 못했다. 언제나 그렇듯 불평불만 많은 파트너의 입버릇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새삼스레 사라의 탱탱한 피부를 보고나니, 퍼킨스가 없는 얘길 한 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노먼은 아주 약간 양심의 가책을 느꼈다.
“책임님이 평소 바르는 제품 좀 알려주실 수 있나요? 리처드에게 선물이라도 해야겠네요.”
사라가 크게 웃으며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문자로 보내줄게요.”
어느새 엘리베이터가 띵, 하는 소리와 함께 멈추었다. 사라를 따라 사무실 안으로 들어간 노먼은 자리에 앉아 업무를 보는 퍼킨스를 발견했다. 그가 모니터 너머로 두 사람을 바라보며 가볍게 눈짓했다.
“사라.”
“리처드? 난 네가 심문실에 있는 줄 알았는데.”
사라의 질문에 퍼킨스가 고개를 저었다.
“계속 쓸데없는 말만 해대고, 제시가 어딨는지 입을 열 기미가 안 보여서. 제 처지가 어떤지 잠깐 곱씹을 시간이 필요한 것 같아서 나왔지.”
“그럼 용의자를 혼자 둔 거야?”
“아니. 코너가 감시하고 있어.”
퍼킨스가 턱을 까딱이며 모니터 한 구석을 가리켰다. 사라와 노먼이 문서 창 바로 옆, 조그맣게 보이는 심문실 영상을 내려다봤다. 실종자 전단이 놓인 책상 앞에 팔짱을 끼고 앉은 안드로이드가 보였고, 그는 간간이 다리를 떨어댔다. 맞은 편에는 코너가 허리를 꼿꼿하게 펴고 앉아 눈도 깜빡이지 않고 용의자를 노려보는 중이었다.
“압박감이 장난 아니겠는걸.”
노먼의 감탄에 퍼킨스가 피식 웃었다.
“한 시간째 저러고 있어. 둘 다 안드로이드라 그런가, 인내심이 장난 아니야.”
“언제 다시 심문할 생각인데?”
퍼킨스가 영상을 흘끔 보더니 다시금 문서창으로 눈을 돌렸다.
“아까보단 초조해 보이긴 하다만, 아직은 아냐. 30분만 더 있다가 들어가자고.”
노먼이 어깨를 으쓱이며 제 자리로 가 앉았다. 사라도 퍼킨스에게 사건과 관련된 추가 자료를 넘겨주며 심문할 때 부르라는 말과 함께 자신의 집무실로 들어갔다. 노먼은 컴퓨터를 작동시키는 동안 뻑뻑해진 두 눈을 문질렀다. 대런 갬빗을 검거했을 때가 불과 지난주 목요일이었고 그런 대형 범죄자를 단 며칠 만에 잡아넣은 것은, 당연하지만 포상 휴가 감이었다. 노먼과 퍼킨스를 포함하여 함께 사건을 맡은 휴즈네 팀 전체가 2일 휴가를 받아냈고 휴즈는 그 자리에서 곧바로 휴가계를 제출하고 주말을 껴서 플로리다로 가을 휴가를 떠났다. 노먼과 퍼킨스 역시 휴가를 아껴 쓰는 타입이 아니었기에 다음날 갬빗 사건과 관련한 모든 서류작업을 마무리 짓고 총 나흘 간의 휴일을 즐기러 사무실을 떠났다. 하지만 애써 얻어낸 행복이 사라지는 건, 고작 한 통의 전화로도 충분했다.
“네. 국장님.”
퍼킨스가 엘리베이터에 올라타며 전화를 받아들였다. 둘만 있는 고요한 공간에, 수화기에서 들리는 상대의 목소리가 노먼의 귀에 똑바로 꽂혀 들렸다.
[아직 퇴근 안 했지?]
“퇴근했습니다. 이미 집이에요.”
[방금 전에 제이든이랑 나가는 거 다 봤어. 다시 올라와.]
퍼킨스가 가만히 눈을 감고 고개를 젖혔다. 그는 한숨을 내쉬고 싶은 걸 애써 참으며 매우 침착한 목소리로 물었다.
“또 다른 사건입니까?”
[미안.]
퍼킨스는 고개를 더욱더 뒤로 젖혔고, 노먼은 반대로 고개를 푹 숙였다. 내부를 밝히는 엘리베이터의 조도는 그대로였으나 두 인간의 눈에는 이 공간이 암흑보다 더 깜깜해 보였다. 퍼킨스가 간신히 목소리를 내었다.
“…지금 바로 올라가겠습니다.”
그가
전화를 끊자마자 띵, 하고 엘리베이터 문이 활짝 열렸고 유리문 너머로 너른 주차장의 풍경이 펼쳐졌다. 오늘따라 유달리, 주차된 수많은 자동차 중 노먼과 퍼킨스의 차가 곧바로 두 사람의 눈에 들어왔다. 조명이 헤드램프에 반사되어 눈부시게 반짝이고, 차들은 주인과 함께 집에 갈 것을 고대하는 듯한 모양새로 손짓하는 중이었다. 하지만 둘은 한 발짝도 내딛지 못했다. 이윽고 엘리베이터는 인간이 내렸다고 생각했는지 조용히 문을 닫아버렸다. 노먼과 퍼킨스는 닫히는 엘리베이터 틈 사이로 주차장 입구, 저 바깥세상에서 들어오는 밝은 빛이 사그라드는 것을 아득한 눈으로 바라볼 뿐이었다.
퇴근한 지 1분 만에 다시금 사무실로 출근한 둘은 외투를 책상에 아무렇게나 던져두곤 깁슨의 집무실로 걸어갔다. 투명한 유리 벽이 내부를 훤히 비추었고 깁슨은 양손을 깍지 낀 자세로 노먼과 퍼킨스의 침울한 얼굴을 구경했다. 사무실 안엔 사라 테일러 책임 요원이 있었고 그 옆엔, 역시나 코너가 서 있었다. 그는 살짝 미소 띤 얼굴로 손수 국장실 문을 열어주며 두 사람을 맞이했다. 코너는 두 인간의 심정 따윈 이해도, 공감할 필요도 없다는 듯 그저 새로운 사건이 연달아 배정되었단 사실에 기뻐했다.
그렇게 노먼과 퍼킨스는 휴가는커녕 주말조차 반납한 채 곧바로 제시 캘버리 실종 사건에 투입되었다. 디트로이트 소재 캐나다 영사관이 끼어있는 문제이니만큼, 관련자 조사는 훨씬 세심하게 이루어질 수밖에 없었고 제시를 데려간 자가 그의 남자 친구이자 안드로이드란 단서를 발견하자마자 깁슨은 곧바로 안드로이드 범죄 대응팀에서 가장 유능한 두 사람을 소환해 내었다. 용의자인 케빈은 제시의 실종 초기엔 가족과 함께 수색대를 꾸리고 제시를 찾으러 다녔으나 FBI에 꼬리를 밟히자마자 어떻게 알았는지 완전히 종적을 감춰버렸고, 퍼킨스는 이번만큼은 노먼과 ARI로 말다툼하지 않고 곧바로 코너를 데리고 제시의 대학 기숙사를 뒤지러 갔다. 그동안 노먼은 이미 수색이 완료되었단 제시의 방을 조사하는 역할을 맡았다. 그는 제시의 일기장을 발견하자마자 퍼킨스에게 연락을 돌렸고, 델레이 공원을 배회하던 케빈을 찾아낼 수 있었다.
퍼킨스가 일어나며 노먼에게 말했다.
“시간 됐어. 가자.”
노먼은 키보드를 두드리던 손을 멈추고 문서를 저장한 후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느새 40분이 지나있었다. 퍼킨스가 사라의 집무실 유리 벽을 똑똑 두들기며 손짓했고 사라가 밖으로 나오며 물었다.
“심문은 누가 진행하지? 내가 할까?”
“아니. 사람이 바뀌면 우리가 통제력을 잃었단 느낌을 줄거야. 노먼 한 명만 더 들어가면 충분해.”
사라가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셋은 어느새 심문실 앞에 다다랐고, 사라가 옆에 난 문을 열며 퍼킨스에게 당부했다.
“너도 알겠지만, 제시를 반드시 찾아내야 해. 그의 가족은 이제 거의 한계야.”
퍼킨스는 대답 없이 어깨너머로 손을 들어 보였다. 노먼이 퍼킨스를 따라 문 뒤로 사라졌고, 사라는 두 요원의 등을 지켜보다 감시실 안으로 들어갔다.
케빈은 등을 잔뜩 굽힌 채 손톱을 깨물며 초조하게 다리를 달달 떨고 있었다. 하지만 두 인간이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언제 그랬냐는 듯, 곧바로 허리를 뒤로 젖히고 심드렁한 얼굴을 가장했다. 반면 코너는 아무런 표정 변화도, 행동의 변화도 없이 그저 고요한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나 뒤쪽으로 물러났다.
퍼킨스가 그 자리에 가 앉고 노먼은 옆에 의자를 끌어왔다. 퍼킨스가 매끄러운 목소리로 말문을 열었다.
“어때, 케빈. 생각은 많이 했어?”
케빈은 의연한 얼굴로 어깨를 으쓱였다.
“생각할 게 뭐 있어요. 아까 제가 말한 게 전부인데요.”
“도망 다닌 이유에 대해선 입 벙긋 안 했잖아?”
“도망 다닌 게 아니라 제시를 찾으러 다닌 거라고 했잖아요. 여자 친구가 사라졌는데 가만히 있을 사람이 어딨어요?”
“그럼 적어도 가족에게는 말했어야지. 왜 갑자기 종적을 감춘 거야?”
“저도 확실치 않았고 그들에게 괜한 희망을 주긴 싫었으니까요. 이미 제시와 아무런 관련 없는 제보가 너무 많이 들어왔고, 캘버리 부인은 더 이상 버틸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어요.”
퍼킨스가 입술을 비틀어 올렸다.
“아주 멋진 심성을 갖고 있군, 그래. 이렇게 훌륭한 청년이 딸의 남자 친구라니. 캘버리 부부도 무척이나 자랑스럽겠네.”
케빈이 눈살을 찌푸렸다.
“지금 비꼬는 거예요? 제가 안드로이드라서, 이런 감정들이 전부 거짓이라 하는 건가요? 공감도, 슬픔도, 불안함도, 사랑도 못 느낀다고 가정하는 거죠?”
퍼킨스는 두 손을 들어 올리며 능청스레 말했다.
“진정해. 난 진심으로 그들이 딸을 찾길 바란다는 말이었어. 케빈, 너처럼.”
“그럼 지금 여기서 뭐 하는 거예요? 빨리 나가서 제시를 찾아야….”
케빈이 말을 끝맺기도 전에 퍼킨스가 대뜸 끼어들었다.
“제시가 실종된 날 오후 5시에 어디 있었지?”
삽시간에 바뀐 인간의 표정에 케빈이 저도 모르게 몸을 뒤로 젖혔다. 그는 이를 빠득, 깨물며 도리어 목소리를 높였다.
“얘기했잖아요! 그때 전 운전 중이었다고요! 정확히 4시 52분에 집에서 출발해서 5시 쯤 3번 국도를 지나쳤고, 5시 31분까지 운전했단 것도 기억해요.”
“운전해서 어디로 갔지?”
“제시를 데리러 가는 중이었어요. 시험이 끝나는 날 데이트하기로 약속했으니까요.”
“네 말은, 제시를 마지막으로 본 게 너라는 뜻인가?”
케빈이 잠깐 멈칫하더니 고개를 저었다.
“아뇨. 학교 정문 앞에서 기다렸는데 제시가 나타나지 않아서 그냥 집으로 돌아왔어요.”
“여자 친구가 말도 없이 사라졌는데? 왜 가족에게 연락하거나 경찰에 신고하지 않고 그냥 가버린 거야?”
안드로이드는 머뭇대는 것 같더니 잠시 뒤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전날 싸웠으니까요. 제가 보기 싫어서 안 나온 거로 생각했어요.”
퍼킨스가 미간을 찌푸리며 고개를 갸웃했다.
“이상하군. 아까 다퉜냐고 물었을 때는 그런 적 없다고 하지 않았어?”
“그건….”
“왜지, 케빈? 왜 계속 거짓말을 하는 거야?”
퍼킨스의 추궁에 케빈이 책상을 내리치며 언성을 높였다.
“싸웠다고 하면 당연히 저부터 의심할 거로 생각했으니까요!”
“솔직하게 말한다면 의심을 살 것도 없어. 자꾸 진술을 번복하고, 중언부언해 대니 우리 입장에선 수상하게 생각할 수밖에 없지.”
“웃기지 마요. 제가 안드로이드라서 이러는 거잖아요! 아무런 증거도 없이 절 잡아두고 심문하는 건 엄연한 평등법 위반….”
퍼킨스가 코웃음을 쳤다.
“안드로이드니, 평등법이니, 그런 말을 왜 지금 들먹이는지 모르겠군. 우린 네 여자 친구를 찾아주려 하는 거야. 제시의 가족과 친구들도 너와 정확히 똑같은 심문을 거쳤어. 그들은 제시를 찾겠다는 일념으로 숨기는 것 없이 전부 대답했는데, 너는 무슨 이유로 이렇게 비협조적으로 나오는 건지. 오히려 내가 묻고 싶은데.”
할 말이 없어진 케빈은 그저 앞에 앉은 인간을 노려봤다. 퍼킨스가 그의 시선을 똑바로 마주하며 물었다.
“제시랑 무슨 이유로 싸운 거지? 지금부턴 사실만 말하는 게 좋을 거야. 진짜 범인으로 몰리고 싶지 않다면.”
안드로이드는 한차례 숨을 고르고는, 몸에 힘을 빼고 다소 높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별거 아니에요. 그냥 제시가, 제 차 안에서… 어, 사탕을 발견했어요. 끊겠다고 약속했는데 또 손을 댄 걸 가지고 꼭지가 돈 거죠.”
퍼킨스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사탕? …약 같은 걸 말하는 거야?”
“비슷해요.”
“뭐라고 불리는데?”
“뭐… 정식 명칭은 저도 모르겠지만 펄 캔디라고, 요즘 유행하는 거예요. 딱히 불법도 아니고요.”
“글쎄. 뭔진 몰라도 네 여자 친구가 화를 낼 정도면 증상이 그리 곱진 않을 텐데. 아직 불법이 아닌 거겠지.”
퍼킨스가 정정하자 케빈은 능청스럽게 말했다.
“당신들이 담배를 피우거나 술을 먹듯, 그것도 그냥 안드로이드의 선호 식품일 뿐이에요.”
“뭐, 좋아. 그 펄 캔디란 것에 대해 더 설명해 봐.”
“무슨 설명이 필요한데요?”
“약을 먹었을 때 증상이 어떤지.”
“…별거 없어요. 기분 좋고, 흥분도 되고. 웃음이 나기도 하죠. 그게 다예요.”
퍼킨스는 말없이 고개를 돌려 뒤에 선 코너를 바라봤다. 코너가 곧장 입을 열었다.
“펄 캔디가 최근 안드로이드 사이에서 유행한다는 건 사실입니다. 주성분은 밝혀지지 않았으며 사탕과 비슷한 모양의 보라색 정제형 알약으로 유통이 됩니다. 주요 증상으론 흥분과 혼돈, 도취감이 있죠. 과다 복용 시에는 시스템 오작동이 발생하고, 언어와 판단 능력에 영구적인 손상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몇 안드로이드에겐 급격한 공격성과 함께 폭력적인 행동을 취하는 모습이 목격되고요.”
코너의 설명을 들은 퍼킨스가 팔짱을 끼고 다시금 케빈을 쳐다봤다. 케빈은 그 시선을 바로 마주하지 못하고 눈을 내리깔았다. 퍼킨스가 물었다.
“약에 취해 제시를 때린 적이 있나?”
케빈은 입술을 몇 번 짓씹더니 고개를 저으며 웅얼댔다.
“…없어요.”
“안 들려. 크게 말해.”
케빈이 좀 더 큰 목소리로 강조했다.
“욕을 한 적은 있어도, 때린 적은 없어요.”
“때리려는 시늉도 한 적이 없어? 힘으로 제압하고, 위협한 적은? 억지로 끌고 간 적도 없나?”
듣다 못 한 케빈이 책상을 내리치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없다고 했잖아요! 이건 전부 시간 낭비예요. 이럴 시간에 빨리 나가서 제시를 찾아봐야 한다고요!”
퍼킨스는 무표정한 얼굴로 책상 위에 놓인 태블릿을 제 앞으로 끌어왔다. 그가 액정을 켜며 물었다.
“알았으니 진정하고 앉아. 그럼 넌 여자 친구에게 손을 댄 적도 없고, 실종 당일에도 제시를 본 적이 없단 얘기지?”
“그렇다니까요! 대체 몇 번이나 말하게 하는….”
퍼킨스가 태블릿을 돌려 케빈의 눈앞에 내밀었다. 케빈은 화면 속, 누군가의 차량 블랙박스에 찍힌 영상이 재생되는 것을 보곤 눈을 크게 떴다. 한 안드로이드가 차에서 내려 제시의 머리채를 쥐곤 억지로 뒷좌석에 밀어 넣는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몸싸움하듯 차체가 몇 번 흔들리더니, 다시금 앞좌석에 올라타 떠나는 장면이 고스란히 찍혀있었다.
퍼킨스가 케빈을 올려다봤다.
“넌 이 시각에 운전 중이었다고 했지. 그런데 운전을 뭐, 렌트카로 한 거야? 아니면 너와 정확히 똑같이 생긴 모델이 네 차를 훔쳐 가서 제시를 태우고 달아났다고 말하고 싶은 건가?”
“이, 이건…….”
하지만 케빈은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입을 다물었다. 퍼킨스가 나직하게 명령했다.
“자리에 앉아.”
케빈은 엉거주춤 의자에 엉덩이를 붙이고 안절부절못하는 표정으로 눈알을 굴렸다.
“제시는 어디 있지?”
“저는…. 저는, 몰라요.”
퍼킨스가 작게 한숨을 내쉬더니 목소리를 다소 누그러뜨리며 말했다.
“연인 사이에 싸움은 흔히 벌어지는 일이지. 때론 조금 격해질 수도 있고. 하지만 적어도 제시의 부모는 딸이 어딨는지 알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나?”
케빈이 고개를 숙였다. 퍼킨스는 침착하게 그를 설득했다.
“넌 여름에 함께 여행도 다녀왔잖아. 제시의 가족이 어디서 왔는지 알지? 그런데도 그들은 아무 편견 없이 딸이 사랑하는 남자를 온전한 가족 구성원으로 받아들였어. 나는 솔직히, 널 화나게 한 제시보단 그의 가족이 더 걱정이야.”
퍼킨스는 안드로이드의 모든 행동, 손짓, 표정의 변화를 면밀하게 살피며 말을 골랐다.
“네가 말했듯이 캘버리 부인은 더는 버티지 못할 거야. 캘버리 씨도 마찬가지고. 제시의 동생도 누나가 언제쯤 돌아올지 계속해서 묻고 있어. 그들이 놓인 고통 속에서 해방해 줄 수 있는 건 케빈, 너 뿐이야.”
케빈의 손이 움찔대고 눈동자가 살짝 흔들렸다. 심문 내내 잠잠히 있던 노먼이 입을 열었다.
“케빈. 우린 제시의 문자 기록을 봤어요. 제시가 일방적으로 이별을 통보했고, 당신은 그와 대화하려 노력했지만 잘 안됐죠. 저도 알아요. 오랫동안 쌓아왔던 관계가 사소한 이유로 틀어지면, 정말 화가 나고 배신감도 클 거라는 걸. 당신은 잘못한 게 없어요. 하지만…. 그녀의 가족 역시 잘못한 게 없잖아요.”
안드로이드가 머리를 들어 인간의 얼굴을 마주했다. 인간은 애써 감정을 억누르려 하는 듯 보였으나, 두 눈가에 어린 물기까지 숨길 순 없었다. 그걸 본 케빈은 아래로 내린 두 손을 꽉 마주 잡았다. 노먼이 책상 위에 놓인 실종자 전단을 가리키며 약간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저도 제시만 한 동생이 있어요. 사진 속 이 얼굴을 보면, 제 동생이 생각난다고요. 제시의 가족들이 얼마나 큰 고통 속에 놓여있을지, 당신도 알잖아요….”
케빈은 인간의 간절한 표정을 차마 똑바로 마주하지 못하고 눈을 돌렸다. 노먼은 몸을 앞으로 숙여 케빈에게 속삭였다.
“당신은 절대 나쁜 자가 아니에요. 전과도 없고, 직장에서 평판도 좋죠. 그냥 화가 나서 누구나 할 수 있는 실수를 저질렀을 뿐이에요. 케빈…. 저는 당신을 이해해요.”
케빈은 눈을 질끈 감고 머리를 푹 숙였다. 퍼킨스가 조용히 거들었다.
“이제 제시의 가족에게 자비를 베풀 수 있는 건 우리도, 누구도 아닌 케빈, 너 밖에 없어. 제시를 어디로 데려간 건지 그것만 말해주면 돼.”
케빈은 여전히 침묵했으나 퍼킨스는 더는 추궁하지 않고 입을 다물었다. 심문실엔 정적만 가득했고, 숨소리 하나 들리지 않았다. 케빈은 한참 동안 그러고 가만히 앉아 있다가 결국 입술을 떼었다. 기계의 목에서 가느다란 음성이 흘러나왔다.
“저는… 제, 제가… 왜 그랬는지, 아직도 모르겠어요.”
인간은 인내심 있게 안드로이드의 다음 말을 기다렸고 케빈은 옛 기억을 회상하듯 더듬더듬 읊어나갔다.
“우린 그저…. 평소처럼 조금 다퉜을 뿐인데, 제시가 그날따라 크게 화를 내면서 가버렸어요. 전화도 안 받더니 나중에 문자로 헤어지자 하더라고요. 당장은 우리 둘 다 화를 가라앉히는 게 좋을거같아서 집으로 돌아왔어요. 그때 약이 없어졌다는 걸 알았고요.”
케빈이 목소리를 높였다.
“아니…. 그건 제 거잖아요? 약속을 어겨서 화가 난 건 그렇다 쳐도, 왜 남의 물건에까지 멋대로 손을 대요? 안 그래요?”
퍼킨스는 동조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고 케빈은 자신감을 얻었는지 말을 이어갔다.
“저도 나름 인내심을 발휘했어요. 자고 일어나서 곰곰히 생각하면 제시가 자신의 잘못을 깨달을 거라고요. 그래서, 다음날 찾아간건데… 제시는 여전히 흥분한 상태였어요. 저는 어떻게든 설득하려 했지만 제시가 제 말을 무시하고 또다시 멋대로 자리를 뜨려 했고요.”
“그래. 그래서 차에 태웠나?”
“네. 전 그저 물건만 되찾으려 했을 뿐이에요. 하지만 제시는…. 약을 전부 버렸다면서 당장 꺼지지 않으면 신고하겠다 소리를 질렀어요. 저는 아무 짓도 안 했는데, 자꾸 범죄자 취급하잖아요. 그래서… 입을 막았어요. 절대 다치게 하려던 게 아니에요. 그냥, 그냥 진정시키려고만 했어요. 그런데 제 말을 안 듣고 걷어차면서 차에서 내리려 했고, 그게 너무 화가 나서…, 제시를 약간, 눌렀어요.”
퍼킨스가 미간을 좁혔다.
“어딜 눌렀지? 목?”
케빈은 갑자기 감정이 북받쳐 오르는 듯, 머리를 감싸 쥐고 흐느끼기 시작했다.
“정말 잠깐이었어요. 별로 세게 누르지도 않았다고요! 그런데, 어느 순간 보니까 숨을 쉬고 있지 않았어요…. 제시를 깨우려 했는데 일어나질 않았고, 저, 전 너무 겁나서….”
예상은 했지만, 우려하던 상황이 현실이 됐음을 안 노먼은 가만히 눈을 감고 탄식했다. 반면 퍼킨스는 낯빛 하나 변하지 않은 채 한층 더 낮고, 얼핏 다정하게 들릴 정도의 목소리로 속삭였다.
“그래, 그래. 나도 알아. 무서웠을 거야. 그래서 제시는 지금 어디 있지? 네 집에 있나?”
케빈이 눈물을 흘리며 고개를 저었다. 잔뜩 흔들리는 음성 탓에 말이 띄엄띄엄 흘러나왔다.
“데, 델레이 공원에…, 인접한 강이 있어요. 거기에…….”
위치를 알아내자마자 두 인간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문으로 걸어갔다. 케빈은 그들의 등에 대고 큰 소리로 외쳤다.
“절 이해한다고 했잖아요! 전 그저 제시와 대화를 하고 싶었을 뿐이에요. 죽일 생각은 절대 없었다고요! 만약 제시가 안드로이드였다면 겨우 그 정도 힘으로 죽지는….”
노먼이 고개를 돌렸고, 아까의 물기 젖은 눈동자는 간데없이 오로지 싸늘함만 남은 눈빛에, 케빈이 몸을 움찔했다. 노먼이 차가운 목소리로 내뱉었다.
“당신이 어느 정도의 힘으로 어떻게 눌렀는지는 관심 없습니다. 안드로이드건 인간이건, 한쪽을 찍어 누르면서 하는 대화는 대화가 아니라 폭력일 뿐이에요.”
그리곤 곧장 밖으로 나가버렸고, 코너 역시 인간들을 뒤따라가며 문을 닫았다. 안드로이드의 흐느낌이 심문실을 가득 채우고 두꺼운 문 너머로까지 새어 나왔지만 셋은 그저 조용히 걸음을 옮길 뿐이었다.
사라는 곧바로 수색팀을 꾸려 델레이 공원으로 향했다. 그동안 퍼킨스와 노먼은 사무실에서 대기했고, 얼마 안 있어 사라가 현장 사진을 보내주며 전화를 걸어왔다.
[좀 떨어진 강변에서 발견됐어. 가족들에게 신원확인도 받았고. 제시가 맞아.]
퍼킨스가 화면을 들여다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살살 눌렀다고 한 것 치곤, 목뼈가 완전히 으스러졌는데."
[아무래도, 케빈은 공업용 안드로이드였으니까.]
그때, 수화기 너머로 또 다른 요원의 목소리가 들렸다.
[-책임님. 캘버리 씨를 좀 보셔야 할 것같아요. 저희로선 도저히….]
[그래. 금방 갈게.]
사라가 대충 대답하곤 퍼킨스에게 말했다.
[하여간 리처드, 도와줘서 정말 고마워. 나머진 우리가 마무리할 테니 너희 팀이 조사한 부분만 추가해서 올려 줄 수 있어?]
"그러지."
사라가 전화를 끊었고, 퍼킨스는 노먼에게 태블릿을 건네주며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졸려 죽겠네. 보고서만 쓰고 오늘은 일찍 들어가서 잠이나 자야겠어."
"나도."
노먼이 태블릿을 내려놓으려다가 책상 위에 놓인 실종자 전단을 보곤 멈칫했다. '우리의 소중한 친구, 제시를 찾아주세요.'라고 적힌 활자 아래 디트로이트 대학 점퍼를 입은 제시가 활짝 웃고 있었다. 상대를 온전히 신뢰하는 듯한 맑은 눈동자가 노먼을 뚫어져라 쳐다봤고, 노먼은 차마 그 눈을 마주하지 못한 채 전단을 서랍 안에 밀어 넣었다.
"코너. 증거 팀에서 보내준 자료들 갖고 있어요?"
"네. 정리해서 메일로 첨부하겠습니다.“
"고마워요."
"아, 맞다. 저번에 말한 양식 그거 네 쪽에 보냈는데. 확인했어?"
"네. 그날 바로 확인했습니다. 감사합니다."
퍼킨스가 설렁설렁 고개를 주억대며 키보드를 두드리기 시작했다. 노먼도 4시 전에 모든 업무를 끝마치리라 다짐하며 전투적으로 문서를 작성했다.
두 인간이 각자의 컴퓨터로 사무를 보는 동안 코너는 코너 나름대로 머릿속으로 보고서를 써 내려갔다. 지금은 그저 임시 자문 자격으로 FBI에 이관됐을 뿐이니, FBI뿐 아니라 DPD에 제출할 활동 보고서까지 추가로 작성해야 했다. 그러나 코너는 별다른 어려움 없이 매우 빠른 속도로 일을 끝마친 후 검토까지 마무리해서 파울러 서장에게 메일을 전송했다.
코너는 더 할만한 일을 찾다가 케빈의 진술서도 자신이 작성하는 게 빠를 거라 여기고, 심문했던 모든 녹음본을 요약하여 문서화시키기 시작했다. 좀 전에 들었던 케빈과 퍼킨스와의 대화, 그리고 노먼의 음성이 머릿속에 선명히 재생됐고, 그 목소리를 듣자마자 코너가 대뜸 입을 열었다.
“노먼. 동생이 있나요?”
집중하던 인간들은 기계의 존재를 완전히 잊고 있었다. 퍼킨스와 노먼이 고개를 돌려 책상 옆에 정자세로 선 코너를 바라봤다.
“무슨 말이에요?”
“심문실에서, 제시와 비슷한 또래의 동생이 있다고 하셔서요.”
퍼킨스가 피식 웃고는 대신 대답했다.
“심문 중에 노먼이 지껄인 이야기를 죄다 나열하면, 쟨 적어도 가족이 스무 명은 될걸. 아이는… 한 다섯 명쯤 있나?”
노먼이 화면에 시선을 집중하며 무심한 어투로 정정했다.
“여섯 명.”
“그래. 아주 대가족이지. 백억 인구에 저놈 혼자 먹여 살릴 입이 절반은 돼.”
코너가 깜짝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
“아이가 여섯 명이나 있다고요? 딸인가요, 아들인가요?”
퍼킨스가 황당한 표정을 지었고 노먼은 결국 의자를 돌려 코너를 올려다봤다.
“코너. 아이는 없어요. 다 거짓말이라고요. 심문실에서 제가 하는 말, 절반 이상은 그냥 헛소리예요.”
“아.”
"몇 번 봤겠지만, 심문 대상에 따라 접근을 달리해야 해요. 위협적으로 굴어야 할 때도 있고 감정에 호소해야 입을 여는 경우도 있어요. 두 방법을 적절히 쓰는 게 가장 좋겠죠."
노먼은 잠시 생각하다가 입을 열었다.
"그러고 보니 당신이 심문을 진행하는 건 제대로 본 적이 없네요. 심문할 줄 알아요?"
무지하다시피 한 노먼의 말에 코너가 눈썹을 찌푸렸다. 그는 조금 기분 나쁘단 투로 대답했다.
"전 수사 로봇입니다. 기본적인 심문 기법은 전부 갖고 있어요."
"그래요?"
"꽤 하긴 해. 네가 들어오기 전에, 케빈의 진술 중 대부분은 저 녀석이 확보한 거야. 거짓 진술도 분별할 줄 알고."
평소 남 칭찬을 하는 일이 전무하다고 해도 무방한 퍼킨스의 말에, 노먼이 흥미로운 표정으로 코너를 살펴봤다.
"근데 왜 제가 거짓말한 건 몰라봐요?"
"앞뒤 진술을 비교해서 허점을 찾아내는 건 쉽습니다. 하지만 당신의 경우, 가족 구성원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없으니까요. 그럴 때는 처음 들은 말을 사실로 가정합니다."
"아하."
"그것 말고도 거짓말을 판별하는 방법이 몇 가지 더 있습니다."
"뭔데요?"
코너가 왼손을 내려 인간의 손목 안쪽을 지그시 눌렀다. 노먼은 약간 움찔했으나 팔을 빼지 않고 안드로이드의 손가락이 그의 손목을 잡게 두었다. 안드로이드가 나직하게 읊조렸다.
"직접 손을 댈 수 있다면 맥박을 느끼는 것으로도 가능하고,"
그러면서 한껏 허리를 숙인 코너가, 다른 손으로 노먼이 앉은 의자의 팔걸이를 잡았다. 노먼은 훅 다가온 얼굴에 깜짝 놀라 등받이에 뒤통수를 기댔다.
"뭐 하는…."
"홍채와 동공 반응을 보고서도 판독이 가능합니다. 기존의 거짓말 탐지기보다 훨씬 세밀하고, 정확도가 높죠. 이건 수사 로봇에게만 있는 기능입니다."
안드로이드가 그의 눈동자를 빤히 쳐다보며 말했고, 거의 코 끝이 맞닿을 듯한 거리에 노먼은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눈알을 굴렸다.
"아…. 그래요? 그런데 꼭 이렇게 가까이 붙어서 봐야 하나요? 무척 부담스러운데요."
코너가 곧바로 몸을 떼고 한 발짝 물러나며 말했다.
"물론, 시각 장치에 인식이 될 정도의 거리면 충분합니다. 제 눈을 보고 아무 얘기나 던져보십시오. 진실인지, 거짓인지 말씀드리겠습니다."
흥미가 동한 노먼이 코너를 올려다보며 입을 열었다.
"음…. 리처드는 정말 잘생겼어요."
"거짓입니다."
사무실 곳곳에서 풉, 하는 소리가 울렸다. 퍼킨스가 눈을 희번득 치켜뜨자, 요원들은 헛기침하며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자꾸 정신 사납게 굴 거야? 보고서 다 올렸으면 집에나 가!"
"리처드는 성격이 좋아요."
"거짓입니다. 그리고, 이런 단순한 문장 말고 좀 더 복잡하고 심층적인 걸 제시해 보십시오. 진실과 거짓을 한 번에 분별해 내기 어려운 걸로요. 예를 들어, ‘개인적인 견해로 성격이 괜찮아 보이는 리처드는, 또 객관적인 지표로 따지면 매우 못생긴 축에 들지만 능력만큼은 인정할 수 있는 요원으로서—’"
요원들이 또다시 어깨를 들썩였고 퍼킨스가 벌떡 일어나 코너의 뒷덜미를 잡고 제 책상 옆에 앉혔다.
"둘 다 입 닥치고 업무에 집중한다. 실시."
코너가 여상한 얼굴로 대답했다.
"아까 다 끝냈습니다."
"그럼 퇴근하든가!"
"제 업무는 공식적으로 종료됐고, 전 집이 없으니 사실상 퇴근한 것과 마찬가집니다. 지금은 여가 시간이에요."
"나랑 노먼은 아직 근무 중이야. 방해할 거면 나가 있어."
"나도 다 끝냈어.”
노먼이 대꾸하자 퍼킨스가 이마를 짚었다.
"하…. 그럼 둘이 손잡고 꺼져, 좀."
"말씀드렸지만 저는 집이 없으니 꺼질 곳도 없습니다."
퍼킨스가 머리를 한껏 젖히고 앓는 소리를 내었다. 그는 있지도 않은 고혈압이 도지는 것 같은 착각에 빠졌다.
"노먼, 네가 데려왔으니 네가 책임지고 데려가. 제발."
노먼은 충분히 즐겼고 더 이상 퍼킨스를 긁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알았다. 그가 컴퓨터를 종료하고 외투를 챙겨입으며 코너에게 말했다.
"당신이 신청한 임시 신분증이 나왔다네요. 같이 받으러 가죠."
"벌써요? 다음 주에 나온다고 들었는데요."
"제가 재촉 좀 했어요."
코너가 빙긋 웃으며 노먼의 뒤를 쭐레쭐레 따라갔다. 노먼은 퍼킨스에게 손을 들어 보이며 인사했다.
“수고. 난 내일 휴가 낼 거야.”
“나도야…. 연락하지 마.”
퍼킨스가 잔뜩 기운 빠진 목소리로 대답했고 노먼은 조용히 미소 지으며 코너와 함께 사무실을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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